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훈련실에서 나와 걸음을 옮기는 데 몇몇 헌터들이 이쪽을 보았다.
이번에는 단순히 미미의 아름다움 때문에 시선을 끄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들은 내가 S급 헌터를 위해 전용으로 마련된 훈련실에서 나오는 것을 본 것이다.
그곳은 지금 누구에게도 개방되어 있지 않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헌터가 와도-이희진이라면 가능하겠지만-이용할 수 없는 곳인 것이다.
만일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굉장히 고가일 것이 뻔하기 때문에 굳이 돈 자랑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굳이 이용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런 곳에서 걸어 나왔으니 시선을 모으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옆에서 박거한이 수건을 들고 실실 웃고 있었다.
아무리 친절한 오성급 호텔이라지만 직원이 이 정도로 친절하지는 않다.
오히려 고급 호텔이니만큼 서비스가 매뉴얼화된 측면이 있었다.
그들이 시선이 수상하다는 듯이 나를 따라왔다.
나는 뜨금하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표정 변화’ 스킬을 사용했다.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해도 내 썩은 눈을 보면 내가 조철웅이라는 것을 들킬 확률이 있었다.
과연 내가 표정을 바꾸자 나를 빤히 보던 헌터 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갔다.
‘이것도 꽤 불편하구나.’
가능한 이 호텔에 오래 머물고 싶었는데.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많이 알려지고 그것이 관심을 모으게 된다면 상당히 불편한 일이 생길 확률이 높았다.
S급 헌터에게 함부로 접근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미친 척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설마 죽이겠어.’ 하는 생각을 할 테니까.
그 말대로 아무리 S급 헌터라도 자신을 귀찮게 한다고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었다.
‘여차하면 떠야지.’
지금 바깥은 나에 대한 화제가 끊이지 않는 중이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호텔이 방어벽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방어벽이 무너지는 순간, 나는 이곳을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해외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S급 헌터는 국보급 존재이기 때문에 국가의 감시를 피해서 해외로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이 국가와 나 사이에 존재하게 될 계약에서 마찰을 일으키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미미는 내가 자유롭게 해외를 오갈 수 있게 해달라는 쪽으로 계약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내 성격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도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대립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편이 편하고, 필수적일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몬스터들과 사도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이 나일지라도 설마 그들이 전부 한국으로 모여들지는 않을 테니까.
나로서는 그편이 편하겠지만 내게도 애국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왕이면 이 나라가 사도들에 의해 초토화되지 않았으면 했다.
이런 점을 안다면 국가에서도 그런 조건을 달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나가주세요.’ 하고 정중하게 부탁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귀찮은 일을 피해 해외로 나가는 것도 쉽게 택할 수 없는 선택지였다.
박혜진에게 부탁하면 밀항이라든가 하는 수단도 이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도망자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만약 그랬다가는 언론이 기고만장할 것이다.
역시나 조철웅은 해로운 존재가 맞았다고 하면서.
나는 미미와 함께 내 방인 스위트룸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다.
지하에서부터 고속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별생각 없이 서 있었는데 문득 미미가 말했다.
“주군, 그자가 옵니다.”
“그자?”
자세히 물을 겨를도 없이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물론 이 엘리베이터는 개인용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든 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스위트룸을 포함한 고급객실 전용으로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탈 때마다 늘 한산한 편이었다.
지금까지는 같은 엘리베이터에 미미와 파프리카를 제외한 타인이 탄 적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 내가 있는 엘리베이터에 탄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열린 문밖으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가 일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물론 이 호텔은 헌터들이 많이 투숙하는 곳이었다.
지하에 그럴듯한 훈련실까지 마련되어 있는 호텔이니까.
하지만 남자에게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내게 적대감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의 능력이 꽤 수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급…….’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가 곧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 S급이구나.’
본인은 최대한 마나의 노출도를 낮추고 있지만, 압도적인 식별력을 자랑하는 내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나는 곧 그가 최고 수준에 있는 헌터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 높은 경지는 아닌 것 같지만.’
S급이라고는 해도 아주 강한 헌터는 아닌 것 같았다.
백 퍼센트 전투형 헌터라기보다는 다른 쪽 능력이 발달한 것 같았다.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외모만 보아서는 평범한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구분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말투를 들으니 알 수 있었다.
이 남자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특유의 억양을 듣자 하니 일본인인 것 같았다.
그러자 며칠 전에 미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게 접근하려는 외국인이 같은 호텔에 투숙했다니.
“어휴…….”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래도 잠재적으로 나를 귀찮게 할지 모르는 사람이 정체를 드러냈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곧 결론이 난다는 이야기니까.
내가 한숨을 쉬는 것을 보고 남자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했군요.”
