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118화 (118/160)

▣ 118화

150

김말중과 박수철, 장오성은 그들의 관계를 회복했다.

당연히 계기는 나라는 중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딱히 나서서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말중이 내 노예였고-어감이 이상하지만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므로 어쩔 수 없다. 게다가 김말중 스스로도 현재의 위치에 대단히 만족해하는 모습이고.- 박수철, 장오성에게 빙의한 사도도 그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었으므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계획도 이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전과는 모양새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지만.

지난번에는 감히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어서 조종하겠다는. 그래서 그것으로 자기들 잇속을 채우겠다는 계획을 품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내게 종속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자신들의 계획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 움직였지만, 지금은 나를 중심에 놓고 나-정확히 말하면 미미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미미가 김말중을 중심으로 놓고 이행하고 있는 계획은 단순했다.

바로 나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헌터계를 재편한다는 것.

사실 재편이라는 표현 자체가 안 맞기는 하다.

그것은 김철호와 오성택이 살아 있을 때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겠으나 지금은 명실상부 내가 헌터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인물이 되었으니까.

나는 호텔 밖에서 나가지도 않았는데-호텔 안에서 다른 차원도 가고, 일본에도 다녀왔지만- 이런저런 하는 사이에 그렇게 됐다.

결정적인 사실은 일본의 S급 헌터가 자그마치 세 명이나 한국으로 귀화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나와의 우정 그리고 존경심을 이유로 들었으니까.

게다가 김말중은 언론에 필요 이상으로 모습을 자주 비치고 있었고, 누가 시킨 것처럼 맥락과 상관도 없이 나를 찬양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그의 비호감도가 내게 옮겨 오는 악영향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S급 헌터였다.

내가 김말중의 비호감도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보다 그가 내 높은 호감도의 수혜를 얻고 있다고 보는 쪽이 더 맞을 것이었다.

잠재적으로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던 일본이 무너졌다.

S급 헌터들을 신으로 떠받들고 추앙하면서 가득 차 있던 일본의 국뽕이 한국으로 옮겨 온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국뽕의 중심에는 내가 있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런 인기가 호텔에 있는 동안에는 직접 닿지 않아서 좋았다.

마치 첫 정산을 받지 못하고 열심히 활동만 하느라 자기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신인가수 같다고 할까?

그 가수는 나중에라도 자기 인기를 실감하고 몹시 기뻐하겠지만 나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 또 차이점일 것이다.

아무튼 미미가 입안한 ‘조철웅 중심으로 대한민국 헌터계 재편하기’ 계획은 착착 진행 중이었는데, 실무적 관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역시 박수철과 장오성이었다.

뭐, 그들이 평소 하던 일이 그것이었으니까 별로 다를 것은 없다고 하겠지만.

심지어 그들이 하는 일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일처럼 보여서 내가 배후에 있다는 인상을 주지도 않았다.

그만큼 같은 헌터라도 S급의 세계와 A급 이하의 세계가 구분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귀찮게도 잘 활동하고 있던 그들이 나를 찾아왔다.

지난번처럼, 김말중을 앞세우고.

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서 모바일 게임을 하다가 난데없이 원치 않는 접객을 해야 했다.

실제로 접객은 미미가 했고, 엄밀히 말해 이것은 손님이 찾아왔다기보다는 부하들이 왕을 알현한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고전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지역 깡패들이 전국구 보스를 찾아와서 굽실거리면서 떠받든다.

하지만 그 속내는 보스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불편함을 해결해달라는 것이었다.

같은 상황이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 객실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요.”

미미가 죄송하다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마도 그녀는 김말중의 방문 연락을 미리 받았던 모양.

그도 그럴 것이 예전처럼 함부로 찾아올 수 없는 입장이다.

김말중도 박수철과 장오성도.

미미가 그렇게 말한 것은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거실에 있지 않고 침실에 있었을 거라는 뜻이었다.

귀찮은 자들의 귀찮은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귀에 이어폰이라도 꽂고 있어을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당장은 내가 신경 써야 할 큰일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일본의 쿠로가 박살 난 것 이상의 큰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적어도 김말중과 박수철, 장오성이 찾아와서 토로하는 것 정도의 레벨에서는 없었다.

“아이고~ 주군 계셨습니까? 휴식을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나를 발견하고 김말중이 반가운 반, 겁먹은 표정 반으로 말했다.

그도 내 썩은 얼굴을 보기가 불편하겠지만 나도 반갑지 않았다.

내게는 ‘손님’이라는 개념 자체가 항상 귀찮았지만, 김말중은 특히나 얼굴에 야비함이 줄줄 흐르는 캐릭터였다.

이런 자가 대한민국 헌터부 장관이라는 것은 마치 그 자체로 대한민국 헌터계의 부패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게 사실이었기도 하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변했지만, 김말중의 인상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사실 그가 나를 위해 활약하는 방식이 예전 그가 썼던 방식과 달라지지 않았으니 근본적으로 인상이 착해질 일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어, 그래.”

나는 그렇게만 대답하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이들과 직접 대면해야 할 일이 내게는 없는 것 같아서.

하지만 박수철이 대범하게도 나를 붙잡았다.

