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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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나타난 S급 몬스터.
출현 장소가 도심지인 만큼 웬만큼의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요는 얼마나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느냐,
그리고 얼마나 빨리 대응할 수 있느냐였다.
S급 헌터들은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는 일이 많았다.
법적으로 규정된 것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S급 헌터 스스로도 도시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도시에 머무는 것이 이권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돈과 명성, 권력이 있는데 그것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장소에 머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S급 헌터는 누구보다도 유명하고 선망받는 존재이지만,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와는 달랐다.
길에서 봤다고 해서 환호성을 지르며 접근하거나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일 등을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런 점까지 생각하면 S급 헌터가 도시에 머물지 말아야 할 이유는 더 없는 셈이다.
메리트가 많고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 적다면 당연히 다른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으니까.
더구나 지금 대한민국 서울에는 세계 어느 대도시보다도 많은 숫자의 S급 헌터가 머물고 있었다.
이런 점은 행운이라고 해야 하리라.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몬스터.
이름을 특정할 수 없는 변종은 평범한 S급이 아니었다.
애초에 S급으로 분류된 몬스터에 ‘평범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나중에 분석결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번에 서울에 출현한 S급 몬스터는 역대 최악의 몬스터 중 하나로 분류되었다.
어쩌면 피해는 서울을 벗어나 전국에 미치게 될지도 몰랐다.
만약 그랬다면 대한민국은 몬스터 한 마리 때문에 초토화가 되는 지경에 내몰렸을 것이다.
갑자기 불어난 S급 헌터의 숫자, 그리고 주변의 강대국 사이에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올라갔던 자존감이 한 번에 박살 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하고 만 것.
사람들은 간절히 바랐다.
서울에 있는 S급 헌터들이 어서 빨리 출동해서 몬스터를 사냥해 줄 것을.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현장에는 빠르게 S급 헌터 한 명이 도착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그 자신이 몬스터를 불러낸 것처럼.
김주환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은 대피 중에도 환호했다.
그는 가장 최근에 한국에서 각성한 S급 헌터이고, 친절한 인상과 태도로 국민에게 크게 호감을 산 인물이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그를 본 사람들은 아마 알았을 것이다.
그의 모습이 평소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그의 동공은 까맣게 흐려져서 인간의 그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가 까만 먹물이 들어 있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그것은 서울 도심에 나타난 몬스터와 비슷했다.
몬스터는 형체를 특정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이트가 나타나고 그 안에서 몬스터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 S급 몬스터가 출현하는 패턴이지만, 이번에는 게이트가 나타나는 것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마치 몬스터가 땅에서 저절로 솟은 듯했다.
새까만 그림자가 넓게 확장되고 그것을 거대한 손이 쭉 잡아 뽑은 것처럼 몬스터는 무생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그림자가 도시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건물과 자동차와 심지어는 사람들까지.
그제야 사람들은 이 기현상이 몬스터의 출현이라는 것을 감지했고, 당국은 이것이 S급 몬스터라고 결정 내렸다.
대피 조치가 이루어지고, S급 헌터들에게는 출동을 요구하는 연락이 갔다.
사실 김주환은 연락을 받기 전부터 현장에 있었다.
그는 표정 없이, 누군가가 조작하는 아바타처럼 무심하게 몬스터를 향해 걸어갔다.
흔한 헌터 장비조차도 착용하지 않았다.
도심에서 몬스터가 출현한 것이므로 드론의 도착도 무척 빨랐다.
윙윙거리면서 주변을 날기 시작한 드론을 본 김주환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가까이에 있는 드론을 응시했다.
내내 표정이 없던 그가 씩 웃음을 지었다.
한순간이나마 흐려졌던 동공이 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미소는 오만하고 섬뜩해서, 평소의 겸손한 그가 지을 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드론을 통해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지은 미소였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자마자 폭발적인 마나가 터져 나왔다.
펑! 펑! 펑! 펑!-
그가 내보내는 마나를 못 이기고 주변에 있던 드론들이 폭발했다.
자동차가 날아가고, 건물이 우그러지면서 유리창이 터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김주환의 모습은 조금씩 변했다.
로봇처럼 일정하게 움직이던 팔과 다리가 사라진다.
그것은 곧 까만 액체처럼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발밑까지 닥친 몬스터가 그를 흡수해갔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S급 헌터가 몬스터에게 당하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김주환과 몬스터는 애초에 한 몸이었던 것.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사도의 영혼이 또 다른 사도들의 영혼과 합체된 것에 불과했다.
이미 그들은 본성을 잃고 있었다.
사도는 빙의할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저 이성이 없는 물질에 불과했다.
생명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일본에서 히로키, 그리고 쿠로의 S급 헌터들에게 빙의했던 사도들이 람바스에 대한 원한만 가지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처음으로 빙의한 육체로는 오성 클랜과 태양 클랜을 공격했다.
이것은 다소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S급 사도들은 주변의 강력한 사도-자신들이 지배 가능한 A급 사도-들을 찾았고, 그들을 한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박수철과 장오성은 람바스, 즉 조철웅과 한편이었다.
