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톤톤즈가 자신의 본모습을 서울 하늘 아래 드러냈다.
그것은 서울을 유린하고 있는 S급 몬스터의 존재를 초라하게 느끼게 할 만큼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다행이라면 지금 서울에서는 주민 대피가 대부분 이루어져서 그것을 볼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톤톤즈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될 것이었다.
드론들이 열심히 날아다니면서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으니까.
나는 톤톤즈의 존재를 나중에 설명해야 할 귀찮음까지 무릅썼다.
지금 상대할 사도는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할 만큼 강한 놈이었으니까.
하늘을 까맣게 덮을 만큼 몸집이 큰 톤톤즈가 나타난 만큼 사도도 이쪽의 존재를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느리게 빌딩 사이를 움직이며 도시를 파괴하던 몬스터가 몸을 곧추세웠다.
들쭉날쭉하던 세 개의 머리가 한꺼번에 튀어나오더니 하늘을 향해서 괴성을 질렀다.
“꿰에에에엑~~~!!!”
도시 전체를 진동할 만큼 엄청난 굉음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던 건물들의 유리가 모두 동시에 터져나갔다.
“시끄럽게.”
나는 톤톤즈 위에 올라타서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놈은 하늘에 덩치 큰 각성수가 나타났다는 사실만 자각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위에 있는 내 존재도 알아챈 것이 분명하다.
그 증거로 갑작스럽게 놈의 마나가 급증했다.
마치 따분하게 혼자서 노닐다가 드디어 기다리던 상대가 나타나서 반가워하는 것처럼.
쭈우욱-
거대한 푸딩 같은 몸체가 불어나더니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톤톤즈와 닿을 만큼 길어졌다.
두 개의 팔이 뻗어 나오더니 톤톤즈의 목덜미를 움켜쥐려고 했다.
“어딜!”
내 옆에 있던 정운석이 몸을 일으키더니 화살을 장전했다.
그의 어깨 위로 강력한 마나가 확확 불어나더니 화살촉에 미끄러져 맺혔다.
두 손을 내밀어 톤톤즈를 움켜쥐려고 했던 가운데 있는 머리통을 향해 정운석의 화살이 쏘아졌다.
퍼엉!!-
그것은 내 기대보다도 훨씬 강력한 화살이었다.
역시 하야시와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마냥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닌 듯했다.
그곳의 기운이 그에게 빙의한 영웅과 딱 맞아서 성장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도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대책 없이 몸집을 늘려서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던 탓에 몬스터는 정운석의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았다.
“꾸웨에엑!!”
다만 화살이 폭발한 순간 머리통은 몸 안으로 쑥 숨어버렸다.
아마도 직격타는 되지 못한 듯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충격은 주었다.
“정운석, 하야시. 비켜!”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웬만하면 뒤로 물러서서 관전만 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할 수 없었다.
나는 손에 끼우고 있는 지배자의 손아귀에 마나를 모았다.
내가 만들어낸 무기는 검이었다.
날카로운 검을 마나가 스며드는 대로 쭉쭉 늘려서 만들어냈다.
그것의 길이는 가히 톤톤즈의 몸길이와 비슷할 정도가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도들이 뭉뚱그려져 탄생한 몬스터의 몸통을 반으로 쪼갤 수 있을 만큼 길어졌다.
나는 톤톤즈의 등에서 휙 뛰어내렸다.
정운석의 화살을 맞고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몬스터를 향해 일직선으로 검을 그었다.
촤아아아악!!-
강력한 빛줄기가 분사하며 내가 검을 긋는 대로 몬스터의 몸통이 깨끗하게 갈라졌다.
물론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 몬스터는 다른 몬스터와는 달리 평범하게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니까.
육체가 파괴되었다고 해서 즉시 생명을 앗을 수 없다.
사념을 철저하게 깨부수어야 사냥을 마쳤다고 할 수 있을 것.
