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뜻밖의 손님
히죽 웃고 있는 아셀을 향해 거대한 화염구가 세 차례나 더 쏘아졌다.
일대를 모두 불태울 것 같은 기세로 쏘아진 거대한 화염구들.
그러나 모두 아셀이 휘두른 헤머폼 아르테스에 의해 허공에서 산산조각 나는 모습들이 펼쳐졌다.
“헉!”
“피.피해!”
마치 바위가 산산조각 나는 것처럼.
완전히 박살 난 화염구가 마을에 사방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애초에 그림자 재단을 쉬지 않고 사용했고 그림자 망치질에 감정안까지 사용한 상황.
이제 유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아셀은 아까부터 화염구가 날아온 방향으로 품 안에 지니고 있던 망치 세 개를 연달아 던졌다.
끼르르륵!
수풀에서 지팡이를 들고 있던 고블린 하나가 튀어나왔다.
일반 고블린보다 조금 크고 자이언트 고블린보다는 작은 존재.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장신구들이 녀석이 일반적인 고블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끼르륵!
아셀의 망치를 꼴사납게 피한 것에 대한 수치심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녀석이 소리치며 마법을 다시금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간 아셀이 헤머폼 아르테스를 휘둘렀다.
‘박살 난다.’
부웅 하고 파공음을 내며 녀석의 머리로 휘둘러지는 아르테스를 바라보며 아셀이 녀석의 머리가 터지는 심상을 굳게 상상했다.
“아니.”
마법을 준비하던 녀석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다가온 아셀에 놀란 눈을 크게 뜨는 것도 잠시.
아셀은 씨익 웃으며 녀석과 눈을 마주쳤다.
“박살 낸다.”
굳게 만들어진 아셀의 심상을 증명하듯 아르테스에 일렁이던 검은색 마나가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과 동시에 크게 휘둘러진 아르테스는 허공에 잔상을 남길 정도.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억지로 지팡이를 들이미는 고블린 메이지가 막을 수 있는 그런 공격이 아니었다.
끼에!
그래도 마지막 남은 퀘스트가 발생 될 만큼 중요한 고블린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천천히 쓰러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끄.끝인 건가?!”
마을 주민들 중 한 명이 중얼거린 불길한 말. 그러나 아셀은 자신의 코어에 쌓이는 높은 마나에 입꼬리를 씨익 올릴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가 끝나고 보상으로 1차 몬스터 웨이브 동안 얻었던 마나를 다시 한번 몸 안에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10%? 그 정도인가?’
3코어에서 지체 되고 있던 아셀을 단숨에 4코어로 올려준 그 거대한 마나도 똑같이 들어왔지만 아셀의 코어에는 10%의 마나만 채워져 있었다.
3코어와 4코어로 가는 것이 어려운 만큼.
4코어에서 5코어로 넘어갈 때 필요한 마나의 양도 생각 이상으로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모습들이었다.
‘그래도..’
아르테스의 망치 부분에 묻은 고블린의 피를 털어내며 아셀은 씨익 웃어 보였다.
“벌써 10%를 채워 넣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어느새 한스의 그림자 재단이 끝이 난 아셀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하하... 이거 정말 적응안 돼네....’
눈앞에 자신이 쓰러트린 고블린 메이지에 겁먹은 자신의 몸에 한없이 저주를 퍼부우고 있던 아셀의 눈앞에 믿기 힘든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셀 괜찮나!?”
“어?! 뭐야! 저건?”
고블린 메이지의 시체 위로 새하얀 거대한 십자가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어찌나 강한 기운을 품고 있는지 아셀이 주저앉은 땅이 부르를 떨리기까지 하는 상황.
겁먹은 몸과는 별개로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아셀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망할...’
“어라? 이놈 죽은 거 같은데요? 스승님?”
거대한 십자가는 고블린 메이지의 시체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순백의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
그들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나며 아셀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네가 사냥한 것이더냐?”
그중 가운데 있는 30대로 보이는 기사가 아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셀의 손에 들려 있는 아르테스를 지긋이 바라보며.
“네가 사냥한 것이라 물었다. 해코지 하는 것이 아니니 편안하게 말해도 된다.”
“야야. 스승님이 말하시잖아. 너 말 못 해? 하아.. 우리 스승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평민인 너는 대대손손 자랑할 일이라고!”
30대의 남자의 옆에서 히죽 웃으며 아셀을 비웃는 10대 여자아이.
저 여자도 아셀이 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배반의 기사 말릭. 그리고 붉은 장미 르안느....’
말릭의 물음에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아셀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풍겨내는 기세에 겁을 먹고 몸이 굳은 게 분명했다.
“그만 르안느. 피로해서 말을 못 하는 걸 수도 있다.”
“아니... 스승님 이거 한 마리 잡았다고 어떻게 피곤할 수가....”
르안느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소리치려는 것도 잠시.
말릭은 손을 올려 그녀를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이 아이는 평민이 아니다.”
“예.. 에?!”
후에 수만의 유저를 죽이는 배반의 기사들이 지금 아셀의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아셀의 정체를 눈치챈 모습으로.
“자네 아버지 유론 필드는 잘 있나?”
“?!”
