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차니즘 헌터-69화 (69/160)

▣ 69화

샤로티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전력으로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사도가 빙의한 상태로 인간 헌터에게 기생한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영웅’도 그러는 걸까?

그런 가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내 안에 있는 것도 단순히 람바스의 기억이 아니라 람바스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나는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람바스는 그저 기억과 능력을 내게 전이했을 뿐이다.

내 안 어디에도 생명으로서 그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아도 발휘하지 않았다.

사도가 정체를 숨기고 헌터 안에 있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샤로티의 모습은…….

내가 느끼는 혼란을 이해한 것인지 미미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무척 지쳐 보였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S급 헌터이니 만큼 스킬을 거는 데도 힘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인지 미미에게 직접 물으면 편하겠지만 그녀를 필요 이상으로 더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다나카에게 빙의한 대상이 사도가 아니라 협조적이었다는 점, 어떤 측면으로는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고 싶었던 차에 되레 미미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샤로티를 꺼내려는 힘이 작용한 것이다.

미미가 왜 이희진 때는 같은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거기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일부러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샤로티는 자신의 사념을 다나카 안에 남겼어요. 이것은 다나카를 위한 게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메시지였죠.”

“메시지?”

그 대상이 나였다는 건가?

그래서 샤로티가 내가 그 람바스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중이고?

근데 그걸 미미는 어떻게 알아본 걸까?

“주군의 명성은 저희 행성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행성 침략은 종종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도 했고요. 샤로티는 주군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구원의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끝내 그것을 성공하지 못했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사념의 행태로 남긴 것이죠.”

“어차피 죽는 마당에 그렇게까지 했다는 거야?”

“희망…… 이죠. 억울한 죽음은 아주 작은 가능성에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다나카 안에서 뭔가를 느꼈어요. 그래서 그가 주군을 지켜봤던 것처럼 저도 그를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오늘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았을 때 제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죠.”

‘어이쿠.’

대체 미미는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오늘 훈련실에서 그녀를 단련시키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다.

물론 그것과 이것은 별개이겠지만, 어쨌든 미미가 지닌 포텐셜-어떤 방향의 능력이든-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샤로티는 말 그대로 그녀 덕분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람바스와 미미의 합작 덕분이었다.

결국 나름대로 판별을 마친 샤로티가 긴 숨을 뽑아내며 말을 이었다.

“이제야, 이런 모습으로 당신을 뵙는군요. 영웅이시여. 저도 행성을 지키기 위해 악마와 끝까지 싸웠고, 뭇 사람들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신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 증거가 나는 당신을 알고, 당신은 나를 모른다는 것이죠…….”

긴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귀찮고 지루했다.

하지만 나는 샤로티에게마저 그런 감정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지금 내게 하고 있는 말은 다잉 메시지와 다름없으니까.

이 경우 전하려는 메시지는 범인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유지를 남긴 것이었다.

“저는 싸웠습니다. 제 능력이 놈에게 결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밖에 할 수 없었죠. 끝이 뻔히 보이는 싸움이었습니다. 제게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악마의 약점에 대해서 연구를 하기도 했죠…… 제게 필요한 것은 도움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숫자로 대항하고자 하는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놈을 이겨내기는 어려우니까요. 람바스 님 같은 영웅이 열 명 정도 있으면 모를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저는 악마를 무너뜨리기에 적합한 최소한의 인물들, 그 특성을 간추렸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능력을 갖기는 어렵고, 또 그래서는 안 되었죠. 몇 명은 찾아냈습니다. 실제로 만나기도 했죠. 하지만 그 명단의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그 명단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사람, 가장 핵심적인 인물,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람바스 님 당신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을 마감하지만, 만약 역사와 우주가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을 자아내어 당신에게 제 목소리가 닿을 수 있다면, 그런 희망을 담아, 작은 저의 메시지를 남깁니다…….”

“음…….”

방이 침묵에 휩싸였다.

죽어가는 사람이 남긴 묵직한 메시지에는 함부로 뭐라고 대꾸하기 힘든 진지함이 있었다.

가능하면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들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었다.

샤로티가 말한 대로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이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샤로티가 내게 전한 메시지는.

그의 고개가 푹 꺾이더니, 조금씩 형체가 바스러졌다.

발현되었던 마나의 일부가 흩어진다.

그리고 그것 중 대부분은 다시 다나카의 몸속에 빨려들었다.

“컥!”

정신을 차린 다나카가 허공을 본 채 거친 숨을 토해냈다.

기도가 막힌 사람처럼 숨도 못 쉬고 한동안 천장을 노려보다가, 건전지가 빠진 로봇처럼 픽, 옆으로 쓰러졌다.

“이게 뭐지?”

나는 미미에게 물었다.

큰 의식을 치른 강령술사처럼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은 미미가 대답했다.

