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196
미나와 우라라는 준비를 하겠다며 돌아갔다.
당연히 열정이 넘치는 미나이니만큼 금방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대단히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말을 꺼낸 일이고, 이미 주워 담을 수 없으니 그녀들이 돌아올 때까지 푹 쉬기로 했다.
소파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더니 미미가 TV를 틀어 뉴스를 보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현재 가장 큰 뉴스는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S급 몬스터의 출현이었다.
기대를 모으던 S급 헌터가 이 사건으로 사라진 일은 소위 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이슈가 되었다.
몬스터에게 잡혀 먹은 것인지, 아니면 흡수를 당한 것인지, 혹시라도 헌터가 몬스터로 변한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래도 서울 한복판에 S급 몬스터가 출현한 것치고는 인명피해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재산 피해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이 정도면 출현한 몬스터의 강함에 비해 엄청나게 깔끔한 수습이었다.
뉴스에서 그 문제에 대해서 떠들어댄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논의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서울 S급 몬스터 출현 사건은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반대로 한 가지를 확실하게 증명하기도 했다.
같은 급의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또 출현한다고 해도 대한민국에는 위기에 대한 억제책이 확실하게 있다는 것.
또한 그동안 대중에게 선보일 일이 없었던 내 능력에 대해서도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나는 두 마리의 강력한 각성수를 부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불행한 사건을 통해 안전을 확인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켂튜브 출현 이후로 나에 대한 의구심도 더 이상 수면으로 부상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나는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주군~ 주군~”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눈을 뜨자 준비를 마치고 돌아온 미나, 우라라 콤비가 보였다.
그리고 집에 갔을 거라고 생각한 이희진도 있었다.
“……너는 왜?”
“생각해 보니까 더 조사해 보는 게 낫겠더라고.”
그녀가 더 조사해보는 게 낫겠다고 말한 대상은 당연히 그녀에게 깃든 영웅이 살았던 행성일 터였다.
“지하에 그런 곳이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시설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잖아. 미나랑 우라라도 거기서 연구하겠다고 하니까 내가 있는 편이 낫지 않겠어?”
확실히 이희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미나와 우라라에게는 낯선 환경일 그곳이 그녀에게는 익숙한 장소이니까.
본인의 기억과 능력을 되찾는 데에도, 미나와 우라라가 연구를 하는 데에도 그녀가 있는 편이 더 나을 것이었다.
“그럼 그러든지.”
결론을 내고 나는 그녀들을 데리고 다시 게이트로 들어갔다.
당연히 같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으므로 지하시설로 직접 통하는 게이트를 열어준 뒤 말했다.
“얼마나 있을 거야?”
“최소 일주일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 그러면 일주일 있다가 올게.”
그때 하야시와 정운석이 잘하고 있나 확인하고 중국인 S급 헌터들에게 자폭장치를 다는 일에 대해서도 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잊어버리면 안 돼!”
이희진이 내게 다짐을 구했다.
“나를 뭐로 보고.”
“너를 너로 보니까 못 믿는 거야!”
그녀는 영웅의 기억을 찾고 나서도 나를 대하는 태도를 딱히 바꾸지 않았다.
부자연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로 저자세를 보인 일본의 헌터들과 대비되지만, 나는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그녀를 특별히 부하로 인식하거나 동료들의 태도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 믿어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게이트 문을 닫았다.
솔직히 나도 내가 못 미덥기는 하지만 미미에게 말해두면 그녀가 내게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197
일주일이 지나갔다.
나는 이희진, 미나, 우라라가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야시와 정운석도 게이트에 들어가 있다는 것만 인식하고 있었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에 대한 자각은 없었다.
“주군, 오늘이 일주일째에요.”
소파에 드러누워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었더니 미미가 말했다.
내 배 위에는 파프리카가 가슴께에는 톤톤즈가 앉아있었다.
“뭐가?”
진짜로 몰라서 되묻는 나에게 미미가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미나가 게이트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아아~~ 벌써?”
지난 일주일은 별일이 없이 지나가서 잘 쉬었다는 느낌이었다.
뉴스에서도 서울 S급 몬스터 출현 사태에 대한 언급이 슬슬 줄어들고 있었다.
중국의 대응이 신경 쓰였지만, 워낙 큰 나라라 그런지 반응을 보이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가봐야겠지?”
나는 소파와 거의 하나가 되어 있었던 몸을 일으켰다.
며칠 더 늦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이희진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떠올라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나를 나로 보니까 못 믿는다고 했던 그녀의 말을 보란 듯이 증명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게이트 안에 갇힌 입장에서는 하루만 더 있어도 답답하다고 느낄지 몰랐다.
하야시와 정운석, 미나와 우라라는 아니겠지만 이희진은 그럴 가능성이 컸다.
나는 장비를 착용하는 것을 생략하는 대신 두 마리 각성수를 데리고 게이트 능력을 발동했다.
하야시와 정운석이 게이트 안에 들어간 것은 훈련 목적인 것도 있지만, 중국인 S급 헌터들을 제압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니까.
