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159화 (159/160)

▣ 159화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중국 S급 헌터들 아시죠?”

“네?”

내 물음에 류신휘는 자연스럽게 반문했다.

정말로 딴 데는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있었던 듯했다.

이대로 계속 한국에 눌러살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인상이 편안해진 것을 보면 중국에 있었던 것보다 한국에서 사는 게 그로서는 백 배 나은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류신휘가 한국에 들어올 때 함께 있던 S급 헌터들 말고 다른 S급 헌터들은 그 뒤에 따로 데려왔기 때문에 그가 모를 수도 있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계획을 말해주었다.

요약하자면 한국에 있는 중국의 S급 헌터들을 류신휘와 함께 중국에 보낸다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한국에 억류되었을 뻔한 중국 헌터들을 류신휘가 협상 능력을 발휘해서 데리고 왔다는 그림이 나을 것이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줄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내 목적은 류신휘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방심하는 틈을 노리려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류신휘는 내가 자신을 걱정해서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 제멋대로 오해하고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자고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것이다.

“류신휘 씨는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버지 말씀이십니까?”

내 물음에 류신휘는 그야말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내 기분까지 심란할 지경이었다.

“부친으로서의 정은 별로 없는 모양이군요.”

“네…… 제가 각성하기 전까지 저는 아버지에게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무능한 쓰레기로 낙인 찍고 사고를 치지 못하게 감시만 당하는 신세였죠. 저는…….”

중국 최고 권력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오히려 그게 짐이 되어 큰 고충을 겪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름의 사정은 누구나 있는 것이다.

나는 류신휘를 동정할 마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계속 얘기하죠.”

나는 계획의 나머지를 말해주었다.

“네? 정말이십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그러니까 류신휘 씨가 역할을 잘 해주셔야 합니다. 저를 믿으셔야 해요.”

나는 계획 전부를 말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말한 부분까지만 들어도 류신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헌터님은 중국을 너무 우습게 알고 계시는 건 아닌지…… 중국은 S급 헌터의 숫자만 해도 우글우글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 수준은…….”

자국 헌터의 강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류신휘는 내 눈치를 보았다.

아마도 나보다 더 강하다는 말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절대로 중국에 나보다 더 강한 헌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류신휘의 입장은 또 다를 수 있다.

애초에 그는 한국과 한국의 헌터들을 무시하고 있었고 그런 인식이 은연 중에 깔려 있다면 나에게 굴욕을 당한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중국의 헌터들이 더 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백 퍼센트 틀리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이미 한 차례 큰 타격을 주었다고 해도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애초에 정면에서 부딪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면 류신휘와 중국의 S급 헌터들을 이용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제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테니까요. 이동 날짜는 언제입니까? 비행기로 갑니까, 배로 갑니까?”

“시간 끌 것 있나요? 바로 가죠.”

“네?”

내가 가진 게이트 능력을 모르는 류신휘가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내버려 두고 나는 다른 것을 물었다.

“아버지가 주로 머무는 곳은 어디입니까?”

“지금 시간이…….”

자기 손목에 걸린 번쩍번쩍한 금시계를 들여다본 류신휘가 대답했다.

“지금이라면 주석궁에 계실 겁니다.”

“확실한가요?”

“네, 아버지는 일과는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주석궁의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시겠어요?”

류신휘는 핸드폰을 꺼내어 지도를 띄운 다음 주석궁의 위치와 자신의 아버지가 집무를 보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것을 듣고, 인터넷에서 주석궁 사진을 몇 장 더 찾아서 이미지화했다.

눈을 감고 그것을 정리했더니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감이 솟았다.

“가시죠.”

“네? 그러니까 비행기인지, 배인지…….”

나는 바로 게이트 능력을 발휘했다.

류신휘는 갑자기 바뀐 배경에 어리둥절해 했다.

“여기가 어딘가요?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꿈 아니에요. 중국은 머니까 지름길로 가는 게 빠르지 않겠어요?”

“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류신휘는 눈을 끔벅거렸다.

중국의 헌터들이 나보다 강하다고 여겼던 그의 생각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나는 류신휘와 함께 중국에 보낼 중국의 S급 헌터들을 데리러 갔다.

그들에게도 계획을 말해주었다.

그들은 류신휘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단은 중국으로 돌아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는지 급히 표정을 수습하게 내게 무조건 충성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들이 거짓이라고 백 퍼센트 확신하면서도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중국의 헌터들을 있던 게이트에서 데리고 나와 다른 문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것은 지구의 여러 곳과 연결이 가능한 워프 게이트였다.

당연하다는 듯 하나의 통로가 더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류신휘 일행과 동행하지 않았지만 그곳이 중국의 주석궁과 직통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여길 나가면 주석궁과 통하는 겁니까?”

류신휘가 불안한 음성으로 물었다.

“네.”

