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쿠로의 S급 헌터들은 추호도 모르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 두 마리 S급 몬스터가 출몰한다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세 번째가 출현할 거라고는 1억분의 1도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도 작업하는 방식은 같다.
내가 먼저 쿠로 헌터들이 있는 곳과 좀 떨어진 장소에서 몬스터를 불러냈다.
파니카.
콰지지지직!
엄청난 전격이 번쩍거렸다.
여명이 솟아오르는 시간에 맞추어 불길한 기운이 담긴 번개가 정신없이 내리쳤다.
이어서 바닥에 생기는 거대한 싱크홀.
갑작스럽게 일어난 반응을 현장에 남아 있던 S급 헌터들이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이미 두 번이나 S급 몬스터가 출현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속에는 저절로 연상되는 것이 있을 것이었다.
설마, 설마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그래, 그 설마 맞아.
세 번째 S급 몬스터에 출현했다.
공룡을 닮은 거대한 몬스터 파니카의 몸에서 전류가 번뜩였다.
압도적인 위용은 마치 마신이 강림한 듯했다.
무라페이와 시타부스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이 몬스터는 그야말로 상위 종에 분류되는 놈이었다.
고고한 태도로 모습을 보인 거대한 파니카가 시선을 깔아 밑을 보았다.
어둠 속에 놈을 향해 기척을 쏘아 보내고 있는 나를.
쿠구궁, 파직, 파직, 파직,
내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처럼 놈의 몸뚱이가 번쩍거리면서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놈의 내부로부터 강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참고로 파니카는 마치 거대한 전지처럼 자신의 내부로부터 에너지를 끌어낸다.
그리고 놈이 적을 공격하는 방법은 아주 심플하다.
입을 쩍 벌리고 내부에서 모은 엄청난 전격을 주둥이로 쏘아냈다.
이미 초토화가 된 일대에 넓은 범위의 전격 폭풍이 무자비하게 쏘아진다.
쩌어어어엉--!!
그것은 광범위한 지역을 완전히 휩쓸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시타부스 때 그랬던 것처럼 기척을 감쪽같이 감추고 몬스터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파니카를 상대해야 될 것은 내가 아니다.
당연히 일본이 자랑하는 신들 쿠로의 S급 헌터들이었다.
그들이 파니카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에-그리고 드론이 다시 한번 벌떼처럼 몬스터와 쿠로 헌터들을 쫓아갔을 때- 하야시와 미미는 시타부스 사체 해체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도와줄게.”
나는 이번에도 미미를 도와서 함께 몬스터 사체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파니카가 있는 곳에서는 엄청난 굉음들이 들려왔다.
절망에 찬 헌터들의 비명도 들린다.
‘괜찮으려나?’
아무리 적이라도 이쯤 되니까 약간은 동정심이 들었다.
특히나 좀 전에 고생했던 탱커들은 정말 가까스로 살아남은 느낌이었는데.
‘에라, 모르겠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놈들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우리 세 사람은 시타부스의 사체도 오래지 않아 해체를 끝냈다.
값나가는 부위를 대부분 챙겨서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에 우리는 교대로 잠을 자기로 했다.
나는 앞서 꽤 오래 잠을 잤었기 때문에 미미와 하야시부터 재우기로 했다.
그들이 푹 잘 수 있도록 나는 TV를 음소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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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주군. 일어나세요~”
나는 미미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교대를 통해 잠이 잔 나는 소파에 누워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달고 편안하게 잠을 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보면 나는 적을 공격하는 쪽에 심리적 만족감을 크게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그런 것에 귀찮음을 덜 느끼는지도.
아니면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놈들이 나를 집요하게, 그리고 재수 없게 공격해 왔던 것을 되갚아줄 수 있어서 그만큼 기분이 좋은 것일지도.
“어떻게 됐어?”
나는 눈을 비비면서 물어보았다.
“이제 거의 끝났어요. 보세요, 주군.”
미미가 TV 모니터를 가리켰다.
하야시는 턱을 괴고 시큰둥하게 화면을 보고 있었다.
뭔가 쿠로 헌터들이 싸우는 모습이 그를 실망시킨 것 같다.
특히나 히로키가.
화면 안에 보이는 장면은 스펙타클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완전 초토화된 현장에 단 세 명이 헌터만이 남아 있었다.
히로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뒤늦게 외국에서 온 헌터들이었다.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인 걸 보니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현장에 도착한 모양이고.
아무튼 남아 있는 세 명은 완전히 탈진해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불안한 얼굴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뻔했다.
또 한 마리의 S급 몬스터가 나오면 어떡하나 하고 불안한 것이겠지.
“나머지와 헌터들은 어떻게 됐어?”
“그들은 반주검이 되어서 후송되었어요.”
아, 죽지는 않았구나.
만약 죽어버렸다면 약간은 뒷맛이 좀 썼을지도 모른다.
직접 내 손을 통해 죽은 것은 아니니까 뭐, 결과적으로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작전에 주 타깃은 히로키였다.
그런 것치고 히로키가 끝까지 현장에 남아 있다는 것은 조금 불만족스러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적어도 이쯤은 되어야 내 목숨을 여러 번 노린 적이라고 할 만하지만.
고질라를 닮은 거대한 몬스터 파니카는 현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리고 숨을 미약하게 헐떡거리고 있다.
히로키를 포함한 세 명의 쿠로 헌터들은 거의 다 사냥을 끝낸 몬스터도 마무리 짓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다 한 것이었다.
