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나머지 동기화를 올리는 법
“도와줘?”
투마리스가 눈을 껌뻑이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마치 네가? 라는 눈빛을 잠시 담았지만, 기본적으로 자애라는 특성을 가진 그녀는 금방 표정을 지우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아셀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설산 늑대는 그냥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야.”
“알아.”
설산 늑대.
경지로 따지면 4성급 무인을 데려다 놓으면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투마리스라면 분명 손쉽게 잡아낼 수 있는 몬스터.
그럼에도 그녀가 몇 년째 이곳에 있는 것은 설산 늑대가 이 넓은 글라스트 마운틴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몬스터지.’
게임 속에서도 그랬다.
눈처럼 새하얀 털은 귀족들이나 여유가 있는 유저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희소성 때문에 가죽은 그 값이 비쌌다.
때문에, 용돈벌이식으로 설산 늑대를 잡았던 아셀은 녀석들의 특성과 어떻게 하면 모습을 드러내게 만드는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 방법 때문에 가뜩이나 개체 수가 적었던 설산 늑대는 종국에 멸종 직전까지 갔었으니까.
“아셀.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것들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보통의 몬스터가 아니야.”
“알아 투마리스.”
계속해서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그냥 갈 수는 없지.’
50%에서 멈춰있던 동기화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올라갔다.
‘아마도..’
절대로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투마리스를 바라보며 아셀은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동기화.
투마리스의 행동을 따라 하면 오르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그녀에게 기술들을 배우고 그녀처럼 사냥에 나서니 50%까지 올라선 것이 그 증거.
나머지 50% 그것은 분명 투마리스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마음가짐인지를 흉내 내거나 들으면 올라서는 것이 분명했다.
‘50%가 외적이라면 나머지 50%는 내적인 게 분명하다.’
그림자 재단의 동기화를 올리는 것이 단순히 외적인 모습만 흉내내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내적인 심상까지 따라 해야 100%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떠올린 아셀은 잠시 골치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투마리스는 그렇다고 쳐도...’
앞으로 흡수할 다른 녀석들도 이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응? 아셀 그냥 마을로 돌아가. 이건 내 일이야.”
자신을 올려다보는 투마리스를 바라보며 아셀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은 오로지 투마리스의 모든 재능을 흡수하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했기에.
“설산 늑대를 유인할 방법을 알아.”
“뭐?”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껌뻑이는 투마리스를 바라보며 아셀이 방긋 웃어 보였다.
“마을에 있을 때 촌장님께 들은 이야기야.”
“설산 늑대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마을 촌장이나 하고 있을 리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투마리스를 바라보며 아셀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분은 다이아 울프 수인이셨어.”
“?!”
투마리스의 눈이 경악에 사로잡힌 듯 크게 떠졌다.
“그분은 두 눈이 멀어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하셨어.”
“확실히.. 그런 거라면.”
다이아 울프족.
그 수가 적은 수인족들 중에서도 가장 수가 적은 존재들.
희소한 것처럼 그들은 수인족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능력들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아셀은 투마리스의 아버지이자 수인족들의 족장이 다이아 울프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날 한 번만 믿어줘 투마리스. 분명 후회는 하지 않을 거야.”
잠시 갈등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투마리스도 잠시. 그녀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알았어. 그러면 뭐부터 해야 해?”
그녀가 결국 승낙하는 것과 동시에 아셀의 눈앞에 기분 좋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석류. 그거면 끝나.”
“석류?”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투마리스에게 아셀은 그저 씨익 웃어 보일 뿐이었다.
‘걔네가 그걸 엄청 좋아하거든.’
***
석류를 오크통 하나에 가득 채운 것도 잠시.
아셀은 그것을 모두 으깨 진한 진액을 만들어냈다.
“향기 좋다...”
으깨진 석류에서 풍기는 향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눈빛을 반짝이는 투마리스에게 피식 웃어준 아셀은 석류를 글라스트 마운틴의 곳곳에 뿌리기 시작했다.
“설치할 건?”
“다 설치하고 왔지!”
“잘했어 투마리스. 역시 대단한데?”
“흐.흐음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아셀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투마리스가 잠시 먼 산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석류를 으깨는 동안 투마리스는 이곳 주변에 함정들과 무기들을 가져다 놓은 상황이었다.
‘저곳과 저곳.’
석류를 뿌려대던 아셀은 눈 속에 있는 함정들이 느껴졌다.
동기화가 오르고 그동안 코어가 점점 늘어났기에 가능한 모습들.
처음 이곳에 왔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분명했다.
“대단해.”
석류를 뿌리고 투마리스가 미리 준비한 토굴 속에 둘이서 몸을 숨기자 아셀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동기화가 50%를 넘어섰음에도 그녀가 작정하고 숨긴 함정은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만약 100%가 된다면..’
투마리스처럼 5코어에 오르고 동기화가 100%가 된다면 자신도 저런 일을 벌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아셀의 몸 안을 감싸기 시작했다.
