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그림자 재단 난무
페이크 월드를 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가끔 있었다.
어째서 저런 몬스터의 밑에 저런 약한 녀석이 중간 보스로 있는 걸까?
말릭의 경우도 그랬다.
붉은 장미 르안느 같은 유명한 몬스터도 있었지만, 유저들이 가장 이해가 안 된 것은 어째서 역병의 기사 마티 페러스가 말릭의 옆에 있는 것인지.
기껏해야 5성급 몬스터에 까다로운 거라고는 숨만 쉬어도 내뿜는 역병과 썩어 문드러진 쥐새끼 같은 외형 정도였으니까.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네.”
[네놈 나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구나?]
온몸이 초록빛이었다.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쥐꼬리가 혐오스러워질 지경.
아셀이 아르테스를 놈에게 겨누며 피식 웃음 지었다.
‘5성급.’
“잘 알지.”
[호오 어디서 나에 대한 것을 듣고. 어떻게 여기 온 줄은 모르지만.]
놈의 등에 걸려 있던 녹슨 할버드가 아셀을 향해 겨누어졌다.
겨누어지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사독이 풍겨 나왔다.
마치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처럼.
[대계가 방해받을 수 없는 법. 눈치가 좋은 네놈 눈을 원망해라!]
놈이 몸에서 초록빛 무언가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아셀을 향해 달려왔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투마리스의 가죽 갑옷으로 그녀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아셀이 거리를 벌리며 계속해서 활을 쏘아냈다.
[간지럽구나!]
녀석은 몸에 박혀들어가는 화살들을 무시하며 달려왔다.
5성급.
예전에는 그저 좋은 몬스터에 불과했던 녀석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에 아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려왔다.
‘어떻게 사냥할지도 생각해냈고.’
녀석이 들고 있는 할버드에서 아셀은 눈을 떼지 못했다.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템이고 아무리 녀석을 잡아도 잘 안 나왔던 아이템이었으니까.
“너는 좋은 아이템도 가지고 있으니까.”
투마리스의 샤인 에로우.
지금의 상태에서는 그것만이 놈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돌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황금활 기온에 거대한 황금빛 오러가 순식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티 페러스가 아셀을 향해 할버드를 내려치려는 것보다 아셀이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는 샤인 에로우를 쏘아내는 것이 더 빨랐다.
쾅!
거대한 오러가 마치 눈앞에 쥐를 물어뜯듯 쏘아진 샤인 에로우에 마티 페러스가 몇 차례 바닥을 뒹구는 것이 아셀의 눈에 들어왔다.
[키야야야야!!]
생각 이상의 고통인지 녀석의 눈에 광기가 어려 있는 상황.
그것을 무시함 아셀은 연달아 샤인 에로우를 녀석을 향해 쏘아댔다.
쾅! 쾅! 쾅!
그림자 제단의 유지 시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격차가 나는 녀석을 잡아내려면 도박과 변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으니까.
게다가 아셀의 그림자 제단은 변수 그것에 특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슬슬...’
샤인 에로우를 연달아 8번 이상 정통을 맞았건만 녀석은 온몸에 살점이 떨어진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셀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온 피에 의해 방안 가득히 사기가 가득 차오르게 되는 모습들.
점점 아셀의 몸은 자신의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병장수의 반지 카카르로는 놈이 내뿜는 역병을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
“한스라면....”
그림자 대장장이 한스의 육체라면 이 사기쯤 견뎌낼 수 있을 게 분명했기에.
아셀은 다음 그림자 재단의 스킬 쿨타임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도박.
그것은 아셀이 가지고 있는 모든 그림자들을 이용해 녀석을 상대하는 것이었으니까.
반씩 줄어드는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이 먼저 줄어들지 아니면 놈이 먼저 죽을지에 대한 싸움이었다.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는 것과 동시에 아셀의 몸을 힘겹게 하던 역병의 기운이 사라졌다.
“박살 낸다.”
아르테스의 망치 부분에 진한 검정색 기운이 일어났다.
그림자 망치술.
그것을 담은 아르테스와 녀석의 할버드가 몇 차례 허공에서 격돌하기 시작했다.
[으억?!]
심상을 구현하는 그림자 망치질.
그것으로도 녀석의 할버드를 박살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냥 망치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아셀과 녀석의 할버드가 부딪칠 때마다 녀석의 손아귀가 점점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부족해.’
계속해서 그림자 망치술로 녀석을 압박해나가며 아셀은 녀석의 몸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내는 데 성공했다.
아르테스의 망치가 녀석에게 닿을 때마다 녀석의 살점이 터져 나가고 뼈가 박살 났으니까.
하지만 부족했다.
5성급이라는 몬스터가 그냥 몬스터가 아님을 증명하듯 불현듯 녀석이 흘러내린 피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키야야야야!]
외침과 함께 무언가 형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녀석의 몸 안에 기생하고 있던 페러사이드들이 한 대모여 피로 만들어진 쥐 떼들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네놈도 잡아 먹혀라!]
수천 마리의 피로 만든 쥐 떼들이 아셀을 향해달려들었다.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었다.
한 번이라도 녀석들에게 물린다면 아셀의 몸 안에 페러사이드들이 수만 마리 이상 침투될 게 분명한 상황.
그렇다면 아셀은 본인의 의지를 잃고 타락할 게 분명했다.
‘어차피....’
한스의 그림자를 가지고 오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스킬 쿨타임을 무시하고 사용했으며 그림자 망치질을 난발했기 때문에.
아셀의 몸으로 뛰어드는 페러사이드의 쥐 떼들을 바라보며 마티 페러스는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녀석은 지금 달려드는 모든 쥐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어 보였으니까.
