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92화 (92/160)

▣ 92화

“그 비밀 병기가 뭔지 알고 계신가요?”

다나카가 생각에 잠겼다.

“그것을 개발한다는 얘기는 꽤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라라라고 해도 그것은 만들기 꽤나 까다로웠던 모양입니다. 뭐 어느 정도 진척이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우라라가 자세한 얘기를 우리에게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만약 그게 완성됐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하자면…….”

다나카가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것은 게이트와 관련된 물건이라고 들었습니다.”

“게이트요?”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닫아버리는 거라고 할까요? 게이트를 통째로 소멸시키는 기술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음.”

미미는 다나카의 말을 듣고 신중한 입소리를 냈다.

얘기를 듣고 있던 나도 생각했다.

‘대체 그런 걸 만들어서 뭐하겠다는 거지?”

게이트를 닫는다라…….

그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인류는 게이트로부터 문명 발전의 도구들을 얻고 있으니까.

나는 내가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 그런가?’

만약 내가 게이트 안에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먼저 밖으로 나가 그 게이트를 완전히 닫아버린다면.

하지만 게이트라는 것은 안에 있는 몬스터를 죽이기 전까지는 출구가 열리지 않는 법이다.

출구가 한 번 열린 뒤에 일정 시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게이트가 리젠될 때까지 안에 갇혀 버리는 구조고.

이것은 불문율이었다.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만큼 당연한 물리현상.

헌터와 몬스터의 존재, 그리고 게이트라는 것이 인류의 인지 범위를 넘어선 현상일 텐데, 어떻게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발상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게이트를 없앤다는 것은 지금에 와서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불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방법을 찾아도 실익이 없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쓸모를 생각할 수는 있었다.

말하자면 안에 헌터를 가두고 영영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은.

“그렇군요. 쿠로와 한국의 클랜장들은 주군을 게이트에 가두고 그것을 닫아버릴 생각이에요.”

“아마 우라라가 그 비밀 병기 만드는 걸 완수했다면 그걸 사용할 겁니다. 그것 말고는 깔끔하게 일을 처리할 방법이 따로 없기도 하죠. 쿠로도 조철웅 님이 일반적인 S급 헌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테니까요. 섣불리 덤비는 것보다 도구의 힘을 빌려 조철웅 님을 아공간 안에 가둘 수 있다면 그렇게 하려고 할 겁니다.”

음.

우라라라는 쿠로의 헌터 능력은 꽤 대단한 모양이구나.

게이트에 헌터를 가둔다는 발상을 하고, 또 그것을 실제로 개발했다니.

물론 오늘 이곳에서 오간 이야기들은 전부 가정이었다.

왠지 결론이 그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지만.

‘하지만…….’

나는 상상해 보았다.

게이트에 내가 갇힌다.

“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 안에서는 아무도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

내가 빈둥거리든, 게으름을 피우든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면 행성을 집어삼키는 게 취미라는 무시무시한 악마와 싸운다는 무거운 의무감을 벗을 수도 있겠지.

“왈! 왈!”

내가 혼자서 못된 생각을 하는 걸 눈치라도 챈 것처럼 파프리카가 짖었다.

‘미안, 미안. 당연히 진심이 아니지.’

물론 나는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내 의무를 이행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게이트에 갇혀서 어딘지도 모르고 공간 속에서 헤매는 것보다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훨씬 재미있으니까.

게임도 있고 미미처럼 내게 잘 맞춰주는 훌륭한 부하도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게이트와 그곳에 갇힌 나를 상상하다가 뭔가를 떠올렸다.

그것은 오래된 기억이었다.

이 감각은 람바스가 가지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을 때 느껴지는 전형적인 감각이었다.

고개를 들자 미미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재밌네요.”

미미의 표정은 사안과는 달리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전에도 있었죠. 같은 짓을 하려고 했던 자가.”

‘음.’

그랬지. 그놈은 아마 사도였을 것이다.

아마 그놈이 우라라라는 여자에게 빙의한 사도가 아닐까?

그리고 과거에 어떻게 됐냐 하면…….

자세히는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람바스가, 그 무시무시한 천재 먼치킨이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궁지를 벗어났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도 살짝 궁금해졌다.

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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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그것은 미미가 소집한 회의에서 내린 결론과 일치하는 일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백 퍼센트 일치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

다나카가 얘기했던 것은 게이트를 닫아버린다든가 게이트를 소멸시켜 버린다든가 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얘기에서 나와 미미는 동시에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기억을 보충하는 또 다른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우라라가 개발하고 있다고 하는 비밀 병기가 단순히 게이트를 닫거나 소멸시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회의 바로 다음 날, 그것도 직접 호텔로 습격해 올 줄은 몰랐지만.

내가 훈련실에 있을 때를 노렸다는 점에서 상대측이 무척 준비를 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호텔 방에서 나올 때는 훈련실에 갈 때 말고는 거의 없으니까.

