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새벽의 종
병상에 놀라운 인물이 앉아 있었다.
새하얀 법모를 쓰고 있으며 수염은 배꼽 부분까지 기른 노년의 남자.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셀을 바라보는 여명 수도원의 수도원장 이자 헤스티야교의 12주교 중 한 명인 가르시아였다.
“클클. 네가 교단의 홍복이구나.”
한참을 말없이 아셀을 바라보고 있던 가르시아가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은자 가르시아.’
아셀은 눈앞에 있는 주교를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유저들을 도와 배신의 기사 말릭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던 npc였으니까.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
“살짝 배가 고프긴하는데....”
“저런 그러면 안 되지 안 돼. 교단의 홍복이 배가 고플 수 있나.”
가르시아가 헛기침을 내자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도 잠시.
10분도 되지 않아 아셀은 자신의 침대 위에 놓여진 벌꿀이 가득 발라진 핫케이크와 블루베리로 만든 케이크에 각양각색의 초콜릿들이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단다.”
“어.. 음 감사합니다.”
역시 권력이 좋은 것을 다시 한번 느끼던 아셀이 먼저 벌꿀이 가득 발라진 핫케이크를 입안에 털어 넣으며 그 달콤함을 음미했다.
“크흠. 그리고 네가 들어갔던 던전은 마족의 소행인 게 확실하더구나.”
“그랬나요?”
“다행히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걸 만든 놈을 추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게야. 게다가 네가 준 이게 큰 역할을 했고.”
가르시아 주교의 손에 아셀이 건네준 마티 페러스의 일지가 들려 있었다.
‘놈이 그런 던전을 만들었을 리 없지.’
기껏해야 5성급 몬스터.
그런 던전을 만들 수 있을 리 없었다.
‘던전 메이커. 녀석의 짓이 분명하다.’
아셀은 게임 속에서 몇 차례 싸웠던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페러사이드 그것에 대한 해법도 실마리를 잡아가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런가요?”
가르시아의 말에 아셀의 눈이 반짝였다.
후에 수많은 말릭을 포함해 수많은 존재들을 타락시키는 페러사이드에 대한 해법은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으니까.
“이 모든 것이 아셀 네 덕분이다. 너를 제자로 받아준 말릭에게 그리고 너를 우리 수도원으로 보내주신 여신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려야겠구나.”
가르시아 주교가 아셀에게 고개를 숙이자 몇몇 사제들이 놀라워 눈을 크게 떴다.
저 꼬장꼬장한 늙은이가 저런 모습을 보여줄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그리고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줘야지.”
가르시아 주교의 말에 아셀의 눈빛이 반짝였다.
모르긴 몰라도 주교급 이상의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 전해주는 보상은 생각 이상의 것들이었기에.
‘뭘 주려나...’
예전에 헤스티야교에서 퀘스트를 해결하고 받았던 수많은 아이템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도 잠시.
아셀은 가르시아 주교의 손에 들려진 방패를 보고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여신이시여!’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 가르시아 주교가 들고 있는 새벽의 종을 들고 춤을 추고 싶을 심정이었다.
헤스티야 주교급 인물의 호감도를 최대한 높이고 공적치를 거의 끝까지 올려도 받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아이템이 저 새벽의 종이었으니까.
“네가 해준 일에 조금 부족하겠지만 받아주거라.”
병상을 흘끔거리던 사제들과 성기사들의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이 느껴졌다.
그 시선들을 만끽하며 아셀은 최대한 경건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가르시아로부터 새벽의 종을 건네받았다.
“아우 참.. 뭐 대단한 일 한 것도 아닌데. 감사합니다. 주교님.”
“겸손도 하여라. 아무튼 쉬고 있는 환자를 더 이상 괴롭힐 수는 없지.”
마지막으로 가르시아 주교는 아셀에게 몇 가지 축복을 내려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새벽의 종.’
