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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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는 자기 방에서 장비를 착용한 뒤에 다시 내 방으로 왔다.
그가 이렇게 장비를 완벽하게 입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뭐라고 할까?
S급 헌터다운 아우라는 부족한 느낌이다.
물론 충분히 강력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 그가 입고 있는 장비 또한 일본에서 만들어진 최고급품이겠지만, 어쩐지 하야시가 풍기고 있는 분위기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S급이라는 점만 떼어놓고 생각하면 전투가 전문인 헌터로 보이지 않았다.
하야시가 현장 요원이라면 다나카는 사무직원 같은 느낌이었다.
뭐, 어차피 나와 함께 가는 것이니만큼 그의 전투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경고를 하기 위해서 그에게 말했다.
“루트론은 온통 방사능으로 덮여 있으니까 조심해요.”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다나카는 얼핏 겁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들어가 보았기 때문에 루튼론 행성이라는 곳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었다.
나도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그곳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발을 딛기 꺼림칙한 곳이다, 그곳은.
다나카는 루트론에 대해서, 그리고 그곳의 역사를 세세하게 알려준 전적이 있는 만큼 그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꿈을 꾸고 직접 발을 디뎌 본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도 웬만큼은 생생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간신히 제가 버틸 수 있을 정도일 겁니다.”
“하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거예요.” 하고 다나카는 S급 헌터가 했다기에는 다소 나약한 말을 했다.
나는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직접 가 본 결과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그 방사능에 오래 노출된다면 절대로 멀쩡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니까.
말하자면 쉴 새 없이 생명력이 깎이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과 같다.
S급 헌터에게는 가공할 회복 능력이 있지만, 대미지를 입는 속도가 회복 속도보다 빠르다면 그것도 소용없게 된다.
그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루트론은.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계획을 무를 수는 없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은 가야 할 곳이었다.
누가, 구체적으로 그렇다고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흐름을 보면 그곳에 방문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 같았다.
만일 오늘 가지 않는다면 또 꿈에 나올 것 같다.
내가 가장 싫은 것이 그 부분이었다.
어차피 그토록 생생한 꿈을 꾸어야 한다면 직접 방문해서 후환을 없애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다나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얼룩무늬 게이트 상자를 꺼냈다.
스킬을 써서 그와 함께 게이트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아…….”
이곳에 처음 들어온 다나카는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먼 곳에 아직 용도가 확정되지 않은 많은 문들이 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는 안의 공간이 확정된 세 개의 문이 있었다.
각각의 색깔이 그곳이 어디인지를 드러냈다.
나는 묻고 싶은 게 한가득이라는 다나카의 얼굴을 보고 선수를 쳤다.
“묻지 마요. 나도 잘 모르니까.”
설명하라고 하면 굳이 못 할 것도 없다는 느낌이다.
질문을 받고 거기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면 저절로 머릿속에 답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것은 귀찮은 일이다.
미나에게 하는 것도 아닌 다나카에게 하는 설명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다소 아쉬운 듯 대답한 다나카는 한 개의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이 바로 루트론으로 통하는 문이로군요.”
“네, 가시죠.”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문 쪽으로 흘끔 시선을 던지자 문이 알아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후우…….”
다나카가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크게 심호흡을 했다.
“들어가서 뭘 해야 할지는 아시죠?”
나는 나도 잘 모르는 질문을 다나카에게 던졌다.
그러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원주민의 생활구역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이 저희의 방문을 반길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할 일이 정해졌으니 이제 문을 열 차례였다.
벌컥,
문을 열자 안으로부터 뜨겁고 기분 나쁜 열기가 뿜어나왔다.
다나카가 얼굴을 찡그렸다.
“예상했던 그 이상이로군요.”
우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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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와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은 열기 속에서 걸음을 옮겼다.
사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이곳에 익숙해지기는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눈앞에 이런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특수능력 ‘대기 면역(S급)’을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신체 회복’, ‘마나 회복’ 속도가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솔직히 이곳의 공기가 답답하다는 느낌보다 눈앞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가 귀찮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이 행성의 환경이 가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악마가 굳이 공략하기 힘들었던 이 행성을 가지려고 욕심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어느새 이 대기도 평범하다고, 한편으로는 익숙해지니까 독특한 맛이 있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당연히 다나카는 아니었다.
그는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뒤에 바짝 붙어서 걷고 있었다.
나를 보호막으로 하면 그나마 이 나쁜 공기에 덜 노출되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가야 하죠? 어디로 가는지 알고는 있어요?”
“저도 감에 의존해서 가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머지 않았다는 느낌만 들 뿐입니다.”
이왕 감에 의존할 거면 당신이 앞장서서 가라고 하고 싶지만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없었다.
그나저나 감이라니.
