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93화 (93/160)

▣ 93화

“음, 이건 뭔가…….”

나는 명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기대했던 것들과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여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를 원했는데, 그 이상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

뭐라고 해야 하나?

정확하게 해석할 수가 없다.

람바스는 초유의 천재인 만큼 감각적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도를 넘어가도 너무 넘어갔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막대한 이미지와 영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가슴이 벅찰 정도다.

나는 평범한 S급 헌터가 아니다.

레벨이 상당히 높고, 그 이상으로 능력이 뛰어났다.

일본 쿠로가 자랑하던 하야시조차 내 상대가 전혀 되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이런 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이미지와 영상들이 내 안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 좀…… 시간이 걸리겠네.’

나는 혼자서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하야시에게 슬쩍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는 워낙 싸우는 것을 좋아하니까.

또 최근에는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이 별로 없었을 테니까 그에게 좋은 놀잇감을 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게이트에서도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지는 않으니까.

여기에는 뭔가 비밀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라라는 자신이 만든 물건이 이곳으로 연결하는 작용을 할 줄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 차원과 연결될지는 완전히 랜덤인 것 같다.

차원을 연결하는 방법을 알아내기는 했지만, 그 정확한 요지를 알지는 못해서 어설픈 물건 하나를 만들어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위험한 걸 나를 가두는 데 사용했고.

하야시가 나랑 같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을까, 몰랐을까.

이미 배신한 사람이니 같이 죽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야시 같은 인물은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으니까.

다나카는 어떨지 몰라도 하야시를 되찾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S급 헌터 두 명을 한꺼번에 보내버리다니.

대단한 일을 했네. 우라란지, 뭐시긴지.

물론 나는 여기서 나갈 거지만.

나간 다음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이다.

아니, 처음인가?

누군가를 혼내주고 싶다고 생각한 건.

김말중에게 당했을 때도 이만큼 화가 나지는 않았는데.

물론 우라라를 혼내기 전에 장오성, 박수철부터 손 봐야겠지.

여기서 나가면 또 귀찮은 생각에 미루고 싶어질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 기분은 그러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이미지의 핵심은…….

뭐라고 할까?

근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악마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악마가 그것을 사도들에게 알려주어서 게이트를 만들고, 헌터를 각성시키는 등의 작업을 한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냐면 이것은 도저히 인력으로 풀어낼 수 없는 우주의 신비, 그 근원에 접근하는 이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아주 조금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람바스는 끝내 이것과 관련된 비밀을 다 풀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걸 다 풀게 되면 악마와 적어도 동급이 될지 몰랐다.

아니, 악마는 태동할 때부터 이미 이것을 자연스럽게 깨우치고 있었을 테니, 놈의 비밀에 한 걸음 더 접근한다고 보아야 할까?

다시 말해 이것은 악마를 상대하는 비법으로 작용할지 몰랐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그리고 람바스가 처음부터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탐구했다면 아마 최후의 싸움은 양상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니다.

그냥 막연하게 그렇지 않을까 하고 느낄 뿐.

그리고 지금의 내가 이해하고 있는 수준에서는 그런 스케일이 큰 문제를 언급할 정도가 아니었다.

람바스의 분석 능력이 슈퍼컴퓨터라면 지금 처리되어야 할 데이터는 엄청나게 크고 방대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해석되고 있는 셈이었다.

하나의 결론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해석의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을 얻게 될 터였다.

‘예상치도 못했는데. 이런 건…….’

나는 명상을 이어나갔다.

지금만큼은 이 행위가 귀찮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이것은 내게 매우 신기한 감각이었다.

무수한 목소리들이 내게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다.

폭포수처럼 영감이 밀려온다.

이것들을 해석하면서,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물리적인 보상으로 작용하게 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듯했다.

‘뭐, 상관없지.’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미미나 파프리카 그리고 동료들이 안다면 아마도 크게 놀랄 것이다.

하지만 진상이 완전히 밝혀질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

나는 원래 칩거하다시피 살고 있었으니까.

이 문제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그 전까지는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솔직히 나가는 데만 집중을 한다면 금방 나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는 너무 아까웠다.

게이트에 갇히는 경험은 날이면 날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일단 궁금한 것이 어느 정도 풀릴 때까지는 여기서 안 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런 어이없는 습격을 받았는데,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으면 너무 손해이지 않겠는가?

