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나는 히로키가 튀어나와 노성을 터뜨리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잠옷 차림인 것이 눈에 띄었다.
다나카의 말에 따르면 그는 휴일만큼은 철저히 지킨다고 한다.
그래서 일요일인 오늘 느긋하게 긴 잠을 즐긴 모양이었다.
아마도 반응이 좀 늦었던 것도 잠을 자느라 그런 것이겠지.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S급 몬스터가, 그것도 자기가 살고 있는 집 바로 앞의 바다에서 출현하여, 이쪽을 향해 쓰나미를 날리다니.
아니, 그는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무라페이는 바닷속에 모습을 감추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으니까.
이쪽에서 볼 때는 이 쓰나미가 S급 몬스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히로키가 S급 몬스터 출현을 감지했다면 곧바로 장비부터 착용했을 것이다.
쿠와아아아!
온다.
2차 쓰나미가.
첫 번째 것이 효과가 없었던 게 분했는지,
아니면 공중에 떠 있는 나를 겨냥하여 그런 건지.
2차 쓰나미는 처음 것보다 훨씬 높고 거대했다.
그것이 가차 없이 히로키를 향해 떨어졌다.
쿠구구구구!-
허공을 향해 빠가야로!라고 기운차게 외쳤던 히로키가 급히 안쪽으로 사라졌다.
잘은 몰라도 나처럼 하늘을 날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두 번째의 쓰나미가, 처음 것보다 훨씬 크고 무시무시한 쓰나미가 히로키의 집을 덮쳤다.
콰과과과광!
엄청 튼튼하게 지어졌을 그 건물이 두 번째 쓰나미는 견디지 못하고 벽이 무너져내렸다.
일반적인 쓰나미라면 버텼을지 모른다.
요즘 건축공법은, 특히나 히로키만 한 인물이 주로 생활하는 건물 같은 경우는 만약을 대비해서 엄청 단단하게 지어진다.
하지만 상대는 S급 몬스터였다.
당연히 일반 쓰나미와는 다른 법이다.
게다가 놈은 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를 죽일 요량으로 있는 힘을 다해 파도를 만들어 보냈다.
‘스펙터클하네.’
거리에 사람이 없는 일요일 오전을 택하길 잘했다.
이 정도라면 대피하기 전에 큰 인명피해가 났을 게 분명했다.
다만 히로키가 사는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주변 건물들은 완전히 침몰되었다.
이곳이 주택 지역이 아니라는 것은 확인했다.
건물 자체가 많지 않을뿐더러 별장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 드문드문 있는 곳이었다.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나는 제발 저곳에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건물이 무너진 속에서 한 사람이 불쑥 솟아났다.
바로 히로키.
그는 헌터 장비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양손에 검을 쥐고 있다.
‘쌍검을 사용하는 건가?’
나는 그가 어떤 무기를 사용하고, 싸울 때의 특기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것은 완전히 관심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하야시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자기가 쿠로에 속해 그곳의 지령을 성실히 이행한 이유는 언젠가 히로키와 싸우기 위해서라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히로키도 실력이 있기는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이 맞을 터였다.
아무리 다른 수완이 좋다고 해도 S급 헌터들 사이에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일단 기본적으로 헌터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기도 하고.
‘이제 안 건가?’
히로키가 양손에 무기를 들었다는 것은 이 쓰나미가 왜 발생한 것인지 알았다는 뜻이었다.
아무도 없는 중에 홀로 바다를 향해 서 있는 그의 모습이 고독해 보인다.
일본의 최고 권력자답지 않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기척을 완벽하게 지우고 있었기 때문에 히로키는 내가 자신의 뒤쪽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미미와 하야시도 ‘미러 월’ 안에 있어서 기척이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금 히로키에게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을 것이었다.
히로키는 바다를 보고 서서 가만히 있었다.
결연한 표정이기는 하지만 딱히 어떻게 대처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공중을 나는 능력이 없으니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러 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다를 향해 헤엄쳐간다는 것도 이상하다.
만약 그 상태에서 몬스터를 만났다가는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뻔하니까.
한마디로 놈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쌤통이네.’
일본에 있으면서 나를 해하기 위해 술책을 써대던 놈이 핀치에 몰린 모습을 보니 체증이 쓱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쿠과과과과!-
다시 파도가 높이 솟아올랐다.
이번에는 두 번째 파도보다 훨씬 높았다.
무라페이가 노리는 것은 나였다.
두 번째도 피해를 주지 못했으니 더 약이 오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3차 쓰나미 공격은 더욱 거세진 것이었다.
히로키가 당황했다.
여전히 몬스터의 정체는 보이지 않고 쓰나미만 계속 밀려오니까.
콰아아아아!-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쓰나미 속에서 히로키가 마구 칼질을 해댔다.
‘오.’
과연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내뿜는 검기가 그 집채만 한 파도를 촥! 촥! 갈라냈으니까.
그래도 공격 대상이 쓰나미여서 아무리 칼질을 해도 역부족인 것이 당연하다.
촤아아아악!-
비록 열심히 한 칼질 덕분에 피해가 덜하기는 했겠지만, 히로키는 결국 쏟아져 내리는 파도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망연한 표정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
“음.”
