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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160화 (160/160)

▣ 160화

205

다음 날.

중국 주석이 예고했던 ‘전체회의’ 소집시간이 되었다.

미나와 우라라는 기계수들을 제작하며 밤을 새웠다.

나와 함께 그 재료들을 모았던 이희진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전체회의를 감상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모두 모니터 앞에 모였다.

나는 슬그머니 분신 능력을 발동했다.

세 명의 분신을 만들어내서 미나와 우라라, 그리고 이희진을 동시에 기절시켰다.

‘조철웅’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 각성한 내 집중력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흡사 저주와도 같았던 람바스의 게으름을 대부분 걷어낼 수 있었다.

람바스 안에 있는 재능은 그야말로 ‘보고’였다.

그가 구상하고 구체화하지 않았던 기술들, 능력들.

그는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암기하는 재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응용하여 더 대단한 것을 만들어냈다.

람바스의 재능에는 내 기억도 더해졌다.

성과 없이 열심히 노력만 했던 지난날의 내 기억들.

그것들은 단지 의미 없는 시간 낭비만이 아니었다.

그때 간간이 즐겼던 영화, 드라마, 책, 게임 등의 내용들이 모두 람바스의 능력과 섞여 대단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아무래도 람바스가 살았던 행성에는 그런 오락 컨텐츠들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니까.

온갖 창작자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람바스의 재능과 합쳐져 엄청난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이른바 ‘혈’을 눌러 기절시키는 것은 무협지에 흔히 나오는 내용이지만, 현실에서 구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람바스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기술화했다.

세 명의 여자는 동시에 기절했으며 긴 잠에 빠져들었다.

중국에는 나 혼자 갈 생각이었다.

이희진은 깨어 있었다면 나와 동행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S급 능력자라고 하더라도 그녀와 나의 수준 차이는 엄청나다.

그녀는 중국에서 벌어질 대전에 방해만 될 터였다.

지금은 피곤한 몸을 회복하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비하는 게 나았다.

‘조철웅’ 능력을 거의 각성한 지금의 나는 흡사 예언자와 같았다.

악마와 싸웠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그리고 놈을 죽일 시나리오도 그려졌다.

나는 중국의 헌터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모니터를 통해 보았다.

수천 명의 헌터들.

그들은 주석의 명령에 한자리에 모였다.

자체로 장관인 풍경.

내게는 대단한 기회이기도 했다.

강력한 사도들을 한 번에 깨우쳐 세계에 흩어진 사도들에게 경고를 날릴 기회.

그것을 발판으로 악마를 불러낼 기회.

나는 게이트 능력을 발휘했다.

‘전체회의’가 진행 중인 중국으로 워프할 수 있는 문이 생겼다.

나는 그것을 열고 중국으로 갔다.

206

나는 구름 위 허공에 떠올라 중국의 헌터들이 모여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주석은 그들에게 강력한 어조의 연설을 하고 있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한국에는 중국을 위협하는 악당이 있으며, 놈을 죽이는 것이 최선의 사명이라고 했다.

당연히 그 악당은 나였다.

‘어디 악당한테 당해봐라.’

나는 람바스의 보구 중 하나인 ‘운명의 목걸이’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것에 강력한 기운을 부여했다.

우르르르릉!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S급 몬스터를 소환하는 게이트가 열렸다.

중국의 ‘전체회의’는 단번에 혼란에 휩싸였다.

“후후후.”

나는 웃음을 짓고 전체 풍경이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기척을 완전히 지우고 몬스터들이 나를 감지할 수 없게 했다.

갑자기 나타난 수십 마리의 S급 몬스터들과 헌터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도 없는 아수라장!

나는 침착하게 전경을 보고 있다가 사도들이 깨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를 맞아 사도들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 목표는 사도가 빙의하지 않은 헌터들이었다.

그들이 쓸데없이 죽임을 당할 필요는 없으니까.

기척을 지운 상태로 전장을 오가며 그들을 한 명 한 명 구해냈다.

그리고 임시로 만든 게이트 공간으로 그들을 던져넣었다.

한마디로 내가 만든 그림은 오로지 몬스터 대 사도들이 싸우는 것이었다.

둘 다 소멸되어야 할 위협이다.

영문도 모른 채로 서로 싸우는 놈들이 참 우스웠다.

