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다른 목적지로
투마리스와 고기를 구워 먹고 잠을 자고 일어나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안녕 아셀. 더 이상 부족으로 돌아가는 것을 미룰 수 없어서....
장문의 긴 편지를 남기고 투마리스는 부족으로 떠난 것.
혼자 남겨진 오두막에서 아셀은 잘 정비된 황금색 활 [기온]과 수백 발의 질 좋은 화살 그리고 설산 늑대 가죽 8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투마리스..”
그녀가 떠나기 전에 아셀을 위해 모든 것을 정비하고 간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슬쩍 기온을 당겨보니 아셀에게 맞추어 모든 것이 조정되어 있었다.
투마리스도 먼저 떠났기에.
아셀은 이곳에 있을 이유가 더 이상 없었다.
남은 것은 이곳에서 얻을 ‘그것’을 챙겨 하산하면 될 뿐이었다.
“슬슬 나도 가볼까.”
오두막에서 나온 아셀은 글라스트 마운틴의 맑은 날씨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투마리스의 가죽 갑옷을 착용하니 추위는커녕 몸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마나들에 이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몸이 가벼워졌다.
‘저쪽에.’
만년설이 있는 부분까지 조심스럽게 다가왔던 아셀은 저 멀리 설인들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설인이면.”
3성급 몬스터였다.
숫자는 3마리 정도.
기온을 녀석들에게 겨누고 단숨에 샤인 에로우를 세 번 쏘아낸 아셀의 두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쾅! 쾅! 쾅!
마치 동시에 쏘아진 것 같은 신기에 가까운 활 솜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황금색 오러들이 마치 늑대의 얼굴 같은 모습으로 설인들을 향해 쏘아지는 것을 아셀은 확인할 수 있었다.
“기온의 효과인가?”
다이어 울프의 활은 특별하다고 했는데. 어째서 그런 것인지 알아차린 아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오러에 형태를 만드는 것은 매우 특별한 능력임이 분명했기에.
그 증거로 3성급 몬스터인 설인이 아셀의 샤인 에로우 한 방에 절명한 모습이었다.
‘고마워 투마리스.’
다시 한 번 황금 활 기온을 준 투마리스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한 아셀은 절명한 설인들을 지나쳐 드디어 목표로 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찾았다.”
글라스트 마운틴의 만년설.
그중 이런 절벽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곳만큼 특별한 곳은 없었다.
글라스트 마운틴에 잠들어있는 드레곤의 레어보다 특별한 곳.
얼음마녀의 유산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던전 안을 모두 들어갈 수는 없어.’
안에 잠들어있는 10성급 몬스터를 괜히 깨웠다가는 그 자리에서 죽을 게 분명했다.
다행히 아셀이 찾는 그것은 던전의 입구 근처에 있었기에.
미리 준비한 밧줄을 단단히 묶은 아셀이 천천히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불어 잠시 대롱대롱 매달리며 위험천만한 적이 많았지만, 어느새 절벽의 한 거대한 공간에 도착한 아셀은 이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한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크흠.”
한기뿐만이 아니었다.
투마리스의 인간을 초월한 기감에서 지금 저 안에 얼마나 위협적인 녀석들이 잠들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젠장 예전에는 그저 좋은 사냥터였는데.’
게임을 했을 때는 우연히 발견된 고레벨 전용 사냥터에 불과했던 곳.
그저 이곳을 처음 발견한 유저에 대한 부러움만 있었을 뿐이었다.
“후우....”
투마리스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도 마치 아셀의 본인의 몸처럼 몸이 긴장해서 떨려왔다.
일이 잘못되면 이곳에서 바로 도망치기 위해 온몸에 긴장감을 주는 것도 잠시.
아셀은 절벽 안 동굴을 잠시 걷던 와중 자신이 찾던 물건을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거대한 철문 앞에 얼어있는 남자가 있었다.
모험가 복장에 황금빛 머리카락.
