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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154화 (154/160)

▣ 154화

나는 중국인 헌터들을 쓱 둘러보았다.

그러는 동안 사도 도감이 나와서 파라락, 파라락 책장이 넘어갔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그것이 귀찮아서 곧바로 책을 넣어버리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빠른 동체 시력으로 사도 하나하나의 정보를 보았다.

본의 아니게 자동으로 재생되는 사도들이 저지른 악행을 보기도 했다.

사도를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는 좋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더라도 이렇게 사도들이 저지른 악행까지 봐버리고 나면 그럴 마음이 사라지고 만다.

나는 방심했다고 생각한 한편, 어차피 중국 S급 헌터들은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인 헌터들은 특별한 케이스이다.

사도가 빙의해 있지 않거나, 오히려 영웅이 깃들어 있기도 했고, 여러모로 신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헌터들이었다.

그러지 못한 쿠로 일당들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 중국인 헌터들은 다루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하야시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은 모두 하나의 파벌로 묶여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방금 사도 도감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사도들 사이에도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역시나 서열이 높은 사도 중에는 같은 사도들을 부하로 데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고 서열의 사도들이 각자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사도들을 거느리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머릿수가 많은 조직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할 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중국 S급 헌터들은 모두 중국의 다른 사도에게 속한 몸이었다.

내가 아무리 강하게 묶어두려고 해도 결국은 그쪽의 구속력이 더 강하게 발휘할 것이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나았다.

중국은 일본보다 더 건드리기 위험한 나라였다.

일본이 쿠로를 키워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그 세력이나 잠재력 면에서 중국과 비교할 수 없었다.

거기에 미국, 러시아 등 기본적으로 사도들도 국력이 강한 곳, 그리고 영토가 넓은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라들에 서열이 높고, 진짜 실력 있는 사도들이 많이 몰리는 것이다.

그렇다는 의미는 나 역시 중국을 그냥 건드리기에는 부담이 많이 간다는 사실을 뜻이었다.

이미 벌집을 건드려 놓았으니 중국 측이 어떻게 나올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너희 중 리더가 누구냐?”

나는 중국어 패치를 장착하고 있었으므로 유창한 중국어로 말했다.

중국 헌터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뭔가 눈짓을 주고받는 것이 보기에도 무척 수상했다.

“빨리 대답하지 못해!”

하야시가 윽박지르자 한 명이 나섰다.

긴 수염을 가진 나이 많은 헌터였다.

“나요. 내가 가장 지위가 높소.”

“놀고 있네.”

사실 나는 이 중국인 사도들 중에 누가 가장 서열이 높은지 알고 있었다.

굳이 물어본 것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일 뿐이었다.

“제대로 대답 안 하면 죽는다.”

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중국인들은 술렁이며 다시 한번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았다.

“나…….”

또 한 명이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나는 놈에게 손을 뻗었다.

하야시에게 얻었던 스킬은 분신 능력이 발휘되어 놈에게 쭉 뻗어 나갔다.

나를 닮았지만, 다행히 썩은 표정까지 재현되지는 않은 반투명한 분신이 자기가 리더라고 나서려고 했던 남자의 목을 잡았다.

힘을 주자 뚝, 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태연하게 부린 분신 능력이지만, 아무리 분신이라고 해도 내 능력의 1할은 발휘할 수 있었다.

평범한 수준의 중국 S급 헌터 따위는 쉽게 죽일 수 있다는 뜻.

“한 번 더 거짓말해 보시지?”

하는 짓을 보아하니 이들은 이미 사도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궁지에 몰려서 이런저런 일을 겪는 동안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역시 평범하게 다루기가 더 어렵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놀란 중국 헌터들이 이번에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지 않았다.

개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이는 얼핏 보아서는 가장 강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앳된 여자가 나섰다.

“내가 리더요…….”

외모만 두고 보면 꽤 귀엽게 생겼다.

양쪽 머리에 만두처럼 머리카락을 땋아 얹어놓은 것이 그림 속에 나오는 캐릭터 같았다.

귀여움의 정도로만 보면 이희진과 자웅을 견주어도 될 정도.

하지만 나는 속지 않는다.

이 여자는 감히 이희진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귀여움을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 여자에게 깃든 사도가 얼마나 끔찍한 놈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약기도 약아서 방금처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도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사도를 대신 내보냈다.

지금 나선 것도 내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마음에 나선 것이겠지.

나는 그녀에게도 분신 능력을 발휘했다.

이미 한 번 같은 능력을 발휘해서 대비는 하고 있었겠지만, 나는 태연히 서서 마나를 방출하지도 않고 능력을 사용했다.

어떻게 한 것이냐면 먼저 한 놈을 죽일 때 사실은 분신을 두 개체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아니, 사실은 다섯 개체다.

분신들은 땅속에 숨어 있었고, 언제든 튀어나와서 중국인 헌터들을 제압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자의 뒤에서 튀어나온 분신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으윽!”

