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76화 (76/160)

▣ 76화

“그가 주로 상대하는 것은 일본에 반대하는 조직들입니다. 물론 일반인이 아니라 A급 이상의 고급 헌터들을 상대로 무력을 휘두를 일이 있을 때 그가 투입되는 것이죠. 일본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암암리에 사라진 헌터들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절대로 그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조용히 움직이는 헌터에 대해 어떻게 아신 거예요?”

미미가 물었다.

그녀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자신도 정보가 없을 만큼 하야시의 행동은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니까.

“저는 마침 일 때문에 대만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하야시가 대만에 들어와 있다는 말을 들었죠. 대만 헌터계 일부에서 일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투입됐다고요. 물론 저는 장사하는 사람이니 그런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다만 하야시의 동향만큼은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꾸준히 보고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국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군요.”

“네, 그가 대만에서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간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음…….”

이것으로 모든 정황이 정리되었다.

“언제 들어왔지?”

“오늘 아침에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부산에 있다고 합니다. 아마 한국에 온 이상 빠르게 움직이려고 할 겁니다. 그게 그의 스타일이기도 하고, 일본 측에서도 서두르라는 지령을 내렸을 테니까요. 람바스 님이 호텔에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아마 주변에서 기회를 노리거나 손님으로 가장해 호텔에 투숙할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이니 경계를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타깃은 바로 나였다.

가슴속에서 또다시 부글부글 귀찮음이 끓어 올랐다.

‘어쩐지.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될 리가 없지…….’

일본에서 하야시라는 S급 헌터가 나를 죽이러 들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남은 일은 이 일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대해서 한자리에 모인 멤버들이 다시 의견을 나누었다.

“저는 그가 싸우는 모습을 이제까지 딱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다나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짧게 표현하면 명백하게 다른 헌터들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의 무도가로서의 베이스는 두텁고도 화려합니다. 검술을 기본으로 하면서 각종 무도에 두루 통달해 있죠. 집안 자체가 대대로 검술을 연마했고 할아버지에게 직접 지도를 받으면서 쭉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검술 하나만 연마하는 데 싫증을 느끼고, 여러 도장을 전전하면서 일본의 유명한 무도가들에게 직접 사사받았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유명 무도가들이라면 나름대로 자기 기술을 전수하는데 까다로웠을 것 같은데.”

박혜나의 당연한 물음에 다나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죠. 하지만 무도를 연마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이 있는 모양입니다. 진짜 천재를 가르쳐 보고 싶다는. 말하자면 이런 것이죠. 가르치는 동시에 배운다는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배운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나이와 수준 차이가 있을 텐데?”

“천재는 범인과는 다른 인종이니까요. 가르친다고 천재가 가르친 대로만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기 기술을 흡수하는 걸 보면서 가르치는 쪽도 배우는 것이죠. 아, 그런 해석도 가능하구나. 내가 몰랐던 게 있었구나. 그런 재미에 빠져서 많은 스승들이 자발적으로 그에게 비전을 전수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또 그 말이 다 거짓 같지도 않습니다.”

“만화 같은 이야기네요.”

“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하야시가 헌터로 각성한 시점은 좀 늦은 편이었습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이 등장하면서 일반 무예는 빛이 바래버렸죠. 그래서 일본의 무도계는 더 천재의 출현을 기뻐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가르치는 즐거움에서, 새 영웅의 출현을 반기면서, 동시에 씁쓸한 현실을 잊으려고 한 것이죠. 어쨌든 하야시는 자기가 배운 무도들을 전부 일류 수준으로 연마했고, 그 뒤에 S급 헌터로 각성했습니다. 그런 남다른 사연이 그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전투능력에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합니다.”

과연 다나카는 하야시와 같은 조직에 몸담았던 만큼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일본 쿠로가 하야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우리와 대립하려 한다면 이런 다나카의 정보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검술과 무도…… 그게 전부인가요?”

미미가 물었다.

“그것은 인간일 때의 이야기이고 헌터가 되어서는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그의 헌터 능력은 일본 S급 헌터 사이에서도 첫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는 정치적인 욕심이 없는 사람이죠. 그것이 반대로 조직의 호감을 샀습니다. 그런 까닭에 조직은 그를 지원하는 데 더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원이라면 뭘 말하는 거죠?”

“그가 자기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게 조직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준 것입니다. 그를 위해 제작한 무기, 장비, 그리고 훈련 시설까지. 다른 S급 헌터들을 뛰어넘는 지원을 쿠로로부터 직접 받았습니다.”

“그가 다른 마음을 품을 거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나 보네요.”

“물론 안전장치도 있습니다. 쿠로에는 히로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자타공인 리더로 인정받는 자이지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에게 상대를 속박하는 종류의 스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정신을 속박하는 종류의 스킬로 하야시의 충성을 얻어낸 것 같습니다. 먼 과거에나 있었을 법한, 일종의 주종계약 같은 거라고 할까요? 물론 표면상으로는 동등한 S급 헌터입니다만, 그런 것치고 하야시는 히로키에게 굉장히 의존적인 면을 보였습니다. 명령을 받으면 군말 없이 수행해 왔고요.”