무슨 오해를 했는지 미미 쪽을 흘긋 보면서 말했다.
‘아니거든!’
아무리 그래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은밀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영화에서는 종종 그런 신이 나오지만, 상식적으로 엘리베이터란 공간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가?
내가 전문 배우도 아니고 내 프라이빗한 장면을 누군가가 보도록 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미미와 내가 그런 사이가 아니기도 하고.
“타시지요.”
내가 뿜어내는 ‘저리 꺼져.’ 하는 기색 때문이었는지 쉽게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하는 남자에게 미미가 말했다.
“아, 네!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이 남자의 태도가 꽤 정중하다고 느꼈다.
S급 헌터가 대체로 무례하고 안하무인이라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나 마찬가진데.
정중한 태도가 이 남자의 원래 성격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목적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미미가 말한 대로 이 남자는 일부러 내게 접근했으니까.
일본인이 내게 왜 접근을?
그렇게 생각하니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었다.
내가 흘리는 기운과 내 썩은 눈을 보고 애써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가 높은 확률로 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왔을 거라고.
다른 나라의 S급 헌터를 자국으로 귀화시키려는 공작은 공공연히 벌어지는 일이다.
대놓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물밑에서는 그 일이 엄청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헌터들이 선진국으로 귀화한 것이 설명되지 않으니까.
단순히 더 좋은 환경을 위해 선진국으로의 귀화를 택했다고 해도 너무 많은 숫자이다.
심지어 아프리카나 중미,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가 아닌 곳에서도 심심치 않게 S급 헌터의 이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대한민국도 내게 ‘계약’이라는 족쇄를 채우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실제로 일본에서 접촉을 해왔고.
“갑자기 나타나서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불편하게 해드렸나요?”
“네.”
“윽.”
내 즉답에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30대 중반의 샐러리맨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각성하지 않았더라도 주로 영업이나 서비스업 쪽에서 능력을 발휘했을 것 같은 타입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 많고 많은 헌터 중에 굳이 내게 접촉하는 역할을 맡아 한국에 온 것은?
S급 헌터 영입을 위해 S급 헌터를 보내다니, 역시 타국의 S급 헌터를 빼 오는 데 가장 적극적인 나라 중 한 곳답게 일본은 강수를 두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혹시 저에게 시간을 좀 내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긴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싫은데요.”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의 부탁을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상대가 이렇게 정중하게 나오니까 나도 단칼에 거절할 수 있어 좋았다.
부디 얌전히 물러나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아…….”
난처해 하는-명색이 S급 헌터이니만큼 어디에서도 이런 취급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남자를 위해 의외로 미미가 나섰다.
“주군, 그러지 말고 얘기나 좀 들어보시죠. 오래 걸리지 않을 거죠?”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남자는 미미의 제안이 놓칠 수 없는 동아줄이라는 듯 덥석 잡았다.
“휴우…….”
나는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미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뭔가 계획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이미 남자가 내게 접근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말한 대로라면 남자가 한국에 들어온 지는 조금 된 것 같다.
그동안 기회만 살피다가 기어코 내게 접근한 것이니 단칼로 거절하고 물러나게 하기에는 조금 불쌍한 구석이 있기도 했다.
강하고 무례하게 나왔다면 내게도 명분이 좀 있었을 텐데 오히려 이렇게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면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약해졌다.
만약 그것까지 노리고 한 행동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자이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엘리베이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남자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보였다.
101
‘요즘 손님이 많구나.’
나로서는 절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김말종, 그리고 그가 끌고 온 길드장들에 이어 이번에는 일본에서 온 불청객까지 내 숙소를 침범했다.
그는 나를 자국에 귀화시키려는 거국적인 사명을 띠고 한국에 온 남자였다.
S급 헌터인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나는 그의 이름도 몰랐다.
헌터에 관심이 많은 마니아들, 그게 아니더라도 웬만큼 세상 굴러가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S급 헌터들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상식인데, 나는 내 정신을 잠식한 람바스 때문에 그런 것을 기억하는 데 내 뇌를 쓰지 않았다.
‘적어도 사도는 아니야.’
미미가 말한 것이 맞는 듯했다.
다소 시간 차를 두고 책이 펼쳐지는 경우가 있기는 해도 사도를 만난 것이라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쾌한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반복적으로 사도를 만나면서 그것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람바스의 기억이 강해지면서 사도를 색출해내는 본능도 더 강해지는 느낌이다.
내 앞에 쩔쩔매는 기색으로 앉아 있는 일본 헌터를 바라보고 있을 때, 익숙한 하나의 현상이 일어났다.
파라라락-
홀로그램으로 표현된 두꺼운 책이 나타나 펄럭이기 시작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