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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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신휘가 있던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침대에 누워 모바일 게임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은 이렇게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요즘 호텔은 참 좋구나.’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과는 다른 느낌으로 괜찮은 호텔이라는 생각이 든다.
헌터들을 주 고객으로 한다는 호텔답게 감성도 그쪽으로 맞추어진 듯하고.
그런 식으로 새 환경에 적응하여 빈둥거리고 있었더니 거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바로 안 해?”
미미가 중국어로 호통치는 것을 보니 류신휘가 깨어난 모양이었다.
그는 연신 미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허둥지둥하는 모양새로 보아 단단히 교육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슬슬 집에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거실로 나갔다.
거기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내 예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한 시간여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류신휘가 커다란 몸통을 조아리고 미미에게 사과하고 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더니 더 크게 놀랐다.
“히이이익!!”
마치 악마라도 본 표정.
비호감적인 인물이 내게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미미의 작업이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자는 앞으로 우리 말을 잘 들을 겁니다, 주군. 그래도 중국으로 당장 돌려보내기에는 위험 요소가 있어요. 중국은 워낙 큰 나라이고, 만약 우리가 그쪽으로 간다면 사도들의 집중 타깃이 돼 버릴 테니까요.”
나는 그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차라리 여기에 류신휘를 두고 놈들을 끌어들이는 게 좋겠구나.”
“맞아요, 주군. 그게 더 쉬운 방법입니다.”
“오케이, 알았어.”
내가 중국을 오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게다가 아무리 류신휘에게 통제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놈을 중국으로 보내놓으면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중국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외부에서 알아내기 힘든 나라니까.
다시 한동안 미미의 류신휘 교육이 진행되었다.
교육의 요지는 적당한 핑계를 대어 한국에 계속 머물면서 우리 지시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신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이라고 말하며 류신휘를 내 쪽을 향해 납작 엎드렸다.
뭐가 어떻게 되면 나를 신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중국 S급 헌터들을 데리고 게이트에 들어간 동안 미미가 알맞게 교육을 시켰겠거니 생각했다.
‘쓸모가 많겠는데?’
국제정치나 경제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자그마치 중국의 2인자이자 주석을 볼모로 잡아두면 큰 이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헌터부 장관도 우리 쪽 노예고, 지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박혜진도 우리 편이니 류신휘를 이용해 빨아먹을 수 있는 게 많으리라고 여겨졌다.
“또 한국 여자들 건드렸다는 소리 들리면 알아서 해라.”
나는 방에서 나가기 전에 류신휘의 머리통을 톡톡 두드렸다.
“히이이익!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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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여느 때처럼 소파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모바일 게임을 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혹시나 해서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더니 많은 기사가 떠 있었다.
속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그것들은 전부 류신휘와 관련된 것이었다.
-속보! 중국 실세 류신휘, 헌터부 장관 김말중과 회동!
-속보! 한국을 사랑한다는 류신휘,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한중 관계 개선에 힘쓰겠다고 밝혀.
-속보! 류신휘,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이며 특히 존경할 만한 헌터들이 많고, 그중 으뜸은 조철웅이라고 말해.
온 언론이 한목소리로 류신휘와 관련된 기사들을 쏟아냈다.
뭔가 김말중 때, 그리고 일본 S급 헌터들이 귀화했던 일과 오버랩되는 모양새다.
특히 류신휘 기사에 내 이름이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
‘좀 귀찮기는 해도.’
경험으로 안티가 많아지는 것보다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덜 귀찮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잘됐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니까.
중국 실세가 한국에 볼모로 있다는 것은 끝이라기보다는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오후에 소식을 들은 하야시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주군! 중국의 헌터들을 붙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잊고 있었다.
어제 류신휘를 만나러 호텔에 갔다가 중국 S급 헌터 세 명을 게이트에 집어넣었었다.
하지만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들에 대해 서둘러서 조치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저도 놈들과 함께 수련해도 괜찮겠습니까? 놈들에게 확실히 서열을 새겨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응?”
나는 이게 무슨 귀찮은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하야시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매우 들떠 있었다.
‘정말로 수련하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성이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거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류신휘는 아마도 중국 헌터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그들을 상대로 하면 아마 자기가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놈들은 지금 빡센 곳에 있는데 괜찮겠어?”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A급 이상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루트론 게이트에 던져두었다.
“네, 다나카에게 자세히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곳이라면 제 적응력을 기르는데 제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나와는 감성이 다르다.
다나카의 성향으로 미루어 꽤 자세히 설명을 했을 텐데.
오히려 그것을 듣고 의욕을 불태우다니.
“알았어.”
나는 누운 채로 게이트 상자를 꺼냈다.
하야시와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가 루트론 게이트를 끌어당겼다.
“얼마나 있다가 올 거야?”
