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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139화 (139/160)

▣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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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석의 정상 클랜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클랜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던 두 클랜 태양과 오성이 습격을 받았다.

이 일은 당연히 크게 화제가 되었고, 각종 음모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 사건을 일으킨 범인을 특정해내기가 어려웠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시들해졌다.

나는 박수철, 장오성과 대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2주가 넘게 인사불명 이 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탓에 면회가 불가능했다.

A급 헌터 두 명을 이 정도로 박살 내놓다니.

범인은 S급 헌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 짐작이 맞다면 이것은 사도가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존재가 부상하는 듯했던 불쾌한 감각은 어느 시점을 경계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 나도 심증만 할 수 있을 뿐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떻게 생각해?”

미미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히 주군을 타깃으로 한 도발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상대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 같습니다. 주군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이미 한 번 된통 당한 경험이 있어서 몸을 사리는 것 같아요.”

미미의 대답을 듣고 나는 그녀도 나와 생각이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게 원한을 품고 있는 S급의 사도.

그리고 일본어를 알고 있는 존재라면 특정할 수 있는 인물이 하나밖에 없었다.

히로키.

당연히 히로키 본인이 부활했을 리는 없다.

그에게 빙의하고 있는 사신.

놈은 내가 방심한 사이에 도망쳐 버렸다.

사신이 인간 헌터에게 빙의하고, 또 그것에서 벗어나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박혜진에게 물었지만, 그녀도 인간의 껍질을 빌리지 못한 사도는 행동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도는 악마가 행성을 포식하기 전 단계에서 활동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애초에 악마에 의해 탄생했고, 악마를 위해 존재하는 영혼들이다.

박혜진처럼 악마의 영향력을 벗어나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모양이었다.

람바스와 그녀 사이에 있었던 어떤 일이 계기가 된 것 같은데, 나는 거기 대해서 기억이 없으니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도가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일정 기간의 숙성을 거쳐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인 듯했다.

필수적인 절차이다.

이것을 벗어나서 행동할 수 있는 사도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만약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껍질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다고 했다.

이는 한 가지를 의미했다.

사도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빙의할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태양 클랜과 오성 클랜을 공격한 것은 혼자 했는지 몰라도, 계속 그 상태일 수는 없었다.

사도가 노리는 것이 나이고 그래서 한국에 나타난 거라면 앞으로 벌어질 현상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이 곧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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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

그렇게 표현되었다.

새로운 S급 헌터의 출현은.

현재 대한민국 헌터계의 위상은 크게 올라갔다.

그 이유는 단적으로 S급 헌터의 숫자가 늘었다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명이던 S급 헌터 중 두 명이 불의의 사고로 사라지게 되었을 때, 이 나라의 헌터 경쟁력은 크게 꺾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 명의 S급 헌터가 더 각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뒤를 이어 줄줄이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귀화하는 S급 헌터가 많아졌다.

그 모든 것은 제4의 헌터라고 불렸던 조철웅 덕분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한국을 등한시하던 중국 헌터계의 일인자이자 중국 서열 2위의 권력자 류신휘의 국내 체류는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이런 중에 또 다른 경사가 일어났다.

그것은 최근에 있었던 외국 헌터의 귀화나 외국 권력자의 내한 등과는 성질이 달랐다.

근본적으로 국민들이 가장 환호할 만한 일이었다.

그는 나중에 인식이 크게 바뀌었지만 어쨌거나 처음에는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조철웅과 달리 등장부터 깔끔하게 자신을 오픈해서 국민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나는 그의 등장을 다른 사람들처럼 반길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측했고, 그것이 사실이 되었을 뿐이다.

다음에 놈이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을 특정하는 것 또한 쉬웠다.

바로 나를 저격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20대 청년의 모습을 한, 새로 각성한 대한민국 S급 헌터 김주환은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헌터가 누구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각성하고 활동한 모든 S급 헌터들을 존경하지만, 그중 으뜸은 역시 조철웅 헌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헌터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분이고, 앞으로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에 가장 크게 공헌할 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귀인이라니.’

나는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혀를 찼다.

김주환의 나이 또래에서 흔히 쓰지 않는 단어라는 점을 차치하고, 그가 하는 말 자체가 너무 가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화면을 보면서 눈을 빛냈던 것, 즉 내 이름을 언급하면서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듯한 눈빛에서, 나는 그의 복수심을 읽을 수 있었다.

‘쉽지 않을 건데?’

놈이 내 존재를 알고 있다면, 일본에서 마주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복수할 능력이 있었으면 마주쳤을 때 그렇게 도망가지도 않았을 터였다.

‘무슨 배짱으로…….’

한국에 각성하고 나를 도발한 걸까?

