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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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다나카는 눈을 떴다.
왜 자기가 잠이 들었던 것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돌아보니 자기가 투숙하고 있는 호텔 방이 맞았다.
그런데 자신은 조철웅과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나?
언제 방으로 돌아온 거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내려다보니 입고 있는 옷도 그대로였다.
상체를 일으켜 세운 그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두통에 다시 벌렁 누웠다.
“윽!”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S급 헌터가 된 뒤로 이런 이유 없는 두통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신체 상태는 이미 일반인의 경지를 까마득히 초월했다.
두통 따위를 느낄 몸이 아닌 것이다.
그는 자기 안에서 휘몰아치는 이미지를 보았다.
“으윽…… 샤, 샤로티……?”
몬스터?
아니,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인간형의 외계인이 자신에게 목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동시에 기억이 휘몰아쳤다.
아마도 머릿속에 떠오른 샤로티라는 인물이 겪은 과거의 일 같았다.
“아아…….”
그는 두통과 고열 속에서 다시는 맞이하게 될 줄 몰랐던 두 번째 각성을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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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켂튜브 최태영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일단 미미가 말했으니 듣기는 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전한 메시지 자체는 어려울 게 없으니 문맥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다만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개연성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릴 수 없는 점 이해해 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조금은 설명을 해 주셔야…….”
“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네…….”
최태영은 미미에 의해 정보를 전달받는 입장이었다.
그 나름대로 정보력과 분석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개인이 혼자 중요한 정보를 캐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미미에게 간택 받았고, 오성택 건과 제4의 헌터 관련 영상으로 이른바 떡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또다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영상을 업로드할 기회를 주었는데, 거기 설명까지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자신은 너무 깊이 알면 안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딱히 돈이나 명예를 위해 영상을 업로드하는 게 아니고, 나름대로 목표와 포부가 있었지만, 그래도 조급함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고 싶지 않았다.
때가 되면 알 수 있겠지.
“진짜야?”
나도 믿을 수 없었다.
미미의 얘기를.
그녀가 상상을 초월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문제를 정리할 수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미미는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표현했지만,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그 상황을 이렇게 이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훈련실에서 잠재력이 높다고, 성장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좀 부끄러웠다.
이미 미미는 혼자서 열 사람 몫을 하고 있었는데.
악마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게 된다면 나보다 그녀의 역할이 더 컸다고 할 수 있으리라.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띵동.
손님이 찾아왔다.
이미 올 것이라고 얘기된 손님이기 때문에 누구인지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하루 만에 보는 다나카는 얼굴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그전에는 수완 좋은 영업 사원 같은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마치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뭐라고 할까?
이미지나 외모 자체가 그 사람과 닮았다.
샤로티.
기억이 깨어나면서 외모까지 바뀌어 버린 걸까?
아마도 내가 샤로티를 보았기 때문에 그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투영되어 그렇게 비치는 것 같았다.
내게 람바스의 게으른 표정이 이어진 것처럼.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다나카가 뭔가 긴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미미가 급히 막았다.
아마도 최태영을 의식해서 그런 것 같았다.
최태영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헌터가 아닌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었다.
그를 위해서도 너무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미의 말마따나 언젠가는 전부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었다.
사도와 악마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전 지구인이 그들의 존재를 자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최태영이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 될 것이다.
“마음의 정리는 되셨나요?”
미미의 물음에 다나카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정리할 게 뭐 있나요? 제가 있을 곳은 조철웅 님 옆입니다. 태어난 나라 같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죠.”
나는 다나카의 말이 반갑지 않았다.
대체 샤로티의 기억이 얼마만큼 깨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안에서 나에 대한 이미지가 급격히 상승했음은 분명했다.
내 옆에 점점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있다.
부탁이니 가급적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귀찮게는 하지 말아 주세요.
“그래도 S급 헌터가 귀화하는 건데 일본 측에서도 반발이 있지 않을까요?”
최태영의 합리적 견해에 다나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국가 간 헌터의 이동은 매우 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요. 그것은 강대국이 헌터를 독점하기 위한 밑 작업이고, 대부분의 나라가 거기 동조하고 있습니다. 좀 복잡한 이야기입니다만 일반적으로 국제 정치는 야생의 세계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힘이 약한 나라는 강대국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강대국의 논리가 지금은 반대로 작용하게 되었군요.”
“네. 아마 일본 내에서 반발이 있을 겁니다. 피치 못하게 조철웅 님과 미미 씨에게 피해를 끼치게 될 것, 미리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아니에요. 일본이 발끈하는 건 저희도 바라마지 않는 일입니다.”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미미의 일본이 발끈하길 바란다는 소리가 믿기지 않았다.
국내 정치 문제도 골치 아픈 상황인데, 일본의 문제까지 끌어들인다니.
미미의 머릿속에 어떤 시나리오가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언론이랑 김말중이 당황하겠네요.”
“뭐, 자업자득이죠. 나중에 김말중 씨는 제가 따로 만날 생각입니다.”
