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재단사가 강해지는 법-2화 (2/201)

◈ 2화. 게임 속으로

‘내가 왜 이걸 이렇게 만들었지?’

덜컹거리는 수레 안에서 조형래는 주위를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엘프들. 드워프들. 그리고 수많은 아인들. 주위에 있는 녀석들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고 목에 걸고 있는 구속구는 그들이 노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머리를 쓸어넘기던 조형래는 손아귀에 잡힌 머리가 자신의 머리 색인 검은색이 아닌 바닷물 같은 아쿠아색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

그것도 그런 것이 형래는 지금 원래 살고 있던 대한민국이 아닌 [페이크 월드]라는 게임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날 분명히...’

그날도 어김없이 일이 끝난 형래는 기계적으로 게임을 켰다.

이미 출시된 지 10년이 지난 게임. 그럼에도 놀랍게도 전 세계 1위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게임.

그곳에서 형래는 초장기 때부터 해왔던 고인물이었으며 무미건조한 사냥만 하고 있을 때였다.

-컨텐츠 x망 게임.... 다른 게 없어서 한다.

출시된 지 10년.

이미 웬만한 컨텐츠는 모두 즐긴 형래는 그저 사냥만 할 뿐이었다.

그의 캐릭터 [zi존 검사.]는 티비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했으며, 그가 가입되어있는 길드 [아테나]는 전 세계 1위의 거대 길드였기 때문에.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십니까?

그렇게 무미건조한, 아니 이제는 부업 수준인 사냥을 하고 있던 와중. 형래는 티비 속에서 생산직 캐릭터를 선택한 대장장이 [마르쿠스]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제 작품이 사람들의 손에서 펼쳐질 때 보람을 느낍니다.

성취감. 그리고 눈에 가득한 열정.

모든 것이 형래가 그토록 찾던 것이었기에. 그길로 형래는 더 생각하지 않고 부캐를 만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페이크 월드의 케릭터 생성. 그것은 여타 다른 RPG 게임에서 나오는 평범한 캐릭터 생성과는 달랐다.

우선 게임 속 재능을 주사위를 굴려 4가지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앞으로 유저들이 어떤 직업으로 키울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순간.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재능에 비례해 캐릭터가 대륙에서 어떤 집안에 태어날지도 정해지는 시스템이었다.

-어차피 생산직이니까.

생산직에 좋은 것을 선택하자..

그 생각뿐이었기에. 형래는 자신의 캐릭터에 신급 검술 능력, 정령왕의 사랑을 받는 존재, 영웅적인 마법적인 재능같이 남들이 들으면 무조건 기뻐하는 특성들이 나와도 무심하게 주사위를 굴렸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겁쟁이. 마나에게 혐오 받는 몸. 온갖 무술들에 배척을 받는 몸. 하나같이 쓰레기라 불릴만한 재능들.

그것들과 함께 나온 뛰어난 눈썰미와 미적 감각은 생산직 캐릭터에게 좋은 재능이었기에 그는 부캐에 그런 재능들을 부여했었다.

만약 자신이 캐릭터를 만들자마자 게임 속으로 빨려들어 올 줄 알았다면 형래는 절대로 그런 쓰레기 같은 재능을 선택하지 않았겠지만..

“푸하핫. 정말로 그런 말에 속았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우리는 동료니깐 절대로 널 버리지 않아 하니깐 아셀 저 등신 같은 게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고맙다고 말하더구만.”

“머저리 같은 놈 어떻게 저런 녀석이 필드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는지 몰라?”

“그러니까 버티지 못하고 가출 따위나 한 거 아니겠어?”

“그런데 필드가에서는 아직도 연락 없어? 장남이 노예가 되게 생겼는데 말이야.”

“아직 연락 없는데. 못하면 사창가에라도 팔아서 용돈이나 벌자고.”

“그전에 우리가 좀 즐겨보는 건 어때?”

“푸하하 그것도 좋겠구만. 귀족의 엉덩이를 언제 한번 만져 보겠어?”

