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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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은 몬스터에게 잡아먹힌 뒤로 즉시 정신을 잃었다.
자신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은 순간이동이었고, 이전에도 몇 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능력을 써서 벗어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녀는 몬스터에게 먹힌다고 느껴진 순간 스킬을 발휘하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기로는 그 스킬은 성공했다.
보통의 능력자라면 순간이동을 한 다음 바로 순간이동을 쓰기 힘들었겠지만, 자신은 S급 능력자이고 경력이 쌓이는 동안 나름대로 능력을 계발하려는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늘 염두에 두었었다.
순간이동 능력을 써서 위기에 처했을 때, 또 한 번 능력을 써서 2차 위협으로부터 벗어난다.
누구나 같은 기술을 여러 번 노출하다 보면 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몬스터들은, 게다가 S급 정도 되면 상당한 지능을 탑재하고 있었다.
그것을 지성이라고 표현하기는 무리겠지만, 적어도 싸우는 능력에 관해서는 본능적으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S급 몬스터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의식을 하고 기술을 연마했었다.
2회 연속, 아니, 마음만 먹으면 3~5회까지도 순간이동 능력을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이 기술을 공간에서 공간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으로만 인식하기 쉬운데, 실상 능력을 사용하는 자신의 감각은 좀 달랐다.
단순히 빠르게 이동한다기보다는 시간 자체를 컨트롤하는 느낌.
빨라진다기보다는 시간과 감각이 느려진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래서 아주 순간적이라고 해야 할 몬스터가 자신을 집어삼키는 시간 동안에도 그녀는 몸을 피할 자각을 하고 스킬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통하지 않았다.
그녀가 삼켜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인지한 것은 자신의 마나가 진공청소기에 빨려드는 공기처럼 훅, 하고 빨려드는 느낌과 벌려진 주둥이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이었다.
차갑고 감정이 없는.
보통 몬스터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감각을 지닌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은 몬스터의 주둥이에 삼켜졌다기보다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누군가에게 흡수당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몬스터의 몸 안에 흡수된 뒤에 그녀는 온몸을 속박당했다.
몬스터의 몸속은 희한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마치 몬스터의 주둥이 자체가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라도 된 듯, 드넓고도 고요한 장소에 던져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촉수들이 자신의 몸을 속박했다.
얼굴을 덮은 촉수는 몽롱한 가스를 주입하여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또한 촉수들에 의해서 마나가 빨리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자신은 백 퍼센트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어떤 메커니즘인지 모르겠지만 몬스터가 자신에게 하는 짓의 의도는 명백했다.
마나를 빨아들여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는 것이다.
마치 게임 속에서 상대 HP를 흡수하여 자신의 HP를 늘리는 몬스터처럼.
‘진짜 별놈이 다 있네.’
이게 현실이 아니라면, 잡아먹혀 마나를 빨리는 게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되레 흥미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통증이 거의 없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할까?
코와 입으로 주입된 가스는 현실을 온전히 인지하게 하면서도 저항할 의지를 앗아갔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시야가 흐려지는 가운데 아까 삼켜질 때 보았던 기분 나쁜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놈은 이제 완전히 인간 형태를 갖추고서 자신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
여전히 크게 관심이 있는 듯한 태도는 아니다.
그냥 얼른 빨아 먹히고 내게 힘을 보태라 하는 투다.
마치 자신의 볼일은 다른 데 있다는 듯이.
‘조철웅…….’
이희진은 그 무심한 인간 형태의 존재가 타깃으로 하는 것이 조철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몬스터의 즉각적인 반응이 조철웅이 거대한 새와 함께 등장하여 시선을 끌었다는 것으론 전부 설명할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의지와는 달리 몸은 이미 살아남기를 포기했다.
차라리 이대로 편하게 마나를 몽땅 빨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일종의 지고한 쾌락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일었다.
그때였다.
감은 눈 사이에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일어난 것은.
몬스터가 주입한 가스 때문이 아니었다.
마나와 함께 생기를 잃으면서 나타난 환각 효과 때문도 아니었다.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어서야 자각할 수 있는 무언가에 닿았다는 느낌.
자기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네 목숨은 단지 너의 것만은 아니라고 피력하는 것 같은 느낌.
이희진은 꿈처럼 펼쳐지는 영상을 보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좀 더 생생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마치 이것이 자신이 먼 과거에 직접 경험한 일인 것 같은 착각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착각…….’
아니다.
착각이 아니었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 안에 있는 누군가가 경험한 과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가 외치고 있었다.
죽으면 안 돼!
너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절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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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는 몬스터의 몸속에서 자신이 사도라고 인지한 상대와 싸우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상대는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쉽게 싸움을 끝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철웅과 싸우고, 그와 몇 차례 훈련을 하면서 인식의 범위가 확 넓어졌다.
말 그대로, 누누이 전해오던 지혜로운 말마따나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았다.
헌터들이 각성하고 그들이 직군으로 자리 잡아 몬스터와 싸우기 시작한 이래로 어느 정도 실력의 격차가 정해졌다.
하야시는 그때 자신이 모든 헌터들 중에서 전투 능력으론 정점에 속한 일인이라고 생각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자신이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자신의 라이벌이 나타나리라고 추호도 생각지 않은 한국에서 각성한 헌터 때문에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조철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는 절대적인 강자로 태어났고, 앞으로 더 끝없이 강해질 것이다.
