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98화 (98/160)

▣ 98화

하야시와 나의 세 번째 훈련이 시작되었다.

하야시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내게 훈련을 하자는 제안을 받아서 굉장히 고무된 표정이었다.

지난번에 다른 차원에 한 번 갔다 온 뒤로 하야시의 분위기는 상당히 벼려져 있었다.

디테일한 차이기는 하지만 그가 좀 더 싸움꾼 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다고 할까?

나는 명상을 통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빠져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 명상을 하고 있는 사이에 하야시가 경험했던 일도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실전을 숱하게 치른 그로서도 쉽지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이야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그토록 많은 몬스터를 상대로 열다섯 시간 가까이 싸운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큰 경험치가 되었을 것은 분명했다.

내가 박수철과 장오성을 상자에 가둔 채로 당분간 내버려 둘 거라고 했을 때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때 그의 반응은 이상한 게 아닌 것이다.

확실히 이런 면을 보면 나와 그는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었다.

성장에 대한 열정의 강도는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게이트 안에서 우리는 각자 확실한 경험치를 쌓은 것만은 확실했다.

그 종류가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해도.

우리는 전에 방해 때문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훈련을 이어가기로 했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훈련을 방해받을 일이 절대 없을 것이다.

박수철과 장오성은 이미 다른 차원에 갇혀 있으니까.

대담하게 또 우리를 방해할 존재가 있을 리가 없겠지.

호텔로서도 며칠 전의 그 일 이후로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모양이었다.

물론 아무리 보안 레벨을 올린다고 해도 장오성만 한 실력을 가진 헌터가 작정하고 잠입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때는 대항하려 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외부에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최선이다.

뭐, 호텔 측도 경험이 있으니 더 빠른 대응을 할 것만큼은 분명했다.

미미와 다나카에게 상담을 했다고 하니까.

한 명은 A급이지만 그 실력이 상당하고, 다나카는 아직 정식 한국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사고가 터지면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S급 헌터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없다.

호텔 측은 내가 게이트에 갇혀 있을 때 많은 신경을 써 준 모양이었다.

그들이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나로서도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

귀찮은 일이 생길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니까.

이 호텔의 지배인을 나는 이번 일을 통해 처음 보았다.

그가 미미에게 먼저 찾아가서 대응 방안에 대해서 물은 것은 굉장히 현명한 행동이었다.

그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모르는 사이 그와 미미는 여러 차례 접촉을 했었던 모양이고 그러는 사이에 미미가 평범하지 않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적어도 나와 관련된 일은 그녀를 먼저 찾아가서 상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겠지.

아무튼 여러모로 이번 일이 조용하게 처리되었다는 것은 내게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박거한 또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바로 복직을 했다.

나는 그처럼 물리적 피해를 전혀 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더 걱정했다.

“헌터님! 괜찮으십니까!”

훈련실에서 보자마자 나를 보면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는 암묵적 룰도 깨고 큰소리로 물었다.

“제가 지켜드렸어야 했는데…… 그런 변을 당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누가 누굴 지켜? 이 양반아.

하지만 멘트만큼은 약간 감동을 받기에 충분했다.

완전 진심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그나저나 헌터님을 공격하려고 하다니 대체 누구였을까요?”

그는 이번 일에 상당한 쇼크를 받은 모양이었다.

일반적으로 S급 헌터는 구름 위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으니까, 그의 이런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나를 상대하는 일을 좀 껄끄러워할 줄 알았더니 여전히 적극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면 뭔가 다른 의미로 나쁜 사람 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뭐, 내가 곁을 쉽게 주는 성격이 아니고, 이번 일에도 드러났듯 그를 가까이 둔다고 해서 내가 도움을 받을 것은 딱히 없기 때문에 한계는 있겠지만.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마세요. 범인은 잡았으니까.”

“아! 정말요? 그런데 왜 호텔 쪽에서도 그렇고 언론에서도 아무 말이 없는 거죠?”

“제가 알려지길 바라지 않으니까요. 별일 아니에요.”

물론 S급 헌터가 누군가에게 테러당했다는 것은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박거한도 깨닫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그놈이 잡혔다니 다행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깊이 파고들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다음부터는 더욱 두 눈을 부릅뜨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호텔 측도 훈련실 보안을 강화하기로 했으니까 실망하셨더라도 부디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시기 바랍니다.”

“에이~ 신경 쓰지 마요. 진짜 별일 아니라니까?”

엄밀히 따지면 오히려 내가 호텔 측에 미안해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호텔에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거니까.

