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94화 (94/160)

▣ 94화

김두완의 믿을 수가 없었다.

CCTV 안에 비치는 인물은 온통 새까만 옷을 입고 있었다.

이목구비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눈구멍만 조금 뚫려 있을 뿐.

아무리 최근에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뛰어난 능력을 지닌 헌터가 작정하고 자신을 감추려고 한다면 알아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미미는 화면을 보자마자 장오성이라고 단언했다.

“대단하네요. 이런 짓거리를 하다니.”

미미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장오성…….”

김두완은 만약 미미의 말이 맞다면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는 클랜장이 자그마치 S급 헌터를 테러한 거니까.

“자, 누가 그랬는지 알았으니까 이제 현장에 가보죠.”

미미가 앞장섰다.

김두완은 그저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장소는 S급 전용 훈련실 앞.

미미는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알아채지 못한 사이 그녀의 옆에는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정말로 귀엽게 생긴 강아지이다.

김두완은 당연히 조철웅과 미미가 이 강아지와 함께 투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규정 위반이지만 조철웅이 데리고 있는 것이니 문제 삼지 않았다.

딱히 바깥에 돌아다니거나 다른 손님 눈에 띄거나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각성수에 대한 규정은 애초에 좀 애매하기도 했다.

강아지 또한 미미 못지않게 굉장히 슬픈 표정으로 훈련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안쓰러운 모습이라 안아주고 싶었지만 묘하게 아우라가 있어서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강아지였다.

미미는 꽤 오래 훈련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모습이 영화 속 정지 화면을 보는 듯했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라서 더욱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녀가 뭔가에 집중해서 감지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어 김두완은 그녀에게 뭐라고 말도 붙이지 않았다.

“후…….”

드디어 미미가 경직되어 있던 몸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괜찮아요. 주군은 무사하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녀의 말만 듣고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좀 그랬지만, 그녀 역시 헌터이고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기에 김두완은 안심이 되었다.

근데 아까부터 주군이라고 하는데, 그 주군은 조철웅을 일컫는 것이겠지?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아마도 연인끼리 부르는 비밀스러운 애칭인데,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타인 앞에서도 입 밖에 나온 모양이었다.

“무사하신 걸 알 수 있는 겁니까?”

“네. 걱정하지 마세요. 주군은 곧 나오실 거예요. 그래도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게 해주세요. 필요하면 그냥 훈련을 하고 계시다고만 말해주세요.”

“네…… 그래도 될까요?”

아무리 그래도 사안이 사안인지라 만약 조철웅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사건이 크게 비화할 수 있었다.

“24시간이요. 그때까지 주군이 나오지 않으시면 그때 가서 알려도 되지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조철웅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별다른 이상을 느낄 수가 없으니까.

S급 전용 훈련실은 그저 문이 굳게 닫혀 있을 뿐이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겉으로 보아서는 몰랐다.

조철웅이 무사하다고 말한 미미는 의자를 가져다 달라고 한 뒤 훈련실 앞에 두고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예의 조그마한 강아지도 쪼그려 앉았다.

둘 다 묵묵하고 진지하게 훈련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깊은 사이인 건지.’

뭔가 미미나 강아지 둘 다 조철웅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조철웅을 그저 사람과 접촉하는 걸 꺼리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장면을 보니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갔다.

김두완은 초조해졌다.

“식사 준비해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주군이 안에 갇혀 계신 데 제가 먹을 게 목에 넘어갈 리 없잖아요.”

“끼이잉.”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초조함이 더했다.

‘진짜 나오는 거야?’

김두완은 시간이 갈수록 의심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조철웅이 무사하지 않다면, 자신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몰랐다.

S급 헌터는 살아 있는 국보라고 해도 무방한 존재이니까.

그의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때, 즉, 다음 날 오전이 되었을 때.

미미가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훈련실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안에서 조철웅이 걸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일본인 헌터도 나왔다.

“음…….”

조철우은 이쪽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딱히 인상을 찌푸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만 평소 그의 표정이 너무도 개성적인 데다가 지금은 몹시 피곤해 보이기까지 해서 마주하는 사람을 흠칫하게 만들 정도의 아우라를 뿜어냈다.

김두완은 얼른 허리를 숙였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호텔 지배인 김두완이라고 합니다.”

“아…….”

조철웅은 관심 없다는 듯, 그리고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짧은 입소리만을 냈다.

그리고 미미 쪽을 보더니 귀찮아하는 표정을 조금은 지우고 말을 했다.

“나 나올 때까지 기다린 거야? 여기서?”

“당연하죠. 주군, 배는 안 고프세요? 안에서 잠은 주무셨나요?”

미미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하자 조철웅은 겸연쩍은 듯 시선을 돌렸다.

“그냥 방에서 편하게 기다리지 그랬어.”

그는 마치 화제를 돌리려는 듯한 몸짓으로 손에 들고 있는 뭔가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새까맣고 조그마한 상자였다.

“그놈들. 가만두면 안 되겠지?”

가만두지 않는다면 장오성을 두고 말하는 걸까?

