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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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내가 훈련실에 들어와서 사냥한 것은 케로노만 하나뿐이었다.
S급 몬스터를 한 마리 잡고 휴식을 좀 취했더니 다시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게다가 이곳에 있으니 여유가 생긴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언제든지 여기 와서 경험치를 쌓으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으름뱅이답게 나중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꼭 급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더구나 지금 내게는 심각한 위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예를 들어 보구를 만들기 위해 S급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거나, 아니면 당장 꼭 해치워야 하는 S급 헌터가 있다거나-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S급 헌터는 사도가 빙의한 헌터를 일컫는다.-
그런 급박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열정적으로 훈련할 이유가 있겠는가?
이곳은 호텔에서 인증했듯이 내 전용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급하게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비용이 물처럼 펑펑 나가는 훈련 시설을 굳이 호텔에 두어 유지하는 이유가 혹시 내가 가능한 한 이 호텔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의심할 필요 없이 명백히 그런 의도가 있을 것이다.
내가 머물고 있다는 자체로 큰 메리트를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S급 헌터는 말하자면 초대형 인플루엔서였다.
사람들은 S급 헌터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 따라 하고 싶어 한다.
오성급 호텔에 머무는 것은 아무나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내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 상류층에 확실한 광고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호텔비도 사실상 안 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추측도 하고 있으니, 나로서도 굳이 여기서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게 전혀 없으니 나가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고 할까?
무엇보다 오성급 호텔은 보안과 경비가 최상위 수준이라서 간섭을 받지 않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었다.
내가 먼저 S급 몬스터를 사냥한 뒤에 한 일은 미미가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물론 이곳은 S급 헌터 전용으로 만들어진 시설이었지만 A급 이하의 헌터가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 시설의 명성이 아주 높아져서 S급 헌터들이 일 년 내내 빈틈없이 예약을 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A급 헌터에게도 개방을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미는 진짜 A급 수준도 아닐 거고 말이지.’
나는 그녀의 현재 능력이 A급에서 S급 사이에 걸쳐져 있는 수준이고, 노력 여하에 따라 금방 S급으로 올라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보았다.
그녀는 전생에 람바스와 더불어 끝까지 악마의 맞서 싸웠던 경험이 있다.
웬만한 능력으로는 그 싸움에 가담할 수조차 없었을 게 당연.
람바스와 동등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으니, 그나마 끝까지 그의 곁에서 싸운 그녀의 능력도 엄청났다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본인의 성장보다 나를 성장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워낙 람바스가 손이 많이 가는 인물이고 그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악마를 처치하는데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일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나는 그 점이 좀 아쉬웠다.
그냥 ‘조철웅’의 예측만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는 람바스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일반 능력자들, 그리고 사도들과 견주어 미미가 어떤 수준에 있는지.
람바스는 미미가 굉장한 포텐셜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미미에게 훈련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가 남의 일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는 성격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부터 게을러 빠졌는데 남에게 조언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니까.
하지만 그는 계속 생각했었다.
미미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기 옆에서 서포트만 하는 것이 미미에게 시간 낭비일지 모른다고도 생각했었다.
“음…….”
평소라면 귀찮아서라도 하지 않았을 생각이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아마 훈련실 분위기가 편안하기도 하고 이곳에서 공짜로 서빙된 음식들이 꽤 만족스러웠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음식들에는 마나를 정연하게 하고, 스태미너를 북돋는 효과가 있으니까.
나는 미미에게 말했다.
“미미. 본격적으로 네 실력을 키워보는 것은 어때?”
“네?”
미미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나는 네가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
“아…….”
그녀는 멍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생에서는 람바스에게 결코 이런 식의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나도 평소였다면 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계속 권유해 보기로 했다.
“‘미러 월’ 같은 서포트 스킬 말고 네가 사용할 수 있는 다른 공격 스킬은 없어?”
물론 나는 그녀에게 사체 해체술이라든가 사도의 영혼을 속박하는 스킬 같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전부 람바스을 돕는 것, 다시 말해 그가 저지른 일의 사후 처리 같은 능력들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능력에 특화되어 있기보다는 람바스와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다시 말해 그녀에게 그만큼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음만 먹으면 그것과 비슷한 수준의 다른 스킬들을 계발할 수 있을 테니까.
네 재능을 아끼지 말란 말이다.
“글쎄요?”
검지로 입술 아래를 누르며 잠시 생각한 그녀가 곧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한번 해볼까요?”