다행히도 장오성은 박거한을 포함한 직원 몇 명을 기절시키는 데 그쳤지만, 혹시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면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호텔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어쨌든 지나간 일이니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상자에 갇혀 있는 박수철과 장오성을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도 그분과 함께 훈련하시는 겁니까?”

“네. 음식은 평소대로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편안한 훈련 하시길 바랍니다!”

S급 전용 훈련실 안에 분위기는 사건이 일어나게 전과 꽤 바뀌어 있었다.

공간을 채운 마나의 질감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 느껴진다.

하야시도 같은 것을 느낀 것 같지만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긴 이런 것은 말로 표현하기 조금 애매하기는 하다.

헌터 전용 훈련실은 이론적으로 게이트의 안의 마나, 그리고 몬스터가 지닌 마나를 분석하여 그것을 시설에 적용한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S급 전용 훈련실을 그럴듯하게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호텔 측에서 내게 이 시설을 무료로 개방하여 자주 이용하게끔 유도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시설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하지만 공간 자체가 완전히 다른 차원과 연결이 된 다음, 이곳의 마나는 전보다 한층 리얼하고 정밀해졌다.

나는 여러모로 나를 배려해 준 호텔에 나름대로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곳에서 훈련하는 S급 헌터는 같은 사양의 다른 훈련실을 이용할 때보다 훨씬 큰 효과를 얻을 것이 분명했다.

훈련실에 들어선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이곳은 다른 곳이랑은 다르구나 하고.

이런 맥락으로 보면 하야시가 다른 차원에서 몬스터들을 사냥했을 때 얻은 경험치도 훈련실을 이용하거나 일반 게이트 안에서의 몬스터 사냥과 질적으로 달랐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을 안 그가 본능적으로 다시 한번 게이트 안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고.

‘흥미롭군.’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깊이 분석해 볼 마음이 없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차원에서 명상을 통해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저 ‘훈련 목적으로 게이트 생성 스킬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정도였다.

하야시가 그랬던 것처럼 파프리카도 질 좋은 경험치를 얻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내게 유의미한 경험치를 줄 수 있는 차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나 또한 게이트에 들어가 훈련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좋네, 좋아.’

‘게이트 생성’ 스킬은 무궁한 잠재력을 가진 능력이었다.

훈련실에서 나와 대치한 하야시는 상당히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다른 차원에 갔다 온 뒤로 그곳에서 얻은 경험치로 바탕으로 벼려진 얼굴이 아니라, 오늘은 그 이상으로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가 말했다.

“오늘은 제 능력을 주군에게 시험받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그곳에 갔을 때 저는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만든 검술이 있는데, 그것을 주군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음, 과연.

괜히 표정이 달라진 게 아니었다.

다른 차원에서 몬스터들과 열다섯 시간에 걸쳐 싸우는 동안 하야시는 자기 말대로라면 뭔가 깨달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이른바 업그레이드라는 것이겠지.

스킬 향상, 그리고 성장을 뜻했다.

그가 말하는 깨달음이라는 게 무엇일지 나는 궁금했다.

스릉-

그가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었다.

처음 나랑 만났을 때와 꺼냈던 것과 같은 검이다.

하지만 오늘은 처음부터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고 있는 만큼 처음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저는 가전으로 검술을 전수받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안의 검술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제 검술의 경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노력했죠. 그리고 많은 명인들을 만나 사사받았지만 그 기술을 하나로 융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주군을 만난 뒤로 저는 성장에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제가 죽는 날까지 수련을 한다고 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의 사건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간 저는 그곳에서 제 한계가 부서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성과를 빨리 주군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습니다. 오늘 다소 무례를 범하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그답지 않게 긴 멘트를 했다.

나는 평소에도 진지한 편인 그의 태도가 오늘은 한층 더 진지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진지하게 그를 상대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양손에 방패를 만들거나 아니면 맨손으로 상대하는 등, 지배자의 손아귀를 제대로 사용한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그것을 깨기로 했다.

그가 검술을 보여주겠다고 하니 나도 검으로 상대하는 것이 맞겠지.

나는 오른손에 마나를 모아 검을 만들어냈다.

지잉-

보구가 만들어낸 검.

솔직히 형태야 아무래도 좋았다.

상상하면 상상한 대로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지배자의 손아귀니까.

단순하다면 단순한 모양의 검이었다.

이것은 오로지 마나로만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검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해도 되었다.

차라리 과거 유명한 SF 영화에 나왔던 광선검 같은 이미지라고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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