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119화 (119/160)

▣ 119화

진심으로 그 말을 하고 있다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게 뭐가 중요하지? 하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사고방식이 저마다 다른 법이다.

다소 비현실적이고 중2병스럽기는 해도 세상을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하겠다! 하고 외치는 헌터도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보면 바보라고 할 수 있지만.’

김말중이 말했듯 현 시대에서 게이트와 몬스터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이미 그것들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개 헌터들이 그 이익 중 많은 부분을 독점하고 있기는 하지만, 관련 산업이 사라지면 당장 실업자가 될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게이트와 몬스터, 그리고 헌터가 세상에 등장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만큼 세상은 크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바꿔놓은 것이다.

정상 클랜의 클랜장이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은 당연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마치 헌터라서 누리는 이익은 무관하게 무조건 정의를 위해서만 활동하겠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은 대한민국 최고 클랜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세속적인 김말중, 박수철, 장오성이 징징대며 나를 찾아온 것이기도 하고.

‘재미있네.’

나는 이 일에 흥미가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미미가 영상을 찾아본 것이나, 그것을 보고 ‘진심’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자를 만나 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보았다.

왜 나를 보는데?

이 자가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가?

내가 직접 만나야 할 만큼?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헌터들의 수준은 대개 S급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대하는 사건 또한 그 정도 레벨에서 이루어진 일들이었고.

물론 김말중 같은 사람을 상대한 적도 있지만, 그는 헌터부 장관이니까 논외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와 직접 대립했다기보다는 다른 일을 처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하고.

미미가 내 성격을 알면서 굳이 이렇게 말한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별로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

상대는 어쨌거나 A급 헌터이니까.

문제가 생겨도, 설령 그가 사도라고 하더라도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럴까?”

나는 김말중, 박수철, 장오성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겁게 바라보고 있는 중에 대답했다.

이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뻔했지만, 왠지 이들의 바람대로는 일이 흘러갈 것 같지 않다는 말이지?

이 정도는 나도 예상할 수 있었다.

뭐, 그래도 착각은 자유이니까.

본인들이 중요한 인물이라고 착각하고 있고, 자신들을 위해 내가 움직여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좋았어! 이제 정운석 그 새끼는 끝이야!”

“감사합니다! 주군! 주군이 직접 나서주신다니 체증이 싹 가라앉습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뭐, 충성까지는 필요 없고, 볼일 끝났으면 얼른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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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는 김말중 패거리가 돌아간 뒤에도 계속 정상 클랜에 대해서 정보를 모으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창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클랜이라고 해도 미미의 정보망에서 빠져 있었다는 것은 좀 의외였다.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 클랜이라는데, 게다가 김말중 패거리가 걱정할 만큼 실력과 잠재력이 높았다.

역시, 이런 쪽의 문제는 사소하기 때문에-대한민국 헌터계를 장악한다고 해보았자 세계적인 스케일로 보면 극히 일부 지역일 뿐이다. 자그마치 지구를 통째로 삼키려고 하는 악마를 상대하는 일인데, 이쪽에서 한국을 장악하는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견지에서 미미의 조사 범위에 한국의 클랜 하나가 빠져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김말중이 알아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고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걸까?

김말중에게는 박수철과 장오성이라는 조력자가 있으니까 확실히 대한민국의 헌터계를 정리하는 정도는 별로 어렵지 않을지 몰랐다.

뺀질나게 TV에만 나오지 말고 일 좀 해라, 이 양반아.

하지만 미미의 정보망에서 정상 클랜이 빠져 있었던 것은 내가 추측한 무엇도 정확한 이유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 클랜이 급성장한 것은 최근 한 달 내에 일어난 일이에요. 그전에도 정운석은 실력 있는 헌터라고 인정받고 있기는 했지만, 누구도 정상 클랜이 이만큼 성장할 거라고 보지는 않았어요.”

“그래?”

한 달 내에 급성장이라니.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만약 그 클랜을 이끌고 있는 헌터가 S급이라면.

S급 헌터가 클랜을 직접 운영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은 차치하고.

하지만 A급 헌터가 이끌고 있는 클랜이 이렇게 급성장을 한다?

그것은 현재는 아주 힘든 일이었다.

왜냐면 이제 헌터계도 상당히 고착화되어 있으니까.

선발주자들이라면 몰라도 하나의 클랜이 창설돼서 기존 클랜들과 경쟁에서 이기고, 더구나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헌터계는 김말중, 박수철, 장오성처럼 실력과 야비함을 겸비한 헌터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부터 S급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골치 아픈 경쟁을 펼칠 필요가 없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물론 내 성격에 그런 것을 했을 리가 없고.

람바스가 내게 준 능력이 S급도 안 됐다면 감히 악마를 상대하겠다거나, 전체 몬스터와 사도가 빙의한 헌터 전부를 상대하는 스케일의 이야기는 성립이 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이것은.

김말중 패거리가 곤란하다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이게 기점이었어요.”

