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131화 (131/160)

▣ 131화

167

류신휘와 접촉해 보겠다고 했던 박혜나에게는 금방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전화 받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격이므로 당연히 그 연락은 미미가 받았다.

“아, 알겠어요. 잘됐네요. 주군도 괜찮다고 하실 거예요. 그대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미미는 전화를 끊은 뒤 내게 말했다.

“주군 그쪽에서는 제가 주군과 함께 나가는 것을 오케이했다고 합니다.”

“아, 그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면 사실 만나는 사람을 한 명 정도 늘리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닐 테니까.

게다가 미미는 공식적으로-당연히 제대로 따지자면 미미는 주민등록도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이긴 하지만- 헌터 등급이 A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A급 헌터 한 명이 따라붙어 봤자 그쪽에서는 특별하다고 여길 것이 없었다.

게다가 중국 측에서 성의가 있다면 어느 정도 조사를 했을 거니까.

미미가 나와 가까운 사이이고 나와 함께 사냥을 한 적은 있지만, 그 횟수가 적고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S급인데 굳이 A급으로 등급을 속이려고 할 만한 동기도 없을 거라고 여길 것이고.

류신휘는 중국에서 세 명의 S급 헌터를 데리고 왔다고 하니까 내 쪽에서 가까운 A급 헌터 한 명을 대동하는 것은 결코 문젯거리로 여기지 않을 것이었다.

미미가 부우웅, 하고 울린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덧붙였다.

“혜나 씨가 류신휘와 함께 왔다는 세 명의 S급 헌터에 대한 정보도 보내주었네요.”

“음.”

이것은 조금 관심이 가는 대목이었다.

과연 어떤 S급 헌터들을 데리고 왔을까?

내가 직접 상대할 적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두렵게 생각할 것이 없었다.

그 난다 긴다 하던 하야시도 실제로 만나보니까 나와의 실력 격차가 까마득했으니까.

오히려 그는 내 실력에 감화하여 한국인이 되기까지 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미미가 말했다.

“딱히 따로 말씀드릴 건 없겠네요.”

그녀는 박혜나가 보내준 중국 S급 헌터에 대한 정보를 본 모양이지만, 내게 그것을 따로 브리핑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류신휘가 데리고 왔다는 세 명의 S급 헌터는 대단한 강자들일 것이다.

모든 일이 잘못 돌아간다고 했을 때 한국에는 일곱 명의 S급 헌터가 있으니까 그 전부와 싸우게 될 것을 가정해도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전력을 데리고 왔을 것이 분명하다.

보통의 S급 헌터가 아니라 특별한 강자들이겠지.

그런데도 미미는 내게 그자들에 대해 따로 알려줄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내 상대가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이 이 지구상에 나와 적수가 될 만한 헌터가 있기는 할까?

그렇게 생각하자 당장 몇 명이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기는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다른 세상 이야기인 헌터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귀차니즘이 생긴 뒤로는 더더욱 정보가 귀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지만, 그런 내게도 자연스럽게 소식이 들릴 만큼 유명한 S급 헌터들이 있었다.

그들의 국적은 대개 미국, 유럽, 그리고 러시아이다.

그리고 중국에도 엄청나게 강하다고 알려진 S급 헌터들이 있지만, 그들은 말하자면 전설 속의 무림고수처럼 다른 나라들의 헌터들과 달리 정보가 많지 않았다.

이유는 중국의 모든 헌터는 당국에서 관리하니까.

세상이 바뀌기 전에 중국은 점점 개방적 개방적인 사회 체제로 변화해가고 있었는데, 게이트와 헌터가 출현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부터는 다시 예전의 폐쇄적인 사회 체제로 돌아갔다.

그것이 국익에 더 보탬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실제로도 많은 나라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나라가 중국이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종래는 중국과 미국이 패권을 다투게 될 것이고. 두 나라가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지구의 미래가 밝을 수도 어두울 수도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두 국가가 패권을 두고 다투게 되면 지구의 미래가 굉장히 암울해질 것이고, 두 나라가 협력한다면 두 나라를 과두로 해서 세계가 평화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전망이었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전망이고. 그것은 또 기정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두 나라는 대놓고 싸우지도, 그렇다고 타협을 하지도 않을 것 같다.

지금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들은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고, 그 이득은 앞으로도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할 거니까.

하지만 뭐라고 할까?

중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다.

지구를 장악하게 될 것은 사도들이었고 또 그 뒤에 있는 악마였다.

이 지구상에 나를 포함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진실을 아는 자가 없었다.

지금의 국제 정세도 다 자기들끼리 즐기는 소꿉장난에 불과하다고 할까?

뭐, 어쨌든 그것은 나와 별로 관계 없는 국제 정세의 큰 그림일 뿐이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중국에서 나를 만나러 왔다는 류신휘를 만나주는 일이었다.

엄청 귀찮지만 해야만 할 일이라고 할까?

“언제 만나기로 했어?”

내 물음에 미미가 대답했다.

“오늘 저녁이요.”

아…… 빠르구나.

그리고 역시나 미미는 나를 잘 알았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빨리 해치워버리는 것이 나을 테니까.

내일 만난다고 하면 나는 앞으로 있을 그 귀찮은 일 때문에 계속 신경을 써야만 할 것이었다.

