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새를 보고 중국의 헌터들은 몹시 놀랐다.
새에게서 뿜어나오는 마나가 어마어마하게 강렬할 뿐 아니라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컸기 때문에.
헌터라면 이것을 보고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S급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것.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들, 그리고 바로 뒤를 이어서 S급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두 가지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 것을 보고 그들이 패닉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기회였다.
정운석과 파프리카는 그 전에도 중국 헌터들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고, 톤톤즈가 나타난 이후에는 더 쉽게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나는 원래 톤톤즈를 타고 이곳을 휘저으려고 했다.
정운석과 파프리카만으로는 중국의 ‘진상조사단’을 상대하기 벅찰 거라고 생각해서.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그림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오랜만에 보는 파프리카의 능력이 발군일 뿐 아니라 정운석의 능력도 기대 이상이었던 것이다.
‘하야시와의 훈련이 도움된 걸까?’
물론 정운석의 능력의 태반은 새로 빙의한 루트론의 영웅으로부터 기인한 바가 컸다.
그가 S급 헌터가 된 것도 당연히 새 영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싸움에 임하는 호전적인 자세, 그리고 왠지 모르게 다수와의 싸움에도 특출나게 노련해 보이는 것은 단지 등급이 올랐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파프리카와 정운석이 싸우는 모습은 단순했다.
활을 가진 정운석이 원거리 공격을 맡고 파프리카가 근거리 공격을 하는 것.
둘이서 커다란 마당을 다 커버할 정도로 대단한 호흡을 보였다.
나는 내 사랑스러운 애완 각성수 파프리카의 능력을 몹시 높이 사지만, 지금 보이는 장면의 태반은 정운석의 공이 컸다.
그가 파프리카의 움직임에 맞추어서 전술적인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활이라는 무기는 공격 범위가 넓고 명중했을 때 큰 대미지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근거리 싸움에서 불리하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몸집이 거대하고 재빠른 파프리카를 방패로 삼고 싸우는 것이라면 그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호오…….”
나는 톤톤즈의 머리 위에서 싸움 구경을 하면서 감탄했다.
물론 톤톤즈는 그 존재만으로 중국 헌터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었다.
나야 이 녀석이 오랜만에 만난 애완 각성수이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으로 대하고 있지만, 중국 헌터들에게 톤톤즈는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일 것이기 때문에.
나는 S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에 어느덧 익숙해졌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S급 몬스터는 여전히 재앙 그 자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중국 헌터들에게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정운석과 파프리카의 존재보다 하늘에서 나타난 거대한 새,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듯 공중을 천천히 배회하는 톤톤즈일 것이었다.
어쨌든 모든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서 싸움은 쉽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어?”
그렇게 여유를 갖고 있을 때, 문득 정운석의 등을 노리고 접근하는 S급 헌터 한 명이 보였다.
은밀 기동 능력이 있어서 기척을 죽이고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운석은 미처 놈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
“톤톤즈.”
내가 목덜미를 두드리자 찰떡같이 말뜻을 알아들은 톤톤즈가 강하했다.
“으아아악!”
딱히 공격을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내려오는 거대한 새를 보고 중국의 S급 헌터가 기겁했다.
톤톤즈는 몸이 굳은 놈을 부리로 물었다.
덥석!
우물우물.
톤톤즈는 S급 몬스터이다.
당연히 소화 능력이 일반 몬스터와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톤톤즈가 오랜만에 다시 나타난 만큼 능력을 되찾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파프리카의 예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에이, 지지~ 지지~”
그래서 나는 톤톤즈에게 입에 물고 있는 중국 S급 헌터를 뱉도록 했다.
이놈은 그냥 S급 헌터도 아니고 사도를 품고 있는 놈이었다.
내 귀한 애완수가 배탈이라도 나면 곤란했다.
이놈은 나중에 써먹을 데도 있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S급 헌터를 파프리카가 덥석 낚아채서 으적으적 씹었다.
물론 내 똑똑한 파프리카는 탈 날지 모르는 헌터를 삼키지 않고 적당히 씹다가 뱉어버렸다.
기습을 하려고 했던 중국의 S급 헌터는 톤톤즈와 파프리카에게 연달아 씹힌 다음에 피투성이가 되어 완전히 기절해 버렸다.
이 정도가 내가 개입할 만한 가장 큰 위기였고, 나머지는 별것 없이 싸움이 마무리되었다.
‘역시 대단찮은 놈들이었네.’
류신휘의 말을 들었을 때 어느 정도 감이 왔는데, 역시나 ‘진상조사단’은 중국 헌터 조직 내에서 핵심은 아닌 듯했다.
헌터 쪽 상황이 정리되고 난 뒤에 나는 톤톤즈에게 말했다.
“저 보기 싫은 것 좀 없애버릴까?”
내가 보기 싫은 것이라고 지칭한 것은 진상조사단의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고풍스럽고 크기도 큰 것이, 아마 오래된 유적을 보수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름대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헌터 조직 중 하나의 근거지로 삼은 거겠지.
헌터들만 공격하고 끝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아쉽다고 느껴졌다.
저 건물도 쑥대밭을 내놓아야 습격을 당할 뻔한 분이 풀릴 것 같다.
나는 톤톤즈를 타고 건물로 직행했다.
