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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129화 (129/160)

▣ 129화

새로운 영웅의 능력을 부여할 대상.

내가 떠올린 사람은 정운석이었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를 만나게 된 일도 모두 다 같은 흐름으로 이어진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라면 딱 맞는 그릇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실제로 활을 사용해서 싸우는 타입인지 아닌지는 아직 조사가 부족해서 잘 모르겠지만.

뭐 고작 A급이니까 지금부터라도 새로 배우면 잘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헌터의 능력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일반인일 때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게 아니다.

각성과 동시에 새로운 능력을 깨우치는 것이지.

그런 개념으로 새로 받아들인 영웅의 능력을 흡수하면 될 것이었다.

나는 굳이 훈련을 하러 들어가 있는 하야시와 정우석을 밖으로 나오게 할 생각은 없었다.

딱히 급한 일도 아니니까.

때가 되면 알아서 나올 테니까 그사이에 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되겠지.

말 그대로 요즘 나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항상 이런 식이지만, 이상하게 피곤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든다.

뭐, 내 능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피곤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 일을 통해서 중요한 문제를 하나 해결한 것이기도 하지만, 본의 아니게 개인적으로도 꽤 많이 레벨이 올랐고, 새로운 능력들이 생기기도 했다.

일거양득.

할 때는 귀찮았지만 끝내고 나서의 보람이 크다고 할까?

딱히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고 그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아서 나는 하야시와 정운석이 돌아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굳이 정운석을 그 안에 둘 필요가 없지 않나?

새로운 영웅은 빙의시키면 능력이 거의 리셋된다고 할 수 있었다.

A급과 S급 헌터는 능력이 전혀 다르니까.

어차피 차원이 다른 능력으로 새로 시작하는 것일 텐데 A급인 상태에서 받는 훈련과 경험치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데리러 가기도 귀찮다.

그리고 모든 경험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테니까.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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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 말했던 기한이 다 지나고 나서야 나는 하야시와 정운석을 데리러 갔다.

음식도 제대로 챙겨서 갔고 포션 등 회복 아이템도 충분했을 텐데, 정운석은 그야말로 초주검이었다.

어떤 경험을 하면 사람이 인상이 이렇게나 변할 수 있을까?

그것도 이렇게 짧은 기간에.

그에 반해 하야시는 들어갈 때보다 오히려 상태가 더 좋았다.

얼굴에서 번들번들 윤이 났다.

그에게는 정말로 싸움과 훈련이 체질인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할까?

“어때요? 효과가 있었나요?”

미미의 물음에 정운석이 대답했다.

“네.”

한 마디뿐이다.

그가 원래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긴 악몽을 꾸고 깨어난 사람처럼 여전히 표정이 멍했다.

대체 얼마나 지독한 지옥을 본 것일까?

하야시는 얼마나 그를 몰아세웠을까?

자신에게는 당연한 일이 타인에게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거기까지는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정운석의 훈련은 하야시에게 맡긴 일인 만큼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그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방금 힘든 훈련을 받고 돌아온 정운석은 바로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왜냐면 할 일이 하나 더 생겼으니까.

그것은 그가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을 때 생긴 일이기도 했다.

바로 다나카의 도움을 받아서 태블릿처럼 생긴 기계 안에 담아 둔 영웅의 능력을 부여받는 것이었다.

일단 그를 돌려보낸 뒤 회복하기를 기다린 후 일을 진행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면 내가 귀찮으니까.

긴 설명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냥 소파에 누워있었고, 자세한 설명은 내 방에 불려온 다나카가 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정운석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했다.

이제까지 엄청 신기한 일을 많이 겪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방금 들은 일은 또 금방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적응해.’

나랑 같이 있으면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날 거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모바일 게임을 했다.

“그러니까…… 제가 S급 헌터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다나카의 설명을 비로소 다 이해하고, 게이트에서 나온 뒤의 피로감도 어느 정도 떨친 뒤에 정운석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렸다.

흘긋 보았더니 그의 눈동자가 요동치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렇다면 내가 왜 게이트 안에서 그 개고생을 해야 했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단지 S급 헌터가 될 수 있다는 흥분이 가득해 보였다.

그나저나 정운석까지 S급 헌터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대체 몇 명의 S급 헌터가 있게 되는 걸까?

이 정도라면 거의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일본은 지금 큰 사건을 겪고 나서 복구 중이었으니까, 오히려 지금 상승세에 있는 한국이 더 우월한 상황이라고 봐야겠지.

뭐, 국제사회에서의 국가 간 우열 같은 것에는 나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 의식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정운석 씨 안에는 이미 영웅이 한 명 빙의되어 있으니까요. 두 명의 영웅이 타협해야 하고, 결국은 한 명이 양보해야 할 것입니다. 운이 좋다면 정운석 씨는 두 영웅의 장점만을 흡수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욕심은 버리십시오. 최우선 목표는 S급 영웅의 능력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상과 능력을 텅 비우고 0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역시나 일주일간의 고행은 헛짓이었다.

