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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114화 (114/160)

▣ 114화

“미나, 안녕.”

“거 봐, 너 때문에 주군 깨셨잖아. 왜 기다리지 못하고 주군을 귀찮게 하는 거야?”

“하지만…….”

미미의 질책에 미나가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풀죽은 표정을 지었다.

너무 사정을 봐주고 오냐오냐하면 앞으로도 계속 귀찮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미나가 본인의 이기심을 채우자고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너그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괜찮아, 미미. 나 다 잤어. 그런데 무슨 일이야?”

미나에게 묻자 그녀가 활짝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보구 말이에요, 주군. 업그레이드 작업이 끝났어요!”

“벌써?”

내가 핸드폰 날짜를 잘못 본 건가?

실은 하루하고 한나절이 아니라 3박 4일쯤 지났다든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침실 밖으로 나오고 싶었던 마음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핸드폰을 바꿀 때가 되긴 했지.

그런데 내가 날짜를 잘못 본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조수가 있잖아요. 이제 자잘한 일은 우라라한테 맡길 수 있으니까 작업 속도가 빨라졌어요.”

“아…….”

그래, 우라라가 있었다.

미나의 말을 듣자 하니 우라라가 나름대로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네.’

쿠로가 저런 식으로 와해된 만큼 우라라도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살길은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아직 그녀는 S급이니까.

일본이 아니어도 여기저기 오라는 나라들이 많겠지.

“우라라는 어때? 적응 잘하고 있어?”

“음…… 제 기준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한 사람 몫은 하게 됐다고 할까요?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어요. 적어도 걸리적거리지 않거든요.”

다른 장인을 평가하는 데 있어 필요 이상으로 냉정한 미나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기대 이상으로 자기 몫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많이 좋아하니까요. 연구하는 거.”

미나가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니 우라라에 대해서는 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다.

미나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녀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본인의 등급과 커리어에 누군가의 조수로 활동한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딜 가도 미나만 한 천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일하면서 영감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할 터.

“그래, 완성했구나.”

나는 미나에게 내 보구의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설명을 듣기로 했다.

일단 미나는 자기가 가지고 갔었던 내 보구들, 즉 장비와 지배자의 손아귀를 꺼내었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다시 침실로 돌아가야 했다.

뭔가 방금 했던 일을 또 한다는 것은 내게 귀찮은 일이었지만 뭐, 이 정도는 허용 범위라고 할 수 있겠다.

혹시 모르니까 ‘의지’의 스킬을 사용하기로 하자.

부악-

좋아.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침실로 가서 미나가 업그레이드를 마친 장비를 입었다.

추리닝을 벗고 그것을 입으려고 보았을 때 적어도 외형에서는 크게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보구는 육안으로 보는 것만으로 그 잠재력을 알 수 없다.

‘지배자의 손아귀’만 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세련된 모양의 장갑처럼 보일 뿐이니까.

이곳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는 절대로 예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장비도 변형이 가능하다는 옵션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안에 새 S급 몬스터에 재료가 추가되었다고 한다면 외형보다는 기능이 추가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음…….”

나는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이전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보구를 손으로 만진 순간 달라진 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장비가 품고 있는 마나라든가 잠재력이라든가 하는 것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이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지금까지 장비를 제작하는 데 재료로 들어갔던 S급 몬스터보다도 이번에 일본에 나타나 쿠로 헌터들이 사냥한 세 마리 S급 몬스터들이 훨씬 강한 종이었으니까.

업그레이드되었다면 기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아우라를 품게 되었다는 게 당연했다.

그 차이가 몇 배에 달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으음.”

나는 옷을 갈아입는 게 다소 귀찮다고 느끼고 있다가 달라진 장비의 잠재성을 느끼고는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장비는 헌터에게 큰 역할을 한다.

장비를 입고 안 입고에 따라서 전투력이 엄청나게 차이 나니까.

그런 의미에서 미나는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나게 소중한 부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만 한 천재가 내 옆에 붙어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나는 보구를 몸에 착용했다.

“아…….”

헌터 장비를 착용하면서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착용감부터가 달랐다.

몸이 무척 편안하다고 할까?

어떤 의미에서는 추리닝보다도 편했다.

이 장비의 기본 소재는 굉장히 신축성 있고 편안했다.

몬스터 재료가 주재료로 사용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미나라는 초일류 장인의 손을 거치면서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섬유보다도 더 편안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이 상용화되면 패션 업계에 굉장히 큰 파장을 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이런 것은 절대로 대중성 있는 소재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일반인은 몬스터 사체로 만든 가죽 같은 것은 입기 어려우니까.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수준의 가공을 거쳐야만 하고 거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물론 그것을 감안하고 몬스터 사체로 만든 옷을 입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장비를 입고 편안하다고 느낀 것은 단순히 소재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이 품고 있는 마나가 내 것과 잘 호응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약간 거친 느낌은 있다.

