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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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침실에서 푹 잠을 자고 다음 날 거실로 나갔을 때 이희진은 집에 돌아가고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확인은 안 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들은 배경 스토리를 바탕으로 게이트 하나가 생성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주군, 선수를 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선수라니?”
미미는 대답 대신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TV에서는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고스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번 서울 S급 몬스터 출현은 많은 미스터리를 남긴 채 끝이 났습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으며, 특히 김주환 헌터가 몬스터로 변한 듯한 정황, 그리고 서울 하늘을 까맣게 덮었다가 사라진 새의 형태를 한 수수께끼의 존재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편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조철웅 헌터의 능력도 많은 얘깃거리를 낳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도 그만한 능력을 가진 헌터는 없을 거라고…….
“젠장.”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럭저럭 주목을 받는 걸 피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된통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김주환이 사실은 일본의 쿠로 히로키에게 빙의해 있던 사도이고, 그가 내게 복수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 것이었다고 언론에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톤톤즈의 존재도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이 가공할 몬스터가 서울에 출현함으로써 역으로 놈을 해치운 내 능력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시아 최고라니.
실상 우주 최고의 재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람바스의 능력은.
뭐, 아직 그 능력 전체를 각성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일이 사도들의 쓸데없는 주목을 끄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했다.
물론 내 바람과는 반대로 그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사도가 빙의한 헌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놈들도 알고 있을 테니까.
거기다 이번에 김주환에게 빙의했던 사도는 일을 꽤나 거하게 벌려놓았다.
지금 단계에서 사도가 움직인 것이라고 보기에는 그 한계를 벗어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이 일이 연쇄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을 불러오리라고 느꼈다.
“켂튜브에 한 번 더 출연하시죠.”
그게 미미가 꺼내놓은 해결책이었다.
과연,
우리에게는 켂튜브라는 훌륭한 자체 스피커가 있었다.
그는 이제 구독자 300만 명이 넘는 슈퍼 유튜버가 되어 있었다.
아마 이번 일로 더 많이 구독자가 늘 것이다.
나와 그의 관계가 특별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까.
내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만큼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그의 채널로 몰려들 것이었다.
“확실히 그게 좋겠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유튜브에 직접 출연해서 먼저 해명을 한다면, 이 일에 대해서 귀찮게 하는 사람들도 더는 없을 것이다.
지난번처럼 기자회견을 해서 원치 않는 질문을 한꺼번에-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받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었다.
유튜브라는 스피커의 장점은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된다는 것이니까.
누구도 S급 헌터에게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못한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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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렇군요. 궁금증이 확~ 싸악~~ 가시는 느낌입니다.”
켂튜브는 누가 들어도 공감되지 않을 멘트를 뻔뻔하게 잘도 했다.
나는 서울 S급 몬스터 출현 사태에 대한 후토크를 간단하게 진행했다.
김주환에 대해서는 “정말로 놀랄 일입니다. S급 헌터가 S급 몬스터에 흡수되다니요.” 하고 유체이탈 화법을 사용했고, 톤톤즈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 새는 사실 제가 키우고 있던 애완조입니다. 각성수라 변신 능력이 있는 것이고요. 파프리카와 함께 제 외로움을 달래주는 좋은 친구입니다.”
“왈! 왈!”
파프리카는 나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다.
녀석도 현장에서 거대한 개의 형태로 변신해 활약했으니 톤톤즈에 대해 해명할 때 함께 거론할 필요가 있었다.
톤톤즈도 후토크를 하는 동안 내 어깨에 앉아 있었다.
녀석은 나처럼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말 많은 켂튜브가 질린다는 듯 그와 최대한 거리를 띄우고 있었던 점이 인상 깊었다.
아예 고개까지 돌리고서 켂튜브가 “아이참~ 귀여운 새로군요. 제가 한 번만 만져봐도 될까요?”라고 했을 때 푸드덕 날아서 도망가버렸다.
이게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까?
이희진 손에 앉아서 얌전히 있었던 것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었던 셈이다.
내게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진즉 켂튜브는 녀석의 간식거리가 되었을 것이고.
“장안에는 조철웅 님의 헌팅 능력이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마지막 물음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네~ 이로써 조철웅 헌터님과 함께 진행한 S급 몬스터 사냥 후토크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언제나 저희 채널에 나와서 자리를 빛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또 불러주십시오.”
속으로는 ‘귀에서 피 나올 것 같으니까 다시는 켂튜브랑 인터뷰 안 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꾸며낸 웃는 낯짝으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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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셨어요, 주군.”
이번 인터뷰는 지난번처럼 누군가 난입하는 일도 없이 매끄럽게 마무리되었다.
미미는 내게 잘했다고 칭찬했지만, 이 인터뷰의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더 큰 파문을 낳았다.
말 그대로 내가 켂튜브 방송에 출연해서 한 말은 일방적인 것일 뿐이었으니까.
누가 이 인터뷰를 듣고 켂튜브가 보인 반응처럼 “와~ 속이 후련하다! 궁금증이 다 사라졌어!” 하겠는가?
