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내가 두 번째로 일본에 떨어뜨릴 폭탄은 시타부스라는 S급 몬스터였다.
S급 몬스터들의 이름은 왜 죄다 이렇게 발음하기 어렵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 몬스터들에게 이름이 붙여질 때는 한국인에게 발음되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겠지만.
이 몬스터의 개성은 무척 강한 편이었다.
무라페이가 바다에서 나타나 쓰나미를 일으키는 종이라면, 이놈의 장점은 스피드이다.
물론 S급이니만큼 근력이나 체력, 맷집 등등도 일반 몬스터 수준을 훨씬 상회하지만, 그래도 특장점을 하나만 꼽자면 스피드인 것이다.
그런 기능적 특질을 떠나서 성격적인 특징을 말하자면 발이 빠른 만큼이나 성격 또한 급했다.
그리고 달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솔직히 발을 따라잡을 수만 있다면 놈을 사냥하는 것은 다른 S급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쉽겠지만, 그렇게 하기가 어려우니까 S급 아니겠는가?
그것 때문에 같은 신체 능력을 가진 종들에 비해 상위 종으로 분류되었다.
현장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도합 몇 번의 쓰나미가 밀어닥쳤는지 셀 수도 없었겠지.
그나마 히로키가 폼을 잡는답시고 바닷가에 터를 잡아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인명 피해가 하나도 없고, 시설 피해도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일본으로서는 잘된 일이지만, 그래서 더욱 이번 작전이 용이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히로키로서는 불행한 일이었던 것이다.
뭐, 그 하나만 두고 말할 수도 없다.
현장에 출동한 건 결국 다섯 명의 일본 S급 헌터였으니까.
그들은 모두 녹초가 되었다.
무라페이가 정말 상대하기 힘든 S급 몬스터임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그들이 상대한 역대 최악의 S급 몬스터일 터였다.
덕분에 시청률이 높고, 2차 저작물도 잘 팔리겠지만, 우왕좌왕하는 일본 S급 헌터들의 민낯을 보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야시마저도 이렇게 말했다.
“히로키와 싸우고 싶어 한 제가 부끄럽네요. 아마도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장되게 인식하게 하는 정신 능력 같은 게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헌터 중에는 여러 정신적인 기술로 상대적인 우위에 서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카리스마’로 이름 붙일 만한 스킬이 히로키에게 있다면, 그가 일본의 다른 S급 헌터들을 누르고 수장 자리에 오른 것도 납득이 될 만한 일이었다.
하야시가 그런 것에 속아 자신의 목표로 삼았던 일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하야시가 하는 말을 보면 만약 나중에 히로키와 싸움을 벌였다면-그 자체가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게 분명하다. 일본 쿠로의 대의라는 것은 단순히 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게 아니니까. 다음은 세계를 목표로 뻗어 나가자고 할 것인데, 중국과 러시아, 미국의 상황만 봐도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한마디로 일본 쿠로의 목표는 애초에 네버엔딩, 임파서블 미션이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모든 대업을 이룬 뒤에 하야시와 싸우겠다고 말한 히로키는 머리를 잘 썼다고 할 수 있다. 혹시 그가 가진 정신 능력이란 ‘카리스마’가 아니라 ‘얍삽함’이지 않을까?- 하야시가 쉽게 승리를 거두었을 것 같다.
이번 일로 그가 나를 향해 보이는 존경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자신이 나를 주군으로 모시기로 한 점, 내 옆에 있으면서 얼마 전 큰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 등이 모두 만족스러울 테니까.
그것은 그가 쿠로에 남아 있었다면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장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사냥이 막 마무리되었지만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S급 사체를 해부하는 것은 S급 헌터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사체 해부는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로 옮겨져서 이루어지게 된다.
일본으로서는 이번 일이 크게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면 인명 피해가 없었고 시설 피해가 적어 경제적 대미지도 많지 않았으니까.
그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정말 보기 드문 S급 몬스터 종의 사체도 얻었으니까.
경제적인 면에서는 남는 것이 엄청 많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냥이 마무리된 시점에 열광적인 분위기가 되는 것이 당연했고, 일본 방송에서는 신들이 해냈다는 식으로 환호성 섞인 내용을 내보내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악몽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금 신으로 여겨지고 있는 저 쿠로의 S급 헌터들 때문에 이런 재앙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무라페이를 등장시키면서 나는 쿠로 헌터들을 고생시켰지만, 당연히 이게 목적의 전부는 아니었다.
이대로면 타격을 입혔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이득을 남긴 결과가 되니까.
당연히 S급 몬스터 사체는 우리가 챙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미미와 하야시가 나와 함께 이곳에 온 것이었다.
일단은 내가 시선을 뺏어야겠지.
나는 ‘운명에 목걸이’를 다시 목에 걸었다.
오늘 이미 한 번 발동시킨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것은 이미 빛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두 번째로 풀어 놓을 몬스터의 이름을 말했다.
“시타푸스.”
왠지 이름을 좀 잘못 말한 것 같지만 효과는 문제없이 발동되었다.
거 봐, 이거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역시 보구답게 성능이 좋다.
우르르릉!
내가 몬스터 이름을 말한 즉시 반응이 일어났다.
야심한 시간이기 때문에 먹구름이 몰려드는 것은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에 천둥 번개가 치면서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꽝! 꽝!
번개가 빠르게, 그리고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린다.
당연히 무라페이를 사냥하면서 오늘 할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던 일본 S급 헌터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반응을 포착했다.
그들 중 하나가 이쪽으로 급히 달려왔다.
나는 어둠에 몸을 숨기고 그의 반응을 살폈다.
