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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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가 몬스터 안으로 파고든 뒤에 정운석은 헛되이 화살을 쏘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것은 헛짓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왜냐면 몬스터는 하야시를 집어삼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형태를 바꾸었다.
둥글게 몸을 말더니 수축하여 경질화되었다.
모양으로 따지자면 달팽이 등껍질 같다고 해야 할까?
공격을 아예 포기한 것 같았지만, 그 대신 방어력을 극대화했다.
그 증거로 이 껍질은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았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거기 대해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정운석이었다.
다만 불길하고 은은한 모양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달팽이 껍질이 불안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사실 화살을 쏠 때 그것이 껍데기를 깨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마나를 이 기묘한 형태로 변신한 몬스터가 흡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공격을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멈출 수 없는 기묘한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기도 했다.
‘대장님…….’
그는 막막한 심정으로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불꽃이 튀며 어지럽게 싸움이 전개되고 있었다.
조철웅과 몬스터의 또 다른 반쪽과의 싸움.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엄청난 마나가 요동치는 현장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그곳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기를 구한 헌터와 하야시를 집어삼킨 이 몬스터를 그냥 두고 그쪽으로 갈 수도 없고.
한국에서 정의감과 용기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었다.
차라리 하야시와 단둘이 처음 게이트로 던져졌을 때가 나았다.
‘그래도 믿는 수밖에…….’
이 세상에 자신이 아는 최고로 경이로운 인물 두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조철웅과 하야시였다.
하야시가 안으로 들어갔으니, 그리고 그가 아직 죽었다는 확증이 없는 상황이니 그를 믿어보자고 생각했다.
“후우…….”
정운석은 심호흡을 했다.
상대가 반격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무엇을 해도 전혀 걱정할 게 없었다.
활을 주 무기로 사용할 때의 단점은 근거리 싸움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멀리서, 들키지 않고 적을 저격할 때는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일 대 일의 근거리 싸움에서는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걸리는 딜레이 때문에 약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라면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적이 전혀 반격할 생각이 없고, 그저 방어 태세만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는 분명히 꿍꿍이가 있을 것이고 자신이 공격할 때마다 마나가 몬스터에게 흡수된다는 찜찜한 기분도 버릴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정운석의 활의 시위를 당기고 마나를 모았다.
이번에 루트론 행성 게이트에서 보낸 시간을 그를 엄청나게 강하게 했다.
짧은 시간 한 훈련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도 높은 단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얻은 것은 단순히 싸움과 전략의 잔기술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빙의한 영웅의 기억을 떠올려서 갖가지 스킬들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사용하려는 스킬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비록 전혀 효과가 없다시피 했지만 악마와 싸우면서 그의 목숨을 끝장내기 위해 준비한 루트론 행성 영웅의 정수가 담긴, 그가 목숨을 바쳐 만들어낸 궁극의 기술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기술이었으므로, 집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화살을 날린 뒤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실전에서 사용하기에 부담이 있었다.
그래도 지금 같은 경우라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는 마나를 모으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주위의 소음이 사라지고, 오로지 활과 자신이 하나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깊은 곳으로부터 뻗어 나온 마나가 차곡차곡 활 끝에 실린다.
이 화살을 날리면 세상 무엇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게 그저 혼자만의 착각일지 몰라도,
지금 시위를 당기고 있는 순간만은 자신감이 솓구쳤다.
쉬익-
엄청난 양의 마나와 영웅의 정수가 담긴 화살이지만, 시위에서 놓이는 순간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근거리에서 날린 궁극기이다.
둘 중 하나의 결과가 날 것이다.
몬스터가 산산이 부서지거나, 아니면 자신의 마나를 잔뜩 흡수한 몬스터가 더욱 강해져서 하야시와 자신을 구한 헌터까지 완전히 소화해 버리거나.
퍼어엉!!-
정적이 사라지고 폭발음이 들렸다.
정운석은 자신이 기대할 수 있는 두 가지 결과 중 첫 번째 것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스킬을 사용할 때의 뿌듯한 자신감과는 반대로 이성적이고 실질적인 판단, 아무리 궁극기를 써도 이 몬스터를 죽이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과는 반대되는 결과였다.
눈앞의 몬스터가 폭발했다.
경질화됐던 껍질이 산산이 조각나서 흩어졌다.
“응?”
그런데 뭔가 달랐다.
자신의 화살을 맞고 몬스터가 폭발했다기보다는 다른 충격이 몬스터를 박살 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산하는 잔해 속에서 그림자 둘이 솟구쳤다.
하나는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바로 하야시.
그와 함께 몬스터 안에서 튀어나온 여자는, 자신을 구한 헌터가 분명했다.
모습을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S급 헌터인 이희진이라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어도 그녀의 존재와 외모에 대해서는 익숙했다.
그런데,
“…….”
그는 자신이 알던 이희진과 지금 보이는 이희진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몬스터에 잡아먹혔다가 이제 막 밖으로 나오는 것일 텐데,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던 이미지보다 훨씬 더 강해 보였다.
