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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101화 (101/160)

▣ 101화

박수철과 장오성에 빙의해 있던 사도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만행이 머릿속에 펼쳐지려고 하기에 나는 즉시 그것을 차단해 버렸다.

기분 나쁜 영상을 보는 것은 사양하고 싶으니까.

그런 걸 보고 나면 이 사도들을 당장 죽이고 싶어질지도 몰랐다.

“너희들한테 선택권을 주겠다.”

나는 박수철과 장오성이 아닌 사도들에게 말했다.

박수철과 장오성은 마치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엎드린 상태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일시적으로 의식이 나간 게 아닌가 싶었다.

장오성 쪽 사도가 대답했다.

“그게 무엇인지 들어보겠다.”

자식이 말이 짧네?

“죽을래?”

내가 한마디 하자 사도의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야, 이 자식아!”

박수철에게 빙의했던 사도가 장오성 쪽 사도를 질책하듯이 말했다.

“무슨 짓이야? 조철웅 님께서 성은을 내려주신다는데!”

역시 어디에나 눈치가 빠른 놈과 없는 놈이 있기 마련이었다.

눈치 빠른 동료의 말에 장오성의 사도가 얼른 주제 파악을 하고 몸을 낮췄다.

“죄, 죄송합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그래. 내가 무슨 말 하려고 하는지는 알고 있지?”

사도 둘이 서로를 마주 본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알고 있습니다. 조철웅 님의 명령을 소신껏 받들겠습니다.”

역시 고작 A급 헌터에게 붙어 있던 사도들이니만큼 복종하는 속도가 빨랐다.

“만약 배신하면 어떻게 될까?”

내가 묻자 두 사도는 몸을 납작 엎드렸다.

이미 엎드려 있는 박수철과 장오성과 완벽하게 겹쳐지는 모습이었다.

“살려만 주십시오!”

“뭐든 다 하겠습니다!”

“응. 이미 그건 들었고~ 만약 배신하면 그냥 죽이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각인되도록 두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로 강력한 마나를 발산시켰다.

두 개의 유령 같은 사도들이 박수철과 장오성에게서 쭉 밀려 나갔다.

하지만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고 후다닥 돌아와서 다시 몸을 낮추었다.

“걱정 마십시오!”

“배신 같은 것은 절대 꿈도 꾸지 않겠습니다!”

물론 이 정도로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잔챙이들이니만큼 다시 기회가 있으면 배신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도들로써도 굳이 이 두 명을 포기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을 것 같고, 뿐만 아니라 이들은 내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 있으니까.

절대로 도망가지 못할 것이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딱히 정체를 드러낼 일도 없다.

지금 사도들은 전반적으로 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빙의만 한 상태이니까.

이놈들이 같은 편을 배신하고 내게 붙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었다.

“배고프지?”

내가 말하자 박수철과 장오성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역시 식욕은 의식적으로 사도도 밀어낼 만큼 강력했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나는 인벤토리에서 초콜릿 두 개를 꺼내서 그들에게 던져 주었다.

“빨리 먹어. 집에 가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35

게이트에서 꺼내온 박수철과 장오성은 다시 한번 교육을 단단히 시킨 다음에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실종 상태가 길어지면 누구의 눈에든 띌 수가 있으니까.

당장은 어떻게도 섣부른 행동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잘 나가는 클랜의 수장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사람인 이상 S급 헌터를 거스를 수 없으니까.

일본으로 간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쿠로는 이미 그들의 대한 이용 가치를 못 느낄 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임무를 실패하기까지 했다.

오갈 데가 없으니 차라리 나에게 붙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릴 만하다.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두 사람이니만큼 멍청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깜빡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이 호텔 방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얼마나 연구에 몰두했던 건지 핼쑥한 얼굴이었다.

“주군, 오랜만에 뵙습니다.”

비록 그동안 연구만 하느라고 먹는 걸 소홀히 해서 살이 빠진 모양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형형하게 빛났다.

나를 찾아온 사람은 바로 미나.

나는 그녀와 함께 게이트 안에 들어갔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엄청나게 큰 영감을 얻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돌아가서 계속 연구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호텔 방을 떠났었지.

그녀의 말과 표정을 보아하니 소득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주군, 이건 말이지요.”

그녀가 인벤토리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그리고 복잡한 도형과 이론이 가득 적혀 있는 페이지를 보인 상태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주의 생성과 관련이 있어요. 우주가 생성된 물리적 작용의 핵심을 파고드는 원리와 연결된 셈이죠. 물론 저는 이것들을 도식화하고 해석하는 데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낸 것만으로 해도 천지가 뒤집힐 만한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해요.”

뒤를 이어 미나의 입에서 나온 것은 어려운 용어와 이론들이었다.

역시나 그녀는 내가 귀찮다고 생각한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이며 복잡한 현상을 이론화하는 것을 해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관심이 있을 뿐, 그녀가 자신이 한 연구 과정을 세세하게 늘어놓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스톱. 미나. 결론만 얘기해.”

“아! 죄송합니다!”

