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놀라운 일이었다.
이희진이 발굴한 유물로 미나가 기계수를 만들어내고 있을 줄은 예상 못 했다.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수를 만들지는 못한 것 같지만-그녀의 능력을 생각하면 다소 느린 것 같지만, 내가 이곳에 다시 들어오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게다가 현재 지구의 기술보다 훨씬 발달한 것일 게 분명한 기계수의 제작 기술을 흡수하는 데 걸린 시간, 이희진이 몬스터 유물을 발굴해 온 시간까지를 고려하면 더더욱 느린 것은 아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 첫 작품이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여기 다시 들어온 게 헛걸음은 아니었다는 거네.”
나는 이희진에게 말했다.
“사실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려워도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지금은 이 정도지만, 아마도 이 행성에는 더 발굴할 뭔가가 있을지도 몰라. 그냥 감일 뿐이니까 진지하게 듣지는 말고.”
“음.”
그냥 감일 뿐이라고 해도 그 감이 아무 이유 없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희진의 말은 결코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본인도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으니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당장 나올 것이 없었다.
“놈들을 데려오셨군요.”
미나는 반가운 투로 그렇게 말했다.
중국인 S급 헌터들의 몸에 폭탄을 설치하자는 이야기는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그녀와 나눈 적이 있기 때문에 그녀 입장에서는 크게 놀랄 일이 아닐 것이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녀는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반겼다.
“폭탄을 설치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이식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이들이 전부 S급 헌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자기 몸에 생긴 변화를 쉽게 눈치챌 우려가 있어요.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면 폭탄이 자연스럽게 체내에 동화되게 해야 하는 데, 그러려면…….”
미미는 턱을 찍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당 30분은 걸리겠는데요.”
그녀의 말에 우라라가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또 나는 잊고 있었지?”
“아아~ 우라라가 도와주면 인당 25분이면 되겠네요.”
사람이 한 명 더 붙는 것인데,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S급 헌터 기술자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시간이 5분밖에 단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우라라는 별말 하지 않고 수긍했다.
모르긴 해도 5분 단축할 정도의 도움이 된다는 것도 굉장한 실력인 것이 아닐까?
미나는 우주 최고의 재능을 가진 기술자라고 하니까,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쉽게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내가 직접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매번 놀라는 람바스의 능력과 마찬가지로.
애초에 우주 최고의 두뇌라니, 아이큐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어쨌든 미나가 미안한 얼굴로 말한 30분이라는 시간은 내 예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었다.
그녀가 말한 대로 S급 헌터 몸 안에 폭탄을 장착하는 일이다.
그들이 자기 몸에 생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일인 만큼 고도의 정교한 일일 것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나조차도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걸 가능하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걱정 마세요. 주군이라면 세상 어떤 대단한 기술을 발휘한다고 해도 주군 모르게 몸에 뭔가를 심을 수는 없어요. 그런 걸 심는다고 해도 아마 주군의 성장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소멸해 버릴 거예요.”
나로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있던 일을 미나가 스스로 말했다.
아마 기술자로서 갖고 있던 욕심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으로 나와버린 것이 아닐까?
그녀가 지금 극도로 피곤한 상태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는 내 전용 기술자를 자처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으니 모든 발상과 발전의 기준은 나일 것이다.
뭐, 미나 말고 또 누가 그런 걸 시도할 수 있겠냐 하는 생각은 들지만, 어쨌든 불가능하다니 다행이다.
“안전하게 작업을 하려면 좀 더 재워두는 편이 좋겠네요.”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껏 파악한 하야시가 말했다.
그는 마치 무협 영화에 나오는 무술가처럼 중국인 헌터들의 몸을 돌아가며 손가락으로 찔렀다.
그러자 잠깐 놀라서 눈을 뜨려고 하던 헌터들이 거짓말처럼 더 깊이 잠이 들어버렸다.
잠이 들었다고 판단한 것은 실제로 몇 명이 크게 코를 골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미나가 일하는 사이에 우리는 바람 좀 쐴까?”
이희진이 말했다.
한 사람당 작업시간이 25분은 걸린다고 하니까 짧게 잡아도 두 시간 이상 걸리는 일이었다.
가만히 있어 봤자 지루하기만 할 뿐이니 나는 이희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어디 갈 데라도 있어?”
“그냥 따라와 봐.”
이희진은 길게 말하지 않고 슉 사라져 버렸다.
일주일 못 보는 사이에 그녀의 순간이동 능력은 한층 발전한 것 같았다.
실제로 이 공간이 지하에 있고, 딱히 밖으로 나갈 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나와 이희진 말고는 여기서 쉽게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게이트 위치를 조정하면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지만, 굳이 밖에 나갈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도 없고.
이곳에는 훈련용 몬스터도 없다는 얘길 들은 하야시도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잠깐 나갔다 올게.”
이미 작업에 돌입한 미나에게 그렇게 말한 뒤 슉, 순간이동 능력을 발휘해서 이희진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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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는데?”
슉, 슉, 슉,
내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이희진은 순간이동 능력으로 계속 나아가기만 했다.
그녀는 나조차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정도로 이동 속도가 무척 빨랐다.
일주일 동안 이 넓디넓은 행성을 마구 헤집고 다녔으니 순간이동 능력이 향상될 만도 했다.
