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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차니즘 헌터-75화 (75/160)

▣ 75화

대신 미미는 누구보다 람바스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연애 감정에 대한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본인 역시 가장 가까운 부하로서 포지션을 확보하고 거기 만족한 모양인데. 그 틈을 파고들어 다른 여자가 접근한다면 당연히 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혜나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렇게 사소한 일 같으면 당연히 나도 전화로 얘기했죠. 그게 아니에요. 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나는 정말로 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뭔데?”

“람바스 님을 죽이려는 자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주군을 죽이려는 자라고?”

미미도 태도를 바꾸어 박혜나의 말에 진지한 관심을 가졌다.

그녀의 미간이 팍 좁혀졌다.

똑똑한 그녀이니만큼 전후 사정을 빠르고 생각한 뒤 결론을 내렸다.

“일본에서 온 거군요.”

“맞아요.”

아…… 그렇구나.

나도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은 다나카를 보내서 나를 영입하고자 했다.

하지만 일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나카가 대뜸 한국으로 귀화하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이것들을 일본에서 좋아할 리가 없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사람을 보내서 내 귀화를 설득하려고 수작을 부리는 걸까?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 같지만 박혜나가 한 말은 그것과 달랐다.

일본은 나를 죽이려고 누군가를 보냈다고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하지?”

진심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영입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타국의 S급 헌터를 죽이려고 하다니.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드는 걸까?

거기 대해서 박혜나가 대답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주군을 영입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한국의 국력을 하락시키는 것입니다. 람바스 님을 영입해서 S급 헌터의 숫자를 줄이든, 죽여서 줄이든 그들 입장에서는 똑같은 거니까요.”

나는 일본과 한국의 외교 정치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말 특이한 것 같다.

공격적으로 헌터계에 투자해서 허터를 많이 영입하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데 모범적인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까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드러내지 않은 속내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적으로 타국의 헌터를 영입하는 데 혈안인 점이나 정치 경제가 불안정한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헌터들에게 지나치게 많이 의존하고 있는 점 등이 설명되지 않는다.

박혜나도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고 여겼는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아시아 전체 지역에서 일본이 패권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 뒤의 계획도 있겠지만 일단은 그렇죠? 과거 영광의 재현, 나아가 그때 못 이룬 패권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뭐?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그것은 최후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겠죠. 하지만 이왕이면 굳이 인명과 돈을 소모하지 않고 타국을 지배할 수 있으면 그게 더 좋지 않겠어요? 현실적으로 동남아시아 몇 개국은 이미 일본의 지배하에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국에서 각성한 S급 헌터를 일본에 빼앗기고 되레 대가를 지불한 뒤 그 헌터의 자국 상주를 부탁하는 입장이 되었죠. 일본에서는 그것을 빌미로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긴, 그렇겠구나.’

S급 헌터의 존재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들의 존재 의의는 뭐니 뭐니 해도 첫 번째가 S급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S급 헌터의 존재가 확보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당연히 S급 몬스터가 출현할 때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런 재앙이 발생하면 S급 헌터가 많은 주변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상대국이 그 대가로 무엇을 요구하든 다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S급 헌터 보유국 간의 경쟁 문제도 있으니 어느 정도 선에서 조율이 될 테지만.

그런 일은 일본이 굉장히 잘하는 분야였다.

그들은 겉으로 자기들이 손해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안으로 자기편을 만들어 그 나라의 실권을 장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저나 자국의 헌터 일본에 뺏기고 또 그 헌터가 자국에 상주하기를 부탁해야 하는 것은 참 굴욕적이구나.’

그 나라 국민들은 일본과 그 S급 헌터를 내놓고 비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S급 몬스터가 출현하는 비상시국이 되면 자신들이 의존해야 할 것은 일본과 자국 출신의-지금은 일본인이 된- S급 헌터밖에 없으니까.

그만큼 S급 헌터가 막강하고 반칙적인 존재라는 뜻이고. 일본은 그런 S급 헌터 다루는 일을 잘했다.

그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대놓고 몰아주고, 신격화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 한국은 눈엣가시였습니다.”

박혜나가 계속 말했다.

“과거 자기네가 지배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알게 모르게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의 패권을 재현시키려는 정, 재계의 권력자들은 그런 경향이 더 심하죠. 헌터 산업의 공격적인 육성으로 국력이 크게 신장한 지금은 더더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심 인정하는 것은 고작 중국 정도밖에 없죠. 그리고 실상을 보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박혜나의 표정은 씁쓸했다.

