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지금 나타난 사도들의 모습은 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특히나 히로키의 사도는.
모양이 흐릿한 것이 제대로 이목구비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마치 스스로 의도를 가지고 자기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것처럼.
나는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렴풋한 예감이라서 뭐라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하야시는 사도를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는 별말 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복잡한 설명을 그에게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것은 나중에 미미가 알아서 할 것이다.
하야시는 적응력이 좋은 것 같다.
무투가 타입이라고는 하지만 머리가 굳은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무도를 익히는 것 말고는 다른 데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헌터 위로 유령이 솟아오르는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히로키의 사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 명의 사도는 이제까지 보았던 사도와 외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히로키의 사도는 둥실둥실 가만히 떠 있었다.
놈이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내 좋지 않은 예감은 사실로 드러났다.
바로 그 희뿌연 형태를 한 사도가 갑자기 행동에 돌입한 것이다.
그는 자기 손으로 히로키를 죽여버렸다.
두루뭉술한 유령 꼬리 같은 것이 길어져서 히로키의 목을 감싸더니 꽉 하고 졸라버린 것.
뚝 소리가 나더니 히로키의 목이 부러졌다.
그의 얼굴이 보랏빛이 될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너무 빨리 일어난 일이라서 뭐라고 반응하기 어려웠다.
당황한 사이에 히로키의 사도가 사라졌다.
스윽-
마치 공기에 녹아 없어지듯이.
히로키의 사도가 그런 것처럼 나머지 두 명의 사도도 똑같이 행동을 했다.
본체를 죽이고 사라진 것이다.
마치 현실에서 그런 것처럼, 히로키가 명령을 내리고 나머지 두 명의 S급 헌터가 명령을 따르는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비록 이제 히로키는 세상에 더 존재하지 않지만.
본체를 죽이고 모습을 감추다니.
이미 쓸모가 없는 본체라고 생각했던 걸까?
물론 힘든 전투를 치르면서 그들은 무척 지쳐 있기는 했다.
만화가 소진되고 체력이 바닥이 다 싸울 수 있는 여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S급 헌터인 만큼 시간을 두고 회복하면 충분히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다른 것이다.
우리가 앞에 있으니까.
히로키의 사도 같은 경우에는 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들 힘으로 나를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까지 사도들이 자기가 빙의한 본체에 들러붙어 있는 것만 보았다.
그들이 본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은 것이다.
“이건 그냥 도망간 거 맞지?”
미미에게 문자 그녀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사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아요. 저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실력 있는 사도들이니까 가능한 일일 거예요.”
나도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런 게 아무나 가능한 일이었다면 이미 앞선 경험에서 한두 번은 더 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쳐 버렸네…….’
우리 눈앞에 놓인 것은 히로키와 쿠로 헌터 두 명의 시체뿐이었다.
그들이 목이 부러져 죽어 있는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오늘 출연한 S급 몬스터들, 특히 마지막에 출현한 파니카 같은 경우에는 헌터의 목을 조르거나 하는 방식으로 공격하지 않으니까.
이런 부자연스러운 사체는 많은 추측을 남길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 사체를 없애버린다든가 아니면 그냥 변형시킨다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나도 어디까지나 인간인지라 사체를 훼손하는 일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히로키와 쿠로 헌터들이 사도가 빙의하지 전부터 안 좋은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알겠지만-그게 일반적이라고 하니까- 그래도 이들이 이만큼 큰 스케일로 나쁜 짓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안에 사도가 빙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흉은 사도들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해코지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히로키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음…….”
하야시가 먼 곳을 보았다.
나는 그가 그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직 먼 곳에 있기는 하지만 드론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그래, 아직 추가로 날려 보낼 드론 같은 것은 남아 있겠지.
나는 이 꺼림칙한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고찰하기로 하고 일단은 하던 일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파니카의 사체를 회수하는 일.
방금 전에 찝찝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몬스터 사체를 해체하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각자 나름대로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도들을 놓쳐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도망가서 다른 본체를 찾아 다시 행동을 재개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멀리 가지는 못할 거예요. 사도는 본체가 없으면 생명 활동에 지장을 받는다고 알려졌으니까요.”
미미가 말했다.
그녀의 말을 토대로 하면 히로키와 나머지 두 명의 사도는 일본에서 다시 본체를 찾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쿠로의 활동은 이제 크게 위축되겠네요.”
미미는 애써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수장인 히로키가 죽고, 이번 일로 조직이 심대한 타격을 입었으니까.
이제 쿠로 내 S급 헌터의 숫자는 넷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탱커 세 명과 힐러 한 명만.
사냥하는 장면에서 보았던 걸 따져보면 그들은 실력이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히로키의 명령을 받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되어야 했을 정도로.