“진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나카 씨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를 통해서 들으면 되겠죠.”

“아…….”

잘 됐다.

그 명단인지 뭔지, 악마의 약점인지 뭔지를 한꺼번에 들었다면 기억하는 데 부담이 되었을 테니까.

내 기억력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귀찮다는 사실이다.

무언가를 머릿속에 담아둔다는 것이.

그게 누군가가 남긴 처절한 메시지라면 더욱 그렇다.

“일단 이자를 자기 방으로 옮겨야겠네요. 조금 쉬었다가…….”

미미가 그렇게 말했을 때, 파프리카가 쪼르르 움직이더니 다나카의 소매를 물었다.

덩치가 엄청 차이나지만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질질 끌고 갔다.

아마도 다나카를 방에 옮기는 것은 자기가 하겠다는 것 같았다.

“어느 방인지는 알고 있지?”

내가 물었더니 단추처럼 똘망똘망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가 이 방에서 각성수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비밀이었다.

직원이 지나가다가 파프리카를 보면 문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호텔 측에서는 이미 내가 강아지를 데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여기 투숙할 때 조심성을 좀 발휘한 것 말고는 그 뒤로는 파프리카를 감추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걱정 따위는 아예 할 필요가 없었다.

펑!

파프리카는 방을 나가기 전에 내 모습으로 변신했으니까.

다나카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린다.

그리고 다녀오겠다는 듯 나를 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어휴…….”

아무리 귀여운 애완동물이라지만, 나로 변신한 파프리카를 보는 것은 고역이었다.

부탁인데 웃지 마.

내가 나인 게 싫어지잖아…….

102

다나카가 파프리카에 의해 자기 방으로 옮겨진 뒤 미미와 내가 상의한 것은 그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이었다.

“역시, 이용할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이용할 가치? 다나카를?”

다나카에게 샤로티가 빙의해 있고, 샤로티가 악마를 어떻게 해치워야 할지 고민했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샤로티의 기억을 이어받은 다나카가 알고 있을 것이고.

하지만 미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얘기가 아닌 듯했다.

내 예상대로 그녀가 말했다.

“김말중이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죠.”

미미의 표정은 살벌했다.

그녀는 원래 내가 누군가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해코지당할 때 나보다 더 화를 냈었다.

그런 것치고 김말중에 대한 문제는 인내심을 꽤 발휘했다.

왠지 일부러 그에게 장단을 맞춰준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나는 이 퍼즐을 어떻게 끼워 맞출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켂튜브에게 지금까지 영상을 올리지 말라고 한 게 역시 맞았네요.”

그러고 보니 켂튜브는 지금껏 잠자코 있었다.

각 언론이 내 기자회견을 방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켂튜브가 아직 영상 업로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기자회견 하는 조건이 켂튜브가 영상을 가장 먼저 올리는 것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 그 공백을 김말중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기자회견 자체가 어수선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켂튜브가 영상을 올린다고 해도 그게 내게 도움이 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그가 잠자코 있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최근 화제의 영상을 연속으로 업로드하면서 구독자가 엄청나게 늘었고, 영향력도 그만큼 강해졌다.

적어도 오성택 사건과 제4의 헌터 문제에 있어서는 주류 언론과 맞짱을 떠서 이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업적을 선보였다.

조철웅이 기자회견을 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켂튜브의 영상 업로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그 배후에 미미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김말중 같은 인간은 언제나 전체 판을 읽지 못하는 법이죠. 항상 자신과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니까요.”

“어쩔 건데?”

“김말중은 자신의 권력을 키우기 위해, 그리고 일본은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주군을 이용하려고 해요. 둘 모두에게 엿을 먹어야죠.”

미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샤로티를 끄집어내느라 많은 양의 마나를 소모했으므로 매우 지쳐 있었다.

그런 얼굴에 복수의 감정이 드리우자 말 그대로 두려울 지경이었다.

김말중이 불쌍하다.

대체 어쩌려는 걸까?

“주군, 부탁이 있어요.”

“응.”

나는 듣지도 않고 “응.”이라고 대답했다.

왠지 여기서는 귀찮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켁튜브 영상에 출현해 주세요.”

“기자회견 말고 따로 영상을 만들겠다는 거야?”

“네. 다나카랑 같이 출연해 주세요.”

“음…… 그거야, 뭐.”

노근의인 스킬과 표정 변화 스킬을 사용하면 어려울 게 없다.

기자를 수십 명을 불러놓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보다 훨씬 상황을 컨트롤하기 쉬울 것이기도 하고.

“왈! 왈!”

다나카를 옮겨놓고 돌아온 파프리카가 쪼르르 달려와서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미미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고생하셨어요. 죄송하지만 저도 좀 쉬어야겠어요.”

“응, 푹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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