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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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시끄럽게 했던 S급 몬스터 소동이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주환이 사라진 것이나, 서울의 하늘을 완전히 까맣게 덮었던 커다란 새의 출현 같은 일을 나중에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지만, 일단은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보다는 미미가 더 잘 처리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사냥이 끝나는 대로 나는 곧장 호텔로 돌아왔다.
조금 예상과 달랐던 부분이라고 한다면 정신을 잃은 이희진을 데리고 함께 왔다는 사실이었다.
미미는 내 품에 안겨 있던 이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뭔가 로맨스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광경이 펼쳐졌지만, 냉철하고 머리가 좋은 미미는 곧 사태를 파악했다.
“그녀의 분위기가 달라졌네요. 아마 각성을 한 게 아닐까요?”
긴 대화는 필요 없었다.
이미 헌터였던 그녀가 또 각성했다면 그것은 한 가지만을 뜻하니까.
나는 이미 이희진의 안에 영웅이 빙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른 헌터들의 비하면 그녀 안에 있는 영웅의 각성은 조금 늦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녀가 자기 안에 있는 영웅을 각성한 뒤에 어떤 능력을 보일지, 그리고 얼마만큼 강해질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아마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원래 사도가 빙의해 있든 영웅이 빙의해 있든 헌터가 되어 발휘하는 능력은 그 사도와 영웅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니까.
누구도 깃들어 있지 않고 홀로 각성하여 각성 전의 능력을 더 강력하게 발휘하게 된 하야시 같은 경우가 굉장히 예외적이라도 할 수 있었다.
“참 기이한 일을 겪었습니다.”
평소 과묵한 편인 하야시가 호텔로 돌아왔을 때 굳이 내 방에 와서 그렇게 말을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었지만, 하야시가 하려는 말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만의 표현으로-짧고 생략된 부분이 많은, 해석의 여지가 필요하지만 나는 사설이 없어 좋았다.- 몬스터 몸 안에 들어갔을 때의 일을 말해 주었다.
“큰일 날 뻔했네.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거야?”
하야시답다면 하야시답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나는 무리의 수장으로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녀를 구하려면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기다렸으면 내가 알아서 했을 텐데.”
나는 내가 너무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사실 정운석과 하야시를 믿었기 때문에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한 것이지만, 설마하니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만약 알았더라면 내 상대를 빨리 죽이고 그쪽으로 갔을 텐데.
하야시를 탓할 문제가 아니라 내 주의력이 부족했음을 탓해야 할 문제일지도 몰랐다.
“아마도 이희진은 2차 각성을 한 걸 거야.”
“2차 각성이요?”
2차 각성이라는 것은 그냥 편의상 한 말이었다.
나는 하야시가 알아듣기 쉽도록 부연설명을 했다.
“정운석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이희진에게도 일어났다는 거야.”
“아…….”
하야시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녀가 단숨에 그토록 강해졌던 거군요.”
그는 개운한 얼굴로 내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푹 쉬십시오.”
그러고는 호텔 방을 나갔다.
‘그나저나 그건 뭐였지?’
나는 이희진이 정신을 잃기 전에 내게 손찌검을 하려고 하면서 외쳤던 말을 떠올렸다.
“조철웅 이 자식아! 왜 사람이 쪽지를 보냈는데 읽고도 답장을 안 해!”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 이희진에게는 꽤 스트레스였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녀가 게임 안에서 내게 큰 도움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 냉정하게 굴었었다.
‘뭔가 반성할 일이 많은 하루네.’
그런 짧은 감상과 함께 나는 입고 있던 헌터 장비를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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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이희진 씨가 눈을 떴어요.”
내가 침실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뒹굴거리고 있을 때 미미가 문밖에서 그렇게 보고했다.
마음 같아서는 알았으니까 그냥 집에 돌려보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이희진은 이번 각성을 통해서 뭔가 깨달은 것이 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거실로 나갔을 때 이희진은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왠지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빈둥거리는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는 것이, 평소의 나를 보는 듯했다.
“응? 일어났어?”
내가 해야 될 대사를 이희진이 먼저 했다.
“괜찮아?”
내 물음에 이희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나서 말했다.
“잠깐, 나 이것만 하고.”
그녀는 게임을 하는 중인지, 휴대폰 화면에 집중했다.
평소에 나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내 호텔 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손님이 된 기분으로 그녀의 대각선 소파에 앉아 그녀가 게임에서 시선을 거두길 기다렸다.
“오케이! 나이스!”
하고 있던 것이 잘되었는지 이희진이 환호성을 지른 뒤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자기 배 위에.
편한 옷을 입은 채로 여전히 소파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해해 줘. 나 아직 좀 피곤해서.”
방금까지 쌩쌩하게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환호성을 지른 사람이 할 법한 대사는 아니었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그때 있었던 일 기억해?”