사도라는 존재 자체가 사념에 의해 탄생했고, 그것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라고 가정했을 때 놈의 한국에서의 각성은 의외로 단순한 메커니즘일 수 있었다.

본능에 따라 나를 찾아 한국에 나타났다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 계획 없이 이런 일을 벌였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사도의 최우선 책무는 악마가 도래하기 전 밑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악마가 식사하러 오기 전에 그 준비를 마치는 것이 사도들의 일이다.

잠재적 위협 요소를 미리 제거하는 것도 그 사도들이 하는 일일 터.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책무를 위해서라고 해도 그리 무모하게 움직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도들 또한 생명체이므로,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본인의 목숨 귀한 줄은 잘 알고 있을 거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

미미가 말했다.

“저 사도가 아직도 살아서 버티는 것은 주군을 향한 복수심 때문일 거예요. 그것이 동력이 되어 운명을 거슬러 생존하고 있는 거라면, 여력을 전부 주군을 향한 복수로 쏟고 있을 겁니다. 애초에 탐욕이 많은 사도인 게 분명해요. 쿠로를 이끌면서 나름대로 원대한 계획을 세웠던 히로키에 빙의하기 딱 맞는 사도였던 거죠. 그래서 다른 사도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선택지도 애초에 없었을 거예요. 주군에게 복수하고 나서 다시 자신의 계획을 이어나간다, 그런 생각 아닐까요?”

“음…….”

사도는 단순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존재다.

미미는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추측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그녀의 말이 지금의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답이라고 보았다.

내게 입장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히로키에게 빙의했던 사도가 탐욕과 복수심이 큰 성격이 아니었더라면 도망쳐서 다른 사도에게 붙었을 테니까.

물론 거기까지 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몸에 빙의하지 않고 활동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한국까지 온 것만으로도 본인에게는 큰일이었을 테니까.

만약 일본에서 새로 각성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 번 패배한 경험이 있으므로 자기가 거느렸던 다른 사도보다 목소리를 크게 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일단은 복수가 먼저고, 그 명분으로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자기 힘을 키우려 할 것이다.

그게 미미의 추측이었다.

말하자면 인터뷰에서 보인 번듯한 얼굴은 곧 벗겨질 가면이었던 셈.

“오래 끌지는 않을 거예요.”

미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 정체를 알고 있더라도 이쪽에서 먼저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헌터로 각성했는데 내가 어떻게 대놓고 그를 테러할 수 있겠나?

게다가 놈은 인터뷰에서 나를 가장 존경한다고까지 했다.

‘어떻게 나올지 두고 봐야 한다는 건데…….’

이쪽에서 움직일 수 없다면 놈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놈이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호락호락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쪽의 능력을 알고 있는 한,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덤빌 것이 분명하다.

김주환의 몸을 빌린 S급 사도를 신경 쓰는 동안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당분간 일어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기도 했다.

S급 몬스터의 출현.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서울에서 나타났다.

[도감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종입니다.]

그것이 내 앞에 떠오른 메시지였다.

‘새로운 종?’

그 두꺼운 몬스터 도감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종이라는 거야?

[사도에 의해 만들어진, 변종일 가능성이 큽니다.]

‘변종…….’

변종이라는 사실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부분이었다.

이런 일을 벌일 놈은 하나밖에 없다.

삑- 삑-

핸드폰을 통해 출동 메시지가 왔다.

“주군, 혹시 모르니까 그들도 부르는 게 좋겠어요.”

미미가 말하는 그들이란 바로 하야시와 정운석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 루트론 게이트에 들어가서 훈련 중이었으니까.

“늦지 않을까?”

“걱정 마세요. 저는 다나카 씨랑 같이 현장에 먼저 나가 있을게요. 파프리카도 데리고 가겠습니다.”

“조심해. 내가 갈 때까지 절대 무리하지 마.”

“물론이죠, 주군.”

나는 TV 화면을 가득 채운 재난 현장을 보았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어찌 보면 S급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펼쳐지는 전형적인 풍경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일반적인 S급 몬스터라면 대개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몬스터는 메시지가 말했듯 ‘변종’이었다.

게다가 사도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놈…….

결코 함부로 상대할 수 없다.

나는 현장에 나타난 김주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가장 먼저 도착했다.

놈은 싸늘한 시선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마치 화면 너머에 내가 보이기라도 하듯.

입꼬리를 말아 올린 순간, 화면이 치지직! 하고 꺼졌다.

놈이 발한 기운에 드론이 폭발해버린 것.

“쳇!”

미미와 파프리카가 현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침실로 갔다.

장비를 착용하고, 하야시와 정운석을 데려오기 위해 게이트 생성 스킬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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