‘요즘 같은 시대에 주종과 같은 관계라니…….’

애초에 S급 헌터가 어떤 조직과 인물에게 강하게 예속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나를 주군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뿐 아니라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이-각성수까지 포함해서- 나를 리더, 그리고 인류를 구할 영웅으로 여기고 있다.

뭐, 그렇게 생각하면 일본 쿠로의 존재나 하는 짓이 만화 같다느니, 시대착오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느니 하는 말을 못 할 것 같았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낫겠다.

“그렇군요.”

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나요?”

박혜가 미미에게 물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기대가 어려 있었다.

별로 미미를 오래 겪지 않은 다나카마저 침묵하고 그녀를 보았다.

미미는 박혜나, 다나카에 비해 이번 일에 대한 정보가 적었다.

하지만 그녀가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짜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나보다 나를, 더 정확히 말하면 람바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분명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요.”

미미는 현안의 심각성을 충분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주군이 하야시에게 패할 확률은 0입니다.”

“0이라고요? 물론 나도 람바스 님을 믿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너무 낙관적인 기대 아닐까요? 람바스 님은 아직 본신의 힘을 다 찾지 못하셨습니다. 전성기의 100분의 1?”

뭐? 100분의 1이라고?

나는 박혜나의 말을 듣고 놀랐다.

스스로도 지금 굉장히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앞으로 100배 더 강해진단 말인가?

“아, 아니야.”

박헤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다시 말했다.

그러면 그렇지, 100분의 1은 너무했다.

“실례했군. 1,000분의 1의 힘도 되찾지 못하셨어.”

뭐라고?

박혜나, 너 너무 나오는 대로 말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냉정히 말해 박혜나에게는 사도 메테르가 빙의해 있었다.

‘사도’라는 특수성은 그녀가 현재 지니고 있는 기억이 나나 미미보다도 더 완전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 그게 정말일지도 몰랐다.

박혜나, 아니, 메테르는 람바스에게 모종의 연심을 품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람바스를 더 대단하게 여기고자 하는 면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1,000배 더 강했다고까지 과장할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강력한 적과의 싸움을 앞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젠장.’

나는 방금 박혜나에게 들은 말을 전력으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1,000배 이상 더 강해진다는 것은 곧 고난의 여정을 뜻한다.

그냥 놀고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물론 게임만 해도, 지금도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1,000배 더 강해진다는 것은 너무 까마득한 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엄청나게 귀찮다.

‘그런데도 이기지 못했다는 말이지?’

지금 나보다 1,000배 이상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람바스는 악마에게 이기지 못했다.

‘어처구니없네.

기운이 쭉 빠진다.

진짜로 생각하지 말아야지.

“역시 당신은 주군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군요.”

미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듣고 박혜나가 불끈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람바스 님에 대해서 뭘 모른다는 거죠?”

“하야시가 천재라고 했죠? 주군은 천재 중의 천재, 아니, 그런 단어로 감히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이십니다. 하야시가 재능 있는 인간이라는 것은 알겠어요. 이미 각성하기 전부터 준비가 되어 있던 싸움꾼이라는 것도 알겠고요. 하지만 저희 주군은 싸우면서 강해지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음.’

나는 미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이 맞다.

나는 싸우면서 강해진다.

훈련실에서 그랬고, 지금까지 겪은 몬스터, 그리고 S급 헌터와의 싸움에서도 그랬다.

사실 싸움 자체가 내가 가장 빨리 성장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하야시 같은 헌터와 싸우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지금까지 겪은 싸움보다 훨씬 큰 성장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지요.”

미미가 자기 앞에 놓인 차를 홀짝 마시고 나서 말했다.

“오히려 하야시가 이곳에 온 것은 환영해야 할 일입니다. 그는 물질적인 욕심이 없다고 했죠?”

확인차 하는 미미의 물음에 다나카가 얼른 대답했다.

“네! 그것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그는 그저 강자와의 싸움을 원할 뿐입니다. 그게 그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더 잘됐네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는 사도가 빙의한 것 같지 않아요. 사도에게는 기본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채 움직인다는 뜻이죠. 햐야시는 지금 철저히 개인적인 욕구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

나는 조금 놀랐다.

지금까지 S급 헌터는 사도, 아니면 영웅이 빙의했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하지만 미미의 말을 듣자 하니 하야시는 인간이 S급 헌터로 각성한 케이스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있을 수 있지.’

지구인 중에도 영웅이 될 자질을 가진 자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악마와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각성의 힘을 빌리면 그 수준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었다.

‘흥미롭네.’

내 안에서 하야시가 귀찮은 인물에서 조금은 흥미가 가는 인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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