예상대로 둘로 갈라진 몬스터가 양쪽으로 촤아악, 밀려났다.
상당한 대미지를 준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몸통을 반으로 가른 것만큼의, 보이는 대로의 충격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쪽에 두 개의 머리통이,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한 개의 머리통이 치솟았다.
2 대 1.
나는 한 개의 머리통이 튀어나온 쪽이 김주환에게 빙의했던, 일본 쿠로의 수장이었던 히로키에게 깃들었던 사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쪽을 공격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정운석과 하야시는 다른 쪽을 맡고.
톤톤즈는 하늘을 날면서 어느 쪽이라고 할 것 없이 간헐적인 낙하를 해서 발톱과 부리로 몬스터를 공격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뭔가 이제껏 사람들이 익숙하게 보아왔던 S급 몬스터의 사냥 장면과 많이 다를 것이 분명하다.
사냥이 끝난 뒤에는 분분하게 말이 많이 나올 게 틀림없지만, 나는 거기 일일이 대응할 생각이 없었다.
미미가 알아서 하겠지.
내 몫은 확실하게 이곳까지 찾아온 사도들을 끝장내는 것이었다.
182
이희진은 까맣고 긴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시커먼 구름이 떠올라있었다.
‘구름이라고……?’
갑자기 이상기후가 나타나도 유분수지.
그녀는 하늘을 꽉 채운 이 시커먼 것의 정체가 구름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몸을 낮춘 그것의 아랫부분에 구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달려있었다.
거대한 두 발.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것의 모양은 딱 한 가지만을 연상시켰다.
바로 조류의 다리.
그러고 보니 깃털도 달려있다.
하나하나가 자신의 키만큼이나 기다린 깃털들이, 무수히.
“젠장…….”
그녀는 경악스러웠다.
왜냐면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딱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으니까.
바로 또 다른 S급 몬스터의 출현이다.
게다가 보통 놈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서울을 유린하고 있는 몬스터보다도 강해 보였다.
적어도 몸 크기만큼은 이쪽이 훨씬 거대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같은 장소에 S급 몬스터 두 마리가 출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예가 아예 없지 않았다.
게다가 그리 먼 과거의 일도 아니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한 장소에 자그마치 세 마리의 S급 몬스터가 나타났었으니까.
어쩌면 그게 앞으로 S급 몬스터가 출현하는 새로운 패턴일지도 모른다.
헌터들도 과거에 비해 많이 강해졌으니까, 거기에 맞추어서 몬스터가 나타나는 패턴도 더 강력해진다는 것일까?
이것을 게임처럼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전개가 이어짐에 따라 난도가 올라가는 것이 게임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젠장, 이건 게임이 아니잖아!’
그녀가 몸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에 있던 미미가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저건 몬스터가 아닙니다.”
“몬스터가…… 아니라고요?”
“네, 주군이 키우는 새예요.”
“네?”
농담하지 말라고.
이런 순간에.
대체 이런 새를 키우는 인간이 있을 리가…….
그런 그녀의 눈에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람들을-이제는 대피가 거의 다 이루어져서 얼마 없는- 구하고 있는 거대한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각성수는 일반적으로 헌터보다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을진대 이 개는 하늘을 까맣게 덮을 만큼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났는데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젖히더니 반갑다는 듯 “컹! 컹!” 하고 짖었다.
“주군이 오신 거예요. 정운석과 하야시를 데리고.”
미미의 얼굴은 ‘이제 소동은 끝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게 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던 이희진은 굉장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로 건물 사이로 스며들며 난장을 자아내던-심지어 헌터들인 자신들을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주민들을 대피시키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몬스터가 몸집을 불리기 시작한 것.
기이한 꼴의 몬스터가 마치 하늘을 덮은 새와 경쟁이라고 할 것처럼 쭉쭉 불어났다.
인간의 그것과 닮은 유령 같은 머리통이 쑥쑥 세 개나 뽑혀 나왔다.
