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있는데요?
캉! 캉!
“스승님.. 사람 머리에서 저런 소리가 날 수 있는 건가요?”
르안느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망치처럼 보이는 검의 손잡이로 아르센의 머리를 아셀이 두 차례 가격하자 들려오는 소리는 도저히 사람 머리를 때린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 나도 처음 들어보는구나.”
말릭 또한 사람의 머리에서 저런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말려야..”
아르센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과 동시에 아셀은 아르테스를 내려치려는 것을 멈추었다.
“야.”
“으어..으어어.. 그.그만..”
“네가 생각보다 돌머리긴 하나 보다?”
눈물과 녀석이 흘린 피가 합쳐지며 흘러내리는 모습에 아셀은 씨익 웃으며 녀석의 덜덜 떨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
“남은 8번을 다하면 네가 죽을 거 같으니까..”
“으어어어...”
아르센의 덜덜 떨고 있는 오른손을 붙잡은 아셀이 아르테스를 높게 올렸다.
“남은 건 이걸로 하자 알았지? 동생을 사랑하는 형의 배려라고 생각해.”
“그만.. 그만! 오른손은 안 돼! 제발.. 제발 혀.. 형! 잘못했어요! 잘못했어!”
오른손을 내려친다는 말에 아르센이 이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발작하기 시작했다.
오른손.
그것을 망가트리는 것은 무인으로서 생명을 끝내는 것과 다름없기에.
그렇게 부르기 싫어했던 형이라는 말까지 하며 바둥거리는 아셀을 힘으로 제압한 아셀이 히죽 웃어 보였다.
“새끼 이제야 형이라고 하네.”
“스승님.. 쟤 진짜로 제자로 받으실 거예요? 저건 기사라기보다는 깡패 같은데요?”
“내 감은 아직도 제자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단다 르안느. 그런데 음... 조금 예법교육도 해줘야겠구나.”
말릭과 르안느가 슬슬 아셀을 말리려고 나서는 것보다 유론이 먼저 내려쳐지는 아르테스를 자신의 손으로 막아냈다.
“그만. 이제 되었다.”
‘어쭈?’
유론이 붙잡은 아르테스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메이지 고블린의 머리를 단숨에 박살 냈던 것이 마치 거짓말처럼 유론은 손쉽게 아르테스를 잡아낸 것이었다.
유론과 아셀의 격차가 얼마나는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손 치우시지요.”
“뭐?”
설마 여기서 계속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유론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아셀을 노려보았다.
“조금 강해진 것으로 내말을 거역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더냐?”
“하! 진짜 어이가 없네.”
유론의 말에 아셀은 헛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죽이라고 하네 마네 할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자신을 협박하는 유론의 모습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 이런 게 부정이겠지.’
부정.
유론이 아셀에게 주지 않고 아르센에게는 주는 것.
그것을 떠올리자 아셀은 아르테스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
“아.아셀!”
자신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생각 이상의 기운에 유론이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셀의 모습에 깜짝 놀란 말릭이 황급히 달려왔다.
“그만하거라 아버지에게 검을 들이대는 기사는 없다!”
“검이 아니라 망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스승님.”
“어..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4개의 코어에서 필드가 특유의 아쿠아색 마나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놀랍군.’
자신의 손에 점점 느껴지는 마나에 유론은 무표정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 코어도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녀석이 4개의 코어를 만들어냈었기 때문에.
“아르센에게는 저를 죽이라고 증명하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이렇게 나서시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네요.”
“죽이려고 하면 끝장을 봐야지. 그게 기사 아니겠습니까?”
“아니.. 아셀 기사가 용병도 아니고 세상 천지에 어디 그런 기사가..”
말을 하려던 말릭은 방금 전 아르센에게 아셀을 죽여보라고 말한 유론이 떠올라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무튼 기사에게는 자비도 중요한 거란다.”
“...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유론의 말에 아셀은 그제서야 흉흉하게 피워내던 마나를 거두었다.
“원하는 거라....”
“네가 진짜로 아르센을 망가트릴 리 없다. 말해봐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론은 침착하게 말하며 아르센을 한심한 듯 바라보았다.
아셀에게 굴욕을 당한 것보다 아르센은 유론의 저 표정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죽여버릴 거야.. 반드시 내게 이런 수모를 안겨준 네놈을 죽여버릴 거야!’
모든 원한을 담아 아셀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녀석의 시선을 느낀 아셀은 그저 아르테스의 망치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그래. 그래 알아서 눈 내리라고.’
아르테스의 망치 부분을 만지자마자 눈을 내리까는 녀석을 바라보며 아셀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굳이 그러시다면 여기서 멈춰드릴게요. 대신.”
손가락을 하나 펴 보이며 아셀이 씨익 웃어 보였다.
“던전 하나 들어가게 해주시지요.”
“던전?”
생각지도 못한 말에 유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예상한 것은 필드가에 있는 수많은 보물 중 원하는 것을 달라고 요구할 거라 생각되었기에.
“아메라에 있는 던전을 들어가게 해주시지요.”
“아메라에는 던전이 없다 우둔한 놈.”
아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유론은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방금 전까지 보여준 모습에서 얻은 기대감이 순식간에 없어질 만큼.
“역시 근본은 변하지 않는..”
“저랑 내기하실래요?”
유론의 말을 끊으며 아셀이 씨익 웃어 보였다.
“내기?”
“예. 이곳 아메라에 던전이 있는지 없는지 내기해보시죠.”