그녀의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자니 내가 괜한 말을 꺼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나처럼 뼛속까지 게으른 인간들은 남의 기운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기 마련이니까.
“응…….”
하지만 모처럼 기뻐하는 미미를 보니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나도 호기심이 있으니까.
그녀가 얼마만큼 뛰어난 잠재력을 뽐낼 수 있는지.
‘오늘 스킬은 미미를 위해서 써 볼까?’
람바스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람바스가 아니었다.
전에 생각했던 대로 내 성장은 단순히 람바스의 기억과 능력을 깨우는 데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조철웅 특능에 영향을 주어서 내 본질이 깨어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즉, 내가 자기 일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일에도 관심을 가질 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내게 무척 기분 좋은 징조였다.
나도 되찾고 싶다. 과거의 나를.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혹시 나는 진심으로 과거의 내 부지런하고 근성 있는 모습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때의 패배감, 쓰라린 기억들이 무의식중에 다시 그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을 거부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이제는 다르지.’
알고 있다. 이제는 노력하는 족족 그것이 경험치가 되어 내 성장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마음이 두근거리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내게는 의욕이나 근성보다는 게으름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진짜 조철웅의 본질이 람바스의 그것을 뛰어넘었을 때, 그리고 둘 사이의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람바스가 꿈꾸었던 것이었을 테고, 나도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일이었다.
나도 악마 따위에게 죽고 싶지 않다, 정말로.
‘너무 귀찮은 생각들을 해버렸네.’
이쯤 하면 되었다.
나는 거시적인 생각에서 의식을 거두고 ‘노근의인’ 스킬과 ‘분석’ 스킬을 미미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자, 보여줘 봐, 너의 포텐셜을!”
“넵!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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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의 재능은 뭐라고 할까?
예상대로였다.
뛰어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람바스는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재능을 가진 존재라는 것.
그래서 그의 관점으로 보면 어떤 재능도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더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어.’
분석으로는 보인다.
조금만 손 보면 더 완벽해지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말로 바꾸는 것은 역시 어려웠다.
어설프게 조언하면 상대는 더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런 생각들 때문에 좀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나는 오늘 노력했다.
내 페이보릿 동료이자 부하인 미미가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래서 최대한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물론 나는 최대로 이해하기 편하게 말을 해준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이는 미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지만.
그녀는 훈련실에 불러낸 홀로그램 A급 몬스터들을 상대로 칼춤을 추다가 내가 툭 던진 조언에 멍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러다가 어이없이 몬스터에게 얻어맞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다시 날렵하게 검무를 추었다.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모르긴 해도 일반 헌터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발전속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 누구에게나 통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 누구보다 람바스를 잘 알고 있는 미미이므로 수수께끼 같은 조언을 자신의 피와 살로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군!”
미미가 아름다운 얼굴에 땀을 흠뻑 흘리면서 말했다.
불친절한 조언에 지쳤을 만도 한데 그녀의 표정에는 기쁨이 넘쳤다.
대신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괜한 말을 꺼내 가지고…….’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귀찮은 일이었다.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
더구나 한번 시작한 이상 이것을 도중에 멈출 수도 없었다.
‘훈련을 봐주는 사람을 더 늘리지 말아야지.’
여기서 더 귀찮아지는 것은 절대로 사절이다.
‘파프리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파프리카는 각성수이지만 내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알아듣는다.
녀석의 포텐셜도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녀석이 싸우는 것은 거의 본능대로였다.
누군가에게 배워서가 아니다.
하지만 애완견을 조련하는 느낌으로 내가 녀석을 훈련시키면 어떻게 될까?
그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펼쳐졌다.
‘나중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리고 조철웅의 성정을 더 많이 되찾아서 귀찮은 생각이 안 들게 되면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용량 초과다.
여러 가지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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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와 함께 훈련실을 나왔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휴…….’
밖에 나오자마자 수건을 들고 대기하고 있던 박거한이 내게 그것을 내밀었다.
이 훈련실은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올 때마다 박거한을 봐야 한다는 사실.
지나친 관심은 상대를 거북하게 만드는 것을 모르나 보군, 이 사람은.
그리고 내게 있어 호의를 귀찮아하는 한계치가 엄청 낮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나를 위해 한다고 하는 행위가 실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장했다.
조금씩 조철웅의 본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귀찮음을 억누르고 박거한이 내민 수건을 받아 땀이 전혀 나지 않은 얼굴을 대충 훑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