가장 먼저 도착한 S급 헌터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일본어로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나는 어학을 마스터하기 전이므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도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는 알고 있겠지.
이것이 오늘 들어서 두 번째로 S급 몬스터가 출현하려는 징조임을.
그가 큰소리로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헌터들도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모두 다 자기가 들은 것을 믿을 수 없다는 투였다.
마치 처음으로 이 현상을 발견하고 사고가 터졌음을 알린 S급 헌터가 양치기 소년이라도 된다는 듯이.
전조가 끝난 뒤에는 몬스터가 나타날 차례였다.
쿠웅!!
마치 괴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하늘의 커다랗게 뚫린 구멍 아래로 몬스터가 출현했다.
생김새는 고릴라를 닮았다.
시타부스라는 이름보다는 킹콩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외형이었다.
놈은 마치 터미네이터가 처음 회귀를 한 모습처럼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자기를 보고 전율하는 다섯 명의 일본 S급 헌터들 앞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일본 S급 헌터들이 욕지기를 내뱉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시타부스가 응시하는 것은 놈들이 아니었다.
놈들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나였지.
나는 몬스터를 유인할 수 있을 정도로만 기척을 발하고 있었다.
휙-
나는 몸을 움직였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속도에 여유를 둘 수 없었다.
‘정말 귀찮네.’
하지만 ‘의지’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썩 나쁘지는 않았다.
잠도 푹 잤고 말이지.
시타부스가 눈을 번쩍 빛내더니 몸을 일으켰다.
신장은 10미터 가까이 되어 보였다.
어둠 속에 조용히 몸을 일으킨 모습이 마치 마신을 보는 듯했다.
쿵! 쿵! 쿵! 쿵! 쿵!
놈이 냅다 뛰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뚱이로, 거기 대비되는 엄청난 스피드로.
일본의 S급 헌터들은 자기들을 향해 돌진하는 시타부스를 재빨리 피했다.
아마 같은 자리에 계속 서 있었으면 몬스터에게 밟혀 몸이 찌그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마나를 스피드에만 집중한 상태로 몬스터의 움직임을 이끌었다.
휙, 휙, 휙-
내 빠른 움직임을 좇기 위해서 몬스터가 미친 듯이 질주했다.
하지만 드론들이 촬영하는 광경은, 그리고 일본의 S급 헌터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미친 듯이 폭주하는 몬스터의 모습뿐이겠지.
설마하니 몬스터를 유인하는 인물이 따로 있고, 그 인물 때문에 몬스터가 흥분하여 날뛴다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었다.
이 경악스러운 사태에 일본의 S급 헌터들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라페이를 상대하느라고 체력을 다 썼다.
그리고 마나까지.
하루에 두 마리의 S급 몬스터가, 그것도 같은 자리에 나타난 것은 전례가 전혀 없었던 일이기 때문에.
그들이 힘을 아껴 쓸 리가 없었다.
그저 빨리 무라페이를 잡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아부었을 뿐.
그리고 내가 시선을 끄는 사이 하야시와 미미가 작업에 들어갔다.
하야시가 한 일은 새로 출연한 S급 몬스터 쪽으로 다 날아가고 몇 개만 남아 있는 드론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가 검을 꺼내어 몇 번 허공을 향해 긋자 드론은 누가 그랬는지도 모르고 부서져 버렸다.
미미는 하야시가 망을 보는 사이에 무라페이의 사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끌려 나온 몬스터의 사체는 엄청나게 거대했지만 그녀의 솜씨는 이미 신의 경지에 달했다.
미리 숙지한 내용도 있기 때문에, 그녀는 이 몬스터의 핵심재료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고, 그녀의 인벤토리도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체를 전부 다 챙겨 갈 수는 없었다.
중요한 부분, 가장 값나가는 부분들만 추려서 챙기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시타부스를 웬만큼 약이 오르게 만든 다음에 기척을 감추었다.
레몬색 상자의 차원으로 혼자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타부스를 유인하는 중에 갑자기 기척을 갑자기 지워버리니까, 추적하던 비행기의 신호가 끊겨 당황하는 것처럼 시타부스가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놈이 발견한 두 번째 타깃은 다섯 명의 일본 S급 헌터들이었다.
“꾸와아아앙!!”
높게 목소리를 내지른 시타부스가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같은 자리에서만 오늘 두 번째 S급 몬스터의 출현!
쿠로 헌터들의 울며겨자먹기식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나는 유유자적하게 미미와 하야시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미미는 거의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유려한 솜씨로 사체를 해부하고 있었다.
그래도 빨리 처리할수록 좋은 일이기 때문에 나는 평소답지 않게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도와줄 건 없어?”
“주군이 도와주시면 좋죠!”
나는 그녀의 지시에 따라서, 그리고 더는 망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하야시까지 합세해서 거대한 무라페이 사체를 해부했다.
나와 하야시의 칼질 몇 번에 무라페이의 몸뚱이가 쩍쩍 갈라졌다.
아마도 처음부터 나와 하야시가 무라페이 사냥을 했다면 쿠로 헌터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리 사냥이 끝났을 것이다.
뭐,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
저 다섯 명의 쿠로 헌터들과 하야시가 싸운다고 해도 비등한 수준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야시도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니까.
최근 엄청 성장한 그였다.
나와 하야시가 도운 덕분에 사체 해부는 훨씬 빨리 끝났다.
그리고 더 많은 부분을 챙길 수 있었다.
왜냐면 인벤토리가 세 개였으니까.
미미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상황이 또 정리될 때까지 돌아가 있을까요?”
“응.”
우리 세 명은 레몬색 상자를 통해 다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