“일단 그러고들 있어라.”

나는 다른 볼일을 위해 현장을 떠났다.

207

내가 도착한 곳은 중국의 방송국이었다.

갑자기 날아서 등장한, 척 보기에도 보통 능력이 아닌 듯한 헌터의 등장에 방송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생방송으로 방송을 내보내고 싶다.”

중국어로 말했지만 그들은 우왕좌왕하기만 할 뿐, 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방송국과 꽤 떨어져 있지만 눈으로는 어디에서나 보이는 수십 미터 크기의 조형물을 향해 마나를 방출했다.

퍼엉!

커진 중국의 위상을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은 내가 날린 마나파동을 얻어맞고 무너졌다.

우르르르릉-

내가 하는 말의 위력이 달라졌다.

“생방송을 하고 싶다.”

“아, 알겠습니다!”

나는 서둘러서 방송 준비를 하는 중국인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모든 드론을 주석궁으로 보내. 거기서 재밌는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내가 수십 미터짜리 조형물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자, 스태프들은 내가 보통 헌터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이유를 따지기 전에 서둘러 드론을 날리기 시작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방송 준비가 끝나자 나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사도들아, 나는 람바스다. 너희 주인을 불러내라. 아니면 너희들은 모두 같은 꼴이 날 것이다.”

같은 꼴이라는 것은 중국의 전체회의에서 S급 몬스터들에 의해 학살되고 있는 사도들이 당한 꼴이었다.

나는 영어로, 스페인어로, 포르투갈어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언어로 같은 메시지를 송출했다.

‘한 번에 끝내야 해.’

준비는 끝났다.

람바스의 능력이 빙의한 뒤로 ‘준비’란 모두 조철웅의 본능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걸리는 시간이 모든 ‘준비’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못 하면 아무도 못 해.’

나는 하늘을 날아서 이동했다.

최후의 싸움이 다가온다.

그때까지 내 모든 잠재력을 깨울 필요가 있었다.

208

“주군!”

미미가 호텔에서 나를 맞았다.

“곧 악마가 나타날 거야.”

“네?”

밑도 끝도 없는 내 말에 미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방금 내가 하고 온 일을 말해주었다.

미미가 급히 TV를 켰다.

그러자 내가 중국 방송국에서 송출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아울러 주석궁에서 벌어지고 있는 S급 몬스터들과 사도들의 싸움도 방영되었다.

“아…….”

“시간이 길어져 봤자 희생이 늘어날 뿐이야. 오늘 끝낸다.”

미미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알겠어요. 저는 이날만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약속할게. 전과는 다를 거야.”

“믿습니다. 주군.”

나는 내 방의 바닥에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다.

단순한 명상이 아니었다.

람바스의 능력이라면 의식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내 의식은 방송을 보고 각성한 수많은 영혼들을 감지해내는 것이었다.

사도들은 최후의 때가 급작스럽게 찾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본성을 깨울 것이다.

그와 동시에 깨어나는 이들도 있었다.

영웅들.

자신의 힘이 모자라 악마에게 고향이 집어 삼켜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자들.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지구에서 각성한 그들을 감지해내는 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정신을 집중하자 의식이 육체를 벗어났다.

물리계를 벗어난 오롯한 의식으로써 나는 지구 전체 곳곳에서 빛나는 영혼들을 감지했다.

그들이 있는 곳, 그들의 기억.

그것들을 하나하나의 게이트로 형상화했다.

악마를 상대할 유일한 방법.

놈은 폭식의 화신이었다.

놈이 행하는 살인과 파괴는 모두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반격의 열쇠는 놈의 본능을 활용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온 정신을 모았다.

희열감이 온몸을 감싸고, 람바스의 잠재력이 끝도 없이 각성했다.

시간을 잊고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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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내 어깨를 잡아 흔드는 미미의 음성에 눈을 떴다.

마침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막 완수한 참이었다.

나는 지구 곳곳에 흩어진 영웅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하나의 게이트에 모였고, 나는 각자의 의식에 파고들어 그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를 설명했다.

영웅들은 최후의 싸움을 위해 대기 중이었다.

나는 방 밖으로 나갔다.

창밖에는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밤이 되어서, 날씨 때문에 생긴 어둠이 아니었다.

최후의 때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암운이었다.

