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이 새끼가 어디서 개수작이야.’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잘난 척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싸우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고 해서 기대했더니 장난질이나 하고 있어.
물론 그의 움직임은 상당히 기민했고 이제까지 싸웠던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놈이 나를 상대할 때 가장 짜증 나는 부분은 바로 태도였다.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고 할까?
그동안 이기는 것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던 탓인지 쉽게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자만하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나는 여기서 좀 더 그를 압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동안 표출하지 않고 있던 마나를 방출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적당히.
부우웅-
내 마나를 느낀 하야시의 표정이 굳어졌다.
부우우웅-
끊임없이 자신을 압박하는 마나에-그것은 훈련실이라는 좁은 공간의 특성상 더 강력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더구나 이 장소는 내게 길들어져서 내 마나에 쉽게 반응한다.- 마치 몬스터에게 ‘공포’나 ‘경직’ 공격을 당한 것처럼 몸이 굳어 버렸다.
조금 심했나 싶기는 하지만 나는 하야시에게 충분히 이걸 극복할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그렇지 않다면 싸울 가치가 없다.
초반에 느낀 호기심이 착각이었다는 뜻이 된다.
나는 천천히 그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왜 그러세요? 저는 방패밖에 들고 있지 않은데. 그쪽은 조금 보란 듯이 시퍼런 검을 가지고 있잖아요? 집안이 대대로 검술을 연마했다면서요? 아주 일본에 소문이 자자했나 보던데.”
내 지속적인 도발에 경직되었던 하야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검을 자기 몸 앞에 수직으로 세우더니 중얼중얼 무언가를 읊조린다.
일본어였기 때문에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그로부터 연출된 현상이 그가 내보이려 한 스킬이 무엇이었는지 말해 주었다.
팟- 팟-
“응?”
이게 뭐야?
나는 당황스러웠다.
하야시의 양옆으로 두 명의 칼든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들의 모습은 하야시를 꼭 닮아 있었다.
이런 걸 애니메이션에서 본 적이 있는데.
‘분신술인가…….’
이런 건 닌자가 쓰는 기술 아니야?
애초에 닌자가 분신술을 쓴다는 것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분신술인 것이다.
고속으로 움직이면 몸이 여러 개가 된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말도 있지만, 솔직히 인간이 아무리 발 빠르게 움직여도 분신을 만들어 낼 만큼 빠를 수는 없다.
헌터들이 각성하기 전에 100m 달리기 세계 기록이 고작 9초대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달리면서 분신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하야시가 분신술을 썼다면 그것은 그가 헌터이기 때문이었다.
마나를 이용해 스킬을 썼기 때문에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각성한 뒤에 생긴 스킬이 아니라 그전부터 분신술의 요지 같은 것은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비전이었을 가능성도 조금은 있고.
아니면 여러 명의 스승을 두고 있었다고 하니까 그중에 닌자술을 연마한 달인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재밌네.’
세상에 진짜 닌자술이라는게 존재했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닌자들이 사용하는 기술이나 동작을 흉내 낼 수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분신술을 진짜 썼다는 것은 믿을 수 없지만.
그것은 과거 마술, 연금술과 마찬가지로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실제 연출이 가능하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 그것을 연마한 인간이 헌터로 각성해 그 기술을 완성해 보였다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이제야 처음에 느꼈던 호기심이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런 걸 할 수 있으면서 왜 장난을 쳤어요?”
지직, 지직,
하야시가 분신을 만들어냈다고는 해도 그 분신들이 백 퍼센트 하야시와 똑같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확연히 본체와 분신의 외형이 구분된다.
마치 고장 난 홀로그램 영상처럼 파직거리면서 금방이라도 찢어져 버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마나를 사용해 두 개의 덩어리를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나의 모습을 자신의 본체와 동일하게 만든 것이다.
몸이 세 개로 나누어진 듯한 효과를 냈지만 정확하게 말해 분신을 본체라고 착각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는 스킬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이것은 수준급의 스킬이었다.
아마 더 낮은 등급의 헌터들도 같은 기술을 흉내 내거나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는 애초에 S급 헌터였다.
많은 무도 기술을 탑재한.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분신들이 그의 기술을 10퍼센트만 흉내 낼 수 있어도 대단한 위력을 선보일 것이 분명했다.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하야시의 본체 하나, 그리고 두 개의 분신이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내가 모조리 쉽게 막아내서 그렇지, 하야시의 검술은 원래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 대단한 기술을 비록 두 명이 분신이 있다고 해도 셋이 나란히 선보이고 있자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나조차 그렇게 느꼈다.
나는 웃음만 지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내 딴에는 ‘꽤 하네.’라는 의미가 담긴 칭찬(?)의 의미였지만, 아마 하야시 입장에서는 굉장히 꼴 보기 싫을 것이다.
내 표정 자체를 엄청난 도발로 여기는 듯하다.
왜냐면 하야시 본체와 두 개의 분신 모두 엄청나게 억울하고 짜증 나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오해야, 오해.’
파파밧.
내가 방출한 마나에 움직임이 억눌렸던 하야시가 드디어 공격을 재개했다.