그것은 기존과 다른 이질적인 마나가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으로 보았을 때 이 장비가 내가 가진 막대한 마나를 자극하여 그것을 기분 좋게 끄집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장비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내가 람바스의 엄청난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보구가 아무리 훌륭해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는 성립할 수 없다.

말하자면 이 장비와 나는 함께 성장을 하면서 서로 시너지를 내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아, 좋구나…….”

나는 장비를 입어 본 뒤 일본에서 벌인 이번 작전이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주목적은 보구 업그레이드가 아니었다.

일본 쿠로 헌터들에게 한 방 먹이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만약 미나가 만든 레몬색 게이트 상자를 통해 일본으로 가는 문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이 작전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보구 업그레이드는 이번 일에 대한 보너스인 셈이었다.

보너스치고 엄청 큰 소득을 얻은 느낌이지만.

미나가 만든 장비는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을뿐더러 여기에 사용된 몬스터 재료만 하더라도 이미 시중에 있는 어떤 장비보다도 고급 재료들이 쓰였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번에 일본에서 출몰한 몬스터들의 사체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었다.

그중에서 첫손에 꼽을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장비 제작사들이다.

새로운 S급 몬스터가 출현하고, 그것이 사냥되면 그것을 재료로 새로운 장비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니까.

1티어 장인들이 사냥 중계를 보면서 그것을 엄청 고대하고 있었을 텐데, 사체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몰랐다.

물론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사체 추적에 나설 것이다.

결국 일부 재료들이 그들 손에 들어갈 것이고.

암거래 시장에서 출처에 대한 꼬리가 전혀 잡히지 않게 된 뒤에.

그리고 그때쯤이면 안달이 난 수요자들로 인해 프리미엄이 붙어서 가격도 엄청 뛰겠지.

장비를 입은 나는 이번에는 ‘지배자의 손아귀’를 소에 끼었다.

우웅-

이것의 느낌도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말 그대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장비를 입은 다음에 이것을 착용하니까 전에 미나가 처음 S급 몬스터 재료를 이용해서 장비를 만들어주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을 느꼈다.

이른바 시너지 효과.

두 개의 보구가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의 기능을 보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너지가 더 확실해지고 더욱 커졌다.

역시 미나는 일본에서 공수해 온 S급 몬스터들의 사체 재료를 낭비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우라라가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작 기간을 앞당기는 데 일익을 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뭐, 지금은 딱히 이 장비를 입고 싸워야 할 상대가 없으니까 제작 기간이야 크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것으로부터 얻은 느낌을 토대로 추가된 기능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 느낌을 좇아 이른바 ‘집중’을 하면 새롭게 추가된 기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보다도 이 장비를 제작한 사람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여겼다.

그녀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있을 거니까.

나는 장비를 입고 침실 밖으로 나갔다.

“와아…….”

미나가 나를 보고 감탄사를 토했다.

사실 외견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그녀가 딱히 이런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녀가 만든 장비인 만큼 내 눈에는 몰라도 그녀 눈에는 보이는 특별한 게 있을지도 몰랐다.

“어떤 게 업그레이드됐는지 알려 줄래?”

“네, 주군!”

내 물음에 미나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

“일단은 시타부스 사체로부터 얻은 효과부터 말씀드릴게요.”

미나가 내 다리 쪽을 보면서 말했다.

“이 재료의 효과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하체 근력 강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달리기를 잘하게 됐다는 거야?”

“네, 그건 당연한 거고요. 하지만 주군은 하늘을 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보면 달리기가 빨라지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낮아 보일지 모르지만, 전투 상황에 따라서 분명히 하늘이 아닌 땅에서 스피드를 올려야 할 경우도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이 재료의 효과는 단지 스피드만 올리는 데 국한된 것이 아니에요. 말 그대로 하체 기능을 전반적으로 강화시켜 주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재료의 중요한 효과가 바로 심장 강화에요.”

“심장이라…….”

나는 미나가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하체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강조하는 것을 보니, 쉽게 말해 하체를 이용해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 그리고 기술이 덩달아서 모두 강해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단하게 말하면 발차기를 했을 때 위력이 훨씬 강해진다는 거겠지.

그리고 대부분 신체적인 움직임의 근원은 하체 힘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내 전반적인 근력과 운동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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