나는 커튼을 걷어 밖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찬연히 빛나고 있는 하나의 존재.

먼 곳에서 놈은 침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자신이 먹어치울 또 하나의 행성.

아직 충분히 숙성하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이었다.

“끝내고 올게.”

나는 미미에게 말하고 창밖으로 날아올랐다.

“주군! 몸조심하세요!”

210

악마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나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놈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하나이다.

싸우기 위해서.

사도들 전체에 경고를 날린 것은 나이고,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악마를 불러낸 것도 나이다.

나만 죽인다면 이 행성의 접수는 모두 끝나는 것이다.

“기억나냐?”

인간의 형태를 한, 아니, 보통의 성인보다도 작은 체구를 가진 악마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네가 그런 지능이 있을 리가 없지.”

있는 것이라고는 식욕뿐인 놈이다.

그 식욕이 너무 왕성해서 탈이지.

악마의 뒤로, 하늘에서 구멍이 뻥뻥 뚫리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내가 중국에서 불러냈던 것보다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이곳에 둔 채로 의식을 분리해 게이트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영웅들을 모두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내가 악마와 싸울 동안 당신들은 이곳을 지키십시오.”

사명은 모든 영웅들에게 전달되었다.

마찬가지로 미나와 우라라, 이희진도 게이트에서 데리고 나왔다.

미나와 우라라가 만든 기계수들이 줄줄이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왔다.

몰려드는 몬스터들에 대응해 영웅들과 기계수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악마의 양어깨를 움켜쥐었다.

“따라와, 이 새끼야!”

211

‘지겨운 놈이네.’

나는 악마와 최후의 싸움을 벌였다.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싸움이다.

행성과 행성, 게이트에서 게이트를 통과하며 나는 놈과 사투를 벌였다.

놈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죽였다 싶으면, 잔해 속에서 멀쩡하게 걸어 나오는 놈이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놈에서 공격을 날렸다.

그것들을 악마는 태연하게 집어삼켰다.

그래도 나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조철웅’의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노리는 것은 어차피 악마를 일 대 일의 싸움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었다.

놈을 가두는 것이 목표였다.

영겁의 감옥 속에.

영웅들의 처참한 기억으로 만들어낸 게이트.

그 행성에 살았던 수십억, 수십조에 달하는 영혼들에게 새겨진 기억들.

나는 끝없는 심연 속으로 악마를 데리고 들어갔다.

‘이젠 더 공격할 힘도 없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악마는 같은 표정과 모습으로 내 앞에 벌쭉 웃고 있을 뿐이었다.

식욕 때문에 흘러내리는 침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먹고 싶지?”

악마가 우주에서 하는 유일한 일은 먹는 것이었다.

죽는 것이 불가능한 악마가 가진 유일한 욕구는 식욕뿐이었다.

놈의 의식은 자기와 싸운 나에게 있지 않았다.

지금 둘러싸고 있는 이 공간, 자신이 좋아하는 기운을 담뿍 담고 있는 과거의 기억을 탐미하고 싶어 할 뿐이었다.

“맛있게 먹어라.”

죽이지 못하면 가둘 뿐이다. 영원히.

그게 이전의 람바스가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악마를 남겨두고 게이트 안에서 빠져나왔다.

212

지구에서는 여전히 영웅들과 사도들, 그리고 몬스터들이 얽힌 싸움이 진행 중이었다.

지구는 곳곳이 파괴되었지만 악마에게 완전히 집어 삼켜진 다른 행성들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주군!”

돌아온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역시 미미였다.

그녀도 긴 싸움을 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됐어요?”

나는 대답할 기운도 없어서 미소를 지었다.

“봐.”

미미는 내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천천히 점멸하는 사도들의 영혼, 그리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어떻게…….”

“가두고 왔어. 놈은 영원히 나오지 못할 거야.”

나는 힘을 쥐어짜서 말했다.

“다시 나와도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주군!”

미미가 눈물을 흘리며 나를 껴안았다.

얄궂게도 이 순간 람바스의 성정이 튀어나왔다.

쉬고 싶다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한 달 정도 뒹굴거리고 싶다는.

‘괜찮겠지.’

싸움이 끝났으니 이제 얼마든지 쉬어도 괜찮다.

나는 ‘조철웅’에게도 휴식을 허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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