어쨌든 본질은 사도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육체의 주인은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았다.

자국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말을 할 때는 그녀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이 일에는 일본의 사도들도 많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핵심을 이루고 나머지 인간들, 그리고 일반 헌터들이 다 관여되어 있는 것이죠. 하나의 계획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이 지금의 일본, 그들의 헌터계입니다. 왜곡된 욕구 추구를 대의라고 착각하고 있죠. 거기에 대다수 사람들이 기계처럼 거기 끌려가고 있고요.”

“그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다나카가 말을 했다.

아무래도 자기 나라에 대한-이제 곧 한국인이 될 거고, 이미 정서적으로는 한국인이 된 그이지만- 이야기가 나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모든 헌터들은 조직과 위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꼭대기에는 당연히 S급 헌터들이 있지요. 그 위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국가적인 배신자로 낙인 찍힙니다. 중국으로 건너가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없는 이상 거기 속해서 역할을 수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것도 옳은 선택지는 아니죠. 그곳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표면적으로 대단한 대우를 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박혜나 씨가 말한 대로 일본에서 헌터는, 특히 S급 헌터는 살아 있는 신입니다.”

‘진짜 대단하네.’

나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의 감탄이었다.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말이지?

물론 헌터와 몬스터들이 출현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애니메이션보다 더 애니메이션처럼 변한 세상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나라다. 일본은.

그런 비현실적인 이상을 실현하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고 그것이 결과적인 국력 신장으로 이어졌으니 일본 국민에게는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그러니까 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거네.”

나는 이해했다.

나를 영입하려고 했던 일본의 시도가 단순히 자국의 S급 헌터 숫자를 늘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한국의 국력을 낮추기 위한 노골적인 시도였고, 그것을 빌미로 한국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나를 영입하지 못한 이상 본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나를 제거하려는 선택지도 고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자객이 한국에 온 모양이고.

다나카가 말했다.

“귀화에는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게 마무리되기 전에 이 일을 정리하고 싶을 겁니다. 저는……”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누가 한국에 왔는지 알 것 같네요.”

“응. 당신이 생각한 그자가 맞아요.”

박혜나가 말했다.

뭔가 암호 같은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이었다.

“그게 누군데요?”

미미가 물었다.

“하야시라는 자입니다.”

“하야시?”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S급 헌터의 명단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대단한 헌터라면 이름쯤은 들어봤을 법한데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왠지 이름부터가 자객이라는 냄새가 풀풀 풍겼다.

미미조차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녀라면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모르긴 해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주요 헌터들의 명단 같은 것은 진즉 정리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일본에 그런 헌터가 있었나요?”

“표면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입니다. 말 그대로 지하에서만 활동하는 헌터이지요.”

다나카의 설명을 박혜나가 받았다.

“말하자면 나랑 비슷한 존재라고 볼 수 있겠죠.”

박혜나도 S급 헌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활동했다.

심지어 각성수인 파투를 박상구로 변신시켜 자신은 그의 조력자인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처럼 하야시도 표면적인 신분을 없애고, 지하에서만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하야시도 지하 시장에서 활동하는 건가요?”

헌터계도 다른 경제 시장과 마찬가지로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가 나누어져 있다.

오히려 지하 경제를 통한 시장 거래가 더 크다는 분석도 있으니, 그것을 일본이 간과할 리 없었다.

그것을 위해 S급 헌터 한 명을 투입했다고 해도 말이 되는 일이었다.

“아니요. 그는 좀 다릅니다. 그는 싸움을 즐기는 자이지요. 주로 일본 쿠로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고 움직입니다.”

다나카가가 말했다.

정말 상식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괜히 일본이 애니메이션 강국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하야시가 나를 죽이려고 한국에 들어왔다는 말이지?”

S급 헌터 영입 경쟁은 늘 물 밑에서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S급 헌터를 죽이려고 하다니.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전문적인 자객 S급 헌터도 있는 모양이다. 일본은.

“강한가요?”

미미가 묻자 박혜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합니다. 그는 드러나지 않게 행동하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제가 직접 지하 시장에 몸담고 있는 입장으로서 말씀드리자면 그에게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단순한 도시 전설이 아닙니다. 전부 사실이죠. 아니, 축소된 측면이 더 많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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