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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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경계해야 하는 국가는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중국이다.
일본은 쿠로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서 아시아를 호령하는 국가가 되었지만, 뭐라고 할까?
일본이 아무리 성장을 한다 해도 아무리 그들 딴에 완벽한 계획을 세워서 실행에 옮긴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중국에 비빌 수는 없었다.
세상에 바뀐 뒤로, 게이트가 생기고 헌터가 각성하기 시작한 뒤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국가들은 면적이 넓고 인구수가 많은 나라들이었다.
왜냐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게이트의 숫자와 각성하는 헌터의 숫자는 면적과 인구수에 어느 정도 비례하기 마련이니까.
더구나 중국과 같은 사회 시스템을 가진 국가에서는 국가가 헌터에 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미국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막강한 힘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자국 출신의 S급 헌터 숫자가 30명이 넘는다.
공식적으로 30명이 있는 것이고, 비공식적으로는 그 두 배쯤 되리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리고 중국 주변 국가들, 즉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국가들의 S급 헌터까지 한다면 그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중국은 일본처럼 굳이 S급 헌터를 귀화시키지도 않았다.
암암리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관리를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게이트로부터 나오는 엄청난 수익을 국가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었다.
계획이고 뭐고 세우는 즉시 실행이 가능하다.
쿠로가 동네 깡패라면 중국 헌터계는 마피아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 중국이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국은 일본과는 차원이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쿠로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전략을 수립하여 그것을 실행해가고 있었다면 중국은 가만히 있어도 덩치가 쑥쑥 불어나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중국 같은 나라가 굳이 한국처럼 조그만 나라에, 특히 세상이 바뀐 뒤로 헌터 약소국이 된 나라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외교에 힘을 썼으면 썼지, 중국이 아쉬울 것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이나마 바뀌었다.
이번에 정운석이 각성하면서 한국의 S급 헌터 숫자는 여섯 명이 되었다.
일단 한국인인 출신만 해도 예전과 숫자가 동일한 세 명이고 거기 추가로 일본의 S급 헌터 세 명이 귀화했으니까.
한국만 한 면적을 가진 나라가 S급 여섯 명을 보유하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
무엇보다 갑자기 S급 헌터 두 명이 죽거나 실종되는 바람에 힘이 약해진 한국으로 잘 나가던 일본의 S급 헌터들이 대거 귀화했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중국에서도 이 사태에 큰 호기심과 관심을 가질 만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조철웅이라는 헌터가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그 중심 대상이 내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
당연한 순서로 중국은 내게 접촉해왔다.
대한민국 정부나 헌터부와는 일절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정부 간의 접선이나 대화는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너희들이 뭘 할 수 있겠냐는 오만한 태도로이고 또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2인자이자 중국 헌터계를 오롯이 손에 쥐고 있는 할 수 있는 류신휘가 내방한다는 소식을 당일에서야 알았다.
류신휘는 중국 주석에 버금가는 권력이 있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애초에 그는 중국 주석의 맏아들이기도 했다.
별다른 커리어가 없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사업을 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부상하여 헌터계를 장악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그가 헌터로 각성했으니까.
세상이 바뀐 뒤로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는 주석의 아들이 헌터로 각성했으니 그 뒤의 일이야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들에게 헌터계에 관련한 권력을 몰아준다는 것은 주석으로서 무척 쉬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헌터계를 장악해야 바뀐 세상의 실질적 권력을 거머쥐는 것이었다.
중국 주석은 아들을 이용해서 광활한 중국 영토 내의 게이트와 헌터들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석의 배후에 두고 있는, 그 막강한 권력자 류신휘가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 정부와 재계는 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접선을 시도했지만 돌아온 것은 냉정한 콧방귀뿐이었다.
실제로 류신휘가 한국에 비공식적으로 들어온 것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그가 한 일은 한국 여자를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의 개인적인 이성 취향이 한국 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한국 방문 목적은 평소와 달랐다.
중국에서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그가 이번에 움직인 것은 국가 이익을 위해서였다.
그렇다는 것은 이번 일의 배후에 주석의 지시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륜신휘의 이번 방한 목적은 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조차도 이런 사실을 전혀 듣지 못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알게 된 것-중국 헌터계의 현실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을 포함해서-은 박혜나를 통해서였다.
중국은 오픈마켓과 지하시장의 구분이 없었다.
모두 국가가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말하자면 류신휘는 중국 내 헌터와 관련한 오픈마켓, 그리고 지하시장을 동시에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한국의 지하시장을 장악하고 아시아 전체 암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박혜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통해서 나를 만나는 것이 더 빠르고 은밀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는 점에서 나와 류신휘는 최소한의 공통점은 있었다.