유론이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는 것을 바라보며 아셀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지면 말릭 님의 제자가 아닌 가문에 돌아오겠습니다.”
“네놈이?”
이전에 아셀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아셀이라면 필드가에 도움이 되었기에. 유론이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눈앞에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만약 제가 이긴다면 아메라의 눈물을 제게 주시지요.”
아세르이 말에 유론은 물론 옆에 있던 말릭마저 입을 벌리며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메라의 눈물.
그것은 필드가의 시조가 남긴 유산 중 하나였으니까.
***
페이크 월드를 플레이했을 적.
던전 안의 던전.
즉 숨겨진 던전은 수도 없이 많았다.
게다가 이곳 아메라. 후에 아메라의 비명소리 던전으로 불리는 곳에는 어째서 이곳에 아메라의 비명소리라고 불리게 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숨겨진 던전이 존재했다.
-좋다. 대신 네놈도 약속을 지키거라.
아셀이 제안한 내기를 유론은 흔쾌히 승낙했다.
고성 아메라에는 던전이 없을뿐더러 그 흔한 고블린조차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바다에서 떠밀려오는 몬스터들이나 간간이 보이는 곳이 바로 고성 아메라였다.
“아메라에서는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단다.”
아셀에게 다가온 말릭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왜 그랬느냐.”
“어떤게 말입니까?”
“내기를 지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는데 왜 그렇게 했냐는 말이다.”
연무장을 나와 필드가의 시조 에밀 필드의 동상으로 가고 있던 아셀은 걸음을 멈추며 말릭을 바라보았다.
“아셀.. 나는 직감에서 오는 느낌뿐만 아니라 내 이성으로 너를 제자로 반드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래.. 어쩌면 마을에서 너와 내가 만난 건 여신께서 주신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구나.”
“스승님.. 이런 상황에서 여신을 파는 것은 조금 아니지 않나요?”
“여신께서 내려준 운명을 피하면 좋지 못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란다 아셀..”
“방금은 조금 사이비 같은데요?”
말릭의 진지한 눈을 바라보며 아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우...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내기는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여기는 몬스터가 없다니까. 몬스터가 없는데 던전이 어떻게 있더냐?”
“글쎄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말릭을 뒤로하며 아셀은 에밀 필드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다가온 순간 아셀이 그림자 제단의 효과를 풀자 그의 몸이 급격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셀 본인으로 돌아왔기에. 지금 필드가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후우... 망할 재능.’
떨려오는 것과 다르게 아셀 본인의 재능인 눈썰미. 그것이 에밀 필드의 동상에서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흔적들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해주기 시작했다.
‘역시나..’
떨리는 몸으로 동상을 살펴보던 아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동상의 바닥 부분. 그곳이 일반인들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겠지만 검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후우...”
크게 숨을 들이쉰 아셀은 한스의 바지를 착용하자 떨림이 멈추고 몸 안에 힘이 솟아내기 시작했다.
“아셀?”
갑자기 변화된 아셀의 분위기에 말릭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이건 마치...’
대장장이.
그 직업의 인물들과 같기에 말릭이 아셀에게 다시 한번 호기심에 잠기는 것도 잠시.
그의 눈앞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드르륵.
필드가의 시조 에밀 필드의 동상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
시조의 동상을 옮기는 것이 자칫 불경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동상이 움직이고 나타난 구멍을 발견한 말릭을 비롯한 필드가의 일원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찾았다 불가살의 던전.’
“동상 밑에 구멍이 있었다고?”
“아니 잠깐만 이건..?”
“마기....”
순박하고 부드러웠던 말릭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지며 성기사들의 냉철함만이 나타났다.
이내 아셀의 곁으로 다가간 말릭이 구덩이에 대고 무언가 중얼거리자 그의 손에서 점점 환한 신성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던전이 맞구나... 어찌 필드가에 이런 던전이..”
말릭의 말이 필드가의 고상 아메라에 던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모든 필드가의 일원들이 놀라워 하는 것도 잠시. 순식간에 기사들이 몰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셀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멈춰. 이건 내가 들어갈 던전이야.”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필드가에서 던전이 나왔는데 어찌 기사들이..”
기사들과 함께 온 유론조차 동상 밑에 있는 구덩이에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용사의 후예라고 알려진 필드가 바로 앞에 진한 마기를 피워내는 던전이 있었기에.
“가주님과 약속된 거다. 더 이상 토 달지 말도록.”
기사들이 유론을 바라보며 주춤거리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도 잠시.
유론은 던전의 구덩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긴 침음을 삼켰다.
“좋다. 내기는 네가 다 이겼구나. 대신 던전 안은 말릭과 같이 들어가야 한다.”
“유론의 말이 맞다.”
유론의 제안에 아셀은 거부하지 않았다.
당장 던전에 들어가려고 하는 말릭과는 다르게 그는 말릭이 입고 있는 튜닉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셀?”
그리고는 자리에서 말릭의 순백의 튜닉을 만들어내는 아셀의 모습에 말릭을 포함한 필드가의 일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기화 올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지금 뭐 하는?”
“그냥 의식입니다. 싸움 직전에 강함을 닮고 싶은 존재의 옷을 만드는 버릇이 있거든요?”
“그. 그렇더냐..”
아셀이 대충 지어 만든 핑계를 말릭은 믿어주었다.
세상에는 특이한 버릇이 있는 무인들이 수 없이도 많았기 때문에.
‘드디어..’
말릭의 튜닉이 완성된 순간 아셀의 눈앞에 놀라운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허어..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