잠시 둘이서 지루한 기다림을 가지는 사이 글라스트 마운틴에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만년설이 존재하는 곳이었기에 눈이 내리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내린 눈들 그리고 점점 눈빛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한 투마리스를 바라보며 아셀은 자신의 방법이 적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고 있구나.’
투마리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가죽갑옷을 입고 있는 아셀의 기감에도 이곳에 무언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씩 내리고 있던 눈들은 점점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까지 부니 구덩이 밖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게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
글라스트 마운틴의 벽덕스러운 날씨를 잘 알고 있던 투마리스 또한 이렇게 바뀐 날씨에 조금 놀란 모습이었다.
지이익.
말없이 투마리스의 황금색 활의 시위에 화살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셀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그녀의 눈에는 저 눈보라 속에 있는 설산 늑대가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
‘?!’
구덩이 안에 황금색 빛이 일어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투마리스가 이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화살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쾅! 쾅!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들려올 만한 거대한 소음과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셀이 어째서 이렇게 요란한 공격을 하냐고 반문하는 것도 잠시.
투마리스가 다급한 표정으로 아셀을 구덩이 밖으로 떠밀기 시작했다.
“달려 아셀 달려!”
[동기화가 올라갔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확인할 새도 없었다.
투마리스가 저렇게 다급하게 달리라고 하는 거라면 이유가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뭐가...’
앞을 헤쳐나가던 아셀은 사방에서 무언가 작동되는 소리에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철컹. 청컹.
투마리스가 설치한 함정들이 일제히 작동되기 시작한 것.
그것이 어떤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아셀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친..”
뒤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것에 맞춰 투마리스처럼 활을 쏘아냈다.
맞았다.
아셀은 지난 사냥들에서 얻은 경험과 투마리스가 가지고 있던 재능들에서 얻어진 무언가로 직감할 수 있었다.
맞은 상대가 어떻게 됐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것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우우우!
주변에서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났다.
‘망할 그 생각을 못 했다.’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아셀은 비탈길들을 빠르게 달려나가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셀이 현실에서 게임을 했을 적. 설산 늑대들은 멸종 위기종이었다.
때문에 석류로 아무리 녀석들을 유인해도 한 마리가 오면 대박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시금 사방에서 투마리스가 설치한 함정들이 작동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수많은 함정들이 아니었다면 아셀은 이미 놈들에게 포위되어 도망도 생각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설산 늑대가 멸종 위기 종이 아니지..”
눈보라를 뚫고 처음으로 새하얀 털을 가진 설산 늑대가 아셀을 향해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녀석을 구르듯 피한 아셀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화살을 쏘아냈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
만약 투마리스의 재능이 없었다면 하지 못할 동작들이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50%를 넘어 순식간에 증가하기 시작한 동기화들에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화살에 맞고도 계속해서 달려들려고 하는 녀석에게 아셀은 뒷걸음질 치며 연사를 할 뿐이었다.
‘하기야.’
눈을 가늘게 뜨며 주위에 다른 설산 늑대가 느껴지는지 확인해본 아셀은 몇 개의 기척이 느껴짐을 확인한 후 놈에게 미련을 두지 않고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4성급 무인이 감당할 수 있는 몬스터.”
세 개의 코어.
아셀은 자신의 심장에 있는 코어들을 생각하며 서둘러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마력을 온전히 담아낸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라면 놈을 상대로 정면 승부는 불가능한 일이 될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다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근방은 투마리스와 함께 지난 2주간 제집처럼 들락거렸기에.
아셀은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다.
“화살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설산 늑대들에게 쏘아댔기에.
남아있는 화살은 하나도 없었다.
더 이상 활로 녀석들을 견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그럼에도 아셀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느새 자신이 생각한 유리한 전장에 도착했으니까.
눈앞에 3m는 훌쩍 넘는 나무들이 즐비해 있었다.
지난번 마운틴 카우를 잡기 위해 자리를 잡았던 공간.
단숨에 나무를 타고 올라간 아셀은 도착한 나무 위에 화살들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이곳까지 후퇴할 가능성을 생각한 투마리스가 미리 준비한 게 분명한 것들.
황급히 화살들을 챙겨 넣은 아셀이 지상을 내려다보자 3마리나 되는 설산 늑대들이 아셀을 올려다보며 입가에 침을 흘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우우우!
아우우우우!
녀석들이 울음소리가 글라스트 마운틴에 울려 퍼졌다.
동료들을 불러 모으려는 하울링들. 아셀은 세 마리 중 두 마리에 자신 쏘아낸 화살들이 박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를 먹잇감으로 봐?”
아마도 아셀의 공격이 자신들에게 그리 위협적이지 못함을 알아차렸기에 나오는 행동들.
그 모습에 눈썹이 꿈틀거린 아셀이 활을 들어 올리자 황금색 오러들이 순식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투마리스의 샤인 에로우를 사용합니다.]
[유지시간이 2시간 감소합니다.]
파공음을 내며 쏘아진 황금색 화살. 아셀은 그중 하나가 설산 늑대의 몸에 정확히 박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