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뭐, 나쁘지 않네.’
나는 이 호텔에 운영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접근하는 방식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반인과 접촉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직접 내게 찾아와서 이것저것 말하거나 부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단 직원이라고도 할 수 있을 박거한을 통해 나와 대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뭐, 그래도 이 훈련실의 존재가 내게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이 호텔에서 나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미미는 실제로 우리가 머물 주거지를 알아보고 있기도 했었지.
그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직도 알아보는 중인지, 아니면 그냥 보류해 두었는지.
나는 내가 이 호텔에 계속 있기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호텔 쪽에서는 생각할지 모른다.
S급 헌터가 투숙하고 있으면 세상 어느 곳보다도 안전한 호텔이 될 거라고.
하지만 그것은 나를 잘 모르고 하는 생각이다.
세상 모든 몬스터, 사도와 악마까지 나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걸 안다면 내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텐데.
뭐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으니 이곳에 필요한 만큼 머물기로 했다.
하야시와 훈련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하야시가 눈빛을 빛냈다.
“뭐 딱히 그것밖에 더 있겠어?”
“알겠습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하야시는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그의 이런 점은 정말로 마음에 든다.
우리가 훈련하는 방식은 당연히 서로 대련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노리는 것, 그리고 미미가 원하는 것은 그의 기술이 영감을 자극하는 원천이 되어 내 성장을 이끄는 것이니까.
하야시에게는 내가 얻을 만한 영감이 많이 있을 게 분명했다.
자, 분신술 다음에는 뭐가 나올까?
나는 ‘노력’ 스킬을 사용했다.
의욕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호기심도 커졌다.
“지난번에 저는 조철웅 님의 실력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오만하고, 제가 많이 부족했음을 통감했습니다. 다 주군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우웅-
하야시는 이번에 지난번보다 훨씬 강력한 마나를 뿜어냈다.
‘그래, 이렇게 할 수 있으면서.’
지난번에 처음부터 이렇게 했더라면 나는 그를 더 높게 평가했을 것이다.
물론 그래 봐야 바뀌는 것은 없었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지배자의 손아귀로 양손의 방패를 만들었다.
지난번에 이것을 하야시는 도발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눈치다.
“아무거나 해 봐.”
내 말에 하야시가 진지한 얼굴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 전심으로 가겠습니다.”
그는 오늘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맨손이었다.
뭘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마치 무술을 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기묘한 포즈다.
물론 내가 무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어렸을 때 태권도를 조금 배웠고, TV에서, 그리고 영화에서 무술로 싸우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거기다 요즘에는 트렌드가 바뀌어서 더 이상 무술 영화 같은 것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어느새 고전 영화의 한 장르가 되어버렸다.
그나마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인기가 있지도 않다.
왜냐면 헌터가 등장한 이후에 평범한 인간들끼리 싸우는 것은 시시해졌으니까.
아무리 기술의 차원이 높고, 영화 속에서 CG를 통해 과장된 연출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에는 대단찮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국의 축구 리그가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와 상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프리미어 리그를 보고 국내 축구 리그를 보면 뭔가 김이 새는 것이다.
나름대로 재미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지만, 어쨌거나 그 정도라는 뜻이다.
조철웅은 그렇더라도 람바스는 다르다.
람바스는 온갖 기묘한 무술, 그리고 기묘한 존재들을 상대해 보았다.
그런 기억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하야시의 동작은 기묘했다.
이번에도 이상한 것을 꺼내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닌자술과 분신술 그것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라면 그저 현란하고 복잡한 검술 정도를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하야시도 각성하고 나서 자신의 스타일을 바꾼 것이 분명했다.
헌터가 되고 나서는 보다 많은 것들이 가능하니까.
이른바 분신술까지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전에는 이론으로만 알았을 뿐이지, 그리고 이론으로 알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진짜 그 기술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신술이 가능하게 됐다면 또 무엇이 가능할까?
하야시는 어떤 비기를 더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호기심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의욕 없는 사람처럼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가겠습니다!”
하야시가 선언했다.
그가 몸을 낮추고 준비를 시작했다.
마치 레슬링을 하는 사람이 태클을 하는 것처럼.
나는 지배자의 손아귀로 만든 방패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니, 완전히 무용하지는 않겠지만 하야시와 지금 대련하기에는 적당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없앴다.
그리고 하야시의 태클에 반응했다.
솔직히 그 태클을 한 번 받아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사용한 것이 어떤 기술인지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당연히 나는 지금 ‘분석’ 능력을 발동 중이다.
분석 능력이 하야시가 어떤 특별한 기술을 구사하는 것인지 나름대로 계산해 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반대로 몸이 먼저 반응했다.
본능이 먼저 반응한 것.
하야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지만 나는 한쪽 발의 발 방향만 바꾸어서 그 태클을 피해버렸다.
피했다,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움직이지 않은 발 쪽에서 불편한 감각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내 발을 잡아챈 느낌이었다.
아래를 보았다.
그러자 하야시의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는 것이 보였다.
길어지고, 꺾여 있다.
신체가 변형되었다고 할까?
