◈ 35화. 신성의 갑옷
여명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들어오는 보고들을 받으며 말릭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베아치야 교구 그리고 라파엘라 대성당들이 모두 공격받고 있습니다!”
“이. 이 어찌?!”
고블린들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공격이 끝이 난 게 얼마 되지 않았건만.
어째서 각지에 있는 헤스티야교의 교구들이 일제히 공격을 받고 있는지 말릭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그곳이 아닙니다.”
보고를 하러 온 성기사의 온몸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증명하듯.
이미 여명 수도원은 수만 마리의 구울들과 정신이 나가버린 주민들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중이었다.
성기사가 수만의 무리들을 뚫고 이곳에 온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들.
그가 말하길 여명 수도원에서 말릭에게 이 상황을 전하기 위해 지원한 성기사가 10명이라고 했었다.
‘2차 몬스터 웨이브.’
말릭의 점점 굳어지는 표정과 주위의 성기사들의 불편한 침음을 들으며 아셀은 드디어 2차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됐음을 알아차렸다.
이때 당시 대륙 곳곳의 모곳을 공격했던 1차 몬스터 웨이브와는 다르게 2차 몬스터 웨이브는 모두 헤스티야교와 관련된 곳에 집중되었다.
성기사들의 본진인 여명 수도원 사제들을 기르는 라페엘라 대성당. 게다가 헤스티야교의 교황이 머물고 있는 바르틴 대도시까지.
그곳들을 중심을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들. 유저들은 그저 성기사들과 사제 계열에게 특화된 경험치 이벤트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었다.
“전혀 아니었지만.”
어째서 이런 수만 마리의 구울들과 이성을 잃은 주민들이 헤스티야교와 관련된 것을 공격하는지 2차 몬스터 웨이브의 끝을 알고 있는 아셀은 잘 기억하고 있었다.
“다. 단장!”
여명 수도원 주위를 감싸고 있는 신성의 결계 앞에 수만의 구울들이 있었다.
그것들 모두가 적어도 5성급 이상.
새하얀 결계에 불타오르는 자신들의 몸을 무시하고 녀석들은 그저 앞으로 달려들 뿐이었다.
그 모습이 기괴하고 혐오스러워 르안느의 표정이 창백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아셀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아.”
“어?”
“스승님이 계시잖아.”
이곳에 말릭이 있는데 저 수만의 구울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셀의 말을 증명하듯 말릭의 몸에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갑옷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내 뒤를 따라라. 기사단들은 아셀과 르안느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도록.”
“존명!”
신성 기사단들 대다수가 지금 이곳에 있었다.
신성의 결계가 수도원을 얼마나 지켜줄지는 모르나 위급한 상황.
단숨에 저 구울들을 돌파한다는 말릭의 무모한 말에 아무도 토를 달거나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대륙 제일의 기사의 말에는 그만큼 무게가 있었기 때문에.
‘신성력을 저렇게..’
구울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보다 말릭이 신성력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그것을 하나라도 더 보고 따라 하고 싶었기에.
“흡!”
거대한 기합이 말릭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가 구울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구울들은 그의 신성한 갑옷에 닿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불타오르기 시작했으며 그가 휘두르는 빌딩만 한 새하얀 검강들은 수만의 구울들 무리에 뒤이어 따라오는 이들을 위한 널찍한 길을 만들어주었다.
“바로바로 따라붙는다.”
“미친 이거 지옥이 따로 없잖아!”
놀라운 일들이었다.
말릭이 베어내는 자리에 순식간에 또 다른 구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
마치 바다에 파도가 사라지고 다시금 나타나는 것 같은 모습인 것만 같았다.
“이렇게인가?”
달려 나가는 와중. 아셀은 여신에게 몸을 지켜줄 갑옷을 달라고 간청하고 애원해보았다.
말릭은 그렇게 할 것 같았기에.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새하얀 건틀릿이 만들어지자 주위의 성기사들은 지금 상황도 잊고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아. 아셀 너?!”