나는 히로키가 무라페이를 상대로 고생깨나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싸움을 계속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없겠다고 여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미, 하야시와 같이 오기는 했지만 혼자 와도 충분할 뻔했다.
나는 미미와 하야시 쪽으로 날아가서 그들에게 말했다.
“이따가 오자.”
그들은 히로키가 이쪽을 인지할 수 없도록 고개만 끄덕여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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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텔로 돌아와서 핸드폰 게임을 했다.
내가 다시 움직일 타이밍은 히로키, 그리고 곧 지원을 위해 합류할 일본의 S급 헌터들이 무라페이를 사냥한 뒤이다.
그때까지는 그곳에 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편한 사실은 그곳의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본의 상황은 지금 TV에서 생중계되고 있었으니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지금은 S급 몬스터가 출현했을 때 생중계되는 세상이다.
내가 S급 몬스터를 상대한 두 번이 희귀한 케이스였던 것이다.
몬스터가 나타나자마자 내가 죽여버렸으니까.
대개 S급 몬스터 사냥은 스펙타클하고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사냥 시간이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S급 헌터가 멀리 있는 경우, 그 이동 시간까지 생각하면 시간이 지체되기도 하고.
그런 일이 생기면 현장에 있는 사람이나 시설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일본은 헌터 강국이니만큼 제반 시설이 잘되어 있고, 당연히 S급 몬스터가 출몰하자마자 드론들이 날아가서 여러 각도에서 신나게 현장을 촬영했다.
S급 몬스터 생중계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큰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다.
편집 영상을 바탕으로 한 2차 콘텐츠가 잘 나가는 것은 덤이고.
심지어 잘 편집된 영상이 극장에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반대 움직임도 있었지만, 이는 결국 헌터의 수입과 명성에 관련된 일이다.
결국 관찰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
한 마디로 나는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귀만 열어두면 되었다.
지금 내 호텔 방에는 미미, 미나, 다나카, 하야시, 우라라가 다 있었다.
그들 각자는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TV를 보는 중이었다.
미미는 작전이 제대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건너가서 사체를 챙길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미나는 기술적인 문제에, 그리고 다나카는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관심, 하야시는 헌터들이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 기술에 관심이 있었다.
우라라는 별생각이 없어 보이고.
어쨌든 헌터 강국이라고 자만했던 것에 비하면 일본 헌터들의 S급 몬스터 대응 능력은 썩 훌륭하지 못했다.
물론 일요일 오전이라는 빠른 대응이 힘든 시간대에 출현했다는 것, 너무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 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무라페이라는 몬스터의 특징이 사냥을 더 어렵게 했다.
바다에 몸을 담그고 쓰나미를 밀어 보내는 몬스터를 상대하기 쉬울 리가 없다.
녀석보다 강한 S급 몬스터는 많이 있지만, 그래도 그 수준으로 보면 지금까지 지구에 출현한 놈들 중에서 가장 강한 편에 속했다.
이미 TV 안에서는 히로키를 비롯한 세 명의 S급 헌터가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고, 추가로 두 명의 S급 헌터가 더 현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다른 S급 헌터들은 외국에 나가 있어 현장 출동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나는 핸드폰을 끄고 침실로 들어갔다.
“뭐, 바뀐 거 있으면 알려줘.”
“네~ 주군.”
아무래도 싸움이 길어질 것 같으니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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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나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 푹 잤다고 느꼈다.
침실에 들어온 게 오전이었는데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으니까.
그러는 동안에도 미미는 나를 깨우러 오지 않았다.
더 잠이 오지 않고 흘러가는 상황이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거실로 나갔다.
TV를 보는 멤버는 그대로였는데, 모니터를 보는 자세는 제각각이었다.
미미는 적당한 관심을 두는 것으로 보였고, 미나는 뭔가 영감을 얻었는지 노트를 꺼내어 열심히 뭔가를 적고 있었다.
다나카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집중도가 낮은 편이었고, 하야시만 팔짱을 낀 채로 진지하게 TV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마 그는 머릿속에서 직접 현장에 나가 몬스터와 싸우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라면 이렇게 했겠지 하고.
그리고 우라라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하면, 소파에 길게 누워 잠들어 있었다.
역시 그녀는 이번 일에 큰 관심이 없는 게 분명했다.
쿠로는 이제 남이나 다름없고, 따로 지낼 곳도 생겼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다.
“어떻게 돼가고 있어?”
내 물음에 미미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슬슬 마무리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S급 헌터가 다섯 명이니까요. 고전했지만 나름대로 공략법을 찾았다고 할까요?”
현장은 여전히 같은 장소였다.
얼마 되지 않은 주민은 모두 대피를 했다.
일본 방송에서는 이번 일에 피해가 적고, 일본의 신 히로키가 빠르게 대응을 한 사실에 대해서 칭찬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 모두 헛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화면 안에 보이는 히로키는 멋진 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머지 네 명의 S급 헌터도 마찬가지다.
“아!”
미미가 나를 향해 말을 한 타이밍에 다나카가 입소리를 냈다.
화면을 보니 무라페이가 뭍으로 끌어 올려져 헌터들의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는 그림이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사냥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말했다.
“가자.”
푹 잤으니 이제 또 일하러 가야지.
이제 다 끝났다고 착각하고 있는 놈들의 아지트에 두 번째 폭탄을 터뜨리러 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