‘저것도 챙겨야지.’
따지고 보면 파니카의 사체가 가장 귀하다고 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희귀한 종이 얻을 수 있는 것도 많거든.
특히나 미나가 이놈은 꼭 리스트에 넣고 싶다고 말을 했었다.
물론 그녀가 오늘 일본에 출현시킨 몬스터들의 리스트를 뽑은 것은 이것들이 내 보구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중요한 재료로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쓰일지는 나중에 미나가 작업한 결과를 보면 되니까 당장은 궁금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세 몬스터의 특징을 보면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 짐작하기 어렵지도 않고.
“가자.”
나는 ‘게이트 생성’ 스킬을 이용해 미미, 하야시와 함께 일본으로 갔다.
이것이 오늘 마지막 일본 나들이가 될 것이었다.
현장에는 드론도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다.
당연히 드론들은 사냥이 진행되는 중에 기능을 상실하거나 파괴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런 경우 여러 방송사에서 추가 드론을 날리기도 하는데 이번엔 워낙 전례가 없던 일이라서 남아 있는 드론이 얼마 되지 않았다.
S급 몬스터가 세 놈, 그것도 엄청 강한 놈들이었으니까.
허공에 있는 드론은 서너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하야시가 처리했다.
검기를 촥촥 날려서 쉽게 낙하시켰다.
이곳으로 송출되는 방송도 중단됐겠지.
이곳의 상황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세계인들은 답답해할 것이다.
사람들이 기대할지도 모르거든.
또 S급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당연히 오늘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은 세계 토픽감이었다.
남은 드론이 없으므로 아무도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었다.
이곳에 남은 세 명 말고는.
히로키 앞에서,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거의 기절하기 일보 직전인 두 명의 쿠로 헌터들 앞에 섰다.
히로키가 나를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그는 나를 마치 유령을 보듯 보더니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내 옆에는 하야시가 있었다.
히로키는 하야시를 보고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마치 나보다는 하야시에게 더 원한이 많은 얼굴이었다.
“잘 있었습니까?”
하야시가 별 관심도 없다는 투로 말했다.
“하야시…….”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히로키가 말했다.
그가 입고 있는 장비는 완전히 너덜너덜해져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듯했다.
아직 미약하게 숨이 남아 있는 파니카는 미미가 마무리 지었다.
그녀가 해체용 칼로 몬스터의 심장을 찔러서 숨을 완전히 끊어 놓은 것.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몬스터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하야시가 말했다.
“제가 말했었죠?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가 검을 꺼낸다.
나는 이 둘 사이에 있었던 세세한 사정을 모르지만, 아마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하야시와 히로키가 근래 모종의 대화를 했었다는 사실, 그리고 분위기로 보건대 하야시는 히로키에게 또 수작을 부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었던 모양이었다.
하야시가 한국으로 귀화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우라라 사건도 있었으니까, 히로키는 나와 하야시를 내버려 두지 않은 셈이 된다.
히로키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었다.
그도 그럴 만했다.
차라리 S급 몬스터가 한 마리 더 나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야시, 그리고 내가 그 앞에 나타났으니까.
지금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일 것이다.
“어떻게 너희들이…….”
히로키가 공포에 질려 있는 사이 그 옆에 있던 쿠로 헌터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학 습득이 완료된 모양인지 한국어를 잘했다.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한국에 있어야 할 우리 세 사람이 갑자기 현장에 나타났다는 것도 그렇지만 너무나 절묘하지 않은가?
이 상황, 이 타이밍이?
히로키도 이제야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이거…… 너 설마…….”
그는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자신이 준비한 비장의 수가 모두 빗나가고, 나를 해치우라고 보낸 쿠로의 헌터들이 역으로 모두 한국으로 귀화해 버렸으니까.
이런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철웅이란 헌터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과연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인지.
“주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검을 손을 쥔 하야시가 말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는 가차 없었다.
얼마 전까지 자기가 몸담았던 조직원들이고, 한때 자기와 같은 국적을 가졌던 헌터들인데.
그런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자 당연한 현상이 일어났다.
히로키와 나머지 두 명의 쿠로 헌터는 현재 전투 능력을 거의 상실해 있었다.
그래서 본체가 핀치에 몰렸을 때 예의 그런 것처럼, 세 명의 위로 유령처럼 사도들이 나타난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사도 도감이 펼쳐지려고 했고, 나는 그것을 덮어서 집어넣어 버렸다.
당연히 S급 헌터들에게 빙의되어 있던 사도들인 만큼, 그리고 그들이 해낸 일이 꽤 그럴듯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서열이 높고 강한 사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히로키에게 빙의된 사도는 더 그럴 것이고.
그래도 나는 이 사도들에 대한 정보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것보다는 그들이 과거에 했던 행위가 내 머릿속에 재생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오케이. 방어했어.’
나는 내 머릿속에서 사도들의 과거 행위가 그려지기 전에 멈추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더러워지고 싶지 않다.
더구나 지금처럼 승리감을 만끽하고 싶을 때는.
겉으로 보아서는 지금까지 본 일반 사도들과 다르지 않았다.
세 개의 희뿌연 그림자 같은 것이 헌터들의 몸 위로 떠올랐다.
사도가 출연한 시점에 세 명의 헌터는 넋이 나갔다.
“응?”
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냥 이 사도들의 모습이 다른 때 보았던 사도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