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그림자 망치질
1성급 고블린.
녀석들의 목을 관통해야 할 아셀의 화살들은 그러지 못하고 막혀있었다.
심지어 녀석들의 몸에는 조잡한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 입혀져 있는 것.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아셀의 미간은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망할.”
욕설을 되뇔 수밖에 없었다.
고블린들이 강해져 있었기 때문에.
화살을 뽑아낸 아셀은 미약하지만 강해진 녀석들을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예상 범위 안. 아셀은 고블린이 나올 것 같은 곳에 투마리스에게 배운 함정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곳에도.”
땅 밑에 귀를 대보니 무언가 긁는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블린들 그것들이 광산 밑에 가득히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상황.
들려오는 소리와 흔적들 그것이 고블린이 1천 마리 이상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 시간에도 계속 늘어난다.”
그것들의 번식력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잠시 낮게 한숨을 내쉰 아셀은 코어에 손을 가져다 대며 자신의 경지를 떠올렸다.
‘3코어.’
3코어에서 4코어로 가는 것은 이전에 코어들이 늘어나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필요한 마나의 양도 많았기에 아직 3코어의 반밖에 마나를 채우지 못한 상황.
지금 상황에 뒷 머리를 긁적인 아셀은 광산 밖으로 나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은 시간 강해져야 해.”
아침에는 한스의 대장장이 일을 해야 했으니까. 잠을 줄여서라도 사냥으로 코어 안에 마나를 채워넣어야 했다.
살아남아 신검을 차지하려면.
***
캉! 캉! 캉!
아셀의 망치질은 처음 왔을 때보다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해져 있었다.
“오오 오빠. 그래도 저 영감 밑에서 뭐라도 좀 배웠나 봐요. 그동안은 까마귀 수백 마리 죽는 것 같은 소리가 났는데 지금은 그래도 영감이 감기 걸렸을 때 망치질 하는 소리 정도로 바뀌었는걸요?”
“스승님이 감기도 걸리셔?”
“설마요. 그냥 예시가 그렇다는 거죠. 예시가.”
오늘은 그래도 검 한 자루는 팔았기에 기분이 좋아진 로니가 아셀의 옆에서 그가 망치질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화살촉들과 검.
한스가 그동안 무기들을 만드는 보습을 옆에서 봤던 아셀은 드디어 어느 정도 화살촉과 검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엥? 아깝게 그걸 다시 녹여요?”
“실패작이잖아. 이걸 휘두르면 내 손이 먼저 다칠걸?”
화살촉은 나중에 사용해야 했기에 따로 모아둔 것과 다르게 아셀은 만들어놓은 검을 미련 없이 다시 용광로에 넣어 녹여냈다.
‘원단이 효과가 있기는 한데.’
벌써 2주째.
아셀이 이곳에 와서 한스의 옆에서 대장장이 일을 하고 밤마다 몬스터를 잡으러 다닌 게 벌써 2주일째였다.
그동안 광산 안에서 발견한 고블린 숫자만 수백 마리인 상황.
아셀은 자신의 코어 안에 점점 쌓여가는 마나들과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동기화들에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림자 대장장이 한스의 바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림자 재단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원단의 효과로 11% 동기화가 올라갑니다.]
[신급 손재주. 신도 고개를 젓는 근성. 가만히 있어도 붙는 근육. 대장장이 신에게 사랑받는 존재. 특성이 구현됩니다.]
[동기화 42%.]
[스탯이 재분배됩니다.]
동기화가 32%까지 올랐으며 원단의 효과로 11% 추가적으로 오르는 상황.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가끔 행동으로 힌트를 주는 한스의 옆에서 배운 것 치고는 기적과도 같은 수치였다.
“응? 영감 무슨 할말 있어?”
로니와 잡담을 하며 검을 만들고 있던 아셀과 로니에게 한스가 다가와 무언가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영감이 또 이상한 표정을 짓네. 밥시간도 아닌데. 아! 그렇구나 우리가 대화하는 게 재미있어 보여서 드디어 대화에 끼고 싶은 거구나?! 가만보면 영감도 참 귀여운 구석이 있단 말이야?”
히죽 웃으며 로니가 말했지만 한스는 그저 아셀의 옆에 떨어진 망치를 주어들 뿐이었다.
“에효 그러면 그렇지.. 영감 죽을 때나 영감 목소리 들을 수 있겠네.”
로니가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아셀은 한스가 자신의 앞에서 망치질을 시작하는 모습에 눈을 껌뻑일 수밖에 없었다.
‘어라?’
무언가 달랐다.
한스가 자신의 모루에서 망치질을 했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이 지금 아셀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나...”
한 번의 망치질에 검은색 마나가 터져 나왔다.
마치 그림자가 망치질에 의해 모습을 바뀌는 것처럼.
캉! 캉!
철을 두드릴 때마다 한스의 망치에서 나오는 그림자와 같은 검은색 마나들. 그것들이 철의 그림자를 검으로 만드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래.. 여기서는...’
어느 순간부터 손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한스가 망치질을 하면 그 옆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부분을 한스처럼 두드리기 시작했으니까.
‘마나의 배율 그리고 힘.’
집중력이 극대화 되자 들리는 것은 한스와 자신의 망치질 소리뿐.