빠른 스피드로 셋 모두 내게 공격해 왔다.
챙! 챙! 챙! 챙!
확실히 싸움을 하는 기세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나를 대하는 자세가 훨씬 진지해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뭐라고 할까?
나도 조금만 방심하면 실수로 한두 번 정도는 칼날이 몸에 닿는 것을 허용해야 할 것 같은 느낌.
게다가 반격의 여유가 없어졌다.
챙! 챙! 챙! 챙!
물론 지금 내게는 딱히 반격할 생각이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단계를 끌어올릴 수 있다.
게임 속 몬스터가 몇 단계에 걸쳐 변이를 하듯이 나도 마음먹기에 따라 훨씬 강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싸움하기 전에 했던 생각, 즉 하야시의 능력에 흥미가 있어서였다.
나, 아니, 람바스가 가능한 한 그가 가진 많은 기술을 끄집어내고 싶어 했다.
‘어떻게 될까?’
이것은 인간 조철웅으로서의 호기심인데, 과연 인간계 천재 하야시의 기술들을 본 우주적 천재 람바스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까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S급 헌터와 싸울 때 받은 영감으로 그저 똑같은 기술만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업그레이드해서 받아들인다.
그것이 마나를 운용하는 방식이 됐든, 스킬 그 자체가 됐든.
물론 마나의 양이나 깊이에서 큰 차이가 있으니까 애초에 같은 기술이라고 해도 같을 수가 없지만.
방어를 하다 보니 세 명이 된 하야시에도 익숙해졌다.
공격을 막는 것이 점점 더 쉬워진다.
‘이게 한계야?’
그렇다면 실망인데.
하지만 하야시 쪽에서도 뭔가를 더 꺼내지 않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비장의 수를 하나나 둘, 아니, 그 이상 숨겨두고 있다.
내 실력의 깊이를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자신의 밑바닥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그 정도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역시 대단한 무도가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높은 경험치를 증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무도를 연마하는 데 꽂힌 천재.
그게 같은 천재라도 람바스와 확실히 다른 부분일 것이다.
많은 가르침과 실전을 통해 싸움에서 침착하는 법도 배웠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도 역전의 찬스를 노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가 가진 천성, 이른바 재능의 한 부분이기도 할 터.
하지만 분신술을 쓰고 있는 하야시는 내게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저 한 명의 하야시가 세 명이 된 것에 불과했다.
이미 나는 그의 기술 패턴에 익숙해졌다.
이 상태에서 두 배, 세 배, 그리고 열 배까지 숫자를 늘리더라도 방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뭐 하면 전신을 방어하면 단단한 보호막 같은 것을 만들어내면 될 것이었다.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그럴듯하다.
그리고 조금만 집중하면 같은 스킬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싸우는 중에 그 정도 여유를 낼 수는 없겠지만.
자기도 분신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왜 이리 열을 내는 건지 궁금해졌다.
설마 뭔가 노림수가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몸이 쑥 하고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놀라서 아래를 보았더니 사람 모양을 한 그림자가 솟구쳐 있었다.
놈은 거머리처럼 내 다리를 들러붙어 있었다.
‘하나는 바닥에 숨겨 놨던 거야?’
애초에 만들어냈던 분신이 총 세 개였다는 건가?
두 개는 자기 옆에 분열시켰고, 나머지 하나는 바닥에 숨겨 놓았다.
‘제법이네.’
기대했던 대로 하야시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도 단순한 검술만으로는 숫자를 아무리 늘려도 나를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어쩌면 자기 몸 옆에 만들어낸 두 개의 분신은 단순한 눈속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굉장하지? 하고 보여준 다음 비장의 수는 바닥에 숨겨 놓은 것이다.
이는 마술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트릭이기도 했다.
설마하니 마술사에게도 사사받은 건가?
분신을 바닥에 숨긴다는 것이 뭔가 만화 같은 느낌이 드는 기술이기도 했다.
이놈 집안이 검술 집안이 아니라 실제로는 닌자 집안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이 더 짙어졌다.
다나카가 같은 쿠로 멤버라고는 해도 개개인의 스토리를 전부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느낌상 다나카는 S급 헌터라고는 해도 권력의 핵심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나와 싸우고 있는 하야시와 마찬가지로 대의를 명분으로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장기 말에 불과한 것 같다.
물론 S급이니만큼 단순히 쉽게 쓰고 버리는 카드는 아니겠지만, 그가 가진 정보의 양이나 질은 한계가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하야시의 집안이 진짜로 비전으로 닌자술을 전수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그것은 큰 비밀일 수 있었다.
인간의 몸으로 체화할 수 없는 기술이니만큼 거의 사장된 비기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헌터가 된 하야시가 그것을 직접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스토리 자체로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마치 100년 전 과학자가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이론을 기술이 발달한 후대에 와서 증명해내는 것과 비슷하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 내 추측일 뿐이지만.
애초에 하야시의 집안이 검술만을 전수하든, 아니면 닌자술까지 같이 전수를 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다만 내게 중요한 것은 그를 이용해 내 안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