지금까지 본 게 있으니 의심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다시 자기 아버지를 만날 일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런 류신휘와는 별개로 일 초라도 빨리 굴욕의 장소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S급 헌터들은 재빨리 워프를 했다.

마지막으로 만두 머리 소녀가 문을 통과하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멍청한 놈. 우리가 네 말대로 할 줄 알았냐?”

중국어로 말했지만 중국어 능력을 가진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나는 그녀와 그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류신휘까지 문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 말했다.

“멍청하게, 내가 그걸 모를 줄 알고?”

203

나는 다시 미나와 이희진 일행이 있는 게이트로 돌아왔다.

미나는 이미 생중계를 위한 세팅을 해두고 있었다.

이것은 중국의 헌터들에게 심어둔 특정한 장치를 이용한 것이었는데, 지구보다 과학 문명이 훨씬 발달한 행성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차원과 게이트를 넘어서 영상이 보이도록 한 것은 미나만이 구현 가능한 기술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곳 게이트에서 연구하는 동안 지식과 능력이 진일보했다.

연구실에 기동 가능한 기계수들의 숫자가 늘어 있는 것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오, 저기가 주석궁이구나! 한국이랑은 스케일이 다르네.”

이희진이 내 옆에 앉아서 육포를 뜯으면서 말했다.

“화질 깨끗하게 나오나요?”

모니터 화면을 점검하며 미나도 자리에 앉았다.

“자기들을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돌려보낸 줄 아는 건가? 대체 머리에 뭐가 든 거야?”

우라라도 어이없다는 듯 화면을 보며 말했다.

처음 화면에서는 예측 가능한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예전의 나였다면 지루해서 드러누웠을 법한 장면이다.

중국 주석은 자기 아들의 귀환에 무척 놀랐다.

하지만 오랜만에 이루어진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이라고 하기에는 상식과 많이 달랐다.

류신휘는 아버지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었고, 주석은 부하들이 옆에서 보건 말건 모욕적인 언사로 류신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먹질을 하려다가 만 것은 그나마 보는 눈이 많아서 참은 것 같았다.

나는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확실히 표면상의 지위나 서열이 어떻게 되었든 중국 S급 헌터들의 태도는 류신휘보다 훨씬 당당했다.

S급 헌터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면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중국 주석이라도 국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S급 헌터들을 함부로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만두 머리 소녀가 중심이 되어 자신들이 한국에서 겪은 일들을 침을 튀기며 보고했다.

8할이 내 얘기였고, 나머지 2할은 하야시에 대한 것이었다.

주석은 진지한 얼굴로 보고를 들었다.

“내일 전체회의를 소집하겠다.”

분위기상 전체회의라는 것은 중국의 헌터들이 전부 모이는 회의 같았다.

다른 나라 같으면 전국에 흩어진 S급 헌터들을 한데 모아 회의를 여는 일 같은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중국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도 훨씬 쉽게 바라는 장면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내일까지는 더 볼 필요 없겠네.”

이희진이 모니터로부터 관심을 거두고 말했다.

“너는 어쩔 거야? 돌아가서 잘 거지?”

그녀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이제까지의 나를 겪어봤으면 그것 말고는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 없을 거니까.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직은 귀차니즘이 남아 있고, 귀찮다고 생각하면 끝도 없이 무기력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지만 예전만큼 압도적으로 그런 기분에 눌리진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극복할 수 있겠다 싶은 수준이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당연히 그 마음이라는 것을 먹어야 하는 때였다.

“아니, 너 도와줄게. 기계수 제작 재료 모으는 거 아직도 하고 있지?”

“응?”

이희진은 다른 대답은 기대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내가 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녀뿐만 아니라 미나도 멈칫했다.

“주, 주군……? 괜찮으세요?”

“괜찮으니까 내가 뭘 하면 되는지 얘기해줘.”

정신을 차린 이희진이 잽싸게 말했다.

“할 일이야 많지! 네가 도와주면 훨씬 쉬워질 거야!”

그녀는 큰 웃음을 띠고 나를 잡아끌었다.

미나도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주군이 도와주신다면 정말 좋죠!”

204

기계수를 만드는 재료를 모은다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그것들은 행성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희진은 자기 안에 있는 기억을 더듬어서, 오래전에 이곳에서 사냥되었던 S급 몬스터들의 잔해를 찾아냈다.

산 아래 묻혀있기도 하고, 바닷속에 있기도 했다.

이희진과 나는 하루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내 수준이 하루 정도는 잠을 안 자도 완전히 쌩쌩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도 이전의 나는 왜 그렇게 필요도 없는 잠을 많이 잤는지.

정말로 람바스의 귀차니즘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신이 공평성을 위해 재능과 귀차니즘을 같은 수준으로 주었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이희진은 기계수를 만드는 재료를 찾는 데 헌신적이었다.

미나도 우라라도 잠을 거의 자지 않고 기계수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을 보는 내 기분은 전과 완전히 달랐다.

그녀들이 내 안에 있는 조철웅의 본성을 깨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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