“그가 한국에 올 때마다 묵는 호텔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군을 뵙자고 하더군요.”
“나더러 오라고?”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뭐라고 해야 하나?
거동이 무겁기로 치면 나는 류신휘에 못지않았다.
물론 류신휘는 거만한 것이고 나는 게으른 것이니 그 동기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쿠로도 그러지 않았는데-그보다 야비하기는 했지만- 감히 나한테 오라 가라 하다니.
사전에 연락 하나 없이 갑자기 와 놓고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는 꼴이었다.
그러면 내가 개처럼 달려가야 하나?
“만나주면 100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제작된 보물급의 장비와 무기도 선물로 주겠다더군요.”
박혜나가 말했다.
알짜배기 아이템들이 거래되고 있는 지하시장에서 한가락 하는 장악하고 있는 그녀인 만큼 류신휘가 나더러 선물한다는 물건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 대해서 설명이 길지 않은 것은 내가 귀찮아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음성이 진지해진 것만으로도 그 선물이 돈 100억 원보다 훨씬 가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필요 없는데.”
돈은 물론이거니와 나는 류신휘가 가져왔다는 메이드 인 차이나 아이템들이 필요 없었다.
우주 최고의 장인 미나가 만들어 준 무기와 장비가 있는데 굳이 다른 것에 눈독을 들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한 번은 만나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나를 설득해 봐라.
어차피 안 만날 거지만.
“류신휘는 사도가 아닙니다.”
박혜나는 나를 설득하기는커녕 더욱 류신휘를 만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말을 했다.
사도도 아니라면 굳이 내가 그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중국의 S급 헌터 대부분이 사도입니다.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 바로 중국입니다.”
“음…….”
젠장, 방심하고 있다고 한 방 맞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지는데.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중국 S급 헌터 중 대다수가 사도일 것이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다.
중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S급 헌터가 사도일 테니까.
당연한 사실을 들은 것 정도로는 내가 건방진 류신휘를 만나러 나가야 하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 사실을 박혜나도 모르지 않을 터였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류신휘는 사도가 아닙니다.”
박혜나가 같은 말을 했다.
두 번 같은 얘길 듣고 나서야 나는 그녀가 왜 이것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도들은 지금 숨을 죽이고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정부나 류신휘도 그들의 정체를 모른다는 사실.
그럼에도 사도들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할지언정 겉으로는 중국 주석과 류신휘의 관리하에 있었다.
나중에는 상황이 달라지게 되겠지만 당장은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류신휘를 지배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곧 중국의 헌터들을 장악할 수 있다는 뜻과 같았다.
한 마디로 이는 천재일우의 기회랄 수도 있었다.
중국처럼 거대한 국가, 그 게이트와 헌터들을 한 번에 지배할 수 있는.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전부 일망타진할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을 감시하고 계획을 방해할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류신휘는 일본이 그런 것처럼 나를 영입하거나 혹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한국에 온 것이겠지만, 반대로 독 안에 들어온 쥐와 같았다.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100억과 선물까지 흔들어가며 나를 만나자고 하는 것이고.
“그래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박혜나가 말했다.
“그는 세 명의 S급 헌터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주군께는 혼자 오라고 청해왔습니다.”
“음…….”
건방지기 짝이 없네.
돈과 선물만 준비했을 뿐이지, 완전 타국의 S급 헌터를 쥐락펴락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혜나가 내 눈치를 보면서 계속 말했다.
“장비는 물론이고 무기도 가져가실 수 없습니다.”
“허허.”
어떤 A급 헌터가 남의 나라에 와서 이토록 뻔뻔하게 굴 수 있을까?
과연 대륙의 스케일!
귀찮은 것도 귀찮은 것이지만 나는 짜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지금처럼 독 안에 들어왔을 때 잡는 게 최선이었다.
나중에 중국을 상대하려고 하면 훨씬 훨씬 훨씬 힘들고 귀찮아질 거니까.
“알았어. 만나지 뭐.”
나는 할 수 없이 대답했다.
도대체가 마음 편히 쉴 수가 없구만.
“그래도 이쪽에도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해줘.”
“뭡니까?”
“한 명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나는 미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옆에 앉아서 차분하게 얘기를 듣고 있었다.
류신휘를 장악하려면 나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된다.
미미의 능력이 필요하지.
“잘됐네요, 주군.”
미미가 편안한 얼굴로 차를 홀짝 마시며 말했다.
이 일도 그녀의 계획에 있었던 일일까?
뭐, 그렇든 아니든 별로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쪽에 주군의 답변을 전달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박혜나도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