그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아셀은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감정안으로 방패를 살펴보았다.
[새벽의 종.]
[왕급 아이템.]
[내구도 143/143]
[방어력 103/103]
[신성력에 의해 방어력이 좀 더 강화될 수 있습니다.]
[하루에 단 한 번 절대 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설명보다 아셀은 절대 방어라고 적혀있는 부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걸로.”
저 사기적인 스킬 때문에 고레벨에 올라서도 새벽의 종을 계속 사용하는 유저들도 있었으며. 저것으로 게임 속에서 전설적인 장면들도 많이 나왔었다.
마룡들이 일제히 숨결을 토해냈을 때 그것을 막아낸 것도 저 방패였으니까.
“이제는 내 거지.”
방패를 쓰다듬으며 아셀이 방긋 웃고 있는 것도 잠시.
아셀은 또 다른 놀라운 존재가 병동에 도착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셀 너는 두 가지 잘못을 했다.”
말릭이 아셀의 병동에 도착해 있었다.
얼마나 다급하게 이곳에 왔는지 말릭 같은 존재가 면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으로.
“스승님?”
“첫 번째는 어째서 그런 위험할 수 있는 던전에 혼자 들어갔냐는 말이다. 이걸 알고 나를 포함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는지 아느냐? 에프릴은 임무도 내팽개치고 정령들로 너를 찾았으며 르안느는 밤새 네가 걱정돼 울었던 것을 알고 있느냐?”
“스.승님 제가 언제 울었어요?!”
“아.. 죄송합니다. 스승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열변을 토해내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릭의 표정에 무어라 말대꾸를 하지 못했기에. 아셀이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자 그제야 말릭의 표정이 점점 풀려나갔다.
“후우.. 아무튼 다음부터는 제 몸부터 챙기거라. 아직 너는 어린아이니까 말이다.”
“예. 그런데 다른 잘못은 어떤 거인가요?”
아셀의 말에 말릭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말릭 님의 제자라는 녀석이 병상에 누워있다는 사실이 잘못이다. 아셀. 각오하거라 내가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병상이 그리워질 만큼 가르칠 테니까 말이다.”
“어, 그건..”
너무 좋은데요? 라는 뒷말을 아셀은 참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릭이 집중적으로 가르쳐준다면 동기화는 빠르게 올라갈 게 분명했으니까.
“아무튼 수고했고 큰일을 했다 아셀.”
말릭은 아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하루 만에 퇴원한 아셀은 다시금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명 수도원에서의 위상 정도.
아셀이 지나갈 때마다 모든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는 진풍경이 펼쳐졌었다.
“왜 이렇게 계속 옆에 붙어있냐 너는?”
“나도 땀내 나는 네 옆에 붙어있고 싶지 않거든?! 그냥 네가 또 이상한 짓 할까 봐 감시하라고 스승님께 부탁받아서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는 거뿐이야!”
아셀의 말에 르안느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그저 어깨를 으쓱거린 아셀은 저 멀리서 백금의 머리에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는 에프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프릴님.”
“아셀. 무사해 보여서 정말 다행이구나?”
말릭의 말로는 아셀을 찾기 위해 임무조차 내팽개치고 수색에 전념했다고 들었다.
때문에 그녀는 쉬지도 못하고 밀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상황.
진심으로 안도의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에게 아셀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걱정을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 아니야 아니야. 나는 네가 멀쩡해 보인다면 그거로 만족한단다.”
잠시 아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에프릴은 무언가 움찔거리며 귀찮은 듯 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 내가 언제 꼬맹이 만나면 다리 몽둥이를 부숴버린다고 했어. 다들 조용히 안 해?”
“.....”
정령왕들이 말을 걸었는지 혼자 말하는 모습에 잠시 아셀이 할 말을 잃어버리는 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좀 더 쉬는 게 좋지 않겠니?”
‘그럴 수야 있나.’
던전 안에서 정령들로 인한 효율적인 사냥을 했던 아셀이었기에.
