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138화 (138/160)

▣ 138화

중국 현장에서 할 일이 모두 끝났으므로 나는 게이트 생성 스킬을 사용했다.

게이트 공간으로 이동한 다음 문 하나를 끌어당겼다.

그것은 바로 루트론 행성 게이트.

문을 열자 예의 삭막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여태 정신을 잃고 있는 중국 S급 헌터들을 한 명 한 명 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마나를 운용하여, 예리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하야시! 다섯 명 추가다!”

내 목소리는 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고막을 터뜨릴 만큼 엄청나게 큰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하야시가 게이트 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모른다.

그저 그에게 닿을 만한 주파수로 목소리를 최대한 멀리 보냈을 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능력이 내게 있는지 알았느냐 하면 설명할 수 없다.

늘 그렇듯 즉흥적으로 떠올랐고, 해보니까 진짜 됐다고 대답할 수밖에.

“이곳은…….”

루트론 게이트 안의 풍경을 본 정운석이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S급으로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능력이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 어려웠다.

오늘 그의 능력을 충분히 보았지만, 아직 자신에게 빙의한 영웅의 능력을 백퍼센트 끌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루트론 행성의 공기는 S급인 그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버거운 것일 수 있었다.

다나카가 나를 따라갔다가 꽤나 고생했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련하고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역시 그에게 빙의한 루트론 행성의 영웅이 미친 영향 때문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듯했다.

이 게이트가 그에게 다소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윽!”

그는 순식간에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하야시! 운석이도 있다!”

그렇게 소리친 다음 문을 닫았다.

나를 돌아보고 황망한 표정을 짓는 정운석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

할 일을 끝내고 나서 손을 털었다.

‘꽤 귀찮기는 했지만.’

“짹짹!”

어깨에서 지저귀는 톤톤즈를 보았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애완동물을 하나 더 되찾았으니 되었다.

귀찮음을 무릅쓸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다시 능력을 발휘하여 미미, 파프리카, 톤톤즈와 함께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175

중국은 진상조사단이 궤멸한 뒤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잠잠했다.

인터넷 기사나 뉴스에도 관련된 소식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특이한 나라라니까?’

S급 헌터가 다섯 명이나 실종되고, A급 헌터들이 떼로 능력을 상실할 정도면 뭔가 말이 나올 만도 한데.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불러서 물어봤더니 류신휘가 그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거품이 빠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무원, 정치인, 경제인들에게 쉴 새 없이 접대를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의 감시가 없는 한국에서 지내고 있으니 마음이 더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딱히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이, 내가 한국 여자를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고 한 것 때문에 본인 스스로는 꽤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었다.

뭐, 그것은 당연히 내 알 바가 아니다.

“제가 내부 소식통으로 들은 바로는 이번 일이 헌터님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자각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신중하게 움직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당연히 지위가 있는 만큼 은밀히 소식을 전해 받는 중국의 소식통 정도는 류신휘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식통을 통해서도 쓸 만한 정보는 흘러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제 아버지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분입니다. 더불어 인내심도 강하시죠. 다음번에는 더 신중하고 강하게 나오실 것입니다.”

“음.”

역시 쓸데없네.

그 정도 예상은 나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중국은 세계의 격변을 맞아 그야말로 힘을 키웠다.

전에도 국력이 약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지만, 통제가 잘 되는 정치 시스템이 변화된 세계에서는 제격이었다고 할까?

그런 장점을 살려 미국을 능가할 정도로 힘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으니.

중국의 거만한 시선은 라이벌 국가인 미국, 그리고 세계를 향해 있었다.

한국은 전혀 안중에 없었을 터.

하지만 이제 그 시선이 한국으로, 더 정확하게 말해 내게 옮겨오게 되었다.

다음에 일어날 일이 만만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나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올 테면 오라지.’

나는 톤톤즈를 되찾으면서 더 강력한 세력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 여덟 명의 S급 헌터들.

놈들을 어떻게 써먹을지도 아직 구상 중이고.

어떤 의미에서 나는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악마에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지금, 내가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상대 쪽에서 먼저 나를 건드려주는 거니까.

그런 식으로 능력을 되찾고 힘을 키우는 것이 꽤 쏠쏠한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부지런해졌다니까.’

이런 생각까지 하는 것을 보면 처음에 비해서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은 람바스의 능력을 깨우치는 이상의 메리트이기도 할 것이었다.

게으름이 전능한 먼치킨이었던 람바스의 유일한 약점이었으니까.

그 약점을 천천히 극복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알았어, 가 봐.”

“네! 알현하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류신휘는 익숙한 태도로-아마도 자기 아버지를 대하던 감각으로 나를 대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고 호텔 방을 나가려고 했다.

“기억하지? 한국 여자 건드리면 죽여버린다?”