한쪽은 강력한 적의 등장을 조철웅에게 알리고자 했고, 다른 한쪽은 조철웅을 죽이려는 일에 협력할 것을 종용했다.
당연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두 개 클랜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박수철과 장오성은 겨우 목숨만 건졌다.
한국으로 넘어온 S급 사도들은 람바스에게 메시지를 남긴 뒤에 육체를 버렸다.
신원을 알 수 없을 만큼 해체된 시신을 범인이라고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미궁으로 남게 되었다.
다음으로 빙의한 육체가 김주환이었다.
이번에는 세 명이 아닌 한 명의 S급 사도만 김주환의 육체를 차지했다.
세 개가 한꺼번에 들어가면은 제대로 능력 발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앞선 경험에서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머지는 그림자의 형태로 숨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사도들이 본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서울 도심에서 난장을 피우면 람바스와 자연스럽게 맞붙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조철웅은 서울에 있었고, 평소에는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가 있는 장소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S급 헌터로서 S급 몬스터의 등장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더구나 육체를 얻어 지내는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의 모든 S급 헌터가 조철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S급 몬스터가 출현하면 조철웅을 비롯하여 그와 한 편인 S급 헌터들을 전부 끌어낼 수 있는 것.
이미 인간의 모습과 완전히 멀어진 김주환은 몬스터와 한 몸이 되었다.
거대한 그림자 형태였던 몬스터가 이제야 생명체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머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이 불뚝불뚝 솟아났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세 개.
세 명의 사도가 하나의 형체로 결합하여 각각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었다.
거기 맞추어 팔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쑥쑥 뽑혀 나왔다.
길고 짧은 팔과 다리들.
그것들은 형태 자체가 불분명하고 제각각이어서 개수를 헤아리는 게 의미가 없었다. 몬스터가 된 사도들은 이전보다 더 과격하게 도시를 부수기 시작했다.
각각의 주둥이에서 화염과 빙하가 뿜어져 나갔다.
팔과 다리를 채찍처럼 휘둘러 건물과 자동차, 콘크리트 바닥을 부수었다.
드론들은 멀리서 그 괴악한 광경을 비추었다.
두 번째로 현장에 도착한 S급 헌터는 이희진이었다.
몬스터를 본 그녀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뭐야, 저게?”
그녀가 빨리 올 수 있었던 것은 집이 이곳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편한 차림으로 과자를 먹으면서 게임을 하고 있던 그녀는 느닷없이 출동 문자를 받았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뭔가 싶었다.
S급 헌터에게는 기본적으로 이런 연락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S급 몬스터라고……?”
멍하게 문자 내용을 본 그녀는 모니터 화면을 포털 뉴스로 전환했다.
“……젠장!”
사실 최근 한국에서 S급 몬스터가 꽤 자주 출현했던 터라-한 놈은 조철웅이 산에서 불러내어 직접 사냥하는 기이한 장면을 연출했었다.- 당분간은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받은 문자도 누군가가 장난한 거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장난을 친다고 해도 뉴스까지 꾸며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장비를 착용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현장으로 나갔다.
자신이 뉴스를 통해 마지막으로 파악한 사실은 현장에 김주환이 먼저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살펴도 현장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머리가 셋 달린 어마어마한 몬스터가 도심을 휘젓고 있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먹힌 건가……?”
시스템이 안정된 이후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게 되었지만, S급 몬스터와 싸우다가 S급 헌터가 죽는 일은 과거에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S급은 애초에 수준을 특정할 수 없는 강함을 지칭한다.
헌터도 몬스터도.
현장에 먼저 도착한 S급 헌터는 혼자 힘으로 사냥하기 힘들겠다 싶으면 다른 S급 헌터를 기다리거나 일단 후퇴한 뒤에 전략을 세우는 등의 전략을 사용했다.
이것은 거의 매뉴얼과 같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자신의 강함을 과신하여 무대포로 덤비다가 죽어버리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도 S급 헌터가 강력한 몬스터 앞에서 몸을 사리는 것을 비난하지 않았다.
S급 헌터는 살아서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니까.
‘객기를 부린 건가……?’
이희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김주환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다만 한국에 새 S급 헌터가 각성한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고-따지고 보면 늘어난 S급 헌터들의 국적이 대부분 외국이었고, 이는 한 명 더 한국에서 S급 헌터가 각성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가 꽤 인상이 좋은 사람이라도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S급 헌터는 손만 뻗으면 돈과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이다 보니 타락할지 말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되는 헌터들은 자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과시욕을 바탕으로 무모하게 몬스터에게 달려들다가 해를 입기도 했다.
혹시 김주환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면 너무 빨리 현장에 온 나머지 강력한 S급 몬스터에게 불의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을지도.
어느 쪽이든 불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주위를 살폈다.
자기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몬스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잘못 했다가는 자신도 김주환의 꼴이 되고 말 터였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진 씨! 빨리 오셨네요!”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언제 보아도 이 세상 미모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미미 씨?”
그녀의 옆에는 왜 있는지 모를 강아지도 한 마리 있었다.
분명 조철웅의 호텔 방에 있던 애완견이었던 것 같다.
왜 조철웅은 없고 A급 헌터인 그녀만 이곳에 나타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