게다가 이곳은 그녀에게 빙의한 영웅이 살았던 곳이니까, 당연히 능력이 개화하며 업그레이드하는 속도도 빨라졌을 것이다.
이만한 영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이 행성은 고도로 기술이 발달하여 기계수 군대를 만들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악마에게 멸망당했다고 생각하니 좀 쓸쓸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물론 우주 최강의 먼치킨이라고 평가받는 람바스마저도 이겨내지 못했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희진에게 빙의한 영웅은 람바스처럼 게으름을 피우다 때를 놓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최후까지 힘을 짜내어 대항하다가 결국 절망 속에 눈을 감았을 터.
뭔가 잠깐이지만 람바스가 느꼈던 회한이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미안한 감정.
평생 남을 돕는 걸 귀찮아하는 성격-본성 자체가 비뚤어졌다기보다는 도와주고 난 뒤에 생길 관심을 귀찮아했다.-에 노력과는 완전히 담을 쌓았던 람바스가 악마와의 싸움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 깊고 깊은 후회가 누구보다 성실하고 노력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유지가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흘러온 상황만 보면 그의 바람은 백 퍼센트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내 잘못을 면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람바스의 능력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뛰어나다는 데 있었다.
그의 잠재력을 이어받아 품고 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남들보다 훨씬 긴 시간인 일 년 동안이나 각성을 하지 못하고 압도적인 게으름에 눌려 방안에서만 뒹굴거렸으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어쩌면 람바스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이런 회한이 스칠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불편해진다.
비단 람바스의 감정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 조철웅으로서도 숙연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자꾸 속도만 높여 멀어지는 이희진에게 더는 따지지 않고 ‘인내’ 스킬을 발휘했다.
그렇게 이희진을 좇아 스킬을 발휘하는 사이, 눈앞에 익숙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스킬 ‘순간이동’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
이렇게 이희진을 따라가는 동안에 나는 딱히 ‘인내’ 스킬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조금씩 몸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뭐든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편해지는 법이다.
이런 말을 우주 최고의 재능충이 빙의한 내가 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한참을 달리다 보니 주변 풍경이 점점 달라졌다.
한 시간쯤 달렸지만 시간 축을 몇 번이나 지나쳤는지, 빠른 속도로 주위가 어두워지기도 했다.
“좀 추운가?”
추위 내성이 강한 나라서 딱히 한기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아닌 게 아니라 멸망한 지 오래되어 문명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은 이곳 행성의 풍광에 점차 눈과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북쪽으로 이동 중인 것인지, 남쪽으로 이동 중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극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점점 더 이희진의 목적이 불분명해졌다.
이렇게 열심히 추운 곳으로 가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드디어 주위에 빙판밖에 보이지 않는, 지구의 기준으로 남극이나 북극쯤 되어 보이는 곳까지 와서 이희진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으으~~ 추워~~~”
나도 좀 쌀쌀함을 느끼기는 했다.
뭐, 이동 중에 떠오르는 메시지 중에 ‘추위 내성이 강화되었습니다.’도 몇 개 있었으니, 마나를 한 번 순환하고 나면 금방 몸속의 기운이 뜨뜻해지기는 했지만.
“그러게 뭐하러 이런 데까지 왔어?”
이희진은 자기 몸을 감싼 채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좀…….”
그녀가 가리킨 것은 빙산이었다.
단순한 빙산도 아니라 그야말로 만년설로 완전히 뒤덮인 후덜덜한 느낌을 주는 빙산이었다.
자연의 위대함, 이 행성이 갖고 있는 풍광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빙산을 가리킨 것은 아닐 터였다.
“저게 왜?”
나는 불안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렇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나더라고. 너도 알다시피 여기는 엄청 춥고 말이지. 내가 계속 저 산을 깎는 데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비효율적이잖아?”
“그러니까 네 말은…….”
“응, 저 빙산 좀 날려줘.”
“…….”
나는 언젠가 미미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과거 람바스는 산을 날리고 바다를 갈랐다는.
그것과 같은 일을 해야 할 상황이 내게 닥쳤다.
물론 강제성은 없었다.
거절하면 그만.
내 표정을 읽었는지 이희진이 말했다.
“내가 너 게임할 때 도와준 거 잊어버리지 않았지? 도와주면 다시는 그걸로 생색 안 낼게.”
“…….”
“그리고 내 쪽지에 답장 안 보낸 거 미안했다며~ 그것도 다 용서해 줄게.”
젠장.
당연히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희진이 내게 이런 부탁을 하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본인도 그게 뭔지 잘 모르는 것 같기는 하지만.
게다가 뭐라고 할까?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저 산을 날려버리는 일이.
어쩌면 내게 중요한 자기검정 시간이 온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지금 어디까지 발전했나 하는.
이것은 분명 S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는 스케일이 다른 문제였다.
‘행성을 통째로 먹어치우고 다니는 놈을 상대해야 하는 거니까.’
빙산 하나쯤은 쉽게 날려버려야 이치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산을 마주하고 섰다.
“우와, 진짜 하려는 거야? 할 수 있어?”
이제 와서 이희진이 이런 소릴 하는 걸 듣자니 기운이 빠졌지만 이왕 결심한 거 한번 해보기로 했다.
어디 산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