“신성의 갑옷을 어떻게?”
말릭과 다른 성기사들처럼 완벽하게 몸 전체를 감싸지 못했지만 신성의 갑옷 일부를 소환한 것.
15살 게다가 아직 5코어가 되지 않은 아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거 기묘한데?’
주위의 성기사들의 놀라움을 무시할 만큼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건틀릿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은 아셀을 고양시켜주기 충분했다.
그것에 맞춰 아르테스를 휘두르자 신성력의 검기가 구울들을 향해 쏘아지는 모습.
비록 수만의 구울들 무리에 휩쓸려 단숨에 사라졌지만, 아셀은 자신이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검기를 쏘아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5성급 이상의 무인들만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이 건틀릿이 버프를 준 게 분명하다.’
아셀이 날린 검기를 바라보며 주위의 성기사들은 놀라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심지어 굳은 얼굴로 길을 열고 있던 말릭마저 일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아셀 너는?”
1주일.
그 정도만 자신이 직접 가르쳐준 것뿐이었건만. 불완전하지만 신성의 갑옷을 소환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몇 년을 가르친 르안느는 아직 소환도 못 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저런 재능이..’
성기사만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자신 또한 아셀의 나이에 신성의 갑옷을 소환했었으니까. 하지만 아셀은 사냥꾼 대장장이 심지어 정령사의 재능까지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기 많은 재능을...”
눈앞에 악을 멸하며 이렇게 다른 곳에 시선을 둔 것은 말릭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그만큼 아셀이 보여주고 있는 놀라운 모습들은 상식에 벗어난 것이었으니까.
잠시 말릭은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난 의구심을 황급히 지워냈다.
아셀이 어쩌면 인외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그 생각을.
‘내가 선택한 제자인데 내가 믿어야지...’
다시금 빌딩만 한 검강을 밀려오는 구울들을 향해 휘두르던 말릭이 이빨을 까득였다.
“나도 부족하구나.”
그의 몸 안에 있는 10개의 코어에서 신성력이 다시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여명 수도원 안으로 급하게 들어온 아셀은 흐뭇한 시선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말릭을 바라보았다.
“장하다. 아셀. 하지만 재능에 취해 너무 나태해지지는 말거라.”
“너 나한테는 길이 어쩌고 걷는 게 어쩌고 하더니 이 거짓말쟁이!”
르안느는 아셀에게 분한 듯 소리쳤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이전에 가득했던 질투심과 열등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경쟁자로 아셀을 바라볼 뿐. 그 모습에 다시 한번 아셀을 제자로 받아들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말릭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저런 아이를 잠깐이나마 의심했다니.. 여신이여 저를 용서해 주소서.’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러가기 위해 말릭이 자리를 떠나고 나서 아셀은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옥이 따로 없네..”
“으... 나 오늘 저녁 못 먹을 거 같아.”
여명 수도원.
그곳에는 당연하게도 성벽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었다.
그저 성당들 수백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수천의 사제들이 돌아가며 이 거대한 교구에 결계를 치고 있는 것.
결계 밖으로 끊임없이 달려오고 있는 구울들과 좀비들을 바라보며 아셀은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이야 이렇지만...’
2차 몬스터 웨이브.
그것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는 아셀은 조만간 저 신성의 결계가 무용지물이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여명 수도원에서 나타나는 녀석이 가지고 있는 그건 조금 괜찮은 물건이지.’
신성력.
그것이 조만간 저것들에게 제대로 통용되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 이후 나타날 상황들과 모습을 드러낼 존재들을 떠올리며 아셀의 표정에는 긴장감 대신 진한 미소가 걸려났다.
“야.. 너 표정 무서워.”
르안느가 그런 아셀의 표정을 바라보며 조금 소름 끼친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지만, 아셀의 눈에는 결계 밖에 있는 구울들만 들어올 뿐이었다.