마치 누군가에게 전해주기 위해 얼음으로 만든 꽃을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셀은 눈빛을 반짝일 수밖에 없었다.
“맞았다. 만년설이 꽃.”
남자가 들고 있는 얼음으로 만든 꽃.
저것은 그저 평범한 꽃이 아님은 아셀은 잘 알고 있었다.
만년설이 꽃.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얼음 속성 마법에 대한 플러스 효과를 주었으며, 심지어 4성 이하의 모든 마법들을 알아서 막아주는 아티펙트 중 하나였다.
‘그것만이 아니지.’
마치 지금 당장 움직일 것 같은 남자에게 다가가 손에 쥐고 있던 만년설이 꽃을 천천히 회수하며 아셀은 이것의 가장 큰 활용성을 떠올렸다.
‘정령.’
그냥 정령이 아니었다.
불 물 바람 흙 번개 같은 기본적인 정령들이 아닌 인간들에게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눈 속성의 정령과 계약할 방법이 바로 이 만년설이 꽃이었으니까.
게다가 눈 속성의 정령의 고유 능력인 봉인술은 아셀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제.”
남자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진 만년설이 꽃을 품 안에 넣자 아셀의 몸에는 더 이상 글라스트 마운틴의 살인적인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효과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것도 잠시.
아셀은 문득 거대한 철문 안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불길한 바람과 함께 드는 불길한 생각.
그것을 증명하듯 아셀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어딘가의 높은 존재가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
누가 주시하고 있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얼음마녀.
이곳에 던전을 만들고 10성급 몬스터 수천 마리를 쏟아 넣은 그 존재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젠장 뭐가 이리 꼬이냐..”
레드 스컬에 얼음 마녀.
어째서 게임을 플레이했을 적에는 연관도 없던 녀석들이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 얽힌 것인지 아셀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후우... 그래도 지금은.”
얼음 마녀가 10년 전에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아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털며 다시금 절벽 위로 올라갔다.
“녀석이 나를 찾아왔을 때.”
절벽 위로 올라오자 이번에는 설인 5마리가 아셀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만년설이 꽃의 기묘한 기운을 느끼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내가 강해져 있으면 그만이야.”
자신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드는 설인들을 그저 여유롭게 따돌리며 아셀은 빠르게 하산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글라스트 마운틴에서 지금 얻을 것은 없었으니까.
***
산밑에 있는 마을에서 설산 늑대 가죽을 팔아 얻은 골드가 90골드였다.
생각보다 많은 골드가 수중에 들어오자 기분이 좋아진 아셀은 슬슬 다음 목적지를 생각했다.
‘가져야 할 물건 그리고 가져야 할 재능.’
가져야 할 물건. 아니 아셀은 그것이 가져야 할 물건이 아니라 뺏어야 할 물건임을 잘 알고 있었다.
“신검.”
새하얀 검. 신검.
신검 말릭의 검이자 배반의 기사 말릭의 손에 들어갔던 희대의 전설적인 검.
아셀은 그 검에 의해 죽은 영웅적인 npc들과 수많은 유저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약해질 필요가 있어 말릭.’
길을 걸을 때도 잠시 쉴 때가 아니라면 아셀은 투마리스의 새하얀 가죽갑옷을 착용했다.
투마리스의 사기적인 재능 덕분에 걷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코어 안에 마나들이 쌓였으며 만나는 몬스터들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잠시 길을 걷던 아셀은 자신의 기감에 무언가 잡힌 것을 깨닫고는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벌써 온 건가?’
자리에 멈추자 자신을 따라 멈추는 일련의 기척들.
아셀이 빠르게 뒤로 돌아 기온에 걸린 활을 쏘아내자 수풀에 숨어있던 새들이 갑자기 하늘로 떠오른 것처럼 남녀 5명이 튀어나왔다.
“뭐야 검사라고 하지 않았어?”
“활을 조금 쓰는 거 같은데.”
“하아 근데 저런 애새끼 하나 잡으려고 우리가 그 난리를 친 거야?”