태클을 피했지만 그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팔이 모양을 바꾸어서 갈고리처럼 내 다리를 잡아낸 것이다.
그 반동과 탄력으로 내 몸에 들러붙었다.
쩌억.
그렇다.
완전 거머리처럼 하야시가 내 몸에 달라붙은 것이다.
마치 매미처럼.
등에 짊어진 거추장스럽고 커다란 가방처럼.
‘아, X발. 이런 거 진짜 싫은데.’
남자랑 살을 맞댄다는 것 자체도 싫을 뿐 아니라 이런 행위는 정말이지 나를 귀찮게 한다.
노력을 발동 중임에도 불구하고 거북스러운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하야시의 몸이 비틀렸다.
팔이 늘어났던 것처럼 사지가 전부 다 늘어난다.
그리고 마치 각자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휙휙 내 몸을 얽어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이상한 관절기를 사용한 듯한 모습으로 나를 옭아맸다.
이런 건 풀 수 없다.
절대로.
그게 당연하다는 듯 하야시는 대련에 진지하게 임했다.
그 말은 즉, 나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달라붙었다는 뜻이다.
왜냐면 그의 팔이, 혹은 기묘하게 뒤틀린 다리가 내 목을 있는 힘을 다해 조르고 있었으니까.
숨이 막힌다.
호흡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목에는 핏줄이 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서 있었다.
굳이 기도를 통해서 호흡하지 않아도 내가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을 방금 알았다.
나는 정수리로 호흡할 수 있고, 온몸의 땀구멍으로도, 그리고 좀 그런 방법이기는 하지만 항문을 통해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진짜 몸이 어떻게 돼 버린 거야?’
완전히 지구인의 생물 법칙을 벗어나 버린 것 같다.
이것은 일종의 스킬이기도 했고 일종의 마나 운용법이기도 했다.
목을 졸라서는 내가 숨을 쉴 수 없게 만들 수 없다.
하야시는 아마도 그걸 모르고 있겠지.
그는 점점 더 강한 힘으로 내 목을 졸랐다.
그래도 내가 미동하지 않자 더더욱 힘을 낸다.
나를 실제로 죽이려는 생각은 없을 것이다.
이 정도로 해도 내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겠지.
또 이 정도로 죽어버린다면 자기가 섬길 주군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정말 귀찮은 놈이구나, 하야시 너는.
일본으로 안 돌아갈 거냐?
하지만 그런 생각과 별개로 나는 하야시가 사용한 기술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그렇다.
또 영감이다.
‘귀찮지만 진짜 유용한 놈이기는 하네.’
이런 기술은 정말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묻지 않았는데-사실 목을 졸리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없었다.- 하야시가 알아서 설명했다.
“이것은 일본의 고대 비술 중 하나입니다. 근육과 뼈를 마음대로 조작하여 상대를 질식시키는 기술이죠. 활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이 기술을 연마하여 일정 경지에 이르면 천하무적이 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내게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천하무적이라는 것은 거짓으로 판명 났다.
뭐, 그 말을 한 사람은 후대에 S급 헌터가 이 기술을 쓰고, 그것을 당하는 사람도 S급 헌터일 줄은 몰랐겠지만.
신체 변형술이라니.
지난번 분신술 때도 그랬지만 일본의 고대 무술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상상력 하나는 알아줘야 할 듯했다.
실제로 이것을 연마한 사람들이 있었을까?
없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아마 연마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있더라도 지금의 하야시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는 못했겠지.
하지만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명맥을 이어서 하야시에게 전수되었고, 하야시는 S급 헌터가 되어서야 이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전혀 효과가 없었지만.
‘오늘도 좋은 걸 배웠네.’
배웠으면 한번 써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내 팔과 다리가 쭉 늘어났다.
가만히 서서 무표정하게 의욕 없는 자세로 팔과 다리를 늘어나게 한다.
그리고 전혀 인간의 근육과 뼈가 움직일 수 없는 방향으로 그것들을 비틀었다.
하야시가 내 목을 조르는 관절기는 이미 푸는 것이 불가능했으므로-방법은 있지만 그랬다가는 하야시의 팔이 날아가 버릴 것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대책으로써 나는 하야시의 몸을 반대로 조였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세게 조른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놀라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보고도 믿기 어려울 만큼 기묘한 장면일 테니까.
그리고 보기에 굉장히 거북할 것이 분명했다.
남자 두 명이 강력하게 얽혀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떠나서, 우리는 지금 완전히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므로.
둘이서 마치 고무 인간이 된 듯 얽혀들었다.
팔과 다리가 어느 방향으로 꺾이고 상대를 조르고 있는 것인지 나조차도 헷갈렸다.
하지만 뭐라고 할까?
힘의 균형은 너무도 확실했다.
최선을 다해 하야시가 내 몸을 졸랐을 때 나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내가 하야시의 관절을 껐었을 때는 완전히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으악!”
참을성 강한 하야기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뚝.
뼈가 부러졌다.
처음 한 번의 소리가 신호라도 된듯 뚝, 뚝, 뚝, 뚝 차례대로 하야시의 뼈가 끊어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