적어도 우라라와 같은 수준의 기술은 손에 넣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우연처럼 이것을 만들어냈겠지만-그리고 과거에 람바스를 같은 방법으로 습격했던 사도도 그러했다. 말하자면 꽤 긴 시간이 있었음에도 발전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르다.

내게는 그 요지가 손에 잡힐 듯 말 듯했다.

필요한 것은 시간일 뿐이다.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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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지하의 헌터 전용 훈련실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훈련실 안에 들어가 있던 헌터 중 한 명이 밖으로 나와서 직원들이 모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

그들이 한꺼번에 의식을 잃고 기절해 있다는 것은 당연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호텔 측에 이 사실을 알리고, 기절한 직원들은 모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호텔 측에서는 곧 S급 훈련실의 문이 닫혀서 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도 다루기 힘든 시설이다.

그 안에는 조철웅과 또 한 명, 일본인 헌터가 들어가 있었다.

당연히 이것은 대단히 큰일이었다.

하지만 호텔 지배인 김두완은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당연히 사업적인 관점에서 S급 헌터가 호텔 훈련실에서 봉변을 당했다고 하면,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은 감추려 할수록 나중에 밝혀졌을 때 반동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이 일을 외부에 알리기 전에 조용히 진상을 알아보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 같다고.

아무리 그래도 S급 헌터가 사고를 당했다.

이것이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일이라고 하면-CCTV를 보자 까만 옷을 입은 누군가가 침입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 아닐 것이었다.

어쩌면 이 호텔의 힘만으로는 무마하기 힘들지도 몰랐다.

그 전에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었다.

김두완은 신중한 사람이었고, 비교적 옳은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조철웅이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물론 그의 얼굴과 표정을 보면 그 사실을 모르기가 더 어렵지만- 일부러 그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호텔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게끔 신경 썼다.

그는 알고 있었다.

조철웅과 같은 방에 투숙하고 있는 여자가 한 명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먼저 사실을 알리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125

“네?”

미미의 경악한 표정을 보고 김두완은 쩔쩔맸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의 관리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아직 진상 파악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만 먼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우리 주, 주군이…….”

미미는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김두완은 이미 미미와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조철웅은 모르고 있지만 그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 그녀의 의견을 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호텔 이용 요금은 무료였다.

그리고 따로 요구사항이 있으면 즉각 처리되게끔 조치했다.

호텔로서도 대한민국에서 새로 각성한 S급 헌터가 투숙하고 있다는 것은 이용할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조철웅의 접객을 위해 미미와 대화를 나눈 것은 무척 도움이 됐다.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조철웅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S급 헌터에 대한 정보는 사소한 것까지 전부 가치가 있다.

미미의 도움으로, 그리고 김두완의 배려로 조철웅은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이 호텔에 오래 머물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보통 사이가 아닌 모양이구나.’

너무도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니 혹시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지 않을까 여겨졌다.

당연히 남녀가 한 호텔 방에 머물고 있는데 연인 관계가 아니라고 하면 더 이상한 일이지.

물론 뭔가 미묘하게 다른 기류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겪어본바 미미는 굉장히 영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호텔 측에도 나름의 매뉴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음, 일단 누가 그랬는지 알아봐야겠어요.”

미미는 언제 패닉에 휩싸였냐는 듯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 침착해 보이는 것은 그저 감정을 누르고 있는 것 뿐이었고, 그녀의 눈빛은 살을 얼어붙게 할 만큼 단호하고 진지했다.

“알겠습니다! 저희 호텔 측에서는 조철웅 님이 무사히 훈련실에서 나올 수 있게 최대한의 조치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설마 조철웅 님이 봉변을 당하시리라고는…….”

“아니요. 지배인님 잘못이 아니에요. 호텔 보안이 뚫린 것은 상대가 그만큼 나빴기 때문이에요. 그게 누구인지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죠.”

“네! 가시죠! CCTV는 확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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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를 보자마자 미미가 말했다.

“장오성이네요.”

“네? 장오성…….”

김두완은 그게 누구인지 물으려고 했다가 곧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오성급 호텔 지배인이니만큼 그는 당연히 헌터들의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한 헌터라면 세세한 정보까지 외울 정도로 알고 있다.

장오성은 이 호텔에 여러 번 투숙할 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S급 헌터를 제외하고 대한민국의 헌터 순위를 매긴다고 했을 때,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한 인물이었다.

“장오성 씨가…… 이 사람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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