그녀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모양이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탓에 내가 게으른 성격이라는 것을 잠시 깜빡했던 모양이고.

“죄송합니다! 지금 제 결론은 이래요. 저희가 갔던 곳은 다른 행성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악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행성들을 게이트로 서로 연결하는 것이죠. 차원의 문을 통해서 서로를 잇는 거예요. 악마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행성들을 먹어치우고 그것들의 에너지를 자신을 양분으로 삼는 거예요.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는 존재인 셈이죠. 그리고 자신이 지배한 행성을 또 다른 행성을 먹어치우는 데 이용하고 있는 거죠. 그것이 게이트의 정체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그런 악마의 필요성에 의해 탄생한 생명체 내지는 사념들이라고 볼 수 있고요.”

“네 말은 악마가 신이란 뜻이네.”

“신, 악마. 어떻게 표현하든 우리의 인식 수준을 넘어선 존재인 것만은 확실해요. 놈이 어떻게 태어났고 왜 행성을 포식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지만요. 하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자연스롭게 생리 활동을 하는 것처럼 놈도 배고프니까 먹으려고 하는 것뿐이겠죠.”

“음.”

혹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들이 미미의 간단한 설명을 통해 밝혀졌다.

우리 두 사람이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정말로 그런 거겠지.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나도 뭔가 깨닫는 것들이 있었다.

미나가 계속 말했다.

“악마는 지금 동면 상태예요. 지난번에 행성을 집어삼킨 뒤 그 방대한 에너지가 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거죠. 너무 많이 먹으면 사람도 잠이 오기 마련이잖아요? 그 에너지를 소화하느라 지금은 수면 상태에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동안 사도들이 악마가 또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죠.”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메커니즘이었다.

악마가 수면에서 깨어난 다음 먹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지구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해?”

“그건 이전에 악마가 삼켰던 행성의 질량과 관련이 있어요. 그곳이 어디였는지가 중요한데,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좀 복잡한 일이거든요.”

미나 입에서도 복잡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아니, 애초에 악마가 전에 삼킨 행성이 어디인지까지 알 수가 있는 거야?

역시 미나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머리를 쓰는 데 있어서는 먼치킨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거 말인데요.”

그녀가 인벤토리에서 조그마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정육면체 모양의 상자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모양은 같지만 색깔과 크기가 달랐다.

레몬 빛을 띤 그것은 얼핏 보아서 꽤 먹음직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주군이 가진 것을 흉내 내서 한 번 만들어 봤어요. 생각보다 어렵진 않더라고요. 하지만 제 힘으로 이걸 열 수는 없었어요. 만약 함부로 다루다가는 지난번과 같은 일이 생기고 말 테니까요. 그래도 주군이라면 충분히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미나가 기대에 찬 모습으로 내게 상자를 내밀었다.

‘과연…….’

나는 상자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꼈다.

상자에서 흘러나온 많은 감각이 내게 전해진다.

그것은 정확하게 스킬 ‘게이트 생성’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잘했어, 미나.”

나는 그녀를 칭찬했다.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설마하니 며칠 만에 또 다른 게이트 상자를 만들어서 내게 내밀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두 개, 세 개, 열 개나 백 개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재료로는 한 개밖에 만들 수 없었어요. 이걸 만들려면 꽤 복잡한 수식과 많은 재료가 필요해요.”

흐음…….

“혹시 S급 몬스터 재료가 필요한 건 아니겠지?”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담아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필요하죠!”

역시나라고 할까?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악마에게도 선호도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선호도라고?”

“악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집한 행성 중에서 따로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죠. 에너지가 강하고 맛있는 행성은 한 번에 먹지 않고 두고두고 그것을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악마가 행성을 키웠다가 두고두고 먹는다는 뜻이야? 작물을 키우는 것처럼?”

“네. 맞는 비유세요, 주군. 행성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빨아먹고 다시 내버려 뒀다가 먹고, 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거예요. 다만 그런 행성들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거죠.”

엄청난 짓을 하고 있구나, 악마 자식.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 행성에서 사는 존재들에게는 굉장히 끔찍한 일이었다.

한 번 박살 난 뒤에 어느 정도 생명 활동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또다시 먹어치운다.

그 주기가 반복될 때마다 행성의 생명체들은 자신의 미래를 모르고 살아갈 것이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S급 몬스터 재료가 있으면 그 악마가 선호하는 행성으로 이동하는 차원 상자를 만들 수 있다는 거구나.”

“네! 맞아요, 주군! 그리고 거기에 비밀이 있을지도 몰라요.”

“비밀?”

“아무래도 악마가 선호하는 행성에는 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악마와 싸운 존재들도 많이 있겠죠. 필연적으로 지구인의 관점에서 헌터라고 부르는 존재들이 더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나가 눈을 빛내면서 말을 하는 것을 보니까 내가 그곳으로 연결할 수 있는 상자를 만들 재료를 구해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아니,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고…….”

나는 말을 돌렸다.

“일단은 이 상자의 개수를 늘리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유용하잖아?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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