형래, 아니 이제는 용사 가문의 장남 아셀 필드는 자신을 향한 조롱에 상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머저리 같은 놈.’

용병들이 말하는 것에 반박할 수 없었다.

녀석들의 말에 겁쟁이 재능이 저절로 나타나 녀석들에게 배신당한 수모도 잊게 만들 정도로 손이 떨려왔으니까.

‘그냥 집에나 있지 이 머저리가...’

캐릭터를 만들고 아셀이 처음 눈을 뜬 곳이 바로 이 수레였다.

자신이 아셀에게 추가한 최악의 재능들. 그것이 아셀을 대륙의 명문가인 필드가에 태어나게 한 게 분명했다.

명문가에 태어났지만, 무가에 적합하지 않은 최악의 재능.

그 결과가 아셀의 아버지와 4명의 형제의 괴롭힘이었고 아셀의 가출로 이어졌다.

“분명 이 녀석의 아버지는 그냥 죽기를 원하겠지.”

필드가의 가주 유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려 손이 떨려오는 와중.

그의 성격을 떠올리면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아들도 아니고 가출했다가 동료들에게 배신당해 노예로 팔려 넘겨진 아들은 죽게 내버려 둘 게 분명했다.

심지어 쓰레기라고 대놓고 말했던 아들이면 더더욱.

“너도 참 기구하구나.”

혀를 차며 녀석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노력했는지 15살의 나이라고는 믿지 못할 만큼 가득한 굳은살들.

이것들을 바라보니 왠지 쓰레기 같은 재능을 준 게 조금 양심이 찔렸던 아셀은 수레 밖에서 히시시덕거리고 있던 털보를 바라보았다.

녀석을 바라보자 아셀의 몸속에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이 차올랐다.

가출 후 살아남기 위해 모험가로 일을 하고 있던 아셀에게 손을 내민 4명의 동료들.

한때는 그들을 친형제처럼 생각했고 가족처럼 생각했던 아셀의 분노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푸하하 아셀 정말 내가 너의 동료라 생각한 거야?

-다음부터는 그 머리 색부터 감추고 다녀.

-어차피 가문에서 구해줄 거니까. 우리한테 기부한 셈 치라고.

-이 녀석은 내가 데려가지. 잘 아는 노예상이 있어.

-오케이 털보 그러면 수익은 똑같이 분배하자고 알았지?

-6달 뒤 로렌시 거기서 보자고.

자신을 노예상에게 팔아넘기며 시시덕거리던 녀석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아셀은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나저나 너도 돈독 오르긴 했나 보다. 어떻게 노예 팔러 가는 와중에 일거리를 하나 맡냐?”

“젊었을 때 벌어야 하지 않겠냐?”

“하기야 귀족들 사냥감 몰이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게다가 노예들한테 시키면 우리는 앉아서 돈 버는 거라고 안 그래?”

밖에서 털보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셀은 그동안 두 가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선 지금이 자신이 게임을 했을 때보다 10년 전의 시간대였다.

10년.

페이크 월드에서 수많은 사건이 있었고 수많은 전설적인 아이템과 던전들이 발견되었던 시절.

고인물인 아셀은 그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9차례 몬스터 웨이브도 마족들의 본격적인 침공도 발생되지 않은 상황이다.’

눈을 감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있던 아셀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저 새끼 웃고 있는데?”

“냅둬.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나 보지.”

앞으로 얻을 수많은 전설적인 무기들과 미리 선점할 던전들.

그것을 떠올리니 웃고 있던 아셀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용병들과 노예상들을 무시할 수 있는 용기마저 생겨났다.

‘지금 가는 곳. 롬마니아 영지에 그게 있다!’

게임 초창기.

밸런스 붕괴라며 수많은 유저들에게 비판을 받고 홈페이지까지 마비시켰던 그 직업!

아셀은 수레에서 절망에 빠져있었을 때 이것이 롬마니아 영지로 가고 있다는 듣고는 없던 희망이 생겨난 상황이었다.

“귀족들 만나면 조심하자고.”

“푸하하 귀족 하나 노예로 팔려고 하는 녀석이 갑자기 겁을 먹은 게냐 털보?”