그들의 쿠로 내에서의 입지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그들의 목숨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졌지만.
이것으로 이웃나라의 성가신 적들에 대한 문제는 거의 일단락이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도망간 사도들이 마음에 걸린다.
놈들은 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이 내게 어떤 불리한 후폭풍으로 작용할지 몰랐다.
‘살려두면 안 됐는데…….’
다음번에 같은 상황을 만나면 나는 손을 더 빨리 움직여야겠다는 생각했다.
사체 해부와 재료 회수를 마친 우리는 한국으로 복귀하기 위해 차원의 문으로 갔다.
우리가 사라지기 직전에서야 멀리 추가로 지원된 드론들이 반짝반짝,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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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텔 방으로 돌아온 뒤에 푹 잠을 잤다.
히로키의 사도를 놓쳤다고는 하지만 뭐, 이제 지나간 일이니까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놈이 상대하기 버거운 적이었다면 내 앞에서 그렇게 꼬리를 말고 도망가지도 않았을 거니까.
대신 내 존재를 놈이 꿰뚫어 본 것 같다는 꺼림칙한 기분이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그래도 따지고 보면 놈이 내가 람바스의 유지를 이어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봤다는 보장도 없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 정도를 느끼고 내가 강한 헌터라는 생각은 했을지 몰라도.
설마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내 안에 람바스의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흐릿한 모습으로 물끄러미 서 있었기 때문에 놈이 나를 알아보고 꿰뚫어 보고 있다는 착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는 애써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찜찜함을 떨쳐버리기로 했다.
사도들은 몬스터와는 다르다.
몬스터들은 거의 본능으로 내 안에 있는 람바스를 알아보는 모양이지만, 사도들도 같은 식으로 반응했다면 진즉 여기저기서 이상한 움직임들이 있었을 것이다.
‘뭐, 그런 것이지.’
나는 사라진 사도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일단 그들이 다시 본체를 찾아서 각성을 하고 일을 다시 꾸미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거니까.
나는 외부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싹 차단한 채로 푹 잠을 잤다.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이런 경우에는 꼭 몸이 피로해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 휴식은 심리적인 이유였다.
귀찮은 일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했으니까, 그만큼의 심리적인 보상을 받아야만 했다.
미미도 내 성격을 알기 때문에 당분간은 간섭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2박 3일 동안 침실에서 나오지 않고 자고 게임 하고, 자고 게임 하고를 반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람 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만은 안 되는 법이지.
내가 내 휴식 계획을 하루하고 한나절 정도 실행에 옮겼을 때,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게으름의 레벨이 차곡차곡 올라서 그동안 꽤 부지런해졌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방 밖에서 들려왔다.
“주군…… 주군…… 혹시 일어나셨나요?”
“미나야, 주군 깨우지 말라고 했잖아.”
그것은 미나가 찾아와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뒤이은 목소리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그녀를 미미가 타박하는 목소리였고.
그나저나 요즘 미나 너 나한테 너무 자주 찾아오는 거 아니냐?
게이트 상자 건도 이렇게 빨리 연구가 마무리될 만한 일이 아닐 건데?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가 나를 찾아올 만한 용건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바로 보구 업그레이드 건이었다.
나는 내 장비를 벗어놓고 침실로 들어와 쉬고 있었다.
보구는 바깥에 두었다.
이미 이야기 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세 마리의 몬스터로 출현시키고, 놈들을 사냥해서 얻은 재료로 보구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쓰고 남은 것들은 암거래 시장에 팔아서 돈으로 바꿀 것이었다.
물론 이 거래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일본에 무라페이, 시타부수, 파니카 세 마리 S급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암거래 시장 거래 문제는 전문가인 박혜진이 있어서 크게 걱정할 건 없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몬스터 사체가 사라졌다는 것,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체들이 도륙된 채로 중요 부위들이 다 사라져 있었다는 것이 크게 화제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
물론 히로키를 포함해 S급 헌터가 세 명이나 죽었다는 것이 그런 이상 현상에 대한 관심을 덮을 만큼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신이 세 명이나 죽은 것이었다.
‘일본은 난리도 아니겠구나.’
그동안 개수작을 부리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패권을 휘둘러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쌤통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리고 내 목숨을 여러 차례 노렸다는 점에서, 이번에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앞으로도 계속 내게 집적거렸을 거라고 생각하면 동정심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미나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잠을 잘 수 있었지만, 그리고 바깥에는 미미라는 조력자가 있어서 안달 난 미나를 컨트롤해 주기는 하겠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침대에만 있기 좀 지루했던 참이니까.
이 심리적 보상에 대한 마인드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보면 확실히 내가 변해가고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미나가 내 장비를 어떤 식으로 업그레이드할지 그것이 흥미롭기도 했다.
나는 추리닝을 입고 침실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