우리는 약 30분 정도를 걸었지만, 나는 주변 환경이 달라진 것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몬스터들은 쉴 새 없이 나타났지만, 내가 조금 겁을 주면 후다닥 달아나버려서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확실히 달랐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그도 그럴 수밖에, 람바스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탑재하지 않은 몬스터들이기 때문이겠지.
내게 저절로 꼬이지 않는다는 것은 편한 일이었다.
이 몬스터들은 당연히 내게 위협이 될 만큼 강하지 않지만, 당연히 쓸데없는 전투는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았다.
‘하야시라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네.’
그라면 이곳에 와서 큰 성장을 경험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가 나처럼 이곳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어쩌면 미나에게 부탁해서 이곳에 맞는 장비를 따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뭐, 그녀가 내가 아닌 하야시의 장비를 만드는 데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여줄지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미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
미나가 바쁘다면 그녀의 조수로 일하고 있는 우라라에게 맡겨도 될 것이다.
그녀는 미나의 조수를 하기에도 벅찬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먼치킨 개발자인 미나에 빗대어서 그런 것이지, 그녀 자체의 능력만 놓고 보면 충분히 우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미나의 밑에 있으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을 것이 자명했다.
뭐,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은 그렇다 치고.
내 등 뒤에서 ‘감’에 의존해 걷고 있다고 말한 다나카가 갑자기 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저곳입니다!”
이곳의 대기는 무척 뿌예서 시야가 확보가 되어 있지 않은 편이었다.
다만 다나카가 가리킨 방향에서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력을 돋워서 보자 몬스터들이 무언가와 얽혀서 싸우고 있었다.
덩치가 큰 몬스터들에 비해 그들과 싸우고 있는 상대는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 상대가 루트론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몬스터들끼리 얽혀 싸우는 것은 여러 번 보았으니까.
그것을 볼 때는 다나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몬스터들은 저네들끼리 싸우다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달아났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놈들을 화해시켜 준 꼴이었다.
어쨌든 다나카가 평범한 몬스터들끼리의 싸움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을 리는 없었다.
나는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수 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걷는 것은 지긋지긋하다.
레벨 업 메시지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산책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도 이제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여기서 얻은 ‘대기 면역’이나 ‘회복 속도 상승’ 같은 능력들은 두고두고 쓸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면으로 보면 공기 나쁜 행성에 가끔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용건이 없다면 굳이 오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다나카에게 말했다.
“꽉 잡아요.”
“네?”
나는 장비에 숨겨진 기능 중 하나를 발동했다.
등에서 펄럭. 소리를 내면서 커다란 날개가 돋아났다.
다나카는 이제야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얼른 내 허리를 껴안았다.
그러니까 굳이 허리 쪽을 안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일부러 떨어뜨릴 것도 아닌데 이왕이면 어깨나 다리 같은 곳을 잡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남자와의 스킨십이라면 어떤 부위를 통한다고 해도 별로 달갑지 않지만.
펄럭, 펄럭.
어쨌든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알았겠다, 나는 더 걷고 싶지 않은 생각에 단숨에 날아서 그곳으로 이동했다.
가까이에서 보자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과연 몬스터들이 싸우고 있는 대상은 인간형의 작은 개체였다.
작다고는 해도 나와 다나카와 비슷한 정도의 크기,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있어서 오히려 약간은 더 커 보인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곳의 몬스터들이 덩치가 대체로 엄청 커서 멀리서 보았을 때 놈들과 싸우고 있는 게 누구인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일단 높이 떠올라서 장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만 생각했지만, 나는 곧 방호복을 입은 존재들이 루트론인들이 맞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그들 뒤편에 있는 커다란 문이 바로, 그들의 주거지인 지하로 통하는 문이었다.
이 사람들은 문을 지키는 병사들이다.
가끔은 몬스터들이 문 앞에 와서 얼쩡거리는 일이 있으며, 그럴 때는 별수 없이 이렇게 병사들이 나와서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행성이 몬스터들은 죄다 A급 이상이기 때문에 맞서 싸우기가 무척 힘들다.
루트론인들은 나름대로 발달한 기술력으로, 그리고 그들만이 지닌 특별한 능력으로 몬스터들과 싸울 수 있었다.
이렇게 위험한 행성에서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개발된 기술이고, 능력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 그림은 왠지…….
‘위험한 거 아니야?’
싸움의 양상이 몬스터 쪽에 더 유리해 보였다.
이대로면 병사들이 전멸하고 문이 파괴될 위험도 없지 않았다.
내가 꾼 꿈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발생했고, 그 피해는 엄청나게 컸다.
‘도와줘야겠네.’
그게 이곳으로의 나들이를 빨리 끝내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다나카가 굳이 루트론인들이 출현한 곳을 가리킨 곳을 보면 용건은 이곳의 주민들에게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지배자의 손아귀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것으로 커다란 낫을 형상화했다.
유연하게 하강하여 그 낫을 가볍게 휘둘렀다.
써걱-
거대한 몬스터의 목이 아주 쉽게 잘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