나는 그저 선수를 침으로써 나한테 더 말 걸지 마라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에 불과했다.
파프리카와 톤톤즈는 방송에 출연해서 완전히 인기스타가 되었다.
켂튜브가 전한 말을 미미를 통해 듣자 하니 벌써 캐릭터 상품이니, 영화, 애니메이션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내가 변변치 않은 헌터였다면 당연히 애완수들을 통해 돈을 벌려고 했을 테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뭐, 그런 쪽 문제는 미미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겨두었다.
영화니 애니메이션이니 해도 파프리카나 톤톤즈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S급 헌터가 키우는 애완수들이니까 그렇다기보다는 A급 이상 능력을 선보인 각성수들을 직접 출연시키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역이나 CG가 동원될 것이다.
앉아서 부가수입을 올리는 것이니 딱히 마다할 일이 아니기도 했다.
돈 벌면 우리 파프리카랑 톤톤즈 먹이 비용으로 쓰면 되니까.
그렇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일단락되려고 할 때, 과묵한 하야시가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놈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놈들이라니?”
나는 반사적으로 반문했다가 곧 하야시가 말하는 놈들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중국의 S급 헌터들.
납치해와서 게이트 안에 던져놓았었다.
하야시에게 교육을 시키라는 의미였는데, 이번에 하야시와 정운석만 데리고 오고 그들은 아직 게이트 안을 떠돌고 있었다.
루트론 행성이 녹록지 않은 곳이니 아마 살아 있다고 해도 엄청 고생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냥 내버려 두지 뭐.”
이제 와서 꺼내와 봤자 딱히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국에 보낼 것도 아니고, 일본에서 귀화한 헌터들처럼 고분고분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다.
힘으로 눌러봤자 S급 헌터들은 언제든 통제를 벗어나서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고.
“혹시 괜찮으면 제가 들어가서 놈들을 다시 한번 교육시켜 보겠습니다.”
하야시는 본심을 드러냈다.
역시 나와는 달리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이다.
주로 훈련과 단련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 하는 타고난 무투가인 것이다, 하야시는.
“그래?”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쓸만한 놈들과 갱생이 불가능한 놈들로 구분해 따로 활용처를 고민해 보아도 될 것이고.
“정운석도 부르는 게 좋겠지?”
“네, 녀석도 아직 멀었습니다. 훈련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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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와 정운석을 게이트에 들여보내기로 결정하고-정운석도 크게 기뻐했다. 이번 S급 몬스터와의 사투로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다나?-,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 떠올렸다.
바로 이희진의 성장을 자극하는 것.
정운석이 루트론 행성 게이트에 들어가 성장이 촉진된 만큼 이희진도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에게 빙의한 영웅이 살았던, 악마와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인 현장으로 가면 능력의 계발이 더 빠르고 수월해질 테니까.
문제는 그녀가 하야시와 정운석과는 달리 그렇게 성장에 목매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뭔가 각성한 뒤에도 고분고분해진 다른 헌터들과 달리 그녀는 나를 거리낌 없이 대하고 있기도 하고.
내가 강요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고 할까?
하지만 말이나 꺼내보자고 그녀에게 연락했을 때 예상외로 대답이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정말? 거기 가볼 수 있다는 말이야? 그게 가능해? 너 우주선이라도 갖고 있는 거야?
나는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를 봐선 본인의 성장을 원하기보다는 자신에게 깃든 영웅의 기원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사람마다 감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서로 다르다는 거겠지.
문득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먼저 말을 꺼낸 것이 나이기 때문에 주워 담기도 어려워졌다.
“가보고 싶으면 내일 오전에 호텔로 와.”
“오케이! 신기하네! 다른 행성에 갈 수 있다니!”
뭔가 처음 의도와는 얘기가 어긋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희진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나는 내심 기대가 되었다.
영웅이 깃든 헌터들이 내게로 모여든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나는 앞으로 만날 헌터들 중에 하야시보다 강한 헌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면 이희진은 하야시도 애먹은 사도들을 단방에 물리쳤다고 한다.
각성의 순간에 본인도 모르는 힘이 한꺼번에 개방된, 일회성에 불과한 이벤트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 안에 그만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을 꺼내는 것이 가능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시도해 보는 편이 낫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내가 마주한 현실은 마치 RPG와 같아서, 앞으로 만날 적들이 계속해서 강해질 것이다.
놈들과 싸우려면 아군의 전투력도 보강되어야 했다.
이희진은 누구보다도 먼저 내 호텔 방으로 찾아왔다.
내 침실을 두드리면서 소리치기까지 했다.
감히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인데.
“야! 사람 불러 놓고 네가 자고 있으면 어떡해! 빨리 가자! 나 궁금해서 현기증 난단 말이야!”
안 자고 있었는데.
게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하던 게임을 저장하고 밖으로 나갔다.
추리닝 차림의 나를 보고 이희진이 말했다.
“너 옷차림이 왜 그래? 그러고 거기 간단 말이야? 너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뭐?”
얘가 또 무슨 착각을 하고 그래.
내가 거길 왜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