그리고 훈련실에 있을 때를 노리면 상대적으로 일을 크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 있었던 게 뭐냐면, 바로 훈련실 안에 직원들이 있었다는 것.

다행히 오전 시간이라서 훈련실을 이용하는 헌터들은 별로 없었고, 그나마 있던 손님 헌터들도 전부 훈련실 안에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아무튼 언제나 나를 에스코트하는 것에 전심을 기울이고 있던 박거한은 갑자기 침입한 자객에게 공격당해 기절을 했다.

그를 포함해서 몇 명의 직원들도 함께.

그리고 그 자객은 나와 하야시가 있는 S급 헌터 전용 훈련실 문을 열고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짧은 시간 동안 모습을 보았을 뿐이지만, 그리고 완전 새까만 옷을 입고 있고 이목구비도 전혀 드러내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A급 헌터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체형을 보는 것만으로, 특히 머리 부분이 맨들맨들한 것을 보아하니 그가 장오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었겠지.

자그마치 S급 헌터를 노린 일이니까.

그가 집어던지고 급히 사라진 물건은 상자였다.

새까만 상자.

그것은 던져진 다음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허공에서 멈추었다.

하야시와 나는 막 훈련을 시작한 참이었다.

하야시가 새로운 비기를 선보이려던 찰나.

하지만 그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팟!-

상자에서 눈 부신 빛이 분사됐다.

그것은 일견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마치 오색의 꽃가루가 뿌려진 것처럼.

그래서인지 나와 하야시는 반응하지 못하고 자객이 사라지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 본능은 즉시 이것이 위험한 일이 생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허공에서 빛을 뿌리는 저 물건이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것도.

후다닥 달려가서 상자를 잡고 집어던졌다.

쾅! 쾅! 쾅!

상자는 바닥에 부딪히고, 벽면에 부딪히고, 또 천장에 부딪히는 등 수십 차례에 걸쳐 튕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그마치 S급 헌터인 내 힘으로 던진 것이니까.

멈추지도 않고 잘도 튕겨댔다.

‘진짜 견고하게 잘 만들어졌구나. 이 훈련실은.’

그리고 이 상자 또한 굉장히 단단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발동되기 시작한 작용도 멈추지 않았고.

화악-

꽃가루가 사라지고 난 뒤에 찾아온 것은 기분 나쁜 어둠이었다.

훈련실 자체가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깜깜한 어둠이 깔린 것.

그리고 뭐라고 할까?

공간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바닥이 사라지고 천장이 사라졌다.

칠흑의 공간에 하야시와 나 둘만 남아 둥둥 떠 있었다.

“당했네.”

그리고 애매하던 기억이 확실해졌다.

사실 우라라라는 여자가 만들고 있었던 것은, 그리고 과거에 람바스가 당했던 물건은 게이트를 닫거나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뭐,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게이트 자체를 만들어낸 뒤에 그 안에 가둔다는 점이 달랐다.

어둠이 끝난 뒤에는 새로운 배경이 나타났다.

땅이 생기고 하늘이 생겼다.

붉은색 땅바닥과 마찬가지로 붉은빛을 띤 하늘.

언덕과 멀리 보이는 산들마저 비슷한 빛깔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확실히 지구는 아니었다.

게이트 안의 공간이라는 것이 실제로 이 우주에 존재하는 공간인지, 혹은 다른 차원인지조차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었다.

“……갇혔군요.”

하야시가 마치 남의 일처럼 말을 했다.

뭔가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나를 보는 시선에서, 그가 믿고 있는 구석이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내가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나갈 해결법을.

‘아, 귀찮아.’

그때 쿵쿵쿵쿵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도 기분 나쁜 진동들이 느껴졌다.

어지러운 짐승 소리.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몬스터 떼들이 우리를 노리고 달려온다는 것은.

그리고 하늘에서도 날아왔다.

A급 이하의 몬스터들이라 개별 능력은 뛰어나지 않아 보였지만, 숫자가 많았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귀찮다’가 되겠지.

“나는 생각해야 될 게 있으니까 저것들은 네가 알아서 해 봐.”

그래.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이곳에서 나갈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덜 귀찮겠다.

하야시와 함께 이곳에 갇힌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귀찮은 일을 처리해 줄 사람이 있었다.

“물론이죠. 주군을 방해할 수 없게 저것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나와 달리 하야시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이럴 때는 정말 믿음직스러운 그였다.

귀찮은 몬스터들의 처리는 하야시에게 미뤄둔 채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었다.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

이 명상의 목적은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게이트에 갇혔던 람바스가 과연 어떻게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내 현재 능력으로 그것을 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생각은 해보아야 했다.

귓가로 하야시와 몬스터 떼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성가셨지만 그 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싸우는 소리가 더 이상 안 났다는 게 아니라 내 집중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기한걸?

내게, 그리고 람바스에게 이 정도의 집중력이 있었을 줄은.

아니, 이것은 단순히 귀찮은 다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자연스럽게 장착된 능력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고요 속에서 나는 기억을 되새겼다.

집중한 지 오래되지 않아 새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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