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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102화 (102/160)

▣ 102화

“그쵸! 저도 빨리 다음 것을 만들고 싶어요!”

“이 문제는 미미랑 상의해 보지그래.”

나는 열정적인, 그래서 살짝 버거운 상태인 미나를 미미에게 토스했다.

사실 지금 미미에게는 적지 않은 몬스터 사체 재료가 있을 것이었다.

왜냐면 얼마 전에 열심히 그것들을 모았으니까.

아직 돈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인벤토리에 여전히 가지고 있으리라.

그리고 나중에 박혜진과 연락하면 웬만한 재료들은 다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S급 몬스터 재료는 워낙에 구하기 힘드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의 지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박혜진이라면 웬만한 몬스터 사체 재료들은 다 구할 수 있을 거니까.”

“네! 알겠습니다!”

기운 넘치게 대답한 미나는 갑자기 픽 쓰러졌다.

말 그대로 코드가 뽑힌 기계처럼 넘어진 것이었다.

살짝 놀라긴 했지만 그녀가 제대로 호흡하는 것을 보고 단지 체력이 다해서 쓰러진 것일 뿐임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연구에만 몰두한 것이 분명했다.

마침 미미가 거실로 나왔다.

“어머, 이건 무슨 일이래?”

그녀는 거실에 쓰러진 미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진짜~ 못 말린다니까. 미나를 따로 두면 큰일 날지도 모르겠어요. 전에 람바스 님이랑 있을 때도 이런 일이 많았거든요. 결국 그런 이유로 우리랑 같이 살게 되었죠.”

나는 미나가 좋은 부하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함께 사는 것에 별다른 저항감이 없었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미나가 우리랑 같이 살면 미미의 일이 늘어날 것이다.

미나는 연구와 개발에만 특화된 타입이니까.

집안일 같은 것은 전혀 못 할 것이 분명하다.

미미가 시중들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미나는 미미만큼 세심하게 내 기분을 살필 줄 몰랐다.

지금도 S급 몬스터 재료를 구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지 않았는가?

내가 미간을 찡그리자 미미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 같이 살자는 말은 아니고요, 주군. 제가 계속 저희 새 주거지를 알아보고 있어요. 계속 호텔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과연 미미는 계속 우리가 살 곳을 알아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 호텔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야 괜찮았다고 하더라도 점점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소문나고, 귀찮은 일들이 늘어날 테니까.

장오성이 훈련실을 습격한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원치 않는 피해를 입히게 될지도 몰랐다.

미미는 미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침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먹일 음식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룸서비스로 시키지 않는 걸 보니 따로 스태미너 요리라도 만들어주려는 모양이었다.

“흠…….”

나는 팔짱을 끼고 테이블에 놓인 레몬색 상자를 바라보았다.

뭔가 색깔만 보면 아주 귀여운 곳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야시랑 같이 가볼까?’

그에게 이 얘기를 하면 대단히 좋아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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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주군! 꼭 가고 싶습니다!”

역시나 하야시는 새로운 차원으로 가자는 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지난번에 갔던 그곳은 아니지만-지난번에 갔던 차원은 하야시가 원하는 만큼 사냥을 하지 못하는 환경이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같은 장소로 가게 되면 그곳에서는 이미 세 번에 걸쳐 몬스터들의 소탕이 이루어졌으니까. 그 주변 몬스터들이 거의 씨가 말랐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하는 것은 좀 번거로운 일이었다.- 다른 차원으로 가자는 말에 하야시는 반색했다.

“이게 새로운 곳으로 통하는 상자인데…….”

“오!”

하야시는 내가 손에 들어 보인 레몬색 상자를 보고 탄성을 뱉었다.

확실히 또 몬스터 떼 사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굉장히 텐션이 올라간 모습이었다.

우리는 각자 장비를 입고 새로운 차원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나도 처음 가보는 장소이니만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나름대로 준비를 한 것이었다.

“준비됐지?”

하야시를 바라보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군!”

또다시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100퍼센트 믿는 눈치였다.

뭐, 나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스킬이 잘못 발동될 우려 같은 것은 없을 터였다.

팟!-

익숙한 현상이 일어났다.

다만 이번에는 새로운 상자를 여는 것이니만큼 이전에 도입 과정이 꽤 단축되었던 검은 상자와는 달리 배경이 부서지고 암흑이 이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배경이 나타나는 일련의 과정이 느리게 진행되었다.

뭐 처음에만 이렇고 나중에는 바로 스킵할 수 있게 되겠지만.

마치 처음 게임을 하면 인트로를 강제로 봐야 하는 것과 비슷했다.

우리는 새로운 차원, 즉 새로운 행성에 도착했다.

“응?”

이게 뭐야.

아무리 새로운 세상이 말 그대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소라고 해도 이것은 예상했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양쪽 벽이 막혀 있고 앞과 뒤로만 길이 나 있다.

한마디로 이곳은 동굴이었다.