미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말중은 알고 있을까? 자신의 미래가 방금 지옥이 될 것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자, 시작하죠.”
최태영이 미리 세팅된 자리로 먼저 이동했다.
그는 가운데에 앉아서 예의 가면을 썼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나와 다나카가 앉았다.
방송 장비는 미리 최태영이 와서 세팅해 두었다.
어차피 인터넷 방송이기 때문에 복잡한 장비는 필요 없었다.
국제 정치에 파란을 가져올 일인데 이런 식으로 발표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각본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단한 영상 제작이니만큼 길게 뜸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노력’ 스킬을 사용했고, 동시에 ‘표정 변화’ 스킬로 썩은 표정을 온화하게 바꾸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저를 보고 싶다는 메시지와 쪽지가 얼추 수만 개는 온 것 같은데요? 저도 여러분이 보고 싶어서 밤마다 베개를 적셨답니다. 오랜만에 봤는데 정 없이 광고 스킵하고 그러실 거 아니죠? 영상 짧으니까 넘기지 말고 다 봐 주세요. 정말 여러분이 상상도 하지 못할 빅뉴스를 들고 왔으니까요. 먼저 오늘의 게스트부터 소개해 드릴까요? 여러분이 그동안 보고 싶어 마지않았던! 장안의 화제!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희망! 헌터계의 초신성! 대한민국 헌터계는 그가 있기 전과 후로 바뀔 것이다! 제4의 S급 헌터로 한때 전 국민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조철웅 씨를 소개합니다.”
대대적인 소개를 받은 나는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이희진이 난입하거나 그에 준하는 사건이 발발할 우려가 없었다.
그래서 이 표정이 무너질 일도 없다.
그 자체로 사람들이 내게 가진 이미지가 일변할 것이 분명했다.
간단한 인사말 이후로 두 번째 게스트가 소개되었다.
일본에서 온 헌터 다나카.
그는 본래 조철웅을 영입하라는 비밀 특명을 받고 한국에 왔었다.
하지만 되레 반대로 한국에 귀화한다는 발표를 하기 위해 이 영상을 찍고 있었다.
언론은 조철웅의 인성을 장담할 수 없고,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을 배신하고 고통을 안길 인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늘 일본에 헌터를 뺏길 걱정을 하고 있던 한국 국민들은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제가 한국으로 귀화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조철웅 씨의 인품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할 미래가 무척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를 가졌다는 것은 한국 국민에게 크나큰 복입니다.”
캒튜브의 초기 멘트와는 달리 영상은 상당히 길게 촬영되었다.
도저히 짧게 끝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슬 귀찮음에 조바심을 느꼈지만 어설프게 여지를 남기면 또다시 영상을 촬영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꾹 참고 끝까지 영상을 촬영했다.
“수고하셨어요, 주군.”
내용에 만족했는지 미미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어떻게 되나 두고 볼까?’
김말중과 일본 측 양쪽에서 반응이 터져 나올 것이었다.
디테일하게 관심을 갖진 않을 생각이다.
그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 영상이 큰 후폭풍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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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오늘도 거나하게 접대를 받고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히노키탕에 누워 반신욕을 즐기던 김말중은 벽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관절 일본 헌터가 왜 귀화를 해?”
게다가 S급이란다.
이런 일이 장관이 자기도 모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뉴스.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대한민국의 새 S급 헌터 조철웅이 드디어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조철웅 헌터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메시지를 전했으며, 그의 얼굴을 직접 본 시청자들은 준수한 외모와 온화한 태도에 큰 감명을 받은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준수한 외모와 온화한 태도라고?’
김말중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조철웅을 개인적으로 두 번이나 만났다-한 번은 파프리카였지만 그는 그 사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조철웅은 빈말로라도 인상이 좋다고 하기 어려웠다.
사실 꿈에 나타날까 무서울 정도로 사람 기운이 빠지게 만드는 인상이었다.
실제로 호텔에 찾아가 조철웅을 만나고 온 그는 그날 밤 악몽을 꾸고 깬 나머지, 걸그룹 직캠으로 눈을 정화한 뒤에야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다.
한국으로 귀화를 결심했다는 일본의 S급 헌터 다나카가 TV 속에서 말했다.
“제가 한국으로 귀화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조철웅 씨의 인품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뭔데 X발!”
김말중은 너무나 믿을 수 없었던 나머지 히노키탕 안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일단 자신이 진행 중이던 공작, 즉 조철웅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는 일은 실패했다.
오히려 조철웅은 자신의 준수하고 온화한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국민의 호감을 샀으며, 그에게 반해서 한국으로의 귀화를 결심했다는 다나카의 멘트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국보급 존재로 부상했다.
‘X 됐네…….’
꼬르륵.
김말중은 뜨거운 욕탕 안에 얼굴을 담갔다.
혹시 술이 덜 깨서 환각을 보고 있나 생각했지만, 욕탕에서 머리를 내민 뒤에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