[내 승리... 어?]
그러나 갑자기 자신이 서있는 공간에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지는 것도 잠시.
녀석은 아셀에게 달려들던 쥐 떼들이 순식간에 얼어 붙기 시작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네놈이?]
처음에는 사냥꾼 그리고 대장장이 그러더니 이제는 펭귄 같은 정령을 소환해 자신의 쥐 떼들을 모두 얼어붙게 만드는 상황.
마티 페러스의 믿기지 못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아셀은 씨익 웃어 보였다.
“별거 아니야.”
뿌드득.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바닥에 깔려 있던 쥐들이 마치 얼음을 깨지듯 산산조각 났다.
그와 동시에 남은 유지 시간을 모두 사용해 녀석의 발까지 얼어붙게 만든 아셀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사용하기 정말 싫었지만.’
지금 남은 그림자 중 저것을 단숨에 베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은 유론의 그림자밖에 없었기에. 아셀은 긴 한숨을 토해내며 유론의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말도 안 돼! 어째서! 어째서! 대계가 코앞이거늘!]
‘남은 시간 30분.’
그림자 제단을 연발했기에. 유론의 그림자를 유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한 것을 잘 알기에 아셀은 아르테스를 잡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더 주었다.
녀석을 겨누었던 신검 아르테스에 진한 푸른빛 오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다와도 같은 그 오러들이 순식간에 빠르게 진동하기 시작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무심한 눈으로 녀석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필드가 2식. 파도자르기.’
고속으로 진동하는 오러가 녀석의 몸을 갈라내는 것과 동시에 아셀이 사용하고 있던 모든 그림자 재단의 효과가 끝이 났다.
[크아아아아아아!]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녀석의 비명소리에 아셀은 그 자리에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재단을 사용합니다.]
[5시간 후에 사용 가능합니다.]
연발한 스킬 남용으로 인해 무려 5시간 후에나 사용가능한 상황.
아셀이 이곳에서 5시간 동안 겁을 먹으며 덜덜 떨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망할...’
속으로 욕설을 내뱉는 것과 다르게 아셀의 코어 안에 이전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거대한 마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마나들에 의해 아셀의 코어 안에는 5성급까지 무려 70%에 해당하는 마나들이 쌓이게 되었다.
[퀘스트가 완료 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나타난 것.
그와 동시에 무언가 힘이 풀린 아셀은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 하..”
아무 말도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셀은 5시간 동안 썩어 문드러진 마티 페러스의 시체 옆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
5시간 후.
황급히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아셀은 진정된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토해냈다.
“후우... 이건 빨리 고치든가 해야지 원..”
다른 재능들은 그나마 봐줄 수 있으나. 겁쟁이 재능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도 않았기에.
아셀은 머리를 긁적이며 마티 페러스가 떨어트린 [역병의 할버드]를 들어 올렸다.
“현실에서 2000만 원짜리 아이템이었지.”
일반적인 무기에 저주 효과가 붙어있어 사용할 만한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녹슬고 망가져 있지만 아셀이 조금만 손보면 말끔해질 게 분명했기에.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가방 안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우선 마티 페러스의 사체는 가지고 올라가야 했다.
이곳의 존재를 증명하고 페러사이드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으니까.
아셀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잠시.
그는 몇 개의 헤스티야 동상에 숨겨진 50골드와 녀석이 기록했던 거 같은 일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더 없는 거 같네.”
골드와 일지를 품 안에 넣은 아셀은 더 이상 카타콤에서 얻을 것과 찾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지하 묘지를 떠날 수 있게 되었기에.
아셀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워 보였다.
***
우물 밖에는 들어 올 때와 반대로 해가 쨍쨍한 오후였다.
안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기에. 아셀이 오랜만에 보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근처에서 수련하고 있던 신성 기사단이 아셀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아셀!”
“이 녀석아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아?”
그동안 아셀이 이들과 높혀둔 호감도가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주위의 성기사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걱정된 표정으로 아셀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삼 일 동안 무슨 짓을..”
“그런데 아셀 너 등에 매달려 있는 거 그거 몬스터 아니니?”
‘삼 일인가?’
자신이 카타콤 안에 있던 시간이 삼 일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아셀은 성기사들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그게...”
어느덧 햇빛에 익숙해진 아셀은 주위의 신성 기사단을 바라보며 우물 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성 기사단들이 새로 만든 우물의 물을 마시고 복통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워 조사해봤던 것부터 시작해. 안에 있는 몬스터까지 잡아냈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던 신성 기사단들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그동안 마셨던 우물의 물이 시체의 썩은 물들과 몬스터들이 뿌려대던 페러사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몇몇 성기사들은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구토까지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맙소사....”
“아셀.. 네가 우리를 살렸구나.”
“어찌 여명 수도원 한복판에 이런 일이!”
성기사들 몇몇은 무기를 뽑아들고 아셀의 말을 확인하고자 우물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하는 상황.
아셀이 성기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고 마티 페러스가 작성했다는 일지를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우선 병동을 가보는 게 좋을 거 같구나 아셀.”
“그래 혹시나 모르는 감염병에 걸렸으면 안 되니까 말이다.”
‘조금 쉬는 것도 괜찮겠지?’
몸은 괜찮았으나 삼 일 동안 지하 공동묘지에 있었다보니 정신적으로 조금 피로해져 있었다.
신성 기사단들이 아셀을 데리고 병동으로 이동하는 것도 잠시.
조금만 쉬기 위해 병상에 누워있던 아셀에게 한 성기사가 조금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