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으으…….”
이것은 참 불쾌한 감각이었다.
차라리 떨어져 있었다면 느낄 필요가 없었을 감각이 이렇게 착 달라붙어 있으니 고스란히 느껴졌다.
기어코 하야시는 자신의 기술을 풀어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연체동물처럼 내 몸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엄청나게 아플 게 분명한데도 하야시는 웃는 얼굴로, 그리고 존경하는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대단하십니다! 주군, 정말 대단하십니다!”
보기에는 당장 병원에 실려 가야 할 것 같은 몰골이지만, S급 헌터의 회복력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경지에 있었다.
하야시의 몸에서 또다시 기분 나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뚝, 뚝, 뚝, 뚝.
이것도 일종의 기술인 것 같다.
마나를 운용해 뼈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소리나 회복 속도가 비정상적이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부러진 뼈를 스스로 맞춘 것.
이것도 신체를 변형한 기술과 같은 맥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기술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도 몸을 회복시키는 기술이기는 해도 상당한 통증이 따를 것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절대로 이 기술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하야시와 같은 처지에 처한다면 다소 느리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마나를 운용해 뼈를 붙이는 방법을 택할 것이었다.
그래도 엄밀히 말해 하야시의 접골법과 내 마나 회복술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날지 알 수 없지만.
하야시에게는 미안하지만 후자가 효력이 훨씬 좋을 것 같다.
그런 내 생각과 별개로 뼈를 붙이는 기술도 익혀버렸다.
‘분석’은 내버려 두면 패시브로 알아서 작용하니까.
천재 중의 천재는,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조차도 내가 두렵다.
이 말밖에 할 수 없다고 할까?
즉시 익히게 된 것을 보면 이 접골법도 신체를 변형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는 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독을 사용하는 사람이 해독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은 그만할까”
훈련은 더 이상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하야시에 부러지는 뼈 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 그리고 그것이 다시 이어지는 것을 본 다음에 의욕이 확 꺾여버렸으니까.
노근의인 스킬의 발동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 훈련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네, 알겠습니다!”
하야시는 두말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로서는 아쉬울 것이다.
나는 딱히 그에게 뭘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의 표정이 오늘 이 대련이 자신에게 굉장히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뭐 나와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사람이니 다 자기가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했겠지.
하야시가 훈련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더니 곧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늘 그렇듯 문밖에 배달되어 있던 음식이들이었다.
“이거 맛이 좋더군요. 그리고 회복 효과도 무척 좋은 것 같습니다. 한국을 무시하고 있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이것을 먹으면서 주군의 깊은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때 하야시는 내가 남긴 음식을 먹었었나 보다.
내 마음을 느꼈다니.
어쩌면 내가 그때 음식을 남겨두지 않았다면 하야시는 귀찮게 한국에 남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었다.
나는 괜한 짓을 했었다고 후회했다.
“주군, 많이 드십시오.”
하야시가 절도 있는 동작으로 내 접시에 음식을 담아 주었다.
무엇을 하든 절도가 몸에 배어 있는 그다.
윗사람을 받드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할까?
마치 미미처럼 수준 높게 시중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하야시의 이런 태도가 달갑지 않았다.
나한테는 미미만 있으면 된다. 정말로.
120
내가 훈련을 마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방 안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내 호텔 방에는 미미, 파프리카, 그리고 나 세 명밖에 묵고 있지 않았고, 현재 이런 소리를 낼 만한 사람은 미미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절대로 쉽게 소리를 지르는 타입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몇 명 그녀를 화나게 한 대상을-주로 내게 까불었던 놈들이었다.- 요리하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녀는 그럴수록 침착하게 어떤 의미로는 더 소름 끼치는 태도로 상대방을 굴복시켰다.
과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인기척이 추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방에 다른 사람이 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훈련을 잘 마치고 왔다고 칭찬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진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전화기를 들고 일던 미미가 핸드폰을 서둘러 막더니 방긋 미소를 지었다.
“어머, 주군 오셨어요? 오늘도 수고 정말 많으셨어요~~”
방금까지 큰 소리를 내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표정과 말투였다.
뭐라고 할까?
이런 점은 조금 무섭다.
나는 미미를 굉장히 신뢰하고 그녀를 대체할 존재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점은 조금 적응이 되지 않았다.
뭐 자주 보이는 모습이 아니니까, 내가 불만을 가질 만한 일은 아니지만.
“누구랑 얘기하고 있었어?”
“아! 죄송해요. 얘기 다 끝났어요.”
미미는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나서 등을 돌린 채 싸늘한 목소리로 전화기 안에 말했다.
“그러니까 김말중 씨. 똑바로 합시다? 아니면 죽고 싶어요? 죽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든가.”
죽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니.
전화기 안에 있는 김말중, 그가 아무리 이 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말을 듣고 얼마나 벌벌 떨지 상상이 됐다.
듣기로는 미미가 걸어둔 주박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효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정신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나?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미와 적으로 만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뭐 적으로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기술이 내게는 통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상대가 김말중이라면 동정하고 말 것도 없었다.