미미는 자기 핸드폰 안에서 영상을 다시 재생시켜보며 그렇게 말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보아 그것이 아까 그녀가 찾아보았던 정운석 인터뷰 동영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귀찮아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영상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게 기점이구나.”

나는 쉽게 납득했다.

어쨌거나 언론의 영향력은 크기 때문에, 무언가 임팩트 있는 사건이 보도되면 갑자기 화제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전에 켂튜브가 나를 소재로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거나, 김말중이 나를 공격하며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했던 것도 그런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왠지 언론 하면 좋은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젠장.

나와 상극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물론 그 뒤에 켂튜브 추가 인터뷰 영상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한 방에 처리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요는 잘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일 터다.

하지만 언론을 이용한다는 것은 S급 헌터인 나나 헌터부 장관인 김말중의 레벨에서나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A급 헌터가 수장으로 있는 클랜이 인기를 얻기 위해 그런 화제성을 이용했다는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정운석은 일반적으로 인터뷰 같은 것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은가?

얘기만 들은 바로 그는 오로지 그의 중2병스러운 목표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성실한 이미지라서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다.

그 정도는 하야시보다 훨씬 심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했고, 그것이 계기가 돼서 클랜이 성장했다라…….’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했다.

미미는 그 얘기가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 인터뷰 전에 정운석이 활동한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지금은 클랜과 길드의 숫자가 부지기수니까 일일이 그 활동이 화제가 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또 전혀 남지 않은 것은 아니라서…….”

미미는 몇 개의 자료를 더 찾아보는 것 같은 모션을 취했다.

이미 찾아놓은 자료를 놓고 정운석의 인터뷰 영상과 비교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달라졌어요. 이 인터뷰 전과 후의 정운석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그래?”

헌터는 성장할 수 있다.

더구나 강력한 몬스터를 위기 끝에 사냥해서 큰 경험치를 얻었거나, 깨달음을 통해 스킬을 얻거나 하면 급성장도 가능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그러고 있으니까.

일반 헌터에게 똑같은 기준을 갖다 댈 수는 없겠지만, 하야시의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도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갑자기 성장했으면 짧은 시간에 아우라가 변화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미미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 안에 무언가가 들어갔어요, 주군.”

거 봐.

들어갔다니…….

일반적으로 인간 헌터의 안에 무엇이 들어갔다고 하면 상상할 수 있는 게 없어야 정상이지만 내 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사도.

방황하는 영혼-미미가 적에게 주박을 걸 때 주로 사용했던-.

그리고…….

“영웅이에요.”

미미가 결론을 내렸다.

숙고와 조사를 거쳐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영웅이라고?”

내가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

사도라면 몰라도 ‘영웅’은 S급 헌터 수준에서 언급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고.

그도 그럴 수밖에, 적의 숫자에 비해 이쪽의 전력은 형편없이 적다.

숫자가 아니라 소수 정예의 능력으로, 그리고 전략으로 승부해야 했다.

그런데 A급 헌터가 영웅이라고 해서, 그게 도움이 될까?

의미 있는 일이야?

그 대답은…….

‘되겠지.’

A급 헌터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지금처럼 본인의 힘으로 클랜을 대한민국 정상 반열에 올린 경우에는 더욱더.

아닌 게 아니라 미미는 김말중과 박수철, 장오성을 움직여 대한민국 헌터계를 완전히 장악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움직이는 말이 그들에서 정운석으로 바뀌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영웅이라니.

순수한 정의를 외칠 만도 했다.

기존 정운석의 성격도 정의로운 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올바른 장소로 찾아가 영웅이 빙의된 거겠지.

“만나볼까요, 주군?”

미미가 내게 다시 말했다.

“제힘으로 영웅이 빙의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어요. 주군만이 가능하시죠.”

“음.”

미미가 하자고 하면 해야지.

내 성격을 완벽하게 알고 필요한 경우에만 움직일 수 있게 유도하니 거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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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와 나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도 정운석에게 영웅이 빙의한 게 아닐까 하고.

물론 그것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니,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다.

정운석을.

예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데 귀찮게 그에게 연락하고, 약속을 잡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쪽에서 먼저 접촉을 해온 것이었다.

한번 만나주십사 하고.

정운석은 정의로운 인물이고, 그것이 진심이라고 가정했을 때, S급 헌터에게 줄은 대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가 일부러 나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에도 흥미가 갔다.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잘 나가는 클랜의 수장이라고 해도 S급 헌터에게 만나자고 하는 것은.

박수철과 장오성도 김말중을 이용해서야 나를 만났지 않은가?

A급 이하 헌터들, 그리고 대다수 클랜, 길드들은 S급 헌터를 만나고 상대하는 일을 오히려 겁냈다.

차라리 자신과 접점이 없는 세계에 있는 대상이라고 애써 무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S급 헌터는 이전 시대의 왕처럼 움직이기만 해도 사방에서 진상이 올라오는 존재였다.

그런데 클랜장들이 본인이 먼저 나서서 굳이 만나려고 하겠는가?

박수철, 장오성처럼 딴마음이 있지 않고서는.

나는 적어도 박수철, 장오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정운석의 딴마음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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