“목표는 그거지?”

나는 미미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네. 세 명의 중국인 S급 헌터를 물리치고 류신휘를 노예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오케이, 단순하구나.

앞으로 할 일들이 다 이것처럼 단순했으면 좋겠다.

“일본은 앞으로 당분간 저대로 놔두어도 될 테니까 당분간은 중국에서 할 일이 많아질 것 같네요, 주군.”

“그래.”

생각만 해도 엄청난 귀찮음이 치밀어올랐다.

중국은 말 그대로 스케일이 너무도 큰 국가니까.

그곳에 있는 S급 헌터의 숫자만 해도 50명이 넘는다고 하지 않은가?

그 밖의 등급 헌터들은 얼마나 더 많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그 대가리를 포획한다면 이야기가 더 단순하고 쉬워질 것이 자명했다.

그런 의미에서도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류신휘를 만나서 그를 노예로 삼는 일이었다.

‘좀 재밌겠네.’

자신을 신처럼 여기고 있고 또 실제로 중국 내에서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는 존재를 노예로 만들다니.

세상에 이처럼 재미있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 그때까지 좀 쉬고 있을게, 시간 되면 깨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네~ 주군, 편히 쉬세요~

168

류신휘가 한국에 올 때마다 묵는다는 호텔은 서울 내에서 내 호텔과 정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호텔을 류신휘가 좋아하는 이유는 영업방식이 조금 특별하게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면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지만, 그 호텔은 불법 영업을 암묵적으로 하고 있는 곳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의 지하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굵직한 거래가 대부분 그 호텔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런 식으로 실적을 올리고 있고, 또 그것이 묵인되고 장소이다 보니- 암거래 이외의 불법적인 일도 대놓고 자행되었다.

이른바 성매매 같은 것.

류신휘는 여자를 굉장히 좋아하니까, 더구나 한국 여자를 특히 더 좋아한다고 하니까 그가 온다고 하면 호텔에서는 그를 위해 특별 서비스를 준비해 놓는 것이다.

호텔 입장에서는 우리 류신휘가 VVIP이기 때문에 그 대접이 극진할 것은 당연했다.

모르긴 해도 류신휘가 한 번 와서 뿌리고 가는 돈도 어마어마할 것이고.

어쨌든 나는 미미와 함께 류신휘가 있다는 호텔로 향했다.

마스크를 쓰고 조용히 호텔을 빠져나갔다.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나는 장비를 전혀 입지 않은 추리닝 차림이었다.

물론 중국의 실세를 만나는 것이니만큼 의상을 제대로 갖춰 입는 것이 좋겠지만, 그딴 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대화를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타협이나 의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고 있으니까 굳이 귀찮게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이것에 대해 미미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옷차림은 굉장히 단정하고 아름다웠지만.

무기도 챙기지 않았다.

그런 것은 인벤토리에 넣어버리면 보이지 않지 않는 것 아니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꼭 그렇지도 않다.

헌터 중에는 상대방의 인벤토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자가 있고, 또 그런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도 있는 모양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하고 쉬운 이야기였다.

류신휘가 그 정도 대비도 하지 않고 내게 장비와 무기를 챙겨 오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니까.

‘개자식이 오라 가라야.’

택시를 타고 서울에 있는 다른 호텔로 가는 거야 크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연락도 없이 한국으로 와서 자기가 용무가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더러 오라고 손가락만 까딱거린 류신휘가 굉장히 짜증 났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그의 외모를 보았을 때 그 짜증스러움이 훨씬 더 커졌다.

그는 50대 남자였는데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말 안 듣는 부잣집 아들내미처럼 생겼다.

말썽만 피우고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않은 상태로 쭉 나이를 먹는다면 그런 인상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은 외모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오죽하면 아버지가 수십 년 독재 중인 중국의 주석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공식 직위도 주지 않고 방치했겠는가?

맏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

각성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실권을 줄 일이 결코 없었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중국 주석은 공식 비공식적인 아들의 숫자만 열 명이 넘는다고 하니까.

류신휘의 각성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중국 주석의 다른 아들들인 것이 분명했다.

뭐, 어쨌든 이런 인물을 상대하는 것이 내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어차피 노예로 만들 바에야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상대로 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겠는가?

택시에서 내리기 전에 나는 ‘근성’ 스킬을 사용했다.

이번 일은 평소의 다른 일들보다도 더 귀찮고 짜증 난다는 점에서 녹근의인집 스킬 중 상대적으로 더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근성 스킬부터 사용한 것이다.

호텔 앞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모두 여자였다.

호텔 직원복으로 코스프레를 한 연예인들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뻤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지탄받게 된 지 꽤 오래된 일이지만 이 호텔에서는 그런 것들이 통용되지 않는 듯했다.

어쩌면 류신휘가 왔다는 것 때문에 그를 접대하는 총력 모드로 들어간 것일지도.

하지만 호텔 직원들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미미에게 미치지는 못했다.

미미는 평소 호텔에 있을 때와는 달리 정장을 갖춰 입고 메이크업까지 했으므로 그야말로 천상의 미모를 자랑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녀 때문에 그녀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다 빛을 잃는다는 느낌이다.

자신감 넘쳐 보이던 직원들도 미미가 택시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움찔했을 정도였다.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최상층에 있는 호텔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