“한 달…… 아니, 일주일만 있다가 오겠습니다.”
얼마나 수련을 좋아하면 루트론처럼 빡센 곳에서 한 달이나 있고 싶다고 말하는 거야?
본인도 그게 무리라고 생각해서인지 금방 말을 정정했다.
“먹을 것은 있고?”
“네, 수련 기간에 버틸 양식은 충분히 챙겼습니다.”
“오케이. 잘 다녀와.”
나는 류신휘에게 게이트를 열어주었다.
뿌연 방사능이 일렁이는 루트론 게이트.
중국의 헌터들은 어떤 지점을 헤매고 있을까?
S급 헌터이고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별 탈은 없을 것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안쪽의 분위기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야시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상쾌한 얼굴로 게이트 안에 뛰어들었다.
나는 하야시를 게이트 안으로 보내고 나서 핸드폰 알람을 설정했다.
그렇게 해두지 않으면 그를 게이트 안에 보내두었다는 것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아마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모험과 수련을 즐길 그이지만, 잊어버리지 않게끔 최소한의 기억은 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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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신휘가 한국에 온 지 3일이 지났다.
그동안 계속 언론은 그와 관련한 기사를 쏟아냈다.
온 국토가 기대감으로 들뜨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S급 헌터들이 한국에 귀화하고 그 나라에 재앙이 닥친 데 이어, 중국 권력자까지 한국에 와서 이곳을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연한 고무감을 만들 터였다.
‘뭐, 딱히 국익을 따져서 한 일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한국 사람이고 그런 까닭에 이곳이 베이스캠프로 기능하게 된 것뿐이다.
나는 이 나라 저 나라 오갈 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니까.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미미가 썩 반갑지 않은 얘기를 들고 왔다.
“박혜진에게 들었는데요…….”
박혜진이 우려스러운 이야기를 전해왔다고 했다.
요지는 중국에서 진상 파견단을 보내려고 한다는 것.
“진상 파견단?”
“네, 아무래도 류신휘가 한국에 눌러 있게 된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보는 모양이에요. 그는 꼭두각시나 다름없으니까요. 독자적으로 행동하게 된 것을 중국 정부 측에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문제가 생길 줄은 알았다.
아니,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이상하다.
중국을 상대하는 것은 일본을 상대했던 일과는 성격이 달랐다.
그 이유는 일본 헌터들을 상대했을 때 그 중심은 쿠로였으니까.
쿠로는 일본의 정재계를 주무를 만큼 스스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류신휘는 아니다.
아무리 그가 중국과 주변국들을 아우르는 헌터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뒷배경에는 아버지인 주석과 중국 정부가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부하를 건드렸으니 조직이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
직접 만나본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류신휘는 시키는 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본인 욕구를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는 인물 같았다.
당연히 한국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면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다음 일정이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 다 틀어졌으니 중국 측에서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나설 수밖에.
‘골치 아프네.’
한편으로 류신휘를 중국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 미미의 혜안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류신휘가 중국에 돌아갔다면 놈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을 수도 있다.
모처럼 좋은 노예를 얻었는데, 귀찮게 몸을 움직였던 노고가 헛짓이 되어버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항구 쪽으로 들어올 모양이에요.”
“응?”
“진상 조사단이요. 당연히 S급 헌터들이 주축이 될 것이고, 주요 목적은 주군을 만나려는 것을 겁니다. 당연히 이야기만 하려고 오는 것은 아닐 거고요.”
항구 쪽으로 들어온다고?
이 무슨 느와르 영화 같은 전개냐?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제인데 정상적인 절차를 밟으면 안 되는 거야?
하지만 미미의 말대로라면 이번 중국의 진상 조사단의 목적은 단순히 대화를 나누려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들은 나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했을 것이다.
류신휘뿐 아니라 함께 보낸 S급 헌터들도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됐으니까.
일본 쪽에서 일어난 일이 중국을 상대로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처음에는 약간 오만한 방식으로 움직였지만 이제는 더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게 빠르지.”
차분하게 대화만 나누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다.
어차피 싸울 거 말보다는 주먹을 먼저 쓰는 편이 빠를 거니까.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지.”
“네?”
궁금해하는 미미에게 말해주었다.
“우리가 먼저 가서 해결을 보는 게 빠르지 않겠어?”
“아아…….”
미미는 영리한 여자이니만큼, 그리고 나를 잘 아는 여자이니만큼 내가 중국으로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겠다는 말이 아님을 알아들었다.
나는 게이트를 이용할 것이다.
일본에 건너가서 쿠로 헌터들을 궤멸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중국으로 가서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내심 뿌듯했다.
왜냐면 드디어 나 스스로 선제 타격을 하겠다고 생각한 거니까.
물론 거기에는 그 ‘진상 조사단’이라는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귀찮을 거라는 생각이 한몫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