아셀의 코어가 차분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한스의 검은색 마나와 똑같은 특이한 마나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
망치질을 하던 한스가 아셀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마나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어찌...’
금기를 깨고 목소리를 낼뻔했던 한스는 아셀의 망치질이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저 슬슬 요령을 알려주려던 것을..’
2주.
그 시간 동안 근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아셀에게 드디어 자신의 요령과 기술들을 알려주려고 했던 한스는 단번에 [그림자 망치질]을 터득한 아셀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바라보았다.
‘천재.’
그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말년에 자신에게 굴러온 제자가 천재라는 것을 깨닫자 한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생겨났다.
“영감 왜 그렇게 웃어.. 무섭게.”
한스가 저런 식으로 웃는 것은 처음 보았기에. 로니가 옆에서 놀라는 것도 잠시.
집중력이 극대화 되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있던 아셀은 몇 번의 망치질 후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조잡해...’
이전에 만들었던 검의 형상을 띠고 있던 물건과 비교해서는 완벽하게 달랐다.
드디어 사용할 만한 검을 만들어낸 것.
그러나 아셀은 자신이 만들어낸 부분이 얼마나 조잡한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한스가 만든 것에 비교하면....’
한스가 망치질을 한 부분은 명검이라고 불릴만한 요소들이 있다면 자신이 망치질한 것은 그저 평범한 검의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아셀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잠시. 그는 자신에게 엄치를 치켜올리고 있는 한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와아 질투 나.. 내가 검 10자루를 팔아도 칭찬해본 적이 없던 영감이 지금 오빠한테는 칭찬 해주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스승님.”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인 아셀은 갑자기 자신의 몸이 비틀거린 것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지쳤다고?’
지쳐 있었다.
게다가 그림자 재단의 효과가 거의 끝날 때가 되어 있던 상황.
자신이 집중하는 동안 그렇게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인가 의구심은 고작 2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설마..?”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는데 그림자 재단의 효과가 끝나가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가지 뿐이었기에. 아셀이 망치에 아까 전처럼 검은색 마나를 불어넣자 눈앞에 놀라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림자 망치질을 사용합니다.]
[유지 시간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스킬?!’
집중을 하고 있었기에 아셀은 자신에게 스킬이 생성된 것을 발견하지도 못했었다.
그림자 망치질.
한스의 직업인 그림자 대장장이의 고유 스킬이 분명한 상황.
떨리는 눈으로 스킬을 확인해본 아셀은 눈을 껌뻑이며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망치질.]
[대장장이의 심상을 망치질로 구현합니다.]
[일반적인 망치질과 다르게 본질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습니다.]
[경지에 따라 차등이 있습니다.]
‘과연..’
그림자. 그것마저 두드려서 바꿀 수 있었기에. 본질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아셀이 한스에게 얻은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코어가..”
아셀의 추즉을 증명하듯 한스가 아셀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가 그림자 망치질을 사용하려고 할 때 코어 안이 은은하게 움직이는 것과 다르게 주위의 마나들을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대장간 안이라면 투마리스의 마나 흡수보다 높다.’
투마리스의 자연에게 사랑받는 재능으로 자연 안에서 저절로 흡수되는 마나보다 대장간 안에서 그림자 망치질을 할 때 더 많이 흡수 되는 것.
이전에 비교해서 상당한 마나들이 쌓여 있었기에 아셀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동기화도 단숨에 5%가 올랐어. 그것도 단 한 번의 가르침에.’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어느새 30분이 지났기에. 아셀은 다시금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며 그림자 재단을 실행 시켰다.
그 모습에 기다렸다는 듯 다시금 망치질을 시작하기 시작한 한스와 옆에서 보조하기 시작한 아셀 둘다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어디에 망치질을 할지 그리고 아셀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한스가 알려주기 시작했다.
‘재미있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점점 강해지는 것이 느껴지는 것. 두 가지가 아셀의 몸 안에 고양감을 주기 충분했다.
“하아.. 이제는 둘 다 말이 없어졌네. 방해꾼은 사라져 줄 테니 알아서들 검이나 만드세요.”
한스처럼 아무 말 없이 망치질을 시작한 아셀을 바라보며 로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나갔다.
***
‘검.’
그날 밤에 던전에 갈 생각도 있고 망치질을 했던 아셀의 몸은 이미 땀으로 절여져 있었다.
그림자 망치질을 하고 빠르게 줄어든 유지 시간. 그리고 다시금 스킬을 사용할 30분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망치질에 집중했기 때문에.
“이게..”
살짝 들어 올려 보자 어디 내어놔도 부끄럽지 않을 검이 완성되어 있었다.
달빛을 받고 있어 더욱 빛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모습들. 아셀이 검이라고 생각했던 심상을 어느 정도 구현하는 데 성공한 증거물이었다.
휘익.
살짝 검을 흔들자 검에서 기분 좋은 파공음이 들렸다.
그 모습에 마치 무엇을 기대하듯 한스가 아셀을 바라보는 상황. 이제는 슬슬 한스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기에.
아셀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을 들어 올려보았다.
“이 검의 이름 영월로 하겠습니다.”
그림자와 달.
그것이 생각났기에 아셀이 영월로 이름을 정하자 한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이번에도 새로운 철들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쉬지 않는 건가?’
그런 한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잠시.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과 함께 로니가 황급히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영감 오빠 큰일 났어! 몬스터..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발견됐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