다만 벽에서 은은한 빛이 발하고 있어서 아주 어둡지는 않다는 게 지구의 일반적인 동굴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지만.

“흠…….”

하야시도 좀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지난번처럼 이동하자마자 몬스터 떼가 몰려오는 그림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벽에서 나는 빛 때문에 앞과 뒤가 꽤 멀리까지 보임에도 불구하고 몬스터가 나타나서 덤벼올 듯한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야시도 그렇고 나도 S급 헌터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적어도 반경 수 킬로미터 이내에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군…….”

하야시가 약간 풀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곳은 어디일까요?”

“글쎄. 다른 행성인 것은 확실한데…….”

나도 뭐라고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아마 이것을 만든 미나도 모르겠지.

자기가 만들어 낸 이 상자가 어디로 통하는지.

나는 이번에는 꽝인가 싶어서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만 알아보기로 했다.

“너는 이쪽으로 가 봐. 난 이쪽으로 가 볼 테니까. 뭔가 발견하면 서로 알려 주는 걸로 하자.”

내 말에 하야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주군.”

이미 몬스터 사냥은 깔끔하게 포기한 얼굴이었다.

왠지 조금 그에게 미안했다.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는 일 같은 것은 무척 귀찮지만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알아볼 만큼은 알아보기로 했다.

이 장소에서도 명상을 하면 뭔가 얻을 수 있겠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마냥 바닥에 주저앉아 명상을 한다는 게 조금 꺼려졌다.

혼자면 모르겠지만 하야시도 나를 기다리기가 지루할 것이고.

일단 어느 정도 길을 파악한 다음에 명상 같은 것은 나중에 하든지, 아니면 검은 상자 행성으로 가서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얼마간 걸음을 옮기다 보니 길이 갈라졌다.

세 방향의 길이었다.

그리고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여기에 갈림길이 있습니다! 길이 다섯 개예요!”

반대쪽에도 갈림길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쪽은 무려 다섯 개의 길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서로 반대쪽으로 향한 만큼 함부로 길을 택해 들어갔다가는 서로 못 만나는 일이 생길지 몰랐다.

뭐, 결과적으로 만날 수야 있겠지만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이다.

“일단 오늘은 그냥 돌아가자.”

나는 하야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 났더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세 개의 갈림길 중에 좌측 길이 이상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었던 것.

“하야시! 거기서 기다려!”

나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좌측 길로 들어섰다.

그냥 왼쪽 길로 갔을 뿐이니까, 돌아오는 데 헷갈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얼마 가지 않았을 때 나는 벽과 마주쳤다.

아니, 벽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하다.

그것은 완전히 환한 빛을 투사하고 있었으니까.

전혀 모르는 행성에 온 만큼 동굴 벽에서 은은한 빛이 난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왜냐면 암석은 성질에 따라서 그런 작용을 할 수도 있는 거니까.

다만 이렇게 전면에서 완전히 밝은 빛을 뿜어내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게 나를 끌어당기는 원흉인 것 같다.

‘이유가 뭐지?’

나는 궁금해졌다.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히 있던 장소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니 하야시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원래라면 그냥 돌아가야 했겠지만, 그러고 나서 나중에 하야시와 같이 오든지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지만, 나는 정면의 빛으로부터 강한 끌림을 느꼈다.

열다섯 시간이나 내리 명상을 했을 때처럼 이 현상에서 강한 자력을 느낀 것이었다.

‘뭐, 상관없겠지.’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나다.

그리고 이 빛은 결코 나쁜 기운을 자아내지 않았다.

왠지 여기로 나가면 나를 기쁘게 할 만한 뭔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화악-

당연하게도 시야가 밝은 빛에 완전히 휩싸였다.

걸음을 계속 옮기자니 몇 걸음 걷지 않아 다시 주변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라고 할까?

펼쳐진 풍경이 엄청 익숙했다.

적어도 다른 행성은 아니었다.

내가 살던 행성.

바로 지구였다.

전반적인 풍경이 내가 살고 있는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건물들에서 보이는 간판이 몽땅 일본어로 적혀 있었던 것.

‘웬 일본?’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이 소곤거리는 음성도 당연하다는 듯 일본어였다.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게이트를 통해서 왔는데 일본이라고?’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하기 어려웠다.

내가 혼란에 휩싸였을 때 내 감각을 간지럽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아니, 그것은 감지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유독 한 사람만이 내게 찌릿, 하는 반응을 주었다.

‘헌터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느낌 감각은 상대 헌터의 마나를 감지했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감각이었으니까.

좀 성질은 다르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반응을 일으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도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궁금해하는 나와는 달리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듯한 눈치였고 내가 여기에 서 있다는 사실을 혼란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몰랐다.

하지만 느껴지는 마나의 분위기로 짐작건대 S급 헌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지금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자기 마나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 몇이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일본어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 중에 ‘우라라’라는 것이 있었다.

우라라.

나는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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