감히 그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꼈다.
마음속에 피어오르던 오만이라는 불편한 감각, 그리고 성장의 끝에 거의 다다랐을지 모른다는 권태가 한순간에 벗겨졌다.
조철웅을 이길 수 없더라도, 그와 자신과의 격차-앞으로도 훨씬 크게 벌어질-를 메꾸기 위해 자신은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그것이 스스로를 겸손하게 하고 무한에 가까운 기쁨을 주었다.
실제로 자신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한 수준의 성장을 짧은 시간에 해냈다.
과거의 오만함과는 다른 자신감이 처음 딛게 된 공간에서 사도라는 미지에 가까운 존재와 싸우면서도 그가 가진 힘의 원천이 되었다.
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곳에서의 싸움은 뭔가 다르다.
그는 사도와 한 차례 무기를 부딪고 나서 거리를 크게 띄운 뒤에 주위를 살폈다.
그를 불안하게 하는 원인은 바로 이 장소, 환경에 있었다.
몬스터의 뱃속이라는 사실이 계속해서 그를 압박하고 힘을 잃게 한다.
반면 사도에게는 점점 더 크게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완전히 속박당해 늘어져 있는 이희진에 닿았다.
아마도 몬스터는 이희진의 마나를 빨아먹고 있을 것이다.
S급 헌터 한 명분의 마나가 실시간으로 이 몬스터를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희진만큼 노골적인 속박을 당하지 않고 있는다 하더라도 자신도 역시 마나를 빨리고 있었다.
‘시간이 길어지면 불리해.’
그런 자각을 진지하게 할 때였다.
눈앞에 서 있던 사도의 존재가 불쑥 하나 더 늘어났다.
환영이라고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싸우고 있던 사도가 분신술을 써서 자신의 형체를 하나 더 늘린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 사도의 본체는 둘이었던 것이다.
서로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엉겨 붙어 있어서 그것을 쉽게 자각할 수 없었을 뿐.
‘젠장…….’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공간, 몬스터의 뱃속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천천히 조여오며 마나를 빨아들이는 속도를 더 빠르게 했다.
점점 몽롱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하야시는 볼을 씹었다.
“빌어먹을!”
그는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자신의 형체를 둘로 늘렸다.
분신술은 근래 더욱 강해져서 분신이 자신의 능력 5할 이상을 발휘할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한쪽의 발을 묶은 뒤에 다른 한쪽을 전력으로 쓰러뜨린다.
그런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파악!
마치 사도들이 자신의 생각을 모두 읽고 있기라도 한 듯이 둘 다 분신 쪽으로 움직였다.
합동 공격을 받은 하야시의 분신은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스러졌다.
분신술은 강력한 스킬이니만큼 발동한 직후에는 많은 양의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나간 느낌 때문에 본체를 약하게 만들었다.
분신을 공격해 쓰러뜨린 두 체의 사도가 자신에게 달려오면서 하나로 합쳐졌다.
이놈들은 애초에 존재의 구분 자체가 모호했다.
본질이 둘인 것은 알겠지만, 자유롭게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것이 이미 각자가 독립적인 개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자아 따위는 지우고 아예 보이지 않는 목소리의 명령을 받아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었다.
하야시는 반사적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발이 푹 빠지는 것을 느꼈다.
물렁물렁해진 바닥이 순간적으로 두 발을 빨아들이고, 또다시 경질화되었다.
그야말로 완전히 사도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야시는 이제야 자신의 전략이 너무 오만하지 않았나 하고 후회했다.
몬스터의 뱃속에 들어가 싸우겠다고 생각하다니, 자신을 조철웅과 같은 수준이라고 착각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언제나처럼 직감을 따랐을 뿐인데, 조철웅과 싸우기 전처럼 이번에도 그 직감이 잘못 발동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철웅은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 사도들은 다르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죽은 뒤에서 모든 에너지를 쭉쭉 빨아서 자신의 양분으로 삼을 것이다.
하야시는 눈을 감았다.
무인이라면 언제나 싸움에서 질 때를 각오하는 법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하는 것이 무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
죽고 난 뒤에 사도의 양분이 되다니, 그것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물론 조철웅은 자신을 흡수하고 강해진 사도들을 죽일 만큼 강한 사람이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그에게 누가 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불꽃처럼 자신을 태우고 적과 함께 사라진다.
동귀어진.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만든 기술.
그는 두 손의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자신의 모든 마나를 체외로 방출했다.
피부 온도가 올라가고, 급기야 가열된 마나가 살갗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은.
한 줄기 빛이 공간을 가로지르더니 둘이 뭉쳐져 하나가 된 사도를 들이받아 가격했다.
콰앙!!-
엄청난 충격으로 사도가 나뒹굴었다.
여전히 이글거리는 마나를 뿜어내면서 하야시는 허공에 떠올라 있는 인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명 사로잡혀서 에너지를 빨리고 있던 이희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좀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기 안에 있던 무언가를 각성한 듯.
인간이 헌터가 되어 엄청난 능력을 얻게 되는 순간처럼, 그녀는 또 한 번의 각성으로 상상 못 할 힘을 얻게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