마치 몬스터 안에서 2차 각성이라도 한 듯이,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과 아우라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잊고 그녀를 올려다볼 정도였다.
하야시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다, 정운석. 출구를 찾을 수 없었는데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더라고. 네가 한 거였구나.”
“네. 그런데 어떻게…….”
“안에서 몬스터와 싸웠다. 적지에서 싸우는 거라 궁지에 몰렸었는데 이희진 헌터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
하야시가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하늘에 떠올라 신성한 느낌으로 공기를 마시고 있는 이희진을 올려다보았다.
“아…… 그래요?”
정운석은 잠시나마 자신이 한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야시는 이희진을 구하기 위해 몬스터의 뱃속에 뛰어든 것이었지만, 반대로 그를 구한 것이 이희진이 되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희진은 몬스터의 뱃속에 있는 동안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다.
‘어찌 됐든…….’
이희진은 적이 아니다.
강력한 아군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전에, 자신을 구해준 일에 대해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정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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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구나, 진짜.’
나는 집요하게 덤벼오는 몬스터와 싸우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로 나를 죽이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덤비고 있다.
마치 수천 년짜리 원한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솔직히 작정하고 싸우면 금방 끝낼 수 있는 싸움이기도 했지만, 그전에 파악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 사도는 다른 사도와는 다른 패턴을 보였으니까.
이놈을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 악마와 싸우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시간을 끌면서 놈이 온 힘을 다 쓰도록 만들었다.
내 ‘분석’ 능력은 차근차근 놈의 본질을 파악해냈다.
‘흥미롭네.’
사도라는 존재는 역시 흥미로웠다.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악마가 자신의 목적과 취미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병정 같은 놈들이다.
인간과 몬스터, 어느 쪽으로 놓고 생각해도 그 본질을 전부 해석하기 어려웠다.
나는 눈앞의 사도 덕분에 이놈들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지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얻어낸 몇 가지 전리품이 더 있었다.
이것은 게이트 능력을 얻었을 때처럼 말로 세세히 설명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저 직감.
천재의 직감이 이 사도로부터 몇 가지 흥미로운 이론을 뽑아냈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이제 끝내야지.’
폭발음이 울려서 흘긋 반대편을 보았더니 그쪽 몬스터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역시 믿고 있었던 대로 정운석과 하야시가 몬스터를 해치운 모양이었다.
“응?”
그런데 공중에 떠 있는 신기한 실루엣이 하나 더 있었다.
양팔을 벌리고 심취한 듯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이희진이었다.
그녀가 이 현장에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보던 것과 지금 보이는 느낌은 좀 달랐다.
예전에는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많이 앳돼 보이는 이미지의 그녀였지만, 지금은 뭐라고 할까?
어엿한 숙녀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뭐, 여전히 앳된 외모는 그대로였으니까.
아마 이쪽에서는 단번에 파악할 수 없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재밌네.’
강한 적을 상대할 때 좋은 것은 이겼을 때의 전리품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두 손에 쥐었던 검을 두 개로 쪼개었다.
그리고 그것을 공중에 던졌다.
파아앗!-
엄청나게 밝은 빛이 분사하여, 몬스터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허공으로 향했다.
후드드드득-
내가 공중에 띄운 두 개의 검이 수백 개로 갈라져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조리 몬스터를 향해 떨어졌다.
“끄아아아악!!”
이미 나와 싸우면서 승리할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던, 좌절 속에 있던 사도가 숨이 끊기기 전에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에 놈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더 이상 원한이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강한 상대에 대한 경이로움,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싶기는 하지만 존경심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이 담겨 있었다.
아마 악마를 대할 때 사도들이 이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싶은 표정이었다.
사냥의 막바지에 톤톤즈가 낙하하더니 부리로 사도의 머리통을 쪼아버렸다.
퍽!
그렇게 나를 애먹게 만든, 서울 도심에 몬스터의 형태로 나타나 반격해온 사도가 죽음을 맞았다.
톤톤즈는 직후에 작고 귀여운 새의 형태로 돌아와 내 어깨에 앉았다.
눈앞에 떠오른 것은 익숙한 현상이었다.
언제나 전투, 사냥을 마쳤을 때 나타나곤 하는 문장.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강적을 물리친 것이었으므로 당연히 메시지는 끝날 줄 모르고 계속 떠올랐다.
나는 무시하고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양팔을 벌리고 떠 있던 이희진이 눈이 막 뜨였다.
그녀가 내 시선을 느낀 듯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악!
나는 깜짝 놀랐다.
미처 자각하지 못한 순간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방금 더 강해진 나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것을 피할 수 없을 뻔했다.
기척을 완전히 없앤, 이동속도가 0에 가까운 순간이동 능력이었다.
비록 뺨을 때리려던 손동작에 살기 같은 것은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식겁했다.
“조철웅 이 자식아, 왜 사람이 쪽지를 보냈는데 읽고도 답장을 안 해…….”
상황과 맞지 않는 말을 중얼거린 이희진이 배터리가 다 된 인형처럼 내 품에 픽 쓰러졌다.
뭔가 이번 전투의 마지막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