“빨리 사냥에 나가고 싶다.”
***
말릭이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가장 구울들이 많은 곳은 이곳 여명 수도원이라고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에는 대륙 제일의 기사가 있었으니까.
“마탑과 황금 기사단 그리고 여러 곳에서 지원에 나설 거라고 했다. 허나.”
대륙각지에 있는 헤스티야 교구들만 공격받고 있었기에. 대륙의 유명한 집단에서 지원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악을 멸하는데 남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검에서 신성력이 터져 나오자 도열해 있던 성기사들의 얼굴이 점점 상기 되기 시작했다.
성검이 있는데 어찌 도움을 받겠는가.
그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던 것과 동시에 말릭을 따라 성기사들이 일제히 결계 밖에 있는 구울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셀 르안느. 무리하지 말거라.”
“그래. 우리가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신성 기사단의 성기사들은 아셀과 르안느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 모습에 그저 피식 웃어 보인 아셀의 손에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건틀릿이 만들어졌다.
신성의 갑옷.
그와 동시에 그림자 제단의 유지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믿음.’
앞에서 빌딩만 한 검강을 휘두르는 말릭을 바라보며 아셀 또한 신성력으로 물든 아르테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베고 검기를 날리고 검격을 뚫고 들어온 녀석들의 머리를 건틀릿이 만들어진 손으로 후려쳤다.
녀석들의 머리가 터지고 나오는 피와 살점들을 닦아낼 새도 없이 밀려드는 구울들을 향해 아셀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사냥터 좋은데?’
주위에서 아셀의 이런 모습에 도저히 믿지 못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4성급에 15살의 아이가 도저히 맨정신을 유지할 전투들은 아니었으니까.
“저 아이는 도대체..”
“허 참. 원래는 저게 정상인데 말이야.”
창백한 표정으로 벌써 몇 번이나 큰 위험이 있던 르안느를 바라보며 성기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절하지 않고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르안느가 얼마나 재능이 넘치는 녀석인지 알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아셀은 그것을 넘어 오히려 더 많은 구울들과 좀비들을 사냥하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코어 안에..’
마나가 빠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소 5성급 몬스터들.
그것들을 사냥할수록 마나들은 빠르게 아셀의 코어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방패를 들어 올려라!”
말릭의 말이터저 나오기 무섭게 아셀은 새벽의 종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시체폭발..’
어차피 구울들은 수만 마리 있었으니까.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것들이 터트릴 시체는 많았다.
그 결과가 사방에서 터져 나가는 시체들과 새벽의 종 방패 위로 느껴지는 거대한 충격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말릭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무언가 중얼거리는 모습을 따라 했더니 동기화가 올랐기에.
아셀은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폭음들에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끝이 있는 걸까..”
폭음이 멈추고 다시금 도열한 성기사들 중 한 명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수천의 시체들이 터져 나간 것 같았지만 주위에는 아직도 수많은 구울들과 좀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시작인데 뭐.’
손목을 풀며 전방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동시에. 구울들의 벽이 스르륵 열리던 마기가 일렁이는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듀라한.. 저게 어찌 이곳에.”
목없는 기사 듀라한. 그뿐만이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하급 마족들까지 나타난 상황들.
심지어 네임드 좀비들까지 눈앞에 나타난 상황이었다.
‘모두 6성급 이상.’
심지어 듀라한은 6성급 몬스터들 중에서도 네임드 몬스터 중 하나였다.
그것들 모두가 말릭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수만해도 수천 마리.
그럼에도 말릭은 전혀 물러서지 않고 신성력으로 물든 검강을 휘둘렀다.
“온다!”
말릭이라는 거대한 벽을 통과하고 몇 마리의 듀라한을 포함한 몬스터들이 아셀이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몇 차례의 격돌.
녀석들을 향해 악을 쓰며 아르테스를 휘두르던 아셀은 자신의 몸이 점점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