내 물음에 이희진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응…… 기억하지.”
“그래서? 뭐가 좀 달라진 것 같아?”
나는 이미 하야시의 보고를 들었으므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하야시의 말에 따르면 몬스터 뱃속에 붙잡혀 있던 이희진이 한순간 깨어나서 되려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했다고 한다.
그 햐야시가 곤란해 할 정도의 적들을 상대로 위용을 보였다고 하니, 나는 이희진이 상당히 강해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이희진은 무슨 쓸데없는 걸 묻느냐는 투로 반문했다.
“미미 씨한테 다 들었어. 네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이 여자의 정체가 뭔지.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뭔지…….”
역시, 유능한 수하 미미가 이희진에게 미리 잘 설명을 한 모양이었다.
더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는 같아 슬그머니 엉덩이를 떼려고 했더니 이희진이 붙잡았다.
“어딜 가려고? 얘기 좀 해.”
“크흠.”
“그때 그 새는 뭐였어?”
그녀가 그렇게 말한 찰나 열려 있던 침실 문 사이로 파닥파닥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내 어깨에 앉았다.
“우와~ 강아지는 그렇다 치고, 너 새까지 키우는 거야? 그 새가 그때 그렇게 커진 거지? 맞지?”
“응.”
“강아지도 그렇고, 그 새도 전생에서부터의 인연인 거야?”
미미에게 꽤 자세히 얘기를 들은 듯 이희진이 그렇게 물었다.
전생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람바스와 나는 다른 인격체다.
람바스는 악마와 싸우고 나서 죽었고, 나는 그의 능력과 기억을 물려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그의 기억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지만, 엄밀히 나는 그저 나로서만 존재했다.
“그 새, 나도 한번 만져보면 안 돼?”
이희진이 겁도 없이 그렇게 요구했다.
나는 어깨에 앉아 있는 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내 귀여운 톤톤즈.
파프리카는 끊임없이 애교를 부리는 것에 반해, 톤톤즈는 별다른 말 없이 나를 조용히 따라기만 했다.
내-람바스의- 성격과 닮은 부분이 있어서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그런 톤톤즈가 이희진의 손길을 받아줄지 하는 것은 의문이었다.
아마 어렵겠지.
내가 곤란하다고 대답하려는 찰나에 톤톤즈가 푸드득 날아가더니 이희진의 손끝에 앉았다.
이것은 나로서도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우와~ 귀엽다, 귀여워!”
이희진은 애완동물 가게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귀여운 동물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앳된 용모의 여자아이와 작고 귀여운 새가 함께 노는 장면은 나름대로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장면이었지만, 나로서는 좀 지켜보기 귀찮은 측면이 있었다.
그래도 톤톤즈가 이희진을 싫어하는 것 같지 않으니까 그냥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이내 이희진이 말했다.
“……나는 그 안에서 기억을 각성했어.”
그녀는 자신이 각성한 기억, 즉 자기 안에 빙의한 영웅이 겪었던 일을 내게 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굳이 그렇게 자세히 이야기해 줄 필요 없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일방적으로 시작된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조금씩 빠져드는 기분을 느꼈다.
정신이 몽롱하고 머릿속에 영화가 상영되는 듯한 기분.
이런 기분을 처음 느껴 보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 루트론 행성의 일을 들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희진에게 빙의한 영웅의 사연을 듣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잠자코 들었다.
지나치게 장황한, 그리고 두서가 부족한 이희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인내심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는 슬그머니 ‘인내’ 스킬을 발동했다.
“……그렇게 된 거야.”
이희진이 마침내 긴 이야기를 끝냈다.
“야! 너 듣고 있어?”
“응? 물론이지. 다 들었어.”
“진짜야? 듣다가 존 거 아니고? 나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한다?”
“아니, 아니! 진짜 제대로 다 들었어!”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이희진의 이야기를 완전히 제대로 들었다.
그녀에게 빙의한 영웅이 겪었다는 이야기를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마냥 생생하게 떠올리기까지 했다.
아직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또 하나의 게이트가 열렸음을 깨달았다.
그 게이트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는 차차 생각할 문제이고.
이희진에게 빙의한 영웅의 사연은 조금은 색다른 면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 골격은 다른 이야기들과 같았다.
람바스가 겪었던 일과도 일맥상통했다.
악마에게 끝까지 저항해 싸우다가 결국은 패하여 목숨을 잃었다.
그 의지와 원한이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지구의 살고 있는 이희진의 몸에 깃들게 된 것이었다.
나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해. 다음부터는 쪽지에 답장 잘할게.”
“응?”
이희진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역시, 정신을 잃기 전에 자기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쉬다 가.”
침실로 돌아가는 내 뒤로 쪼르르 톤톤즈가 날아와 어깨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