“알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정운석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라면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탐욕 때문이 아니다.

정의감 때문이었다.

그에게 빙의한 영웅의 사상은 진실로 이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시키려는 것이니까.

나는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그가 가진 이 투철한 정의감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괜찮겠지.’

지나치게 고지식한 점은 오히려 고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흡수될 새로운 능력의 주인도 사상이 올곧기로는 절대 뒤지지 않으니까.

마지막까지 행성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영웅.

나는 정운석이 기존에 자기 안에 담고 있던 영웅과 새로운 영웅이 성공적으로 타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같으니까.

그 일이 성공적으로 되면 이번 일은 다 잘 마무리되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박수철이랑 장오성은 안 됐네.’

그들이 내게 와서 정운석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가 자신들의 걸림돌이 된다고, 그 걸림돌을 제거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영웅이 빙의한 헌터와 사도들이 빙의한 헌터들 간에 누구를 선택해야 될지는 너무도 분명한 문제지.

어차피 박수철과 장오성은 믿을 만한 인물이 못 되었다.

능력은 이용할 만하지만 그들 안에 있는 사도를 생각하면 기회가 있을 때 배신하리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계속 내가 감시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정운석이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한국의 헌터들을 관리해준다면 나로서는 굉장히 편한 일이 될 것이었다.

“그러면 시작할까요?”

다나카가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왠지 이곳에서 굉장히 진지하고도 엄숙한 의식이 진행될 것 같아서.

쓸데없이 피곤한 공기에 휘말리면 곤란하니까 나는 내 침실로 들어갔다.

165

‘어이쿠, 잠들었구나.’

나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반나절 정도 잔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스트레칭을 하면서 침실 밖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그곳에 놀랍게도, 그리고 부담스럽게도 정운석이 앉아 있었다.

혼자 테이블 앞에 두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것이 마치 명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야, 너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어? 무릎 안 아프냐?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무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기다란 활.

그것은 분명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루트론의 영웅 옆에 같이 묻혀 있었던 무기였다.

기척을 느꼈는지 정운석이 눈을 떴다.

“주군 오셨습니까?”

야, 너까지 나를 그렇게 부르기냐?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악마와 싸울 것입니다.”

단호한 그의 눈빛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그가 테이블에 놓인 활을 집어 들었다.

“주신 능력과 기술로 주군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대의를 이루기 위해 주군을 보필하겠습니다.”

아, 그래.

“피곤할 텐데 그만 가봐.”

“감사합니다, 주군.”

정운석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표정과 눈빛은 무척 맑았다.

S급 헌터가 되어서 그렇게 됐다기보다는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잃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가지고 있던 정의감은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목표가 더 명확해진 만큼 의심이 걷힌 것으로 보였다.

나는 침실로 들어가서 잠을 자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정운석에게 S급 영웅을 빙의하는 과정이 결코 짧지 않고, 쉽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쨌거나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다.

한 건 해결!

정운석은 호텔 방에서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이쪽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마침 미미가 나오다가 나가려는 그와 마주쳤다.

“어머, 가시게요? 조심해서 가세요~”

“네, 사모님.”

뭐냐, 그 호칭은.

정정해 주기도 귀찮다.

뭐, 미미가 기뻐하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지만.

새로운 S급 헌터의 출현 사실은 곧 전국에 알려졌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운석이 S급 헌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대단히 기뻐했다.

그는 이미 A급 헌터로 클랜을 이끌던 시절부터 대중에게 크게 인기가 있었으니까.

A급 헌터가 재각성을 통해서 S급 헌터가 된 예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이는 해외에서도 토픽으로 다룰 만한 큰일이었다.

그렇게 세계인들의 관심은 한국의 급부상에 쏠렸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나는 이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관심을 많이 받게 되었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도들이 내 존재를 인지하고 신경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뭔가 흐름이 빨라질 것 같은 기미가 보입니다.”

TV를 보던 미미가 내게 말했다.

그녀는 별로 동요한 기색이 아니었다.

마치 이런 일들도 다 자기 계획에 있었다는 듯이.

“괜찮아요, 주군. 주군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람바스 님이 개척하지 못했던 분야까지도 개척하고 계세요. 그러니까 이것은 저에게 저희에게 불리한 일이 결코 아닙니다.”

람바스마저도 개척하지 못한 일.

그것은 바로 내가 게이트를 열어서 여러 공간들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을 일컫는 것이었다.

미미의 말마따나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람바스마저도 하지 못했던 일.

‘끄응.’

그래도 나로서는 반가운 말이 아니었다.

아직 나는 충분히 부지런해지지 못했단 말이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그리고 미미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뭐, 언제는 내가 준비되고 말고를 고려해가면서 일이 터졌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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