쿠과과광!-
톤톤즈가 부딪치자 거대한 건물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퍼덕퍼덕 날갯짓을 몇 번 하자 진상조사단의 근거지가 완전히 모래더미가 되어버렸다.
나는 톤톤즈의 등에서 휙 뛰어내렸다.
‘마무리는 귀찮아도 내가 해야지.’
중국 헌터들은 모두 기절하거나 중상을 입어서 바닥을 기고 있었다.
내 눈에는 놈들의 몸 위에 유령처럼 떠오른 사도들이 보였다.
A급 헌터들의 사도는 모조리 죽일 것이다.
다시 말해 괜히 인간 헌터까지 죽일 필요는 없다는 뜻.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능력까지 잃을 헌터를 죽이는 것은 좀 비인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아도 임무를 실패한 책임을 물어 중국 정부에서 알아서 조치를 할 것이다.
능력을 잃은 헌터는 중국에는 더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부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점에서 제거 대상이 될 확률이 크다.
나는 유유히 마당을 휘저으며 사도들을 하나하나 죽여나갔다.
당연히 레벨 업 메시지는 쉴 새 없이 떠올랐다.
A급 헌터들의 사도를 모두 죽인 뒤에 남은 것은 다섯 명의 중국 S급 헌터였다.
나는 사도들이 빙의해 있는 이놈들을 그냥 죽일 생각이 없었다.
갱생시켜서-어차피 불가능할 거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써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테니까.
이미 세 명의 중국 S급 헌터들이 하야시에 의해 게이트 안에서 교육받고 있었다.
거기 다섯 명을 추가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지.
“운석아.”
“네, 주군!”
정운석은 방금 싸움 때문에 많이 지쳐 보였다.
체력적으로 지친 것도 있지만, 마나가 실린 강력한 화살을 쉴 새 없이 날린 탓에 마나가 거의 소진했을 터.
나는 혼자 생각했던 것을 그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지난번에 하야시랑 했던 훈련 어땠어?”
“아, 그것 말입니까?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도를 대하는 눈이 크게 뜨인 것 같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몇 단계는 성장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나는 전에 정운석이 하야시와 훈련을 하고 나와서 바로 S급 헌터가 된 탓에 그 훈련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정운석 본인의 말을 들으니, 그리고 오늘 싸우는 모습을 보고 났더니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야시는 무도에 관한 한은 천재 소리를 들었었고, 일본의 많은 전설들에게 돌아가며 지도를 받았었으니까.
그의 무도를 향한 마음, 그리고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는 내 입장에서는 귀찮을 만큼 진지한 것이었다.
그와 게이트에서 시간을 보내며 치열하게 훈련했으니, 정운석은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했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정신뿐 아니라 싸우는 전략과 기술도 진일보했을 것이고.
‘한 번 더 훈련시키는 것도 괜찮겠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중국의 S급 헌터들은 루트론 행성 게이트에 가둘 생각이다.
그러려면 하야시 혼자로는 무리였다.
힘을 잃고 사기가 꺾였다고는 하나 S급 헌터들이 여덟 명이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정운석도 함께 게이트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중국 S급 헌터들 교육도 시키고, 본인도 하야시에게 재차 사사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파프리카.”
“멍!”
“저놈들을 한데 모아줄래?”
내가 저놈들이라고 지칭한 것은 중국의 S급 헌터들이었다.
지시를 받은 파프리카가 껑충껑충 뛰면서 마당을 휘젓더니 곧 내 앞으로 왔다.
다섯 명의 중국 S급 헌터들이 파프리카에 의해 한자리에 옮겨졌다.
때마침 작은 새 한 마리가 짹짹, 귀여운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그것은 작게 변형을 한 톤톤즈였다.
거대해진 모습이 본모습, 그리고 작게 변신한 이 모습이 람바스와 함께 다닐 때의 모습이었다.
이런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파프리카처럼 람바스가 톤톤즈를 각성수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톤톤즈가 변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몸집이 너무 커서 눈에 잘 띄기 때문.
주인인 람바스와 성격적으로 닮아서 귀찮게 이목을 끄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 성격에서 기인한 또 다른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그 능력을 펼쳐지려는 것을 알고 파프리카와 미미가 눈을 감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정운석에게 말했다.
“운석아, 3초만 눈 감아봐.”
“네? 아, 네!”
파앗!-
톤톤즈의 눈으로부터 뻗어 나간 밝은 빛이 마당 쪽을 향해 분사했다.
이 빛에 노출된 중국의 A급 헌터들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다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특히 하늘을 덮은 거대한 새가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귀여운 몸집에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가 내 어깨에 앉아 몸통을 비볐다.
“그래, 그래. 나도 다시 봐서 기뻐, 톤톤즈.”
나는 초토화가 된 현장을 새삼 둘러보았다.
이쯤 했으면 강력한 경고가 됐겠지.
사건을 진술할 헌터는 없겠지만-A급 헌터들은 기억을 잃었고, S급 헌터들은 내가 데리고 갈 것이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났는지 중국 정부는 알아챌 것이다.
그것은 곧 앞으로 대단히 귀찮은 일들이 일어날 거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일본 헌터들과 그랬듯 중국 헌터들과의 대립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