훈련실 안에 갇혔던 사람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엄청난 표정의 S급 헌터가 말하니 느낌이 전혀 달랐다.

장오성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조철웅의 표정과 말투는 미미에 비하면 약과였다.

그녀는 살기를 숨기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당연하죠, 주군!”

127

게이트에서 나왔다.

내가 있던 곳을 게이트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원래 나는 그곳에서 필요 이상으로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우라라가 만든 것, 즉 게이트를 생성해서 나와 하야시를 특정한 공간으로 날려버린 그 이론을 깨우친 다음, 그것을 역순으로 계산해서-말하자면 게이트 생성 능력을 얻은 다음- 밖으로 나올 생각이었다.

내가 소요될 거라고 예상한 시간은 길어야 서너 시간 정도였다.

왜냐면 배도 고플 것이고, 잠도 자야 하고, 또 무엇보다 미미가 걱정할 것이 싫었다.

우리 귀여운 파프리카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하지만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그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흘러 버린 모양이었다.

그만큼 이 집중 상태는 굉장히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강하게 날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뭔가를 깨우치고 그로 하여금 새 능력이 생긴다는 점에서 훈련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뭐랄까?

이쪽이 좀 더 이론적이고 정신의 고차원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이 느낌을 잘 다루다 보면 한층 더 성장하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 성장은 람바스가 생전에 이루었던 경지, 그 이상이 될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런 예상치 못한 집중 상태에 빠져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는 기어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게이트 생성’ 스킬.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헌터가 게이트를 만들다니.

우라라가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도구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 적용된 기술 자체도 불안정해서, 이것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작동이 잘 될지조차도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 불안전한 물건을 함부로 집어 던지다니.

더 용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라라와 장오성은.

그리고 박수철과 쿠로 등등.

‘게이트 생성’ 스킬이 생긴 것은 내가 명상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도 같은 집중 상태에 오랫동안 붙들려 있어야 했다.

뭔가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람에 시간을 잊고 몰두했다고 할까?

이 정도라면 거의 게으른 성격을 극복한 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게으르기 때문에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눈을 뜨고 일어나기가 귀찮아서 계속 명상을 했다,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튼 내가 명상을 통해 얻은 눈에 띄는 성과는 ‘게이트 생성’이 전부였다.

그 외에 여러 가지를 감각적으로 깨우치긴 했지만 얻은 스킬의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의미이다.

‘게이트 생성’ 스킬을 얻은 만큼 이것을 이용하면 같은 장소에 다시 올 수 있을 것이었다.

오늘 못한 명상과 집중을 계속 이어간다면 더 대단한 것들이 튀어나오리라고 확신했다.

이 스킬은 당연히 적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적을 날려버리거나 혹은 훈련 목적으로.

쌍방향의 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나는 눈을 뜬 뒤에 하야시에게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어?”

솔직히 하늘의 색이 내가 명상에 돌입하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하야시는 왠지 좀 전보다 훨씬 더 쌩쌩한 얼굴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은 줄 알았다.

“글쎄요…… 한 15시간쯤?”

하야시는 대충 헤아리더니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앞에는 몬스터 사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말 그대로 산처럼.

그리고 명상에 들어가기 전보다 주위가 한결 잠잠해졌다.

하야시의 몬스터 사냥이 끝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몸에서도, 그리고 주변에서도 열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면.

‘열다섯 시간이라고?’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야시가 너무 들떠서 실언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꼬르륵, 울리는 배가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배가 고팠다.

엄청나게.

그리고 피곤한 나머지 짜증이 확 밀려왔다.

‘젠장, 열다섯 시간이라고?’

서너 시간만 있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왠지 굉장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를 위로하려는 듯 메시지가 나타났다.

[스킬 ‘집중’을 얻었습니다.]

뭐라고?

갑자기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

나한테 ‘집중’이라는 스킬이 생기다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스테이터스를 들여다본 나는 이 스킬이 특능 ‘조철웅’에 속하는 또 하나의 스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람바스가 아니라 내 본연의 성정 덕분이었다.

이제는 ‘노근의인’이 아니라 ‘노근의인집’이 된 것이다.

아무튼 스킬 두 개를 얻었으니 그리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돌아갈까?”

“네? 아, 네…….”

하야시는 이곳에 열다섯 시간이나 사냥을 하고 어딘지도 모를 곳에 갇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간다는 게 좀 섭섭한 표정이었다.

정말 얼마나 싸움을 좋아하는 건지.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에게는 꽤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또 올 수 있어…….”

“아! 그게 정말입니까?”

못 말리겠다, 정말로.

나는 스킬을 발동했다.

‘게이트 생성!’

이 스킬의 반대 작용, 즉 생성된 게이트를 다시 무위로 돌리는 작업이었다.

부우웅-

내가 스킬을 발동하자 주변의 풍경이 조각조각 깨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점점 더 잘게 부서지더니 거대한 폭풍우가 되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휙, 휙, 휙-

점점 속도가 붙더니 결국 주변에 암흑이 찾아왔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게이트에 갇힌 역순으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훈련실.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새까맣고 조그만 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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