찔끔, 류신휘의 등이 크게 움직이기는 것이 보였다.

“하하하. 제가 말씀을 거역할 리가 있겠습니까?”

류신휘를 보낸 뒤에 나는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모바일 게임을 실행시키며 생각했다.

‘묘하게 찜찜하단 말이야?’

중국 쪽에서는 조용하지만, 왠지 모르게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뭐, 이런 거야 예감에 기대지 않더라도 내 앞에서 문젯거리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이번에는 뭐라고 할까?

꽤 구체적인 느낌이었다.

나니까 감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까?

익숙하고도 위험한 기운이 스멀스멀 이 땅에서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감’일 뿐이었으므로, 나는 곧 생각을 떨쳐버리고 게임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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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입니다. 금일 오후 태양 빌딩과 오성 빌딩이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헌터에게 습격을 당했습니다. 건물은 반파되다시피 했으며 사망자는 21명, 중상자는 33명에 달합니다. 각각 태양 클랜과 오성 클랜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자 A급 헌터 박수철 씨와 장오성 씨는 현재 의식불명 상태이며…….

나는 소파에 누워서 게임을 하고 있다가 미미가 튼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고 상체를 일으켰다.

웬만한 일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는 내게 이것은 드문 일이었다.

미미의 표정도 진지했다.

화면에는 반파되었다는 두 건물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이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화면이 비치는 건물 내부 풍경에, ‘정체불명의 헌터’가 남긴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칠게 벽에 그려놓은 문자였다.

일본어로 적혀 있다.

외국어 패치가 되어있는 나는 그 문자를 바로 읽을 수 있었다.

‘람바스.’

그렇게 적혀 있다.

살해당한 사람의 피로 적혀진 문자는 보란 듯이 크게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뉴스에서 그 문자에 대한 건 따로 다루지 않았지만, 메시지를 남긴 장본인이 의도한 것처럼 내게는 충분히 그 의미가 전달되었다.

굳이 태양 클랜과 오성 클랜을 건드린 것만 보아도 빌딩들을 습격한 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람바스를 알고 있지?

조철웅이라면 몰라도 람바스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우리 편이 이런 짓을 저질렀을 확률은 없으므로 ‘사도’가 한 짓이라고 보아야 했다.

하지만 누가?

어떤 사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두 클랜의 빌딩에 들어가 이 정도 타격을 줄 정도면 능력이 만만치 않은 사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헌터에 빙의한 상태로 저지른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능력은 S급이라고 보아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내가 모르는 S급 헌터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심리적 거리가 다소 멀다고 할 수 있는 이희진조차도 사도가 아닌 영웅이 빙의해 있다.

그녀가 이런 일을 저지를 동기 또한 전혀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대체…….’

미미도 신중한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을 뿐, 답을 찾지 못한 얼굴이었다.

“박수철과 장오성은 보지 않았을까?”

다행히 그들은 죽지 않은 것 같다.

내 물음에 미미가 대답했다.

“네,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의식불명 상태라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미 그녀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두 사람의 신변에 대해서 알아본 모양이었다.

뉴스가 흘러나온 지금은 사건이 일어난 때와 시간 간격이 있으니까.

흘러나오는 뉴스로 짐작건대 아마도 박수철과 장오성은 능력을 잃을 정도로 피해를 입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죽지 않은 것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리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강력한 A급 헌터들을 죽이지 못할 만큼 능력이 불완전해서였을까?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며칠 전부터 느끼던 이상한 기운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기운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구체화하고 있으며, 이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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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클랜과 오성 클랜에서 일어난 일은 시간이 지나도 밝혀진 것이 없었다.

사건은 그냥 미궁으로 빠지는 분위기였다.

한국에 S급 헌터가 늘어나며 점점 국격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 많은 사람이 음모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저지른 일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짓이다 등등.

물론 그런 가능성들도 일리가 있고, 염두에 두기는 해야 할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 보아도 전혀 사실무근 같아 보이지는 않으니까.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내 존재를 인지한 사도라면 이런 일을 충분히 벌일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중국이었다.

‘그래도…….’

나는 왠지 이 일이 국가 차원의 테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느꼈다.

벽면에 쓰여졌던 ‘람바스’라는 문자가 그것을 증명한다.

나를 직접적으로 노린 일이었다.

태양과 오성 클랜이 타깃이 되었다는 것도 그렇다.

‘일본어…….’

그것이 페이크가 아니라면 내가 일본에서 한 일과 이 사건을 연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벼락같이 요즘 들어 느끼던 불가사의한 감각의 정체가 떠올랐다.

‘그럴 수가…….’

이 일의 발단은 확실히 나와 연관이 있었다.

내가 일본에서 끝맺지 못했던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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