말릭이 선한 웃음을 지으며 아셀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
‘말릭...’
1시간.
말릭과 르안느는 아셀이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놀랍게도 1시간 동안이나 기다렸다.
“스승님. 얘가 잡은 게 아닌 게 맞다니까요. 어떻게 이렇게 겁먹고 바들바들 떠는애가 몬스터를 사냥했겠어요?”
“흐음....”
처음에는 아셀을 믿어주던 말릭마저 1시간 동안 겁을 먹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셀의 모습에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잠시.
드디어 그림자를 가지고 올 수 있게 된 아셀이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자 떨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라?”
갑자기 변화된 아셀의 분위기에 놀란 르안느와 호기심이 들었다는 듯 말릭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단장님.”
그와 동시에 마을에서 아셀에 대한 수소문을 해본 성기사들이 말릭에게 보고를 하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지...’
설마 이 자리에서 말릭을 만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아셀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래에 어떤 이유로 타락하는 기사. 심지어 지금 아셀은 그림자들의 후인이니 말릭의 손에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대단하군. 유론의 장남이었다니.”
“아버지를 아십니까?”
“모르는 게 이상한 게 아닌가. 유론 필드 같은 무인을 말이지.”
잠시 말을 멈춘 후 말릭은 빙그레 웃으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내 생에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몇 안 되는 존재니 말이네.”
‘하기야..’
용사들의 후손인 필드가의 가주 유론.
그가 대륙 제일 기사라고 평가 받는 말릭과 비견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아셀의 기억 속에서도 유론은 강자들 특유의 분위기를 풍겼으니까.
“흐음.. 필드가의 장남은 머저리라고 했는데..”
르안느가 아셀을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아셀을 자신의 밑으로 보는 듯한 모습에 아까부터 거슬렸던 그는 푸른 머리를 쓸어넘기며 르안느를 바라보았다.
“일단 여기서 왜 오신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배상해주셔야겠는데요?”
“배상?”
아셀이 가리킨 방향에는 메이지 고블린의 시체가 있던 자리였다.
말릭과 성기사들이 나타나며 보인 거대한 십자가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못해도 10골드는 넘게 얻을 수 있을 거 같은 몬스터인데 당신들 덕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허어.. 야 너 지금 생각이란 걸 하고 말하는 거야? 배상? 배에에에상? 기껏 살려줬더니 배상이라고 말하고 자빠졌네?”
르안느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말하자 아셀은 그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살려줘?”
“어? 반말?”
“네가 나를? 그리고 반말은 아까부터 네가 하고 있었는데?”
“하! 우리가 몬스터 시체를 왜 없앤지나 알고 지껄이는 거지 너?”
‘잘 알지.’
1차 몬스터 웨이브.
그것은 모든 몬스터들이 토벌되고 난 후가 진짜 문제였다.
대륙에 가득 쌓인 고블린들의 시체. 그곳에서 나온 각종 오염물과 질병들은 수많은 고질병들을 낳았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고블린 시체를 가장 먼저 나서서 소각시키고 전염병에 휩싸인 마을들을 구해낸 게 바로 말릭이 이끄는 [신성기사단]과 마탑이었다.
때문에 수많은 유저들이 믿고 따랐던 곳.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던 아셀은 르안느를 바라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모르겠고, 갑자기 나타나서 먼지로 바꾼 내 10골드나 내놔.”
“하.. 이 등신이.”
얼굴을 붉히며 기세를 끌어올리려던 르안느를 말릭이 말렸다.
“그만. 10골드면 되겠는가.”
“스승님!”
말릭이 아셀에게 금화 10개를 건네주자 무언가 분한지 소리치는 르안느를 다시금 조용히 시킨 말릭이 빙그레 웃으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고작 10골드면 되겠는가?”
“저 같은 사람들에게 10골드는 고작이라고 붙을 만한 금액이 아니지요.”
품 안에 10골드를 넣고 슬슬 자리를 피하려고 했던 아셀을 바라보며 말릭은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자네에게 10골드 이상의 선물을 주고 싶은데?”
말릭의 말에 아셀을 포함한 주위의 모든 존재들이 눈을 껌뻑였다.
심지어 말릭을 오랜시간 따랐던 성기사들은 자신들의 상관에게 저런 면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라는 상황.
그들이 아는 말릭은 칼과 같은 사람이라 누군가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선물이라면?”
“자네 내 제자로 들어 올 생각 없는가?”
제자로 들어오라는 말에 아셀은 한순간 몸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건만 몸이 굳어질 만큼 말릭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기에.
‘제자라고?’
잠시 눈을 껌뻑이는 아셀을 바라보며 말릭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뭐 이 경우에는 자네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거 같지만.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같이 필드가로 가줄 테니까 말이지.”
“스. 스승님?”
“단장. 이렇게 갑자기 제자를...”
말릭이 아셀을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에 르안느는 자신의 자리가 빼앗기는 것만 같았으며 성기사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믿기지 못하겠다는 듯 당황하는 눈초리들이었다.
“어떤가. 자네라면 두 가지 이상의 직업도 충분히 소화가 가능할 거라 생각 되는데 말이야.”
‘이거...’
자신을 바라보는 말릭의 눈에 깊은 호기심을 읽은 아셀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