잘못했으니까 욕을 먹는 거겠지.
미미가 전화를 끊고 나서 후, 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죄송해요, 주군. 주군이 이렇게 빨리 오실 줄 모르고…….”
“괜찮아.”
나는 웬만한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주의이지만 그래도 미미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다.
우리 온순하고 착한 미미를 화나게 한 이유가 뭘까?
김말중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온순한 노예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제가 김말중한테 말해뒀었거든요. 한국 헌터계의 교통정리를 깔끔하게 해 달라고요.”
“교통정리?”
“네. 그게 돼야 주군이 위에 올라가서 그들을 편하게 주무를 수 있지 않겠어요?”
“응? 주무른다고?”
“뭐, 군대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은 주군의 홈그라운드예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여차하면 손가락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군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
군대라…….
하기야 내가 명령을 내리고 거기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 그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헌터계를 교통정리 하는 일이 과연 쉽게 될까?
뭐 어떻게 보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김말중 한 사람밖에 없을 것 같기도 했다.
헌터부 장관이 아니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되는 거야?”
“네. 김말중한테 박수철이랑 장오성이 찾아갔었나 봐요.”
박수철…… 장오성…….
나는 왠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전에 선물을 들고 김말중이랑 같이 왔었던 사람들이요.”
“아~ 그 사람들~”
그들은 A급 헌터들이었다.
평범한 A급 헌터도 아니고 각자 클랜을 이끌고 있는 클랜장들.
꽤 잘 나가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헌터계는 자고로 S급 미만은 잡이니까.
S급 헌터 밑에서는 굉장히 복잡하게, 그리고 치열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S급 헌터는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박수철과 장오성은 나에게 잘 보일 목적으로 찾아왔었다.
김말중과 한통속이 되어서 선물을 들고 환심을 사려고 했었다.
‘인상은 상당히 험악했었는데…….’
특히 장오성은 대머리에 덩치도 큰 사람이었지.
하지만 헌터는 등급이 깡패다.
그들은 들어올 때부터-물론 나를 속이려는 속내가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겠지만-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뭐, 어쨌든 비싼 선물을 놓고 갔다는 사실 말고는 내가 딱히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왜?”
“자기들 뜻대로 안 돼서 화가 많이 났나 봐요. 김말중이랑 작당하고 주군을 이용하려고 했었잖아요.”
미미가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진다는 듯 예쁜 이마를 찡그렸다.
“아 그렇지?”
당연히 그들은 화가 났을 것이다.
김말중이 나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말에 넘어가 그와 손을 잡았었다.
아무리 헌터부 장관이라고 하더라도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 먹을 수는 없으니까.
김말중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장기 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박수철과 장오성도 김말중이라는 백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서로 이해가 맞아 나를 구워삶으려 했었다.
그들은 나를 두고 갓 각성한 나이가 어린놈이라고 우습게 봤을지 모르지만 순진한 건 오히려 그들이었다.
S급 헌터를 자기네 뜻대로 주무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어쨌든 김말중은 미미에게 크게 혼나고 영혼이 속박당한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박수철과 장오성은 한순간에 팽 당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화가 났겠지.
미미의 말을 듣자 하니 그들은 김말중을 찾아갔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소파에 앉으면서 미미에게 물어보았다.
할 일이 없기도 하고 미미를 화나게 했다는 김말중의 행동이 궁금하기도 해서 계속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김말중이 자기가 큰소리를 내니까 두 사람이 쫄아서 그냥 가 버렸다고 자랑을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말이 되나요?”
“음…….”
내 머릿속에는 그림이 그려졌다.
김말중은 자기가 대단히 영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했지만, 인격은 한없이 얄팍하다.
자기가 큰소리를 치고, 잘 나가는 A급 헌터 클랜장 두 명이 대꾸를 못 하고 돌아간 모습을 보고 기고만장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을 미미에서 자랑했고.
뭐라고 해야 될까?
마치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을 생각에 들 떠 있다가 되레 크게 혼이 난 아이를 보는 것 같다.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김말중은 두 사람이 자기한테 쫄아서 찍소리도 못 내고 돌아갔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네. 그럴 리가 있나요? 아무리 장관 앞이라고 해도 그 사람들은 산전수전 다 겪고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이에요. 화가 나서 찾아간 자리에서 테이블을 엎지는 못할망정 그냥 꼬리를 말고 돌아갔다뇨. 그것은 꿍꿍이가 따로 있다는 뜻이에요.”
“꿍꿍이?”
“네. 분명해요.”
미미는 거기까지 말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머릿속에 복잡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뭔가 흩어져 있는 퍼즐을 맞추려고 하는 모양새다.
나는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흥미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일을 처리하는 것은 미미의 특기이니까.
그리고 내가 알아야 할 일이면 그녀가 알아서 내게 말을 해 줄 것이다.
그랬구나.
“김말중 그 자식이 혼날 짓 했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침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