그다음 장면은 더 믿을 수 없었다.
아래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새의 상부에서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콰앙! 하고 몬스터가 쭈그러지며 움츠렸다.
새가 직접 공격한 것은 아니고, 아마 새의 머리통 부분에 올라타 있는 누군가가 몬스터를 공격한 것 같았다.
‘조철웅이 키우는 새라고?’
멍해 있는 사이 엄청난 장면이 이어졌다.
새에서 기다란 빛줄기가 떨어져 내리는가 싶더니, 몬스터의 몸통이 반으로 쫙 갈라진 것이다.
듣기 싫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쪼개진 몬스터가 양쪽으로 촤아악, 밀려났다.
아무리 쪼개져도 생명이 끊기지 않는 연체동물처럼 각자 머리통을 뽑아내더니 허우적대며 저항했다.
이제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새에서 사람 그림자들이 낙하하는 것을.
그들은 반으로 쪼개진 몬스터 한쪽과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한쪽도 쭉쭉 밀려나면서 무언가에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좀 전에 낙하했던 기다란 빛을 만들어낸 것도 인간 헌터라는 뜻이 된다.
“조철웅…….”
이희진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를 반으로 쪼갠 것이 조철웅일 거라고 확신했다.
‘진짜 어마어마하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강하다니.
이제껏 모바일 게임을 여러 번 같이 했던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소외감이 들 지경이었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더 이상 주민들의 대피에만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미 대피는 거의 다 이루어졌고, S급 헌터의 주 임무는 애초에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바로 출현한 S급 몬스터와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조철웅의 전투력을 감안했을 때 그라면 무리 없이 이 몬스터도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신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 그리고 편하게 누리는 많은 메리트들은 전부 이때를 위한 것이었다.
자신은 이기적인 일부 S급 헌터들과는 다르게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었다.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도, 좀 전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아 전투를 피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전투에 가세해야 했다.
그런 생각으로 이희진은 몬스터와 방금 나타난 헌터들이 맞붙어 싸우는 현장으로 날아갔다.
뒤에서 미미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지긋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빌어먹을.”
현장에 다가갈수록 몬스터가 뿜어내는 살벌한 마나가 장난이 아니라고 느꼈다.
조철웅이 정운석과 하야시를 데리고 온다는 이유로 현장에 늦게 나타난 것이 마냥 탓하기만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정도 몬스터라면 설령 하늘을 까맣게 덮을 만큼 거대한 새를 데리고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조철웅 혼자 상대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사냥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애를 먹었을 것이 분명하다.
둘로 쪼개진 몬스터가 각자 상대에 대응해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머리통이 들쭉날쭉, 팔다리가 들쑥날쑥하면서 기이한 방식의 공격을 했다.
조철웅과 정운석, 하야시가 그런 몬스터에 맞서 잘 싸우고 있었다.
이희진은 어느 쪽에 합세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단순히 생각하면 혼자서 싸우고 있는 조철웅 쪽에 붙어야 할 것 같지만-게다가 그쪽의 몬스터가 훨씬 강한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오히려 전반적인 전투력을 고려하면 정운석과 하야시 쪽에 합세하는 것을 맞을 것 같았다.
조철웅은 그의 성격대로 느리고 여유 있게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원래 이게 그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탓할 마음은 없지만.
그때 그녀의 결정을 쉽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화살을 장전해 날리려고 하는 정운석의 사각에서 그를 공격하려고 하는 몬스터의 촉수가 포착된 것이다.
이희진은 순간이동 능력을 사용해 정운석 쪽으로 날아갔다.
등 뒤에서 엄습하는 위협을 알아채지 못하고 화살을 장전하고 있던 정운석을 떠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놓치고 있었던 게 있음을 깨달았다.
순간이동 능력을 또 한 번 발휘하기도 전에, 바로 옆까지 다가온 몬스터의 머리통이 아가리를 쩍 벌려 자신을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