만에 하나의 사태를 위해 나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갔을 때, 서울 S급 몬스터 출현 건으로 하야시와 정운석을 데리러 갔을 때처럼 곧장 그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처럼 마음이 조급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나는 여유 있게 분위기를 보기로 했다.
이곳은 강력한 몬스터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지만 이번에는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몬스터 반응이 없었다.
가만히 주의를 집중해 보았더니 과연 익숙한 마나 반응이 꽤 먼 곳에서 느껴졌다.
하야시와 정운석의 그것과 함께 여러 마나 반응이 섞여 있었다.
어지럽게 얽히는 모양새로 보건대 양 진영이 싸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제압이 안 된 건가?’
정운석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야시의 실력을 생각하면 의아한 부분이었다.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만일의 사태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순간이동을 하면 금방 갈 수 있겠지만 함께 데려온 파프리카와 톤톤즈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야 했으므로 나는 큰 형태로 변신한 파프리카의 등에 타고 그곳으로 갔다.
톤톤즈는 굳이 변신을 하지 않고 내 어깨에 앉아있었다.
하야시와 정운석이 있는 곳에 도착한 나는 의외의 장면을 맞닥뜨렸다.
그것은 그야말로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여러 개의 마나가 얽히는 반응으로 미루어 하야시와 정운석이 아직 중국인 S급 헌터들을 제압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이는 광경은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야시와 정운석이 중국인 S급 헌터들과 싸우는 게 아니었다.
중국인 S급 헌터들이 무언가와 싸우고 있기는 했지만 그 대상이 그들이 아니었던 것.
바로 몬스터 사냥을 하고 있었다.
하야시가 뒷짐을 지고 그들을 향해 큰소리로 지시를 내리는 중이었고, 중국인 헌터들은 하야시의 호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정운석 또한 중국인 헌터들 틈에서 같이 훈련을 수행 중이었다.
‘괜한 오해를 했네.’
하야시의 실력을 의심했다니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는 중국인 헌터들을 제압한 데 그치지 않고 아예 그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집중하고 있는 탓에 내가 다가갔는데도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거리가 꽤 있기도 하고, 나나 각성수들이 딱히 살기를 내보이지 않았으므로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나는 이 흥미로운 광경을 구경했다.
중국인 헌터들이 몬스터를 상대로 움직이는 것이나 능력 발휘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당연히 등급이 S급이니만큼 호락호락한 실력은 아니다.
하지만 S급은 같은 등급의 헌터들끼리도 실력 차의 폭이 큰 만큼 그들과 하야시, 그리고 정운석의 능력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야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운석 또한 근래 큰 발전을 이루었다.
원래 잠재력이 대단했던 데다가 하야시의 지도 덕에 빠르게 실력이 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대로 둘이서 중국인 S급 헌터들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던 듯했다.
그렇게 대단할 것 없는 중국인 헌터들도-물론 내 기준으로- 하야시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럴듯했다.
하야시는 이미 개개인의 능력을 다 파악하고 있었고, 그들을 목소리만으로 부리면서도 큰 시너지를 내게 했다.
중국인 헌터들과 정운석이 몬스터들을 완전히 쓰러뜨린 후에야 하야시가 이쪽의 반응을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아! 오셨습니까?”
“열심히 하고 있네?”
“네. 별 볼 일 없는 놈들을 사람 구실 하게 만들려고 하려니까 힘드네요.”
평소 농담을 잘 하지 않는 하야시이니만큼 방금 한 말은 진심이었다.
“그래도 운석이 실력이 많이 늘어서 다행입니다.”
타인의 실력을 평가하는 데도 냉정한 하야시이니 정운석의 실력이 진일보했다는 것도 진실일 터였다.
내 눈에도 정운석은 많이 좋아졌다.
이 정도면 본인에게 깃든 영웅의 능력 7할 이상은 찾지 않았나 싶었다.
나도 그처럼 빨리 람바스의 능력을 찾고 싶다.
물론 인물이 다른 만큼 똑같은 기준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걸 떠나 람바스는 누구와도 비교하기가 어렵다.
굳이 견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악마나 되어야겠지.
“오셨습니까!”
일주일 만에 더 늠름해진 정운석이 나를 반겼다.
“고생했어.”
“아닙니다!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신 주군께, 그리고 하야시 형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하야시를 부르는 호칭이 형님으로 바뀐 건가?
뭔가 잘 어울리는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야시는 이제 한국인이기도 하고 그에게는 말 그대로 형님 같은 포스가 있으니까.
중국인 헌터들은 이쪽을 보고 쭈뼛거렸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대상에는 톤톤즈가 포함되었다.
비록 지금은 작고 귀여운 형태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이 새가 변신하면 어마무시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생각해?”
나는 중국인 헌터들에 대한 감상을 하야시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 완전히 믿고 같은 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돌아갈 곳이 없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제 말을 들었지만, 당장 밖으로 나가면 딴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음.”
그럴 줄 알았다.
이 중국인 헌터들의 안에는 사도가 들어 있다.
등급도 S급인 만큼 믿고 다루기가 힘들 거라는 것은 예측한 바였다.
나는 미나가 꺼냈던 아이디어, 즉 자폭장치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거기 더해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는 동안 떠올렸던 것을 결합하면 꽤 재밌는 일을 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