다소 야한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분신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봤지? 내 말 안 들으면 이년이 죽을 줄 알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내가 한 말에 중국인 헌터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자들을 길들이느라고 굉장히 애를 먹었는데 주군은 금방 해버리시는군요.”

“그래도 수고했어.”

사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굳이 하야시에게 중국인 헌터들을 길들이라고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미래의 일은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

아무리 우주 최고의 재능을 가진 람바스의 기억과 능력을 이어받은 나라도 무리다.

아마도.

198

모든 중국인 헌터들을 기절시켰다.

리더가 붙잡힌 상황에서 방심하고 있던 놈들은 톤톤즈가 변신하자 더 크게 쫄아서 쉽게 주의가 분산되었다.

이미 땅속에 있던 분신들이 튀어나와서 놈들을 기절시킨 것은 아주 쉬웠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하야시와 정운석은 내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들은 게이트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그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하나도 알지 못한다.

귀찮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이 빠르기 때문에 나는 게이트를 가까운 곳에 활성화했다.

“나가자.”

톤톤즈는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컸기 때문에 본래의 사이즈로 돌아왔고, 파프리카가 기절한 중국인 헌터들을 등에 태우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나는 최근에 생성된 게이트를 끌어당겼다.

“이것은 못 보던 문이군요.”

게이트 욕심이 많은 하야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여기는 딱히 훈련하기 적당한 곳이 아니야. 몬스터가 하나도 없거든.”

S급 몬스터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 기계수들을 보았다면 하야시가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말했다.

“아, 그렇군요…….”

하야시는 금방 관심을 거두고 건조하게 말했다.

“여기 들어가실 건가요?”

“응. 안에 미나와 우라라가 있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나는 게이트를 열었다.

미리 설정한 대로 게이트는 곧바로 지하에 있던 시설과 연결되어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안의 풍경이 보였다.

미나는 여러 장치를 늘어놓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게이트가 열렸는데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데스크에서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던 우라라가 이쪽을 발견했다.

“아! 오셨군요!”

그녀는 몹시 피곤한 얼굴이었다.

똑같이 연구를 주특기로 하는 헌터라지만 역시나 그 열정의 깊이에는 두 사람이 큰 차이가 난다.

그런 의미에서 개개인의 능력 차를 떠나서 누가 연구를 주도하고 누가 조수가 되어야 할지는 너무 뻔한 문제였다.

“미나 씨! 주군 오셨어요!”

우라라가 그렇게 말해도 미나는 완전히 자기 연구에 빠져서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에 우라라는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걸어가 어깨를 두드렸다.

“미나 씨~”

“허억!”

비정상적으로 놀란 반응을 보이며 미나가 뒤로 무언가를 휘둘렀다.

손에 잡고 있던 것은 용접용 기구였는데, 미나는 S급 헌터답게 그것을 유연하게 피해냈다.

이것을 보자니 미나의 조수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라라는 방금 얼굴에 상처가 날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아이참~ 주군 오셨다고요~ 며칠째 잠도 안 자고 뭐 하는 거예요? 배 안 고파요?”

“아…….”

미나는 멍하게 나를 보았다.

“주군 오셨군요!”

얼마나 연구에 빠져 있었던 걸까?

나는 이곳이 그녀에게 무척 흥미로운 장소일 거라는 예상은 했어도 그녀가 이토록 빠질 줄은 몰랐다.

이제 보니 데스크에는 커다란 로봇 같은 것이 눕혀져 있었다.

“그건 뭐야?”

“아~ 이거 말이죠?”

미나가 의기양양하게 팔뚝을 걷어붙이고 말했다.

“기계수예요.”

“기계수?”

나는 의아했다.

왜냐면 내가 작동을 멈춰버린 기계수들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기계수를 만들어낼 만한 여지가 이곳에는 없었으니까.

기술은 차치하고, 재료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나는 자폭장치를 꺼내면서 이 기계수들의 수명도 다하는 것을 느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너무도 오래 방치되어 있던 놈들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전력만 불어넣는다고 해서 다시 작동시킬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었다.

“응?”

아까는 보지 못했는데 이 공간 안에 못 보던 여러 가지 물질들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양이 마치 익숙하게 보아왔던 몬스터 사체 같았다.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된 행성이어서 몬스터가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저것들은 뭐지?

그때, 슈욱, 하고 공기가 일렁이는 느낌이 나더니 익숙한 사람 하나가 모습을 보였다.

“아! 언제 왔어?”

그녀는 이희진이었다.

자기 인벤토리를 여는가 싶더니 우르르 몬스터 사체들을 쏟아냈다.

“그건 뭐야?”

“아~ 이거? 여기 있다 보니까 기억이 하나씩 돌아오더라고. 사실 대규모 기계수 군단을 만들 계획이 마지막까지 진행됐었거든. 그래서 기계수 군단을 만들 막대한 재료들을 따로 숨겨놓았었어. 보존이 잘 되어서 지금까지 하나도 썩지 않았지. 그것들을 가져온 거야.”

“음…….”

그렇군.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납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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