‘레드 스컬...’
5명의 남녀 모두 팔뚝에 붉은 해골 문신을 하고 있었다.
레드 스컬임을 상징하는 문신이 새겨진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턱을 쓰다듬으며 눈앞에 있는 무리를 바라봤다.
“최소 3성 이상들.”
심지어 아무 말 하지 않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는 마법사인 게 분명했다.
“꼬마야 너무 원망하지 말아라. 애초에 네가 우리 동료를 건드린 게 잘못된 거니까.”
“뭐라는 거야.”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으며 아셀은 손목을 풀었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날카로운 눈빛에 용병들이 흠칫하는 것도 잠시.
자신들이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빠르게 뽑아 들었다.
쾅!
그러나 용병들이 무기를 뽑아 드는 것보다 아셀의 화살이 다시 쏘아지는 것이 빨랐다.
그냥 화살이 아닌 늑대의 형상을 띤 샤인 에로우.
그것이 거대한 파공음을 내며 쏘아지자 맨 앞에 있던 용병의 목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겨났다.
“필립!”
“망할 모두 덮쳐!”
순식간에 동료 한 명이 죽자 눈빛을 달리하고 아셀에게 놈들이 달려드는 것도 잠시.
이미 용병들이 샤인 에로우에 한 눈이 팔렸을 때 아셀은 이미 주위의 나무들 위로 올라간 상황이었다.
“포터스 저거 그냥 불태워 버려!”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마법사에게 한 용병이 악을 지르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만들어진 거대한 화염구. 3성의 마법사가 작심하고 만들어낸 마법이 아셀을 향해 쏘아졌다.
‘다른 녀석은...’
마법은 무시해도 되었다.
어차피 3성급 마법은 만년설이 꽃을 지니고 있는 아셀에게 통용되지 않았으니까.
그 증거로 아셀에게 가까이 오던 거대한 화염구는 마치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허무하게 사라지는 모습이 용병들 눈앞에 나타났다.
“?!”
“뭐. 뭐야?”
“갑자기 마법이..?”
‘나머지 한 명.’
거리를 벌리며 유일하게 아셀에게 활을 쏘아내려고 했던 여자 용병의 목에 아셀의 화살이 적중했다.
미처 대응하지 못한 공격에 허무하게 쓰러지는 용병들이 벌써 두 명.
처음에 아셀의 앞에 나타났을 때 보였던 녀석들의 여유로움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좋네.’
그와 다르게 아셀은 자신의 코어에 쌓인 마나들에 희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코어를 각성한 인간들을 죽여도 코어에 마나가 쌓인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망할.. 망할.. 저거 뭐냐고.”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일한 원거리 공격을 사용하는 동료마저 허무하게 죽은 상황.
오랜 용병 경험이 남은 세 명의 용병들의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도망간다!”
“망할 쫓아!”
나무들 사이로 뛰어가기 시작한 아셀을 바라보며 허겁지겁 달려나가던 레드 스컬의 용병들도 잠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화살들이 계속 쏘아지자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위험한 건 황금색....”
말을 하려던 용병은 갑자기 하늘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언제 설치되었는지 거대한 바위가 용병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함정이다!”
목소리 친 마법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남은 두 명의 용병들은 바위와 함께 쏘아진 아셀의 화살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젠장.. 젠장.. 젠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사냥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들자 레드스컬의 마법사 포터스는 겁에 질려 온몸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나와 나오라고!!”
발악하듯 사방으로 마법을 뿌려댔지만 없어지는 것은 포터스의 코어 안에 있는 마나뿐이었다.
그렇게 30분. 포터스가 안에 있는 모든 마나를 소진하고 탈진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을 때. 숲속에서 아셀이 히죽 웃으며 천천히 걸어나왔다.
“30분 기다려 줘서 고마워. 덕분에 여유로웠다.”
이번에는 어깨에 검을 들고 있는 모습. 포터스는 공포에 사로잡혀 눈앞에 있는 아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그냥 알려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