손으로 잡았다는 것이 아니라 급히 몸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문자 그대로.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잘 나가는 클랜의 수장인데.

뭐, 본질을 알고 있는 나는 그런 그의 태도가 아무렇지 않았지만.

나는 귀찮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중요한 일이 아니기만 해봐라.

“무슨 일인데?”

“그, 그것이…….”

박수철이 말했다.

“주군의 지령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던 저희는 넘기 힘든 난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능력으로 최대한 노력해 보고자 했지만, 주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주군! 귀찮게 해드려서!”

그렇게 큰소리로 죄송하다고 할 거면 문제거리를 들고 나를 찾아오지 말란 말이다.

그런데 박수철과 장오성도 넘을 수 없는 난관이라니.

대한민국에 그런 게 있나?

설마 또 외국 헌터가 한국에 들어왔나?

나는 일단 그게 무엇인지 궁금해서 소파에 다시 앉았다.

이 일이 큰 사건이라면 어쨌든 내 귀에 들어오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해결하기 힘든 일이라면 내 손을 거칠 수밖에 없겠지.

‘또 시작이구나.’

어째 평화의 시기가 지속되는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머지는 김말중이 설명했다.

“정상 클랜 때문입니다.”

정상 클랜?

클랜 이름인가?

뭔가 중2병스러운 느낌이 넘쳐 나는 이름이었다.

태양과 오성 클랜도 그런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정상 클랜은 거기서 한 발 더 나갔다는 느낌이다.

나는 클랜 이름만 듣고 무슨 얘기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헌터계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은 지 오래되었으니까.

태양과 오성은 오래 전에 어렴풋이 들었었지만 정상 클랜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미미가 설명했다.

“정상 클랜은 지금 명실상부 한국의 최고 클랜이에요, 주군.”

그녀의 말에 박수철과 장오성이 움찔, 반응했다.

아마도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다는 반응이었다.

자기들도 잘 나가는 클랜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니만큼 자존심이 있다 이거겠지.

모 사이트에서는 클랜들의 활약상을 집계하여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는 데 그러면 정상 클랜이 태양 클랜과 오성 클랜을 앞지르고 있다는 건가?

나는 의아했다.

태양 클랜과 오성 클랜은 원래부터 잘 나갔지만, 지금은 김말중의 백업을 받고 있느니만큼 더욱 잘 나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성과치가 이른바 클랜 순위에 아직 반영이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추세와 흐름이라는 게 있다.

만약 곧 1위와 2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면 이렇게 절박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을 터.

김말중이 계속 말했다.

단순 사실 전달을 하는 건데도 왜 이리 야비하게 보일까 싶은 표정으로.

뭔가 항상 뒷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다, 이 사람은.

지금은 노예 상태이니 그러려야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정상 클랜은 창설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클랜입니다. 하지만 클랜장의 카리스마로 금방 성장을 했죠. 딱히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도 굉장히 인기가 많습니다. 몇몇 모습이 일반인에게 찍혀서 그게 여러 루트로 퍼졌다는 게 그 이유이기도 하죠. 아무튼 대한민국에 있는 A급 헌터 중에서는 그가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요.”

대한민국 A급 헌터 중에서 정상 클랜의 클랜장이 가장 강하다는 김말중의 말에 또다시 박수철과 장오성이 움찔움찔 반응했다.

귀찮네, 이것들.

사도들이 빙의해 있는 주제에.

“그러면 그 사람을 포섭하면 되지 않나요? 못 해요? 김말중 씨?”

미미가 타박하듯이 김말중에게 말했다.

그러자 김말중이 납작 몸을 엎드렸다.

박수철의 옆에.

이러고 있으니 장오성만 뻣뻣하게 있는 그림이 되어버려서 그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엎드렸다.

진짜 귀찮네, 이 노예들.

“그게, 제가 노력을 많이 해봤습니다만, 어떤 것도 먹히질 않습니다. 돈, 여자, 비전…….”

어휴…….

포섭을 한다고 해도 다 자기 수준의 포섭이구나.

뭐, 헌터계에 비리가 많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일인 모양이니까.

어쩌면 그런 식으로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몰랐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김말중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계시나요?”

“그게…….”

김말중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는 바라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아! 이런 말을 인터뷰에서 한 적은 있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은 사람들이 몬스터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해지는 것뿐이라고요. 게이트가 인류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데, 참 앞뒤 분간 없는 말이죠. 발상이 중학생 수준입니다, 그놈은.”

김말중은 마치 원수라도 된다는 듯이 정상 클랜의 수장에 대해 말을 했다.

근데 그의 말만 들어보면 나쁜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었다.

‘좋은 헌터잖아?’

드물게 이런 순수한 헌터도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A급 헌터가 아무리 순수하고 정의로워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김말중이 말한 대로 지금 세상은 오히려 게이트와 몬스터의 존재에 감사해 하고 있으니까.

그것 없이는 세상이 굴러가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어느새 미미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김말중이 말한 내용을 검색해 본 모양이었다.

자기 핸드폰에서 재생되고 있는 유튜브 영상을 본 미미가 말했다.

“진심이네요, 이 사람.”

그녀가 흥미롭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사람들이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란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고 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