하루라도 빨리 그녀의 재능을 모두 소유하고 싶었다.
‘하급 정령들 4마리로 그정도니까..’
그녀처럼 수천 마리의 하급정령을 소환하게 될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셀은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럴 수야 있나요. 에프릴님이 이렇게 고생하셨는데...”
“흐음.. 역시 아셀은 말을 이쁘게 하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에프릴은 아셀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차암... 그때는 화나서 그런 거라니까 다리 몽둥이를 부숴버리고 어디 못 가게 꽁꽁 묶어버리는 건 화나서 그런 거라고 다들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해!”
정령왕들이 또 이상한 말을 한 거 같다고 억지로 생각하며 아셀은 에프릴이 중얼거린 말을 애써 모른척했다.
***
각 지역의 수많은 단체들과 나라들이 고블린에 대한 오염을 회복하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넓었고 사람으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구울들입니다!”
“어.. 어?! 고블린 시체들이 폭발합니다!”
에프릴을 따라 도착한 마을.
아셀은 그곳에서 고블린 시체로 만들어진 구울들과 좀비들 그리고 갑자기 폭발하는 시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정하세요!”
“마을 주민 중 몇몇이 조금 이상합니다 에프릴님.”
게다가 몇몇 마을 주민들은 갑자기 발작하더니 성기사들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들.
이 모든 것이 2차 몬스터 웨이브의 일부분이었으며 아셀은 2차 몬스터 웨이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딘가에...’
흑마법사들이 숨어 있을 게 분명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달려드는 마을 주민들을 에프릴처럼 흙의 정령으로 못 움직이게 만들자 올라가는 동기화들.
아셀의 모습에 에프릴은 씨익 웃어 보였다.
“역시 대단해 아셀! 그세 정령을 다루는 게 늘었는데?”
‘동기화 30%.’
에프릴과의 동기화는 30%에 다다랐다.
이제 20%가 지나면 내적인 것들까지 닮아야 하는 단계에 다다른 것이었다.
“정령들에게 좀 더 많이 부탁해봐. 그러면 몇 마리가 더 나타날 수 있어!”
아셀의 모습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 거라 짐작한 에프릴이 직접 보여주겠다는 듯 흙의 하급 정령 수백 마리를 동시에 소환해보았다.
“우와! 에프릴님 설마 다 흙의 정령들인 거예요!?”
땅에 흙으로 만들어진 두더지와 강아지 같은 정령들이 수백 마리 소환 되었다.
그것들이 순식간에 움직이며 구울들을 땅에 묻고 시체들 위에 흙을 덮기 시작하는 놀라운 모습들.
몇몇 성기사들마저 놀라운 눈으로 에프릴을 바라보았다.
“아셀 너도 할 수 있어. 얘네들은 조금 귀찮아하는 기색이 있어서 칭얼거리면 웬만해서는 다 들어주거든.”
씨익 웃어 보이는 에프릴을 바라보며 아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 부탁이라.’
정령들을 바라보며 아셀은 마치 아이가 떼를 쓰는 것처럼 속으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나와라.. 나와라! 제발 나와라!’
[동기화가 올라갔습니다.]
[동기화가 올라갔습니다.]
이 부분에서 동기화가 2%나 올라갔다는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나자. 아셀은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하고 있어 아셀.”
집중하는 아셀의 모습과 눈앞의 아이의 주위에 무언가 점점 꿈틀거리는 모습에 에프릴이 눈빛을 반짝였다.
“역시 너는 최고구나.”
에프릴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아셀은 코어 안의 마나가 단숨에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것에 눈을 크게 떴다.
“허업!”
어찌나 빠르게 사라졌는지 눈을 크게 뜨는 것도 잠시.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조차 단숨에 사라지며 나타난 모습들에 아셀을 포함에 주위의 모든 존재들이 나타난 상황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괴.괴물...”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