“임마 롬마니아 후작이 아셀 같은 등신인 줄 알아? 잘못하면 돈도 못 받고 손목이 잘려나갈 수도 있다고.”

“하기야 그건 그렇지.”

용병들의 자신을 무시하는 말에 아셀은 털보를 슬쩍 노려봤다.

‘저 녀석만큼은...’

아셀의 기억 속, 모험가 길드에서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용병 털보.

때로는 친형처럼 대해주었던 녀석이 자신을 노예로 팔고 그동안 뒤에서 조롱이나 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아셀.’

자신에게 다짐하듯 겁에 질려 떨리는 녀석의 손을 최대한 진정시킨 아셀은 어느덧 수레가 멈추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자 내려라 내려.”

“이따가 소리 작게 내는 녀석은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사방에서 윽박지르는 소리와 노예들을 질질 끌며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롬마니아 후작의 병사들이 후작과 귀족가의 도련님들을 모시고 있는 거대한 천막이 있는 상황.

털보는 히죽 웃으며 잔뜩 겁에 질려있는 아셀에게 다가왔다.

“아셀 네놈에게 기대하는 바가 커.”

“기..기대?”

녀석의 목소리에 벌써 겁을 먹어버린 자신의 몸에 아셀은 한없이 저주를 퍼부었다.

“그래, 기대 이 등신아. 이번에도 겁쟁이처럼 뒤에 숨어만 있는다면 오늘 밤은 저 녀석들에게 엉덩이를 대줘야 할 거야 알았어?”

뒤에서 아셀을 바라보며 음흉한 표정을 띠고 있는 용병들을 바라보며 털보는 히죽 웃어 보였다.

“알겠냐고 등신아 대답 안 해?”

“알았어..”

눈을 내리깔고 몸을 부르르 떠는 아셀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털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조만간이다.. 조금 남았어..’

거대한 롬마니아 영지의 사냥터 한 곳에 서 있는 아셀은 쿵쿵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옆에는 다른 노예들이 겁을 먹고 침을 꼴깍 삼키고 있는 모습.

그리고 사냥터 먼 곳에서 후작에게 아부하는 용병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부우부우!

나팔소리와 함께 노예들과 병사들이 고함을 치며 몬스터를 몰이하기 시작했다.

“어라 저 새끼 뭐 하는 거지?”

“머저리 같은 놈이네.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게 말이야. 사냥 끝나고 천천히 잡아 오자고 어차피 숲속 어디서 겁먹고 숨어있을 거 같으니까 말이야.”

모두가 사냥터 한가운데로 고함치며 달려가는 것과 다르게 아셀은 숲속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헉.. 헉.. 헉”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녀석에게 부여한 온갖 무술들에 배척을 받는 몸, 그것이 달리기마저 재능을 없게 만든 게 분명했다.

“달려야 해 달려야 해..”

계속해서 달렸다. 아셀은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목구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아내며 롬마니아 영지의 한 호숫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며 쓰러질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낸 아셀은 작은 호숫가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반짝였다.

페이크 월드의 직업.

이곳에서 캐릭터들이 전직을 하는 방법은 먼저 직업을 가지고 있는 NPC나 유저를 스승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대륙의 어딘가에 숨겨진 비석이라던가 유물에서 얻을 수 있는 숨겨진 직업들이 존재하는 법.

어떤 유저는 항아리를 수백 개 닦다가 고대의 마법사로 전직한 경우도 있었고, 어떤 유저는 집안 아궁이에 숨겨진 직업들을 얻기도 했었다.

그리고 모든 직업들이 그렇듯 이런 숨겨진 직업은 일반적인 직업보다 훨씬 더 강하고 사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림자 재단사..’

그중 가장 초창기 페이크 월드의 문을 닫게 만들 뻔했던 사기적인 직업.

한때는 모든 유저들이 대륙의 곳곳에 있는 호수에 자진해서 들어가게 만든 그 직업.

[그림자 재단사] 그것은 롬마니아 호수 속에서 지금 아셀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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